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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나회 회원 여러분 잘 지내시지요
기대가 크고 희망 가득한 2009년도 어느새 마지막 달 중순 이군요
못다한 일 급하게 마무리 하시려다 무리하시면 건강 헤쳐요,또 2010년이 다가오니까요
내고장 지명 알리기도 이제 마지막 편 입니다.그동안 읽어보아 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언제나 변함없는 고향사랑 부탁드릴께요 감사합니다.
◉하송리(下松里): 상주군 화서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산성리(山城里)ㆍ하달리(下達里)ㆍ중달리(中達里)ㆍ송천리(松川里) 일부를 합하여 하달과 송천의 이름을 따서 하송리라 했다.
1.거름 보 들: 대마 마을 북동쪽에 있고, 청계보들의 동쪽에 있는 들.
1.고기(高期): 높은 터
1.고동(高洞): 높은 터
1.극락정사(極樂精舍): 성산산성 안에 있는 절. 옛 산성창(山城倉) 터다.
1.금곡: 삼거리 마을 남동쪽에 있는데 샘골 골짜기에 있다.
1.내원암(內院庵)터: 하송리 산38-1번지에 해당하는 청계사 북쪽 산 중턱이다. 암자터 근처 바위에 ‘자암선사좌’라는 암각서가 있다고 한다.
1.높은 터(높은골,높은터,고동,고기): 청계 동북쪽에 있는 마을. 산봉골 동쪽 위에 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1.높은 터 골: 무고동골 입구에서 동북쪽으로 난 골짜기. 산봉골 북쪽에 있다.
1.달 내(달래,달천): 점마 마을 남동쪽에 있는 마을. 이안천 상류에 청계(淸溪)와 송천(松川)이 합류한 아름다운 냇가(川邊)에 위치하여 달천이라 한다고 한다. 하송2리다.
1.달래 들: 달내 마을에서 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까지 이어지는 들.
1.달천: 달내
1.대궐(大闕) 터: 하송리와 화남면 동관리 사이의 높이 746m의 청계산 중절 서쪽에 있는 터. 성산산성(견훤성)안이다. 견훤이 이 곳에 대궐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1.대마: 이안천과 977번 도로의 남쪽에 해당되는데, 청계보들과 거름보들의 경계부분의 남쪽 이안천 건너에 있다. 하송1리다.
1.대원암(大院庵): 성산산성 안에 있었는데 산중 제일 암이다. 암자 뒤에 석천(石泉)이 석굴(石窟)에서 용출(湧出)하므로 대원이라 불렀다고 한다. 청계사 속암이었다.
1.돌탄 모래이: 세거리와 짓질재 사이에 있는 모롱이.
1.두루봉: 화북면 상오리ㆍ화서면 하송리ㆍ화남면 동관리와 경계를 이루는 높이 874m의 산. 갈령의 동쪽에 있는데, 성산산성의 뒷산이다.
1.무고동(武古洞): 청계암 북동쪽 안산골에 있는 마을.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견훤왕의 무기창 터라고 한다.
1.무고동 골: 청계 마을 북동쪽 안산골의 북쪽에서 갈라진 두 개의 골짜기 중 북동쪽으로 난 골짜기.
1.문수암(文壽岩): 양지 마을 북동쪽 산성 밑에 있는 바위인데, 기도처로 만들어 놓았다.
1.미드락 골: 점마 서쪽에 있는 골짜기. 중보들에서 북동쪽으로 나 있다.
1.배나무 골: 송내 북쪽 끝에 있는 마을. 배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1.불당 골: 중말에서 북쪽으로 난 골짜기.
1.사기점(沙器店) 고개: 높은터에서 외서면 대전리 사기점으로 넘어 가는 고개.
1.산봉 골: 무고동에서 동쪽으로 난 골짜기.
