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지 전문 안내산악회 A 코스 계획에 따라 '개수2리 버스정류장 → 봉황대 → 절임배추 창고 → 버들이산 → 꽃바위등 → 퉁탱이바위(충성바위) → 덕수산 → 창수봉 → 장미산 → 삼거리 → 전망바위 → 절개지 → 승두봉 → 억새밭 (→ 보석봉) → 전통건축학교 → 마닐교'의 16km 구간을 7시간 동안 즐길 예정이었다.
1
덕수산
높이: 1,003m
위치: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상안미리
산행은 덕수산(1,003m)을 넘어 남쪽 능선을 따라 이어진 장미산까지 4시간 남짓의 코스이다. 온통 숲으로 뒤덮여 산 중턱과 정상을 가름하기조차 힘들다. 출발지는 대화면 개수리의 개수교. 여기부터 덕수산 정상까지는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길. 등산로라고 하지만 전문 산악인이 아닌 바에야 숨 고르기가 만만찮다. 녹색의 여름옷을 매무시한 산이 뿜어낸 기운으로 속을 헹구고 1시간 반가량 치고 나가면 정상이다.
산행 기점은 평창군 대화면 개수리, 대화에서 평창 쪽으로 약 5km쯤 달린 후 서쪽으로 우회전하여 평창강을 거슬러 오르는 좁은 도로를 따르게 된다. 평창강의 절경을 끼고 달리기에 차창 밖의 분위기가 너무도 좋다. 대화를 출발한 지 약 30분 후에 비로소 평창강을 건너는 개수교를 건너면 장미산을 오르는 등산로 초입이 된다. - 한국의 산하
장미산
높이: 980m
위치: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상안미리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에 있는 장미산 산 이름은 산 모습이 노루 꼬리처럼 생겼다 하여 생겨났다. 웬만한 지도책에는 나오지 않고 겉보기에도 밋밋한 산이지만 실제 올라서 보면 갖가지 기암괴석과 울창한 산림을 보유하여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정상에서는 북으로 덕수산, 등용산, 동으로는 백적산에서 청옥산까지 이르는 능선, 서쪽으로는 오봉산, 솔이봉, 청태산 등이 어렴풋이 보인다. 자연이 잘 보존되어 노랑괴불꽃, 고추냉이꽃, 줄딸기 등 희귀 식물이 많고 취나물, 더덕, 곰취, 두릅, 고사리, 씀바귀 등 산나물도 흔하게 난다. 봉우리 중에서 6,25전쟁 때 최악의 격전지로 유명한 중대갈봉은 민둥산이었을 때 붙은 이름이며 지금은 수림이 울창하고 거북바위와 표대봉이 있다. 장미산에서 덕수산 사이로 흐르는 금당계곡은 유동마을을 거쳐 개수교, 봉황대로 흐른다. 봉황대는 봉황이 놀았다고 하여 부근 마을에서 길조바위로 숭배하고 있다. - 한국의 산하
이번 주 일요일인 8월 27일은 오지 전문 산악회가 진행하는 평창의 위엄 중 하나인 덕수산, 장미산, 승두봉, 보석봉 연계 산행에 참여할 예정이다. '평창의 위엄'은 2019년 8월 흥수와 평창의 백석산, 잠두산 연계 산행을 위해 평창역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역광장에 있는 관광 안내도가 눈에 띄어 그걸 유심히 살펴보다가,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많은 것에 놀라 붙인 이름이다[산행기]. 이미 평창에 있는 천고지 산을 많이 올랐으나, 듣지 못한 산도 있다는 걸 안내도를 보고 알아, 그걸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백석산행 후 안내도를 토대로 대중교통을 이용한 당일 산행 계획을 세우거나, 안내산악회의 산행 계획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동행했다. 그렇게 다녀온 산행이 2021년 6월 청옥산과 삿갓봉[산행기], 2021년 8월 횡성 청태산과 연계한 대미산[산행기], 2021년 10월 거문산과 금당산[산행기], 2022년 6월 갈왕산(가리왕산)과 연계한 주왕산(중왕산)[산행기] 등을 다녀왔다.
이후 천고지 목록에 있는 산에 집중하기 위해 일단 평창의 위엄 중 목록에 없는 산은 잊기로 하고 뒤로 미뤄뒀다. 물론 처음 만든 천고지 목표를 달성한 이후 나머지 평창의 위험도 차례대로 오를 예정이다. 그런데, 오지 전문 안내산악회 산행 계획을 구경하다가 목록에 없는 평창의 위엄 중 하나인 덕수산행을 발견하고,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기도 전에 신청했다. 그게 그 산행의 첫 번째 신청이다. 이후 정식으로 인사는 하지 않았으나, 오지 산행 10중 7, 8은 같이 해, 묵례는 하는 정도인 산꾼들이 차례로 신청했다. 그리고 2주 정도 후, 카페 주인장이 구체적인 산행계획을 공지하자, 신청자가 증가하기 시작해, 산행 이틀 전인 금요일 현재 31석 버스를 채우고, 두 명의 대기자가 기다리고 있다.
