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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순례자가 보내준 작은 풀꽃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사랑과 호의로 살았다. 나만 산 것이 아니라 인도와 네팔의 고아와 과부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았다. 올해는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미얀마 소수민족인 친족 피난민들과도 나누고 있다.
오랜 나눔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나눔은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결코 나눔은 선하고 의로운 인간이라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눔이 얼핏 볼 때 사람의 행위처럼 보여도 위대한 신적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에 사람의 의식으로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나눔은 그 사람의 성숙도와 인격의 질을 보여주는 영성의 바로미터이다.
갚을 길이 없는 사람들과 일용할 양식을 나누는 것, 고아와 과부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한숨 소리를 들어 주는 것,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펼치는 것이 곧 바로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시는 예배이다. 그러므로 지식의 사람은 거룩한 나눔에 참여하기 어렵다.
처음 멋도 모르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야 하는 선교 사역에 발을 내디뎠을 때 무엇을 먹을 것인가? 무엇을 입을 것인가를 걱정하지 아니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외국으로 떠나면서도 주위 사람들을 믿으며 태평하였다. 당시 나는 주변의 성공가도를 달리는 친구들과 선배들, 후배들 그리고 가깝게 지내던 교우들이 당연히 후원해줄 것이라고 단순하고 순진하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과 나의 성품과 가치관과 행동을 잘 아는 사람들이 따스한 마음으로 동참할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지구 차원의 보편적인 기아와 질병을 나눔과 후원에 대해서도 낙천적이었다. 자칭 타칭 의식화된 사람들과 국내외 석학들, 사회개혁을 꿈꾸는 사람들, ‘하나님 나라’를 외치는 신학자들, 목회자들, 지식인들이 앞을 다투어 나눌 것이라고 믿었다. 날마다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목회자들과 그 메시지를 듣는 성도들이 가슴 아파하며 나눔의 손길을 펴리라고 믿었다. 인권과 민주화에 앞장 선 교회 목회자들, 의롭고 선량한 사람들,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 십자가를 강조하는 사람들, 사랑과 정의, 평화에 목마른 사람들, 세계 시민들이 거국적, 거족적 나눔에 조용히 진지하게 참여할 것이라고 상상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나의 나눔과 후원에 대한 기대와 생각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
오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나는 받는 사람의 행복과 건강을 비는 겸허하고 순수한 나눔과 후원을 말한다. 나누고 바로 잊어버리는 사람들, 나누면서 적어서 미안하게 생각하는 후원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복잡하고 음흉한 나눔, 힘 있는 자들에게 아첨하며 더 큰 보상을 바라는 정치적인 이기적 계산이 깔려 있는 그런 장사속의 나눔과 후원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눔과 후원으로 위대하고 선한 이미지와 명성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나, 그것을 사업과 장사 속으로 이용하려는 ‘양가죽을 쓴 이리의 나눔’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나눔은 신문과 라디오와 TV를 장식하며 거액을 자랑하며 유튜브에서 떠돌며 인구에 회자되며 지구 차원의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나눔과 후원은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는 마음 담긴 겸허한 나눔으로 순전히 나눔을 받는 상대방의 복지와 행복, 희망과 미래를 위하는 나눔이다. 살아 보니 후원과 나눔은 친한 사람, 아는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의 메시지를 외치는 목회자가 하는 것도 아니고 평등과 정의를 말하는 대학교수나 지식인들이 하는 것이 아니었다.
부자가 하는 것도 아니고 세계 문제를 통찰하고 있는 지구차원의 석학들, 꿈꾸는 혁명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는 각종 사회 활동가들, 내노라하는 지혜와 지식을 자랑하는 각종 전문가들, 살기 좋은 세상을 거침없이 약속하는 정치인들, 공생을 말하는 기업인들이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눔과 후원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나라와 민족, 학력과 경력, 실패와 성공, 안전과 불안, 유식과 무식, 절망과 희망을 떠나서 생명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먹고 입고 마시며 사는 하루하루 삶이 기적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것으로 사는 인생에 대하여 기뻐하는 사람들이 하는 감사였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이웃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곁에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들이 이웃에게 바치는 사랑의 예물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님 은혜를 아는 것과 감사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과 이웃사람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다. 그들 가슴에는 자기가 자기로 살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 대한 감사가 지하수처럼 숨어 있다.