1.산성 창(山城倉): 청계산 극락정사 자리에 창사(倉舍)가 있었는데, 1727년(영조3) 불에 타서 1730년 청계사 옆에다 옮겨 세우고 수구(水口)에 성첩을 쌓았다고 한다. 중화(中化) 5개면의 민곡(民穀) 창고였다. 이때 쌓은 성첩 자리에 신방석이 있었으나 마을 안 길을 확ㆍ포장하면서 없어지고, 수문(水門) 일부가 몇 년 전 홍수로 떠내려 갔다.
1.삼거리(三巨里): 달래 마을의 남동쪽과 금곡 마을의 북서쪽에 있다. 하송2리다. 남동쪽으로 상주ㆍ문경, 남서쪽으로 화령ㆍ보은, 북쪽으로 화북ㆍ청주로 가는 세 갈래 길목에 위치하였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그러나 지금은 외서면 대전(大田)과 예의(禮儀)로 통하는 또 하나의 길이 열려 네 거리가 되었다. 수령 500년을 헤아리는 큰 소나무가 있고 동쪽에는 삼령(三嶺)이 솟아 있으며, 짓질재와의 사이에 돌탄모랭이가 있다. 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가 있다.
1.삼령(산): 삼거리 동쪽에 있는 산.
1.삼령 고개: 삼령골 북서쪽 끝에 있는데, 여골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1.삼령 골: 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에서 북동쪽으로 나 있는 골짜기. 여골로 이어진 포장도로가 나 있다.
1.삼 봉: 청계골 북쪽에 있는 높이 692.9m의 산. 외서면 대전리 갈골과 경계를 이룬다.
1.새 고개: 삼거리 동쪽에 있는 고개.
1.샘 골: 금곡 마을이 있는 골짜기다. 이안천과 977번 지방도로에서 북동쪽으로 나 있다.
1.서재 골: 청계암에서 서북쪽으로 난 긴 골짜기. 두루봉(874m)의 서남쪽이다. 골짜기를 따라 임간도로가 나 있다.
1.선기 골: 안산골의 북쪽에서 갈라진 두 개의 골짜기 중 북쪽으로 난 골짜기.
1.선신각(仙神閣): 청계골 양지 마을 뒤인 북쪽에 있는 신당. 하송리 315번지이다. ‘후백제대왕신위(後百濟大王神位)’라고 쓴 위패를 모시고 해마다 정원 보름과 시월 보름에 마을 사람들이 제물을 차려 동제(洞祭)를 지낸다.
건물은 정면 1칸ㆍ측면 2칸의 민도리 맞배지붕이다. 상량문에 ‘도광19재’라는 연호가 쓰여 있는데, 곧 1839년이다. 주민들은 동신목인 골맥이 신에게 동신제를 먼저 지내고, 다음으로 견훤사당에 산지장(산제당?)을 지낸다고 한다. 『동국통감』과『증보문헌비고』에 ‘견훤’을 ‘진훤’으로 읽고 있는데, 그것은 옛날 상주지방에서 ‘견훤’을 ‘진훠이’로 발음했기 때문이다. ‘긴(長)’을 ‘진’으로 발음한 것과 같은 이치다.
1.성산 산성(城山山城.견훤 성,대궐 터,진흥 성): 하송리 산 42번지다. 청계산 해발 873m 고지의 남쪽 해발 710m 고지와 748.3m 고지를 잇는 능선과 그 서쪽 기슭에 있는 산성. 하송리와 화남면 동관리 사이가 된다. 신라 말 견훤이 이 곳에 성을 쌓고 순사를 훈련하여 후백제의 제왕이 될 수 있는 힘을 길렀다고 한다.
돌로 성을 쌓고 흙으로 내탁(內托) 을 했는데 둘레 3,340m다.『상산지』는 둘레가 5,350보인데, 중화(中化) 5개 면의 인부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 기사는 본래의 성을 수축할 때의 기록이라고 생각된다. 산성의 동쪽 아래에는 청계사가 있었고, 견훤의 위패를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내는 신당이 있어서 일년에 두 번 동제사를 지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화령장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성 안에 대궐터가 있고 저수지터 1곳과 우물터 3곳이 있다.