이번 평창의 위엄 산행은 오지 산행으로는 긴 17km가 넘는 거리라, 시간이 좀 빡빡하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늘 그래왔지만, 특히 배낭을 가볍게 할 예정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날머리인 미날교 주변에 식당은커녕 구멍가게도 없어, 점심을 가져가야 한다. 일요일이라 신사역 김밥집은 문을 열지 않아, 불광역에서 사 가야 하는데, 불광역 김밥집 또한 문을 연다는 보장은 없다. 고로 점심을 비상식인 갱, 육포, 에너지 바 등으로 때워야 할 수도 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버너와 코펠을 들고 가, 산행 중에는 버스에 두고, 끝난 후 라면을 끓일까 생각 중이다. 최종 결정은 산행 당일! 다행히 가까운 가리왕산의 산악날씨 예보에 의하면 오후에 흐리기는 하나, 비는 오지 않고, 체감 기온은 17도 내외에 바람은 3m/s라, 산행에는 좋아, 날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는 산행이라,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우연히 등산 장비를 넣어두는 선반을 보다가, 지난 안산 산행 때 들고 갔던 발열 도시락이 두 개나 더 있다는 걸 알았다. 요즘은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비록 무게는 나가지만, 지난 안산 때는 데워지는 동안 앉아서 기다렸으나, 이번에는 숄더힙색의 바깥 주머니에 넣고, 이동 중에 데워볼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기대한 효과가 나오면, 애용할 수도 있다. 특히 추운 겨울에! 요즘 같은 폭염 속에서는 뜨거운 수증기가 품어져 나오는 발열 도시락을 등에 짊어지고 간다면, 가는 동안 등이 익을 수도 있을 거 같다. 어쨌든 내일 테스트해 보면 알 수 있다.
2 - 1
산행 하루 전날까지 산행 게시판에 출발하는 버스에 관한 정보가 없어, 23시 40분경 운영자에게 정상 출발 여부를 묻는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24시 14분 정상 출발한다는 답장을 받고 잤다. 운영자가 깜빡한 모양이다. 덕분에 24시가 넘어 잠이 들어, 5시 10분경 기상해, 아침 의례를 치른 후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었다. 이후 준비한 힙색을 둘러메려고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폭염 아래 발열 상태로 도시락을 짊어지고 산행한다는 건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신사역 3곳의 김밥집에 행운을 걸어보기로 하고 발열 도시락을 뺐다. 세 곳이 다 쉬면, 점심은 오이 하나와 갱, 에너지 바, 육포, 그리고 자두 하나로 때워야 한다.
연신내역에서 7시 19분 오금행 열차를 타고, 신사역에서 가기 위해 6시경 집을 나서 구산역에서 버스를 타고 연신내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남아, ATM기에서 현금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갔는데, 문이 안 열린다. 유리문에 붙은 안내문을 보니, 7시부터 영업이다. 수요일 승봉도행 왕복 도선료로 현금이 필요하지, 당장 필요한 건 아니라, 무시하고 역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예정대로 7시 19분 열차를 타, 6시 52분경 신사역에 도착했다. 시간 여유는 있으나, 서둘러 개찰구 통과한 후 4번 출구로 향하며, 각 김밥집 앞을 차례로 지났다. 다 문을 닫았다. 하긴 이게 정상인 나라다. 누구나 휴일에 쉬는 나라, 그런데, 당장 점심은 굶게 생겼다. 간혹 충무 김밥을 파는 휴게소 식당이 기억나, 마지막으로 거기에 기대를 걸기로 하고, 4번 출구로 밖으로 나갔다.
7시 10분 출발 버스임에도 버스 정차지인 4번 출구 주변에는 많은 등산객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오늘 출발하는 버스는 한 대에 불과하지만, 31인승이 만석이고, 신사에서 타는 승객이 많아서 그렇다. 빠르게 그들을 스캔해 아는 얼굴을 확인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 의자에 앉았다. 다른 등산객은 정차지 주변 계단이나, 건물 난간에 앉아 있으나, 편하게 앉으려고 거리가 좀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그리고 밤을 지새운 청춘들로 어수선한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차가 오는 방향을 주시했다. 그러자 예정보다 빠른 7시 3분경 버스가 도착해, 다시 정차한 곳으로 가 차에 오른 후, 힙색은 선반에 올리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버스를 탈 때만 해도 이동 중 책을 읽을 생각이었는데, 죽전에서 나머지 승객을 태우고,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선 걸 보고 잠이 들어, 인솔 대장의 마이크 소리에 깼다. 횡성 휴게소다. 볼일이 급한 건 아니나, 점심이 중요해 버스에서 내리며 보니, 먼저 주차한 버스 대부분이 산악회 전세 차라, 목적지가 어딘지 하나씩 살펴봤다. 그런데, 눈에 익은 빨간 버스의 산행지가 '해파랑'이다. '응, 해파랑?' 마누라가 해파랑 간다고 나보다 10여 분 일찍 집에서 나섰는데, 혹시나, 해서 핸드폰으로 해당 산악회 홈으로 들어가, 오늘 해파랑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찾았다. 두 대다. 하나는 14코스, 다른 하나는 32코스다. 하나씩 클릭하자, 32코스에 마누라 별명이 보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버스 앞창 LED를 보니 32코스다.
이런 우연이! 휴게소에서 삼토회나 다른 산악회를 만나기도 했지만, 마누라를 만날 거라곤 상상을 못 해, 휴게소 건물로 걸어가며 전화했다. ‘어디냐?’고 묻자, 횡성이고 아침을 먹고 있다고 한다. 해서 나도 횡성이라고 하자 깜짝 놀라더니, 날 발견했다고 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야외 식탁에서 빵을 먹고 있다가 뛰어온다. 서로가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으나, 마누라 버스가 먼저 도착해, 떠날 시간이라, 몇 마디 나눈 후 버스로 가는 걸 보고, 화장실로 갔다. 이후 식당으로 들어가 김밥을 찾았으나, 없어, 편의점으로 가 점심 대용으로 먹을 만한 걸 찾아봤으나 안 보여, 직원에게 삶은 달걀은 없냐고 물었다. 없단다! 이제는 준비한 비상식으로 체력을 보충하며 오지의 네 개 봉우리를 달려야 한다.