나는 인생 나그네 길에서 이러한 화려하고 초라한 사람들, 성공하고 실패한 사람들, 병들고 건강한 사람들, 가난하고 부자인 사람들, 잘 나고 못난 사람들, 작고 큰 사람들, 무식하고 유식한 사람들, 무능하고 유능한 사람들, 몸 노동의 사람들과 머리 노동의 사람들, 겸허하고 당당한 사람들, 열등감과 우월감에 찬 사람들, 의로운 사람과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들, 선량하고 마음이 여린 사람들, 감사와 감격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것이 내가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며 위로이며 은혜였다.
그 중에는 오랜 세월 동안 그야말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기도해주신 천사 같은 분이 있다.
그는 의사 아버지를 둔 부잣집 장녀로 객지로 나가 공부할 때 가정부가 따라와서 건강을 돌보아줄 정도로 몸이 허약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자녀 여럿을 낳아 키우면서 건강해졌고 많은 연단으로 신앙의 내공이 깊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외모가 단아하고 청초하며 애수가 서린 얼굴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타입이었다. 내가 가까이에서 지켜 본 바로는 그는 자신의 옷이나 화장품 등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고 나누며 섬기는 일에 늘 고심하며 넉넉하였다.
그의 남편은 자수성가한 사람으로서 그에게 인색하였으며 매달 생활비를 꼬치꼬치 따지고 확인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런 남편에게 볶이며 시달리는 것이 힘겨워 가계부를 적어서 남편에게 주었다. 그럼에도 남편이 일일이 설명을 요청하며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가 겁 없이 돈을 쓴다' 고 말하는 잔소리에 병이 났고 그 뒤로 가계부를 팽개치고 생활비만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대로 잘 사는 형제자매들이 있었고 학창시절에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친구들이 있어서 그가 나누어야 할 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궁한 중에도 나눔을 계속하였다. 남편은 돈이 없는 아내의 지속적인 나눔을 의심하였다. 자기 몰래 돈을 숨겨두었다고 의심하며 그를 닦달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중 장부를 만들기에는 너무 투명한 영혼이었고 자기 자신만 아는 안일한 삶을 살기에는 너무 여린 영혼이었다.
그는 자신이 순례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검박하게 살았다. 남편과 자녀들을 출세시키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모든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기꺼이 낮은 자리로 내려가서 낮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병들고 가난하고 늙고 약한 사람들을 벗 삼았다.
그는 곤욕을 치루면서도 무식하고 용감하게 외국에 나가서 고생하는 나에 대한 연민으로 빠듯한 생횔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후원금을 보내주었다. 뿐만 아니라 동생들이나 친구들에게 특별한 축하를 받아서 돈이 생기면 추가로 후원금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틈틈이 친구들에게 후원 카드를 들고 가서 후원자를 받아 주었다. 그는 후원금을 보내면서도 항상 적다고 미안해하였다. 나는 그런 그의 겸손과 사랑에 감동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준 천사로 받았다.
그렇게 십여 년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의 자녀에게 현지의 기아 소식을 전하였더니 곧 바로 답장과 함께 후원금이 들어왔다. 그는 가난하고 열악한 현지인들의 고통스런 죽음과 기아에 가슴 아파하며 ‘사랑의 쌀’ 나눔에 동참하겠다며 모금할 때 마다 소식을 달라고 하였다. 그 뒤로 그는 그의 약속대로 모금에 동참을 하였다. 그러나 세 번째 보낸 소식에는 “기도하겠습니다.”라는 한 마디 말만 달랑 써 보냈고 일체 말이 없었다. 말은 “기도하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으나 냉기가 돌았고 나와 상대하지 않겠다는 냉정함, 단호함이 절로 느껴졌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묻고 싶었으나 그 말에서 느껴지는 모멸감과 단호한 기세에 눌려서 입을 다물었다.
후원으로 존재하면서 나는 부자 앞에서 나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고 억울하고 답답해도 말을 삼키는 버릇이 생겼다. 더구나 나를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는 사랑하는 천사의 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의 냉정한 태도는 그의 어머니와 너무 달랐으나 나는 언젠가 그 이유를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으며 기다렸다. 3년이 채 못 되는 시간에 가슴 아픈 그 사연을 알게 되었다.
