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장 13-21절.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여 설교함. 요약설교
13절.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 바울은 드로아 교회에서 죽었던 유드고를 살려내는 놀라운 기적 사건을 이루었습니다.
그 후로 바울은 드로아에서 앗소로 갈 때, 일행들은 배를 타고 가게 했고, 바울만 혼자서 34킬로를 걸어갔습니다.
이 때 바울은 혼자 있고 싶었을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4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열두 제자들까지 다 보내신 후 홀로 기도하러 산으로 가신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역사를 이룩한 후에는 재충전의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14절.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 앗소에서 바울은 일행들을 다시 만나 이번에는 같이 배를 타고 미둘레네로 갔습니다.
15절.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 미둘레네에서 배로 떠나 남쪽으로 80킬로를 가서 이튿날 기오 섬에 도착했습니다.
이 기오 섬은 소아시아에 매우 가깝지만, 그리스의 영토입니다.
이곳에서 유명한 시인 호머(일리어드와 오딧세이 저자)와 유명한 우화 작가 이솝과 유명한 탐험가 콜럼버스가 출생한 곳입니다.
2. 또 그 다음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바울 일행은 기오 섬에 들렸다가 다시 출발해서 그 다음 날에 밀레도 항구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이 밀레도는 에베소의 외항으로서 마치 에베소가 서울이라면 밀레도는 인천과 같은 곳입니다.
16절.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1. 바울은 아시아 지방의 에베소에 들리지 않고,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급히 여행길을 재촉했습니다.
만일 에베소 교회에 들린다면, 에베소 교회는 아시아 지방에서 가장 큰 교회이고, 여러 지방 교회들의 모체교회이기 때문에 적어도 한 달은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큰 교회지만 에베소에 들르지 않고,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오라고 초청했습니다.
17절.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 바울 사도는 에베소 도성의 외항인 밀레도에서 50킬로 떨어진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로 오라고 초청했습니다.
2. 장로님들은 교인들의 대표자들입니다.
마치 군의원들이 군민들을 대표해서 군정을 논의한 것과 같고, 국회의원들이 각 지역민들을 대표해서 국사를 의논한 것과 같습니다.
3. 바울은 보통은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했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목회자로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님들에게 목회자의 심정으로 교인들을 잘 보살피라고 부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8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로 초청하자, 에베소 교회 장로들은 거역하지 않고 50킬로를 걸어서 바울에게로 왔습니다.
참으로 순종을 잘하는 장로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먼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바울 자신이 3년간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어떻게 사역했는지를 말하면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이 바울의 이러한 사역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고 증인으로 채택했습니다.
마치 사무엘이 선지자 사역을 그만두고 왕정 시대를 열면서, 자신이 선지자로 사역할 때 백성들의 것을 빼앗아 먹지 않았다고 말한 것과 같은 분위기입니다. (삼상 12:3)
19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1. 본 절에는 바울의 목회 자세 세 가지가 잘 나와 있습니다.
그 세 가지란 <겸손과 눈물과 참고 섬긴 것>입니다.
한 마디로는 섬기는 목회를 했다는 것입니다.
섬기되 주를 섬겼다고 했습니다.
물론 주님을 섬기게 되면, 주님의 몸 된 교회 성도들을 섬기는 목회를 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처럼 바울은 군림하고 억압하는 목회가 아니라, 섬기고 생명도 주는 목회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런 섬김의 목회는 3가지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1) 첫째로 겸손이었습니다.
19절에 <곧 모든 겸손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교인들 앞에 자신을 높이려고 하지 않고, 겸손히 자기를 낮추었습니다.
참으로 바울은 복음을 주고, 기도해 주고, 축복해 주고, 온갖 봉사와 시간을 주면서도, 교인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습니다.
(2) 둘째로 눈물의 목회였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억울하고 화가 나서 한바탕 싸우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억울한 말, 모함하는 말, 오해한 말, 옳은 것을 비틀어서 반대로 말하는 것을 들으면 화가 납니다.
어떤때는 악의적으로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고, 교회에서 쫓아내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대단히 화가 나서 싸우고 싶은 생각이 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의 가는 길은 세상적인 방법, 육신적인 방법, 원수 갚은 방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을 흘릴 경우가 많습니다.
사도행전 20: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 셋째로 참는 목회입니다.
19절에서 바울은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았다>고 했습니다.
소위 인내 목회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가는 곳마다 복음 전도를 방해하고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1차 전도 여행 때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2차 전도 여행 때도 데살로니가, 베뢰아, 고린도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3차 전도 여행 때도 에베소에서 유대인들이 아데미 우상 숭배자들과 합세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19:33 참고).
이처럼 유대인들이 바울의 복음 전도를 방해하고, 죽이려고 할 때 바울은 얼마든지 로마 시민권을 이용해서, 유대인들을 법적으로 고소하고,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전도자요 목회자이기 때문에, 참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목사들도 목회하면서, 억울한 일들을 당할 때면, 분명히 법적으로 고소해서 처벌할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목회자이기 때문에 참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4. 사랑은 오래 참고
뿐만 아니라 바울은 이처럼 자기가 오래 참는 것이 사도된 표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2.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우리 주님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서 군병들을 데리고 왔을 때, 베드로가 칼로 말고의 귀를 잘라버렸을 때,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51.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20절.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1. 바울은 소극적으로 앞 절에서 말한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섬긴 것> 뿐만 아니라, 본 절과 다음절에서는 적극적으로 <유익한 것은 전하여 가르치고, 회개와 믿음을 증언했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유익한 것을 전달하는데, 장소와 사람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장소이든지 남에게 유익한 것이면 전달했고, 누구에게 유익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서 내가 깨끗하다고 증언했습니다.
사도행전 20:26-27.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1절.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1. 바울은 에베소 3년 사역 동안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만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이 <회개와 신앙>은 다시 말해서 <율법과 복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절감하고 회개해야 하며,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으면 어떠한 죄인도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철저한 회개가 있을 때 그 만큼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깊어집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7장 41-43절에서 예수님은 1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자가 일백 데나리온 탕감받은 자 보다 더 감사가 넘친다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많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그만큼 더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의 희생적인 사랑과 에베소 교회 장로님들의 모범적인 순종을 본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교회가 되시고, 모든 가정이 복된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