해발 873m 고지에서 남쪽으로 내려 오는 능선에 이 성의 동쪽 성벽이 축성되었고, 746.3m 고지에서 서쪽으로 뻗은 작은 능선의 북쪽을 안대궐터, 그 남쪽을 바깥대궐터라고 부른다. 안대궐터의 동쪽 성벽은 토석잡축성으로 성 안쪽 높이가 2~5미터 가량되고, 바깥은 급한 경사를 이룬다.
746.3m 고지는 안팎 대궐터를 구분하는 곳이면서 동쪽 성에서 가장 높은 곳 인데, 바위 위에 토석(土石)으로 망대를 쌓았다. 북쪽 성은 10~20미터 높이의 바위 위에 토석혼축성을 쌓고 그 사이에도 토석혼축으로 성을 쌓았는데, 높은 3곳에는 살받이를 토석으로 쌓고 망대로 사용하였다. 그 중 가장 동쪽에 있는 망대는 성벽에서 20m 가량 떨어진 바위까지 성이 높이와 꼭 같은 높이로 길을 내고 망대를 정했다. 그 서쪽 옆의 망대는 지금은 분묘가 조성되어 있고, 그 옆에는 7m 정도 높이의 바위가 수직으로 갈라져 2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그 위에 살받이를 쌓았다.
성 안에는 옛 산성창 자리에 극락정사가 있고, 건물터와 우물터 및 저수지 시설의 터도 있다. 또 여러 곳의 바위 위에는 확실한 용도를 알 수 없는 지름 20~30cmㆍ길이 5~10cm의 홈을 1~3개씩 만들어 놓았다. 필자는 곡식을 넣어 하늘이나 산천에 제사를 지내던 흔적으로 추정한다. 746.3m 고지에서 서쪽으로 뻗은 작은 능선의 북쪽인 위쪽을 안대궐터, 그 아래쪽을 바깥대궐터라고 한다.
『상산지』여지편에, “주(州)의 서쪽 40리 에 있다. 옛날 청계산 위에 창사(倉舍)가 있었는데, 1727년(영조3) 불에 타서 1730년 청계사 옆으로 옮겨 세우고 수구(水口)에 성첩을 쌓았다.
성은 화산과 속리산 사이 지세가 험준한 곳에 있는데 성첩이 완전하고 견고하다. 동쪽에 은성창이 있고, 서쪽에는 화령창과 중모창이 있으니 가희 조령과 추풍령 양쪽의 관방이다. 일명 견훤성이라고 한다. 둘레는 5,350보(步) 인데 중화 5개 면의 인부가 동원되었다.”라고 전한다.
1830년 작성된 상주지도인「화서면도(化西面圖)」에는 산성 앞에는 청류문(淸流門)이 있고, 지금은 극락정사(極樂精舍) 자리에는 청계사(淸溪寺)가 있으며, 그 동남쪽에 견훤창(甄萱倉)이 있다. 청계사의 서쪽에는 내원암(內源菴)이 내원암의 북쪽에는 대원암(大源菴)이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내원암은 용바위 서쪽에 있는 건물지로 추정된다. 지금도 석축과 우물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원암은 안대궐터 북쪽 골짜기에 건물터와 골짜기 아래로 지금도 물이 나는 우물이 있고, 산등성이에 연못의 흔적이 있는 곳으로 추정이 된다.
1.세거리(삼거리): 송내 동남쪽에 있는 마을. 동편은 상주, 서편은 화령, 북편은 화북 으로 가는 길이 있다.
1.소 갈머 골: 양지 마을 앞인 동쪽에서 동북쪽으로 난 골짜기.