휴게소에 할 일도 없어, 버스로 돌아가 자리에 앉아 조금 있으니, 차가 출발하고 인솔 대장이 산행 계획을 나눠준다. 이후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애초 승두봉과 보석봉까지 연계하는 A 코스는 없이, 덕수산과 장미산을 연계하는 환 종주만 계획에 있었으나, 산꾼 중 한 명이 요청해 추가했다는 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장미산 이후 보석봉까지 이정표는 물론 표지, 등산로조차 없고, 흙산답게 울창한 숲이라, 조망도 없고, 방향도 혼동하기 쉬워, 요청한 산꾼도 A 코스는 포기하고, B 코스를 하기로 했다는 거다. 그럼에도 A 코스를 달릴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해 손을 들었다. 나를 포함 12명이다. 그 열두 명을 따로 표기한 이후 그 각자에게 필요한 시간을 물었다. 5시간부터 6시간까지다. 나도 호기롭게 6시간이라고 했다. 나눠 준 계획에 있는 거처럼 16~17km의 흙산이라면 6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자, 과거 승두봉과 보석봉에 올랐던 노년의 산꾼이 덕수산이 아니라, 길 상태가 좋은 장미산에서 가면 빨리 갈 수 있다고 얘기하자, 인솔 대장이 그걸 추천한다. 덕수산을 버리란 얘기다. 말 같지 않은 소리라 무시하고 길이 없다는데, 이런 산행에 늘 참조하는 등산 앱에는 길이 나오는지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장미산에서 처음 들어보는 중대갈봉을 지나 길이 있다. 문제는 들머리에서 덕수산까지와 중대갈봉 이후 승두봉에서 보석봉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들머리에서 덕수산이야 일반적인 등산 앱을 이용하면 되고, 승두봉에서 보석봉까지는 현장에서 고민하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있자, 들머리가 가까우니, 준비하라는 인솔 대장의 방송이 나와 슬리퍼를 벗고 등산화로 갈아 신은 후 선반에서 힙색을 내려, 바람막이를 벗어 넣는 거로 준비를 끝냈다.
멀지 않은 들머리로 향하는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들머리 도착이 9시 30분경이라, A 코스는 7시간을 책정해 4시 30분을 마감으로 하고, B 코스는 4시를 마감으로 한다고 공지했다. 6시간을 생각했는데, 7시간이라 여유가 있다. 그리고 조금 지난 9시 31분경 들머리인 봉황마을에 도착했다. 평창강 변을 따라 봉황마을로 접근할 때 강 건너로 보이는 바위는 누가 봐도 봉황이라,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걸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접근했으나, 정면은 봉황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 그런데 옆에 있는 봉황대 소개 글을 보니, 닮은 것과는 무관했다. 옆모습을 보고 봉황을 떠올린 건 이름에서 기인한 선입견?
2 - 2
일행이 버스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하는 동안, 평창강 건너로 봉황대를 구경한 후 등산 앱을 기동하고, 현 위치의 고도를 확인했다. 421m, 오차를 고려하면 400m가 조금 넘는다. 덕수산이 1,000m가 조금 넘는 높이니, 표고차는 600m 내외다. 올려야 하는 높이만 보면 별거 아닌 산이다. 다음 주 목요일 오를 예정인 고흥 팔영산의 높이가 608m에 불과하나, 바닷가에서 시작이라 들머리의 이점이 없어, 거의 비슷한 표고차다. 고로 산행에서 올라야 할 봉우리의 높이만 보고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에 1,000m가 넘는 봉우리는 많으나, 실제 1,000m 이상 올라가는 봉우리는 생각보다 적다. 한계령에서 시작하면, 설악산 상봉인 대청봉도 700m가 조금 넘을 뿐이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시내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장미산, 덕수산 등산 안내도로 갔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나, 그래도 빠트린 게 있나 확인하기 위함이다. 거기에는 같이 오지를 많이 다닌 노년의 산꾼이 동행에게 지도를 보며, 코스를 설명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그 두 산꾼은 B 코스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주고받는 얘기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만, '길이 좋은 장미산을 먼저….'라는 말만 들려, 산악회 코스 계획인 덕수산, 장미산 순서가 아니라, 장미산, 덕수산으로 순서를 바꿔서 진행하겠다는 거로 받아들였다. 결과적인 얘긴데, 버스에서 누군가 제안했던 덕수산을 버리고 장미산에서 바로 승두봉, 보석봉으로 가겠다는 얘기였다. 그 제안을 한 사람이 바로 지도를 보며 설명하고 있는 노년의 산꾼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등산 안내도를 기록으로 남긴 후, 후미에서 평창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봉황마을을 가로질러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장미산, 덕수산 갈림길에서 덕수산 방향으로 우회전하자, 삼거리에서 방향을 알려주던 인솔 대장이 그걸 보고 깜짝 놀라 별명을 부르고, '덕수산으로 돌 거냐?'고 묻는다. 당연히 그렇다고 얘기하고 위로 올라가며 대장이 왜 그렇게 놀라는지 생각해 봤는데, 떠오르는 게 없다. 이것도 산행 후 알게 된 사실로, A 코스 산행을 하겠다는 산꾼 12명 중 나를 포함 4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덕수산을 버리고, 장미산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 4명 중 3명은 장미산에서 포기하고 봉황마을로 하산했다. 비록 보석봉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계획대로 보석봉 아래까지 간 산꾼은 내가 유일했다.