어느 해 그에게서 남편의 사망 소식이 왔다. 장례식장에 달려가서 만난 그는 현실감을 상실한 듯 멍하게 보였다.
삼우제가 지나고 며칠 후에 편지가 왔다. 남편이 자녀들에게 자기를 '정신 나간 여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저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남편이 자녀들에게 제가 미국에 다니면서 돈을 다 썼다고 했답니다.
사기꾼 같은 문학인들과 사기꾼 같은 선교사들의 꼬임에 넘어가 돈을 다 쓴 사람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죽고 나면 내가 어찌 살 것인지 걱정된다며 자녀들에게 잘 보살피라고 했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말을 곧이 듣고 저를 정신 나간 여자로 취급하는 자녀들입니다.
너무 기가 막힙니다. 어찌 이런 거짓말들이 신앙으로 산다고 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나는 그 편지를 읽고 그의 딸이 나에게 보인 냉정함과 모멸감의 이유를 한 눈에 알아챘다. 그가 후원을 시작한 이후에 아버지에게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자기 어머니를 꼬여 많은 후원을 받은 사람 속에 속해있다고 확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천사는 항상 자신의 후원금을 풀꽃 한 송이에 비유하였는데, 그 자녀들은 그 아버지의 거짓말로 인하여 내가 받은 후원금을 금송아지로 바꾸었으니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편지는 계속 되었다.
상상도 못 할 말들을 오늘 밤 자녀들의 입에서 듣고 나니 머리가 혼미해집니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자녀들이 자기 아버지의 경제적인 상태가 그런 큰 돈을 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곧 대로 듣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제 말을 듣지 않으며 오히려 아버지가 어머니가 사기꾼들에게 사기당하고 살까봐 노심초사하였다며 아버지 편을 듭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사기당할 만큼 많은 돈을 만져나 봤으면 그런 말을 들어도 한이 없겠다고 말하니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다 나갑니다.
나는 그에게 ‘사기꾼이 된 기분’이라고 답장을 보내며 자녀들의 후원금 내역서를 보내서 오해를 풀자 고 제안을 하였다.
그에게서 답변이 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못 나서 그렇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기꾼입니다.
자기들은 온갖 세상의 것을 먹고 즐기며 살아가면서
고아와 과부들과 나누는 작은 나눔을 그렇게 매도하다니
그 맘보가 사기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나는 자녀들의 오해를 풀기 위하여 후원 내역서를 뽑아서 그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내역을 확인하고 오해임을 알고 어머니의 고귀한 삶과 정신을 인정하게 되길 빈다 고 하였다.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오랜만에 밝은 햇빛을 보니 마음도 밝아집니다.
제 순례 길에서 선생님에게 보내드린 작은 풀꽃들이
도리어 선생님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해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양심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았고 자녀들과 그런 문제로 미주알고주알 다투면서
고인(故人)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싶지 않아서 가슴에 묻었습니다.
성인이 된 자녀들이 분별할 능력이 없으면 자기 편할 대로 생각하며 사는 거지요.
나는 그의 침묵으로 진실이 진실로 드러나게 되기를 빈다고 답변을 하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가 내 가슴을 쳤다.
늘 감사합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았는데 제가 빈 깡통처럼 시끄러운 소용돌이에 있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문제로 저 자신을 괴롭히면 남은 순례 길이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 자녀들의 생각을 바로 잡으려는 마음은 깨끗하게 접었습니다. 남은 인생 여정 순례 길을 성령님의 인도함대로 살고자 합니다.
그리고 옛날처럼 외로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작은 풀꽃의 향기를 맡으며 한두 송이를 이웃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지나온 순례 길에서 작은 풀꽃에 감격하며 감사함으로 나그네들과 나누었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살기를 소망합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후원금 내역서를 뽑아서 보낸 내 마음이 옹졸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자녀들이 주는 무언의 압박에도 의연하고 초연한 외로운 순례자 앞에서 옷깃을 여민다. 그가 있음으로 내가 있다. 그가 마음 담아 보내준 풋풋한 꽃송이들이 향기롭다.
2022.8.11.목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