1.송계분교장(松溪分校場): 송계초등학교가 1998년 3월 1일 분교장으로 격하하여 화령초등학교에 편입되었다. 세 거리에 있다.
1.송 내(송천,송천리): 하송리에서 중이 되는 마을. 이안천과 송계에서 내려오는 내가 마을의 앞인 남쪽에서 만난다. 청계 마을에서 내려오는 내의 서쪽 마을을 양지마, 동쪽에 있는 마을을 음지마라고 한다.
예부터 소나무가 많아서 송(松)과 마을 앞에 내가 흘러 천(川)을 싸서 송천(松川)ㆍ송내(松內)라 하고, 아래쪽 마을을 음지마, 위쪽 마을을 양지마라 한다고 한다. 하송 1리다.
1.송내 공소(천주교 송내공소): 언제부터 공소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986년 1월 2일 신자 수가 너무 적어 처분하였고, 지금은 건물을 개조하여 일반 주민이 살고 있다. 화북 으로 가는 길과 청계 마을로 들어 가는 갈림길의 동쪽 밭에 있었다.
1.송천: 송내
1.송천리: 송내
1.안산 골: 청계암에서 북쪽 무고동까지 이어지는 골짜기.
1.양달 마: 송내(송천) 서쪽에 있는 마을. 양달이 지는 곳이다.
1.양산봉 골: 산봉골에서 남동쪽으로 난 골짜기. 산봉골의 남쪽에 있다.
1.양지(陽地): 양달마. 송내의 북쪽에 있는 마을.
1.옹기가마(甕器窯址): 하송리 11-1번지인 점마 마을 서쪽 구릉 기슭의 끝에 있다. 과수원에서 옹기조각과 요벽(窯壁)조각이 흩어져 있어서 옹기가마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1.용시 골: 무고동 북쪽에 있는데, 선기골 남쪽 입구의 서쪽에 있는 골짜기.
1.웃 서재 골: 서재골 중간쯤의 서쪽에 동서로 난 골짜기. 골짜기 끝이 서재골로 이어진다.
1.원통암(圓通庵): 청계사 서쪽에 있었다.
1.음지 골: 송천 마을의 동쪽에서 북동쪽으로 난 골짜기.
1.음지 마: 송내(송천) 마을의 동쪽에 있는 마을. 천주교 화령성당의 공소가 있었으나 없어졌다.
1.이안천(利安川): 화남면 동관리 형제봉 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화서면 북동쪽을 꿰뚫고, 내서면 서원리에 이르러 북동쪽으로 꺾여 흘러서 공검면 서북쪽을 지나 이안면 여물리에 이르고, 여기서 동쪽으로 꺾여 함창읍 금곡리 마을 앞에서 영강으로 들어간다.
1.작은 가마소: 청계사 북동쪽 내에 있는 소.
1.작은 서재 골: 웃서재골 아래인 남쪽에 동서로 난 골짜기. 골짜기 서재골로 이어진다.
1.점 마(점촌): 송내 동남쪽에 있는 마을. 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 서쪽에 있다. 하송 2리 인데 질그릇점이 있었다. 마을 앞으로 이안천과 977번 지방도로가 화남면 동관리를 거쳐 화북으로 이어진다.
1.점 촌(店村): 한 때 이 곳에 옹기점이 있었다 한다. 1998년 8월 12일 수해로 인하여 많은 이재민 발생과 주택이 무너지고, 농경지가 유실되는 큰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하송 2리다.
1.중 보 들: 점마 마을 서쪽에 있는 들.
1.중사리(中寺里): 중절리
1.중상 골: 대마 마을의 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난 골짜기.
1.중 절: 중절리
1.중절리: 청계 북쪽에 있는 마을. 절이 있었는데 1950년 한국전쟁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1.진 등골: 점마 북동쪽으로 난 골짜기. 긴 등성이가 있다. 골짜기 끝에 있는 새진채석장으로 가는 길이 있다.