덕수산행에서 덕수산을 빼는 게 말이 안 되는 짓이라 당연히 다들 계획한 코스인 덕수산으로 갔을 거로 생각하며, 가파른 포장도로를 따라올라, 9시 49분 덕수산행의 유명한 이정표인 '절임 배추' 창고를 지났다. 그리고 9시 56분경 포장도로가 끝나고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도착했다. 그 입구에는 등산 지도가 코스 안내를 하고 있다. 당연히 장미산에서 승두봉으로 이어는 길은 없고, 덕수산까지 남은 거리는 3.1km! 한국 산이 대부분 그렇듯이 시작부터 급경사라, 호흡을 조절하며 올라, 10시 19분 덕수산 2.4km 이정표를 통과했다. 700m를 진행에 23분이 걸렸다. 46분이 걸려, 봉황대에서 2.5km를 왔다. 그런데, 500m 단위로 음성으로 정보를 알려주는 등산 앱이 조용하다. 1.5km까지는 음성이 나와 지난 안산 산행 때[산행기]와는 달리 정상 작동하고 있다고 여겨, 신경 쓰지 않았는데,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급경사를 오르는 중이라, 꺼내서 확인할 상태가 아니라, 100m를 더 올라 안부에 도착해 확인했다. 맛이 갔다. 포장도로 구간은 정확하게 기록했으나, 등산로로 접어들며, 기록을 못 하고 있다. 먼저 GPS 수신에 문제가 있을 수 있어, 다른 등산 앱을 확인했다. 잘 수신한다. 다음으로 만보기 기능을 꺼서 그럴 수도 있어, 기능을 켰다. 그리고 100여 미터를 간 후 확인했으나,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핸드폰의 문제일 수도 있어 핸드폰을 껐다가 다시 켰다. 그리고 200여 미터는 진행한 후 앱을 확인했다. 마찬가지다! 작별할 시점이다. 그동안 바꾸는 게 번거롭고, 다른 앱에 적응하는 것도 귀찮아 계속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아니다. 그리고 깨달았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기존에 안주는 내 모습이 바로 보수라는 걸!
안부 이후 지금까지와는 달리 완만한 경사라, 핸드폰에 새로운 등산 앱을 설치하고, 설정을 맞췄다. 보수의 특징인 새로운 앱도 과거의 앱과 같기를 바라며, 이것저것 찾아봤다. 그런데, 음성만 빼고 다 있다. 그리고 모양새로 봐서는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지만, 새로 설치한 앱을 기존 앱이 표절한 느낌이다. 와중에 새 앱에는 오프라인 지도 내려받기 기능도 있다. 해서 통신이 끊길 것에 대비해 이번 산행에 필요한 지도를 내려받았다. 그래봐야 국산 포털 지도를 사용하는 앱이라, 장미산에서 승두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없지만! 이 모든 걸 산행 중에 했다. 그리고 10시 42분경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정표가 있기는 있는데, 정작 중요한 방향 지시는 다 떨어져 나갔고, 기둥만 서 있다. 당연히 우회전해야 하나, 돌다리도 두들기는 심정으로 좌, 우 모두 다른 표지가 있나 확인했다. 좌는 없고, 우의 나뭇가지에 산악회 리본 3개가 달려있다.
당연히 우회전해 덕수산으로 올라가며 수시로 핸드폰을 꺼내 새로 설치한 등산 앱이, 정상인지 확인했다. 이상 없다. 고로 기존 등산 앱의 문제다. 와중에 새로 설치한 등산 앱도 1km가 지나자, 음성으로 알려준다. 기존 앱에 비해 정보량이 적을 뿐이다. 다만, 기존 앱의 500m 단위가 좋아, 바꿀 수 있는지 설정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음성 정보 유무만 선택할 수 있지 내용을 바꿀 수는 없다. 그거야 뭐! 앱을 새로 설치하고, 1km가 조금 넘는 산행을 하는 동안 다 적응했고, 기능도 마음에 든다, 기존 앱 대비 쓸데없는 정보는 없고, 필요한 정보는 더 풍부하다. 그 쓸데없는 정보가 꼬여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걸 기존 앱을 만든 사람이나 운영자들은 알까? 어쨌든 새 앱을 등산객이 아니라 산꾼이 많이 쓰는 이유를 알았다. 기존 앱은 과거 자료를 확인하는 데 필요해 삭제는 하지 않고, 눈에 잘 안 띄는 구석에 처박아 뒀다. 그런 짓을 하며, 위로 올라, 11시 11분경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나 밖으로 튀어 나간, 이번 산행에서 처음으로 바위 전망대를 만났다. 대장이 코스 설명 때 얘기한 유일한 전망대다!
금줄을 넘어 약간은 위험한 바위 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니, 전망은 좋다. 다만, 앞에 펼쳐진 산 중 많은 봉우리를 올랐을 텐데, 모양만 보고는 봉우리의 이름을 알 수 없다. 그걸 알려 주는 앱이 있는 거 같던데, 설치해? 일단 보이는 걸 파노라마용을 기록한 후, 끝으로 핸드폰에 신규 등산 앱을 설치하며 올라온 구간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시 금줄을 넘어, 등산로로 들어가 덕수산으로 향해, 11시 16분 덕수산 0.3km 이정표를 통과했다. 가야 할 길이 멀고, 등산로도 없는 구간이라 체력 유지를 위해 호흡을 조절하며 정상을 향해 급경사를 오르는데, 등산 앱이 알람을 물리고, 음성으로 정상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응? 이것도 있었어! 역시 반경 50m 내라는 걸 알려주는 기능일 거다. 해서 그 순간부터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가, 11시 22분경 덕수산 정상에 도착했다. 목록에 없는 천고지 중 하나다!
