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미드, "유사 그리스도인"(The Almost Christian Discovered) 함께 보기 [32]
매튜 미드(Matthew Mead) 소개
매튜 미드는 1629년 영국 남부 버킹엄셔(Buckinghamshire)에서 태어나 33세에 목사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1962년은 영국 국교회가 비국교도를 축출했던 해인데 매튜 미드 역시 영국 국교회로부터 축출되었습니다. 영국 국교회는 기도방식을 통일하는 법령을 정해놓고 강요했습니다. 당시 축출당한 성직자 2000명에 포함되었으며, 1년치 생활비를 몰수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스탭니에 소재한 비국교도 교회였던 우스터 하우스(Worcester House)에서 목회를 시작하게 됩니다. 10여년이 흐른 1679년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1969년 3월 16일 화요일, 온종일 금식과 기도로 보내며 온 교회가 한마음이 되어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엄숙하게 갱신하였다. 지금은 칠흑과 같은 암흑과 위험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교황주의자들의 책략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튜 미드 목사와 34인의 교인” 1683년에는 오웬(Owen) 박사와 그리피스(Griffith) 목사와 함께 국왕의 살해를 계획했다는 “라이 하우스 공모”(Rye House Plot)에 은밀히 관여했다는 혐의로 기소를 당하고 찰스 2세에게 잔혹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석방된 이후 다시 증거도 없이 다른 사람이 고문을 견디지 못해 거짓 자백한 것을 근거로 재차 기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이 교황주의를 도입하기 위해 신실한 목사들을 중상모략해서 축출하거나 감옥에 가두려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악한 정부는 결국 4년 만에 무너졌습니다. 매튜 미드는 무익한 논쟁을 싫어했고 가장 본질적인 복음의 교리들을 연구했고 설교했습니다. 1699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것을 싫어했고 순수한 설교를 하며 인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