1.진훤 성(甄萱城): 진흥성
1.진흥 성: 성산산성
1.짓질 재: 화령 잿말래이
1.청계(淸溪): 송내 북쪽에 있는 마을. 청계산 아래다 하송 1리다.
1.청계 골: 송천에서 청계암까지 이어지는 긴 골짜기. 골짜기의 북쪽 끝이 산 너머 있는 외서면 대전리 갈골의 청계골 남쪽 끝과 서로 만난다.
1.청계 보 들: 송천 마을의 음지마 남쪽에 있는 들. 이안천의 북쪽과 청계 마을에서 내려오는 내의 동쪽에 있다.
1.청계사(淸溪寺): 하송리 308-1번지에 있다. 성산산성(견훤성)의 외성(차단성)안에 있다. 신라 말기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고, 1730년에는 산성창(山城倉)을 절 옆에 옮겨 지었다.
18세기 말엽에는 상산 선비들의 시회(詩會)의 공간이 되기도 하여 문학의 산신 구실을 하기도 했다. 1905년 각지에서 일제에 항거할 때 의병들의 근거지였다.
1907년 11월 왜병의 병화로 소실되었는데, 불타기 전에는 50여 칸의 큰 사찰이었다고 하는 청계사가 있었다. 1924년 청신녀(淸信女) 김씨(金氏)가 새로 법당을 지금 장소에 짓고, 남장사에서 금불상 1좌를 이안(移安)했으나 1995년 경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의 법당이 재건되었다.
1.청계사 부도군(淸溪寺浮屠群): 하송리 청계사 관음전에서 남쪽으로 100m 지점인 산기슭에 부도 2기가 있다. 하송리 327번지이다. 모두 석종형(石鍾形)으로 정부(頂部)에는 양련을 조식(彫飾)하였고 기단을 갖추었다. 1기에는 ‘영월대선사탑(影月大禪師塔)’, 나머지 1기에는 ‘춘파대선사탑(春坡大禪師塔’이라는 명(銘)이 있어 주인공들을 알 수 있다. 전자의 기단은 원형의 판상석(板狀石)이고, 후자의 기단은 팔각판상석이란 점이 다를 뿐 동일한 양식이다. 주변에는 기와조각이 많이 흩어져 있다.
1.청계사 터: 하송리 307번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지금은 청계사 자리의 서쪽 구릉 일대다. 밭에서 기와조각이나 벽체조각이 발견되었다.
1.청계산(淸溪山): 청계 서쪽에 있는 산. 인근 마을에서는 두루봉이라고도 하고, 대궐터 산이라도 한다. 청계산(873m)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이 산에 성을 쌓고 활동한 천혜의 요새지다.
견훤은 이 곳 성산산성과 화북 시어동 입구 우측의 장바위에 있는 견훤산성을 무대로 활동한 듯 성산산성은 안대궐터와 바깥대궐터로 구분되고 있으며, 이 곳 사람들은 청계산을 대궐터산이라고도 부른다.
1.청계암(淸溪庵): 청계 북쪽에 있는 절.
1.큰 가마 소: 청계 마을 위 청계사 앞에 있는 소. 배와 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
1.투구봉: 투기봉
1.투기 바우: 투기봉에 있는 바위. 모양이 투구처럼 생겼다고 한다.
1.투기봉: 송내 동쪽에 있는 산. 투기바우가 있다.
1.하송 공소(세거리공소): 천주교 안동교구 화령성당 소속 공소다. 하송공소는 1910년 세워졌다. 처음에는 김천본당 관할로 추정되는데, 나중에는 퇴강본당의 소속으로, 또 상주본당(지금의 서문동성당) 소속이 되었었다.