전형적인 흙산의 정상답게 울창한 숲에 덮여 있어 주변에 보이는 게 없다. 정상석도 없이, 이정표 기둥에 붙어 있는 '덕수산 정상 1,003m' 안내문이 표지를 대신하고 있다. 장미산까지는 2.1km다. 그리고 정상 이정표에서 3~4m 거리의 휴식을 위한 의자가 있고, 안면이 많은 산꾼 둘이 점심을 먹고 있다. 이 분위기에서 삼각대를 꺼내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식사 중인 산꾼에게 인증을 부탁하기도 그래, 뒤에서 따라오는 일행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안면이 많은 산꾼이 점심을 먹다 말고 찍어줄까 물어 부탁한다며 핸드폰을 넘겨줬다. 그렇게 인증을 남기고 정상을 출발하자 그 산꾼이 쉬었다 가라고 권해, 갈 길이 멀다고 답하고 계속 갔다. 평소라면, 그도 A 코스로 가겠지만, 하루 전인 토요일 산청 둔철산을 다녀와 B 코스 산행하는 걸 보면, 무리하지 않기로 한 거 같다. 어쨌든 대단한 산꾼이다!
쉬는 것도 쉬는 거지만, 등산 앱 때문에 지체했고, 더 큰 문제는 등산 앱이 말썽을 부려 남은 거리를 예측하기 힘들어 서둘렀다. 정상을 떠나, 조금 가자, 배도 고프고, 목도 말라, 오이 하나를 세 조각 낸 것 중 한 조각을 꺼내 먹으며 갔다. 11시 35분 장미산 1.3km 이정표를 통과해, 4분 후에 창수동 사거리를 통과했다. 그리고 1분 후인 11시 40분, 0.9km로 덕수산과 장미산의 정중앙에 있는 창수동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12분 후 장미산 0.5km 이정표에 도착했다. 이 이정표에 의하면 덕수산까지는 1.6km로 앞선 이정표와는 거리가 맞지 않는다. 오지에서 이정표가 있는 것만도 고마운데, 정확하기까지 바라면 예의를 모르는 무뢰한이다! 그리고 2분 후인 11시 54분경 쓰러진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쓰러진 이정표 옆으로 '창수봉 970m'라고 쓴 안내문이 뒹굴고 있다. 해서 쓰러진 이정표를 잘 보니, 삼거리 이정표가 아니라, 정상 표지다. 즉 여기는 창수봉 정상이다.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정표를 나무에 기대 세워놓고, 정상 표지를 가져다 그 아래에 뒀다. 그리고 삼각대 꺼내기도 귀찮아 셀카로 인증을 남겼다. 산행이 끝난 후 산악회 '정기산행 사진올리기' 게시판에 가보니, 예상대로 덕수산에서 인증을 찍어준 산꾼이 올린 앨범이 있어, 어떤 사진이 있나, 확인하다가, 아래에 있던 정상 표지를 위로 올려놓은 사진을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올린 사진과 그가 올린 사진의 시간을 비교해 보니, 둘의 차이는 4분이다. 어쨌든 그렇게 인증을 남기고, 앞의 장미산으로 생각되는 봉우리로 향해, 11시 58분 퉁텅이 갈림길 이정표에 도착했다. 장미산까지 남은 거리는 0.4km. 창수봉 이정표에 의하면 1.7km였다. 고로 창수봉 이정표가 바르면, 3분 만에 1.4km를 왔다! 그리고 8분가량 더 가자, 등산 앱이 정상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줘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갔다.
호흡을 조절하며 바닥에 둥근 나무를 박아 만든 계단으로 올라, 12시 6분경 장미산 정상에 도착했다. 애초 덕수산도 창수봉도 정상석 대신 이정표 기중에 박은 표지라, 역시 그럴 거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정상석이 있어 놀랐다. 그런데, 정상석 뒤를 보니, '산악회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이 비를 세우다', '2016년 5월 15일 안산 장미 산악회'라고 음각되어 있다. 이 산에서 이름을 빌린 거 같지는 않고, 이름이 같은 산을 찾다가 발견해서 정상석을 세운 거로 보인다. 해서 그들의 정체가 궁금해 '안산 장미 산악회'로 검색해 보니,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산악회다. 어쨌든 정상석 뒤의 이정표와 정상석을 기록으로 남긴 후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을 찍었다. 이후 다시 이정표로 돌아가 지시하는 방향을 유심히 살폈다. 직진은 봉황대 즉, B 코스 산행 자가 하산할 방향으로 들머리로 돌아가는 환 종주의 끝이다. 우회전은 중대갈봉이다. 승두봉 길목에 있는 봉우리가 같다. 당연히 중대갈봉 방향의 등산로를 확인했다. 없다! 인솔 대장의 말 대로 등산로라 부를 만한 게 안 보인다.
나뭇가지에 달린 산악회 리본조차 안 보인다. 해서 핸드폰을 꺼내, 오지 전문 등산 앱을 기동하고, 그 지도를 확인하며 그나마 길 같아 보이는 곳으로 갔다. 당연히 길이 명확하지 않은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산행은 능선만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 능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했다. 비록 기복은 있으니, 높낮이가 심하지 않아 체력을 많이 요구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암봉을 우회하기도 했으나, 우회가 끝나면 반드시 능선으로 올라갔다. 문제는 울창한 숲이라 어디가 능선인지 확인하는 게 쉽지 않아, 능선이라 생각한 곳으로 가다가 무언가 꺼림칙해 등산 앱을 확인해 보니, 능선에서 벗어났다. 그렇다고 돌아가는 건 시간을 허비하는 거라, 디귿 자를 쓰며, 능선으로 올라갔다. 이번 산행 첫 번째 알바다. 그렇게 능선으로 돌아오자, 긴장이 풀리며 배가 고파와, 에너지 바를 꺼내 먹었다.
