가까이 다가와야 해!
(송현 로마노 신부)
소금인형이 기나긴 여행 끝에 해변에 도착해보니
난생 처음 보는 바다가 멋지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인형이 바다와 친해지고 싶어 물었습니다.
너는 대체 누구니? 나는 바다야!
그래? 난 너에 대해 알고 싶어!
네가 정말로 나를 알고 싶다면 가까이 와서 날 만져봐!
바다의 제안에 소금인형이 조심스럽게 한쪽 발을 담그자 발이 녹았습니다.
인형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소리쳤습니다.
야. 너 내 발을 어떻게 한 거니?
아무래도 너한테 속은 것 같아!
절대로 그렇지 않아!
날 더 많이 알고 싶다면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와야 해!
인형이 다시 용기를 내어 더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물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기분이 이상해졌으나 바로 그 순간 바다를 온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소금인형은 바닷물에 다 녹아버렸고
오늘날 바닷물이 짠맛을 내는 것은 소금인형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소금인형의 전설...이라는 동화의 일부분입니다.
이 동화가 말해주듯이 누군가를 알고 그와 친해지려면 그 대상에게 가까이 다가서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상대를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일찍이 아타나시오 성인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으니
모든 인간도 하느님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오신 것은 오로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충만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당신이 직접 이 세상에와서 인간과 똑같은 조건을 취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하느님을 알고 또 그분과 같은 영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져야만 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은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 안에 사랑의 꽃을 피워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꽃을 많이 피워낼수록 그는 본래의 자기 모습.
곧 하느님의 모습에 더욱 가까워질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구원의 길은 어려운 신학 이론이나
복잡한 성경 해설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사랑을 통해야만 구원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1요한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