이 곳에 처음 천주교 신자가 된 사람은 전주 사람 박명학(베드로)의 부친이 이 곳에 와 옹기골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는데, 공소로 설립될 당시 마을 사람 100여 명이 모두 신자였었다고 한다. 1962년 화령본당이 설립되면서 화령본당 소속이 되었다. 화서면소재지와 외서면 예의리, 화북면 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1.하송교: 삼거리 마을 앞 이안천에 있는 다리. 977번 지방도로에서 갈라진 길이 이 다리를 건너 상곡으로 간다.
1.하송리 당목(堂木): 하송리 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 옆인 하송리 58번지에 있다. 나무허리에 금줄을 쳐 놓았는데, 나무 주위는 마을 휴게소로 이용된다.
1982년 10월 26일 보호수로 지정되어 지정번호는 11-24-13-18-1이다. 느티나무 당산목 으로 수령 320년이며 나무 높이 13mㆍ가슴 높이 둘레 7m다.
1.하송리 당산(堂山): 하송리 273-1번지 양지마 마을 앞다리 옆에 있다. 당목과 돌탑이 있고, 977번 지방도로 쪽으로 상석을 놓았다. 당목 옆에는 ‘허공영세불망비(許公永世不忘碑)’와 귀부가 떨어져 있다.
1.하송리 암각서(岩刻書): 하송리 307번지에 있는 바위에 새긴 글자다. 청계 마을 청계사 뒤 임도(林道) 옆 밭 가에 있는 바위 동쪽 면에 ‘남무산왕지위(南無山王之位)’라 새겼다.
1.하 양지 골(한양지골): 진동골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 중보들과 거름보들의 사이에서 북동쪽으로 나 있다.
1.형제봉(兄弟峯): 화남면 평온리와 동관리 경계에 있는 산. 화북면과 경계를 이룬다. 두봉우리가 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다.
1.화령 잿 말래이: 삼거리에서 신봉리의 화령으로 넘어가는 고개. 백두대간에 있다.
1.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 삼거리에 있는 학교. 송계초등학교였으나 학생 수의 감소로 분교가 되었다. 운동장이 해발 213m다.
1.화약 굴: 대궐터 뒤 청계산에 있는 굴. 화약을 쌓아 두었다고 한다.
1.화양지 골: 점촌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1.화창현(化昌縣) 터: 신라 상주(尙州,지금의상주시)의 영현(領縣)의 하나로서, 고려 이후 지명을 알 수 없으나,『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상주 서북쪽 50리 에 있는 성산(城山)이라는 고성이 곧 화창현성(化昌縣城)이라고 하였고, 김정호의「대동여지도」에서도 성산산성(일명 견훤성) 아래를 화창현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삼국사기』주석은 그 위치를 현재의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일대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활목 재: 투기봉에서 상곡리의 퉁점으로 넘어 가는 고개. 모양이 활목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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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향에 자명 알리기 잘 보고갑니다 고마워요~~~~~~
내가살든곳이라 세삼 지명을 보니 고향생각이 나네요 ...그곳에는 아직도 친구님들이 많은데 ...지금이장님이 고성숙씨 가 ..우리친구인데 .....
화서면의 이동별 역사 공부가 마지막회라고요. 그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늘 화서면을 사랑해주세요
박창배님 고성숙이장님이 친구 되시는군요,이장님께서는 늘 웃으시면서 마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계시지요,종종 화령의 소식을 올려 놓을테니 자주 들리시길 바랍니다.
연말 바쁘신데도 불구하시고 리동마을 탐방 감사합니다. 계속협조하여 주십시요... 제넘어...는 추억의 지찔제 부는바람이지요. 서만-밤원-시거리-여골-청계사-비지제...추억이 선 하군요... 애주가 성숙이가 아직도 건재하군요 동무를 보며는... 용기 신 산림집은 내집같이...용학이 성님도 잘 있는지...
내고향역사알려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시군요 저희는 그냥 않아서 보고만있지만...많은 자료 수집이 쉽지 만은안을터인데...열의가 부럽습니다 존경스럽구요 매번 잘보고는있네요 감사합니다 꾸뻑~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