흙산의 울창한 숲이라, 보이는 게 없어 그저 앞만 보고 가다가 이상하게 생긴 나무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열매 등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그나마 관목이 길을 방해하지 않는 것에 고마워했다. 그렇게 승두봉을 향해 가다가, 1시 23분경 과거 무덤으로 보이는 지점을 지났다. 무덤이라면 마을이 멀지 않다는 얘기고 승두봉 또한 멀지 않다는 의미다. 무덤에서 14분가량 가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산악회 리본도 보인다. 어쨌든 제대로 가고 있다는 의미라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다시 길을 찾아 두 번째 알바를 한 후 도착한 곳이 암봉 정상으로 이 구간 유일의 전망대다. 당연히 암봉 정상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니,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만, 어느 봉우리가 덕수산인지, 창수봉인지, 장미산인지 알 방법이 없다. 울창한 숲을 통과해 각 봉우리에서 외부를 조망하지 못해, 위치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다만, 소요 시간과 높이로 추측할 뿐이다.
이 구간 유일의 전망대에서 내려와 길을 가자. 지금까지와는 달리 관목이 길을 방해한다. 해서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했으나, 별다른 건 없고, 승두봉 길목의 중대갈봉이 멀지 않았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라, 고개를 갸우뚱하며 관목을 뚫고 가자, 갑자기 개활지다. 인솔 대장이 얘기한 채석장이다. 등산 앱의 지도에 승두봉과 보석봉 사이에 길이 없어, 그 사이에 채석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런데, 대장이 코스 설명을 할 때는 채석장에서 내려와 우회해야 한다고 했으나, 여기서 보이는 모습은 채석장을 넘어가도 될 거 같아, 그렇게 하기로 하고 채석장으로 가는 길을 간신히 찾았으나, 가시넝쿨과 관목을 뚫고 가야 해 쉽지 않다. 와중에 왼쪽에서 기척이 들려 멧돼지인가 하고 주시했으나, 알바 중인 일행이다. 어디까지 내려갔다 돌아오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고생한 거 같다.
다행히 알바하지 않고 바로 채석장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 올라가 관목을 헤치고 나가니, 채굴이 끝난 암벽이다. 그리고 뒤를 보니, 조금 전에 있었던 봉우리 또한 돌을 깎고 남은 암봉이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필요한 바위를 채굴하고 남은 암벽을 기어오르고 있는데, 알바한 일행이 도착해, 길이 아니라며 불렀다. 사실 남은 암벽을 올라가며 주의의 바위 조각을 보자,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환경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걸 통제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굴업자와 관련 기관을 욕하고 있던 차라, 부르는 소리에 반응해,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했다. 인솔 대장이 코스 설명에서 언급했고, 아래에서 부른 산꾼이 얘기했듯이 길은 채석장을 우회하고 있어, 그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결과적인 얘기나, 산행이 끝난 후 복기하다가,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보석봉까지 늦지 않게 완주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았다. 채석장 또한 처음 내가 시도했듯이 넘어가는 게 맞다.
채석장을 넘지 않고, 우회했으면, 당연히 바로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길은 능선이 아니라, 중턱으로 계속 간다. 와중에 그나마 희미하게 있던 길도 사라지기 일쑤라, 전적으로 등산 앱에 의지해 갔다. 그런데, 승두봉은 보이지 않고 중대갈봉이 멀지 않다. 지도에 계속 중대갈봉이 보이자, 도대체 무슨 의미로 붙인 봉우리 이름인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아!' 소리쳤다. 중대갈? 중 대가리? 僧頭(승두)! 맞다. 중대갈의 한자가 승두다. 아니 어떤 인간이 중머리봉도 아니고 대갈봉이라 이름을 붙였을까 생각하며 중턱으로 가다 보니, 막바지에 능선으로 오르란다. 해서 능선으로 올라가며 보니, 여기저기 인적이 많다. 2시 24분경 다시 능선에 도착해 그걸 따라 승두봉으로 향했다.
사실 승두봉에서도 중을 떠올리지는 못했다. 중대갈이든 승두든 중의 머리를 닮았다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민둥산? 아니다! 그러기에는 숲이 너무 울창해 주변이 아예 안 보인다. 그때 웬만한 산은 산기슭에 작은 암자라도 한둘 있게 마련인데, 이번 산행 코스에는 전혀 없다는 게 기억났다. 작은 암자도 품지 못할 토양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승려가 찾지 않자, 열 받은 지역 주민인 중대갈이라고 이름을 붙인 게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승두봉으로 향하는데, 등산 앱이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해서 그때부터 동영상을 찍으며 가, 2시 29분에 무인 산불감시초가 있는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을 무인 산불감시초소가 차지하고 있으니, 정상석은 없다. 대신, 초소를 보호하기 위해 두른 철책에 바래 내용을 읽기 힘든 정상 표지가 매달려 있다.
