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조력사망을 이야기하면서 생명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명은 매우 가치 있는 것이라서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나라에서 허용하면 안된다는 주장이 많이 존재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살방조죄는 범죄이고 보라매 병원 사건의 적극적 안락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생명이라는 것은, 특히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존엄하며 매우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존엄하게 죽음을 결정하는 것도 이 생명의 가치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웰다잉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사조력사망법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존재에 대한 반박
의사조력사망(자살)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배경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젠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 죽음 직전에 수반되는 고통에 대해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형벌 중 가장 중한 형벌이 사형인 점을 고려하면 그만큼 죽음이 두려운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나중에 죽을 때 안 아프게 죽고싶다.”라는 생각을 한번 쯤은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죽음이란 고통과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저는 죽음도 즐길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는 믿음은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저는 안락사가 연명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고 하나 결국 이러한 안락사를 연명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만 누릴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습니다. 바로 당장 모든 인간에게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기엔 무리가 있으나 그 범위 확장을 연명의료결정법의 허용 범위를 넓히는 방법이 아닌 새로운 입법이라는 방법을 통해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의사조력사망(자살)법 시행 시, 의사조력사망(자살)의 범위에 들어가는 질병 및 부상의 정도에 대한 기준 설정의 모호성에 대한 반박
의사조력사망(자살)법을 시행한다고 처음부터 어느 질병, 어느 부상을 정해 놓고 그것만 허용해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법은 현재에 맞게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법안이 마련된다면 그 기준을 놓고 여러 협의가 이루어지고 이와 관련된 많은 사례가 등장할 것입니다. 이러한 협의와 경험을 통해 점차적으로 이 법이 적용되는 질병 및 부상을 확장하고 기준을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법안조차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영원히 모호한 것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또한 환자들의 선택적 자살 수요가 높아질 가능성을 대비하여 모든 의사조력사망은 신중히 이루어져야합니다. 가령 더 이상 치료로 완치할 수 없다는 진단서, 병원장의 서명이 담긴 동의서, 직계비속의 동의서와 같이 많은 서류를 필요로 한다거나, 약간의 비용을 부과하여 쉽게 결정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3. 환자의 비진의 의사에 의한 의사조력자살 가능성 존재(사회심리적인 자살 가능성 존재)에 대한 반박
위의 제도가 입법된다면 비진의 의사에 의한 의사조력자살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순 없습니다. 저는 이 제도의 입법을 찬성하지만 비진의 의사에 의한 자살은 반대합니다. 본인의 생명에 대해 어느 누구도 관여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제도를 시행하되 비진의 의사에 의한 자살을 방지하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해야합니다. 물론 법이 인간의 심리를 엿보거나 관여할 수는 없지만 최종 안락사 결정까지 복잡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복잡한 과정 속에서도 비진의가 진의인양 최종 안락사가 결정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이런 우려 때문에 다른 많은 존엄한 죽음을 바라는 인간들의 웰다잉권을 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의사조력사망법을 시행하되 비진의 의사로 자살하는 비중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까다로운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간이식을 받아야하고 남편의 가족들은 당연히 남편의 부인이 이식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부인은 이식해주기 싫었지만 시댁 식구들의 등쌀에 못 이겨 이식을 해주기로 결정합니다. 의사는 다른 가족들을 내보낸 후 부인과 단 둘이 있을 때 ‘누구나 이식하는 걸 싫어할 수 있고, 아무도 부인에게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부인은 의사에게 하기 싫다고 말했고 의사는 남편 가족들을 불러 아내분의 간이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의사조력사망도 최대한 본인의 의사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존재합니다. 의사조력사망을 선택하지 않은 불치병 환자들이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는 죄인으로 낙인 찍히는 일이 없도록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제도로써 충분히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