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사야 11장 1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은 이사야가 생각하는 어떤 상상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오늘 1절 말씀에 보면 이 색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여기에서 2세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한 나라를 만드실 텐데 그러한 그 나라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특히 6절에서 8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세우기를 원하셨던 그 천국이 어떤 모습인지를 우리가 한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1장 6절 말씀에 보면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라고 말씀합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사는 것이 천국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워 있는 곳이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송아지와 어린 사자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으면서 어린 아이들이 그들을 끌고 다니는 곳이 천국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8절 말씀 계속, 7절 말씀 계속 보면요.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라고 이야기합니다. 풀 먹는 사자가 사는 곳이 천국입니다. 상상을 할 수가 없죠.
그렇지 않습니까?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 수 있습니까?
이리와 어린 양은 우리가 지금 현재 알고 있는 생태계와 먹이 사슬 안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이디가 양을 잡아먹거나 아니면 이디의 공격을 피해서 양이 도망가게 되겠죠. 그러므로 함께 산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워 있다 불가능한 일이죠. 그리고 마두 8절을 저희들이 보게 되면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장난하며 젖 된 어린 아이가 독서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어린 아이들이 독서의 굴에 손을 놓고 장난칠 수 있는 곳이 천국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금 오늘 이 본문에 나오는 여기에 일리가 이빨이 빠졌거나 양을 싫어하는 양을 좋아한다는 의미는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1위의 용맹함, 날카로운 이빨 그러니까 이리의 특성을 다 가지고 있는 동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셨던 이 이리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똑같아요.
사자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자가 갑자기 발톱이 다 빠졌다거나 그 이빨이 둔하여졌다거나 그런 상황에 있는 것이 천국이 아닙니다는 사자의 모습대로 완전히 보존되어지는 곳이 천국입니다. 이리도 이리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지는 곳이 천국입니다. 코브라가 코브라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천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들이 독사구에 손을 넣고 장난을 쳐도 해암이 없다는 것이죠. 중요한 거는 이 독사구에 어린아이들이 손을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이리와 양이 함께 누울 수 있는 것은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일리가 양을 향한 공격 본능이 공격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걸 우리가 어디서 볼 수 있냐 하면 사자가 풀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사자가 짐승을 먹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사야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리가 양을 공격하지 않아요
어떤 신학자는 이 모습, 이 그림을 보면서 어떻게 이야기하냐 하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기 전 에덴 동산의 모습으로 회귀한 것을 보여준다. 세상에 죄가 들어오기 전에 아마 에덴 동산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겁니다.
연상이 되시나요?
아담이 아담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 동산을 거닐며 살아요. 근데 아담이 그 에덴 동산을 거닐며 다니면서 코브라의 독을 무서워하며 다녔을까요? 아닙니다. 혹 아담이 에덴 동산을 거닐다가 사자의 공격을 받을까 봐 두려움 속에 에덴 동산에 살았을까요?
아닙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공격도 없고 다툼도 없고 분쟁도 없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질문을 하나 던지겠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곳일까요? 교회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을 추구하며 나아가야 하는 공동체일까요?
교회는 천국과 닮아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천국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삭의 뿌리에서 나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통치가 있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완전하지는 않아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천국을 완전히 우리 이 세상 위에 실현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이 공동체는 천국을 닮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을 담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의 가정이 천국을 닮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이 교회 공동체가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어디에서 천국을 볼 수 있습니까? 그래도 그나마 흐릿하게라도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가 모여 있는 이 공동체를 통해서 저들이 흐릿하게나마 천국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동체는 천국을 닮아 있어야 합니다. 천국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서로 얼마나 우리가 서로 다툴 일들이 많습니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너무 연약하잖아요. 공격할 거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다툴 일이 얼마나 많아요. 그러나 독사가 독을 가지고 있지만 어린 아이를 물지 않는 것처럼 그것이 천국이라고 한다면 내 한마디가 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그런 힘과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그를 물지 않는 것이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아빠 교회가 왜 그래? 세상 사람들이 질문하잖아 요즘 교회는 왜 그 모양이에요?
우리가 저들에게 천국을 보여주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후대들에게 천국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내가 천국 백성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비록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공동체를 통해 천국이 보여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시편 133편 1절 말씀에 보면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구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보시고 아름답게 보시는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냐 하면 형제가 연합하는 공동체라고 이야기합니다. 형제가 동거하는 공동체를 하나님은 선하고 아름답게 보신다고 말씀하세요. 여기에서 연합이라는 단어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이사야는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산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시편 133편 1절에서 이야기하는 이 본문은 이 연합이라는 단어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이 하와를 보고 처음에 내 뼈 중에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고백하잖아요. 너와 나는 분리되어져 있는 두 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의미거든요.
오늘 시편 133편의 말씀하는 이 연합도 똑같은 의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우리가 각각의 지체로서 하나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연합의 의미입니다.
좌우를 한번 보십시오. 옆에 계신 분과 나는 하나입니다. 여러분 너와 내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여러분 동거한다는 것은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기도하고 함께 산다는 의미입니다.
이 모습은 우리가 초대 교회에서 너무 잘 볼 수 있잖아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떠난 후에 성령이 충만하여졌을 때 그때는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교제하며 기도하고 찬양하며 말씀을 배웠습니다. 모든 것을 그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는 이러한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함께 아니 하나가 될 수 있고 동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서로를 향한 공격성을 제어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변에 있는 누군가를 볼 때에 뭔가 흠잡을 것, 욕할 것들, 이러한 것들을 먼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할 거리들, 그들을 품을 거리들, 이러한 것들을 먼저 주목하여 보는 것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서로를 지적하고 원망하고 헐뜯는 그러한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를 위로하여 주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공동체가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입니다.
아마 우리에겐 예리한 발톱이 있을지도 몰라요. 이거 한 방이면 걸리면 다 죽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공격하지 않습니다. 내게 능력이 있고 힘이 있지만 나보다 연약한 자들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 머무는 그곳이 하나님을 닮아 있는 모습들이 나타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가정이 그러하기를 우리 교회 초원이 그러하기를, 우리 공동체가 그러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9절 말씀에 보니까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리 바다드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사모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할 때 천국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할 때 그곳에 천국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 힘으로 안 돼요. 말씀이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우리 청년부 안에 정말 무리 바다풍 같은 하나님의 영의 충만함이 있기를 정말 우리 청년 공동체가 이 젊은 세대의 소망을 보여주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줄 수 있기를 정말 사모하며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리 바다 품 같이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충만해서 우리 이 목장 교회가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공동체이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이 시간 청년들하고 앞으로 한 번 나와서 오늘은 특별하게 함께 꼭 부르고 싶은 찬양이 있어서 무슨 찬양인지 아시겠죠? 네 우리 바다 덕풍 같이 우리 한번 같이 찬양했으면 좋겠는데요. 여기 있는 청년들은 다 앞으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지난주에 목사님께서 유치 초등부하고 고등부 축복해 주시는 거 보고 또 청년 사역 때부터 제가 배가 좀 아파가지고 제가 목사님한테 부탁을 했습니다. 우리 청년부도 오늘 좀 축복 좀 해 주십시오. 그래서 한번 찬양하고 나면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우리 청년부도 마음껏 축복해 주실 건데요. 이 시간 우리 세상 모든 민족이 함께 찬양하면서 하나님 정말 우리 청년 공동체에 무리 바다 덮음 같이.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