그 표지에 의하면 승두봉의 높이가, 해발 1,013m로 덕수산보다 10m가 높다, 즉 이번 산행 목표인 덕수산, 장미산, 승두봉, 보석봉 중 제일 높다. 내리쬐는 햇살에 바랜 정상 표지를 배경으로 인증을 남긴 후, 2시 31분경 정상을 떠나, 마지막 오이 한 조각을 꺼내 먹으며 마지막 봉우리인 보석봉으로 향했다. 마감인 4시 30분까지는 2시간 정도 남았고, 바로 앞에 보석봉이 있으니, 유유자적 능선을 따라갔다. 일찍 내려가 봐야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일찍 서울로 출발할 것도 아니라 최대한 시간에 맞춰 하산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내려가고 있는데, 채석장을 우회하고 알바로 힘들어 쉬고 오겠다던 그 산꾼이 뒤에 나타났다. 그리고 갈림길에서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 길이라며 간다. 응? 지도에 의하면 분명 왼쪽인데. 해서 무시하고 왼쪽으로 가다가 무언가 꺼림칙해 오른쪽으로 가다가 다시 왼쪽으로 가자, 앞에서 뭐가 폴짝 뛴다. 토끼다. 그 뛰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겼는데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토끼와 노닥거리며 가는데, 또 한 번 알바한 그 산꾼이 왼쪽에서 올라오며, 내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알려준다. 당시에 그가 올라온 방향을 고려해야 했는데, 그저 지도만 보고 이 방향이 맞는다고 주장하며 계속 가자, 그도 그런가 하며 따라왔다. 돌이켜보면 오른쪽으로 내려간 그가 왼쪽에서 올라왔다는 건 내가 처음과 반대로 가고 있다는 의미다. 더 정확히는 그를 만나면 안 되는 거다. 당시에는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다. 그렇게 가다 보니, 계속 등산로에서 멀어지고, 승두봉은 가까워진다. 거꾸로 가고 있다. 해서 그에게 얘기하고 반대로 가, 2시 54분경 과거 화전민 터로 보이는 곳을 지나치자, 나뭇가지에 달린 산악회 리본도 보인다. 어쨌든 거의 미로에 갇힌 듯 여기서만 20분 정도를 오락가락했다.
현재 시각 2시 59분 마감까지 남은 시각은 1시간 반이다. 남은 거리는 예측이 안 된다. 산악회 계획에 의하면, 총거리가 16~17km 정도라는 데, 벌써 지났다. 고로 보석봉을 거쳐 마감 시간에 맞춰 하산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일단 보석봉까지 가 보기로 했다. 해서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으나, 버스에서 본 대로, 보석봉으로 가는 등산로는 없다. 그 중간에서 내려간다. 어쨌든 거기까지 가 보기로 하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임도를 가로질러 보석봉 방향으로 가자, 가시넝쿨과 억새가 길을 막는다. 그래도 서로 번갈아 가며 그걸 뚫고 어느 정도 들어가자, 그가 보석봉으로 갔다가는 마감을 맞출 수 없을 거 같다고 얘기한다. 그 말을 듣고, 사용하는 등산 앱은 보석봉으로 가는 길이 있는지 물었다. 있다며 보여준다. 그런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없다. 내가 사용하는 것과는 반대다. 해서 내 것도 보여줬다. 그리고 여기서 내려가자고 얘기하고, 앱의 지도에서 보이는 하산 길을 찾아 뒤로 돌아 계곡 방향으로 대각선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까 가로지른 임도에 도착했다. 지도의 하산로가 이 과거 임도다.
등산로조차 없는 오지에서 생고생하다가 비록 현재는 사용하지 않을지라도 과거 차량이 다녔던 임도로 내려가자 거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속도다. 신이 나서 내려가며 가끔 마을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지도를 봤다. 멀지 않다. 그리고 임도 좌우가 작은 계곡으로 내려갈수록 물소리가 요란해 그에게 이 정도에서 씻는 게 좋겠다고 얘기하고 그는 오른쪽 나는 왼쪽 계곡으로 들어가 씻었다. 다른 산의 계곡과 같은 방식으로 씻으려고 불에 들어갔는데, 5초를 견디기 힘들 정도로 차다. 산이 깊은가? 아니면, 가을? 계절 변화가 정말 빠르다. 그 차가운 물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힙색 옆 주머니의 미지근한 생수보다 이 물이 더 좋을 거 같아 다 씻은 후 생수병에 물을 받아 마셔보니, 예상대로다. 그렇게 마음껏 마시고, 내려가는 중에 마시기 위해 생수병에 가득 채웠다. 그 와중에 오른쪽에서 씻던 산꾼은 먼저 내려갔다.
마감까지 48분 남은 3시 42분 계곡을 떠나 임도로 유유자적 내려가자, 앞에 차량 차단기가 있다. 마을이 멀지 않다. 예상대로 3시 45분경 포장도로가 시작하는 곳에 도착했다. 서두를 이유가 없어 주변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으며 유유자적 내려갔다. 그리고, 3시 48분경 평창군에서 세운 안내문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내가 있었던 계곡이 상수도원이다. 그럴 거 같아, 거리낌 없이 물을 마시고 떠온 거다. 그것과 전기줄에 앉은 꼬리가 긴 이름 모를 새, 길옆의 꽃을 기록으로 남기며 가, 4시 1분경 상안미2리 버스정류장을 통과했다. 그리고 4시 8분 날머리인 미날교가 보이는 곳에 도착해 더욱 여유를 부리며 가, 다리 부근에 도착했는데, 버스도 일행도 안 보여,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하고, 핸드폰을 꺼내, 일반 지도로 현 위치를 확인했다.
미날교가 아니라 선애교다. 깜짝 놀라, 길 찾기로 미날교까지 거리를 확인했다. 2.0km, 30분이 걸린단다. 현재 시각 4시 13분, 17분 안에 미날교까지 2km를 가야 한다. 해서 상수원에서 씻어 바짝 마른 몸이 다시 땀을 폭포수처럼 흘릴 정도로 빠르게 걸어, 1km 정도 남았을 때 시계를 보니, 3시 23분이다. 1km에 10분 정도 걸렸다. 뛰지 않는 이상 남은 1km를 7분 만에 돌파한다는 건 불가능이다. 해서 대장에게 전화하자, 누군가와 통화 중이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산꾼일 확률이 70% 이상이다. 통화 중이라 전화를 끊고 최대한 빨리 걷는데, 대장이 전화해 5분 정도 늦는다고 얘기하자, B 팀도 이제 미날교로 출발이라, 5분 정도는 괜찮단다. 분위기로 봐서, 나보다 더 늦는 일행이 있다. 그렇다고 약속을 어길 수는 없어 최대한 빨리 걸어, 4시 33분 미날교와 버스가 보이는 곳에 도착해 기록을 남기고, 속도를 유지하며 버스로 갔다.
3
마감보다 4분 늦은 4시 34분경 미날교에 도착했다. 그리고 버스에 타며 늦어서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 자리로 가며 보니, 분위기가 이상하다. 바로 출발할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산꾼이 하나 더 있다. 와중에 연락도 안 된다고. 예상대로다. 어쨌든 4시 37분경 완전히 지친 모습의 마지막 산꾼이 나타나, 공지보다 10분 정도 늦은 4시 40분 버스는 미날교를 떠나, 서울로 향했다. 와중에 보석봉에서 반대 방향으로 내려간 산꾼도 중간에서 태우고. 그런데, 미날교를 떠나, 40분 정도를 가자 길이 막혀 꼼짝을 못 한다. 이유가 뭔지 궁금해 창밖을 보니, 휴일을 즐기고 돌아가는 차량으로 합류 지점에서 병목이 발생했다. 그 지점을 통과해 영동 고속도로를 들어서자, 버스는 생각보다 빨리 달린다.
가랑비가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몇 개의 휴게소를 지나친다. 승객은 어떤지 몰라도 기사는 쉴 생각이 없어 보여, 기사와 가까운 자리의 승객이 그에게 쉬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지나치는 휴게소의 주차장을 가득 메운 자가용을 가리키며, 저 차가 도로로 합류하기 전에 버스 전용 차선에 도착해야 한다는 말에 다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러는 중에 3시 15분경 해파랑 걷기가 끝나고 서울로 출발한다는 마누라로부터 문막 휴게소라고 연락이 왔다. 응? 길이 막힌다더니, 한 시간 25분이나 늦게 출발한 우리 뒤에 있을 정도였나?! 영동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경부로 들어서자, 죽전 승객은 준비하라고 인솔 대장이 방송한다. 그리고 죽전 간이정류장에 승객을 내려준 버스는 7시 20분경 죽전휴게소로 들어갔다.
죽전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로 가 볼일 보고, 버스에서 본 막국수 광고가 있는 곳으로 갔다. 막국수라면 기다리는 시간 없이 바로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아니다. 해서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는데, 무시한다. 원래 '농심' 애들이 그렇지 하고 식당에서 나와 내라는 비를 감상하며, 편의점에서 산 식혜로 배를 채웠다. 그런데, 마감 7시 35분보다 3분 빠른 32분경 버스에 타고 보니, 다들 날 기다린 분위기다. 아니 이 사람들은 배고 안 고픈가? 어쨌든 휴게소를 떠난 버스가 8시 정각 신사역에 도착해, 기사와 인솔 대장에게 수고했다고 인사하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부터미널역이라고 마누라가 문자를 보냈다. 응? 벌써? 죽전에서 휴식하는 동안 따라잡은 거다.
서로 채 10분 거리가 안 된다. 해서 불광역에서 내려 얼큰한 순댓국을 먹고 가기로 했다. 물론 먼저 도착한 내가 순댓국집에서 주문해 놓고 기다린다. 나는 얼큰 순댓국 특대, 마누라는 순대만! 그런데, 과거 단골집은 9시 마감이라 주문을 안 받는다. 해서 최근에 단골이 된 24시간 집으로 가자, 평소는 24시간이나, 일요일은 9시까지라며 문을 닫는다. 그리고 길 건너 처음 가 본 집은 재료가 떨어졌단다. 와중에 마누라가 도착해, 순댓국은 포기하고 고기로 방향을 틀어서 고깃집을 전전했으니, 마찬가지다. 막판에는 오기가 생겨 집 근처 단골집으로 가봤다. 다행히 12시까지다! 해서 요즘은 미국산 소보다 비싼 돼지 반 마리를 주문해서 둘이 다 먹었다. 평소라면, 1/3을 남겼을 텐데 둘 다 많이 허기진 상태였나 보다. 그리고 10시경 집에 들어가는 거로, 부부의 해파랑길 걷기와 오지 산행을 마감했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개수2리 버스정류장 → 봉황대 → 절임배추 창고 → 버들이산 → 꽃바위등 → 퉁탱이바위(충성바위) → 덕수산 → 창수봉 → 장미산 → 삼거리 → 전망바위 → 절개지(채석장) → 승두봉 → 억새밭 → 임도 → 상안미2리 → 미날교'의 20km(트랭글, 램블러)가 조금 넘는 구간을 7시간 4분 동안 탐험했다. 이동 6시간 50분, 휴식 14분! 휴식 중 신규 등산 앱을 설치하느라 사용한 시간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아 빠졌다!
오지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산으로, 조망이랄 게 없고, 길도 명확하지 않아, 길을 찾아 헤맨 것만 3번이다. 물론 아주 짧은 구간은 셀 수 없이 많다.
길을 찾아 헤매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고, 가시넝쿨과 억새가 길을 막고 있어 보석산에 오르는 건 포기하고 구 임도로 상안미2리로 하산했다. 산꾼 용어로 중탈이다!
비록 20km가 넘어 보이나, 길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면, 덕수산, 장미산, 중대갈봉, 보석산 구간을 6시간은 아니고, 7시간이면 충분히 완주할 수 있다.
20km가 넘어 보이는 오지를 오이 하나와 에너지 바 두 개만으로도, 달리는 동안 전혀 배가 고프지 않은 것에 스스로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