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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00 - 참 하느님이신 저의 주님. 당신께서 온몸으로 쓰신 하느님의 역사를 저는 믿는 것이 아니라 믿으려 애써 왔습니다. 매년 당신의 부활 때에 저는 당신의 가슴에 상처를 심고 또 제 가슴에 상처를 만듭니다. 당신에 대한 나의 신앙고백. 당신에 대한 열망이 넘쳐흘러 호산나 알렐루야를 외치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떤 때에는 당신의 향했던 제 마음이 냉기를 풀풀 날리기도 합니다. 주님 내가 세상의 모든 것 다 버리고 오직 주님 당신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을 주실 수는 없는지요. 당신을 버리는 것도 두렵고 늪과도 같은 줄 알지만 세상을 버리는 것도 두렵기만 합니다. 온전히 당신의 세상에서 희생하며 살 수 있는, 그런 당신의 강제성으로 저를 당신 안에 묶어 두실 수는 없는지요. 저의주님, 저의 하느님! 아멘.
- 빛과 어둠. 열일곱에 서울로 상경을 했습니다. 종로 5가에 나염을 하는 곳에 취직을 했습니다. 먹고 자고 일하는 모든 행위를 한 건물에서 했습니다. 작업장 다락을 숙소로 만든 곳, 허리도 펴지 못하는 곳. 어린 나이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때가 내 인생에 빛이었던 유일한 1년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 어둠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편했습니다. 빛 속에선 한 달을 죽어라 일하고 8만원을 벌었는데 어둠속에선 잠깐을 일해도 잘 먹고 잘 자고 하루에 8만원을 넘게 벌었습니다. 사람을 패는 것도 도둑질이나 강도를 하는 것도 아닌 밀항을 주선하는 일이니 죄가 아니라 이것이 빛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 그들에게 빛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징역을 살고 또 어둠, 또 징역 또 어둠 또 징역 그런 세월로 징역살이 20년을 꽉 채우게 되었습니다. 그사이 나는 어둠속에서 살아가는 능력(?)이 업그레이드가 됐고 밀항에서 밀입국으로 여권 위조에서 이제는 세콤으로 이러는 동안에도 주님, 당신은 저를 묵묵히 바라보고만 계셨습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쓰고 한다고 다들 빛 속으로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브레이크, 제동이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놈의 빛과 어둠을 두고 갈등을 하지만 정작 내게 자유가 주어지고 담 밖으로 나가면 또 어둠을 찾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당신께서 제게 제대로 된 제동 장치를 걸지 않으면 저는 또 다시 반복된 어둠의 길을 갈 것입니다. 제가 약하다는 것, 그릇된 것을 알지만 아마도 주님 당신이 저를 잊어버리신 것은 아닌지요.
- 제가 정말 주님께 매달렸던 적이 있습니다. 2007년도였습니다. 성폭력으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대구 ‘칠곡’ 이라는 동네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은행 앞에서 99년도에 교도소에서 함께 지냈던 동료를 만났습니다. 당시 위조여권 등으로 재판을 받을 때였습니다. 동료는 반갑다고 하며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는데 얼마 후에 그 친구가 경찰 신분증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여 제가 덥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 신분증으로 평범한 가정주부들을 상대로 공갈 협박을 하고 다녔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울산을 갔다가 고속도로로 대구에 진입할 즈음에 전화가 왔습니다. 칠곡에 와서 차나 한잔 하자고 그러기에 칠곡으로 갔습니다. 칠곡에 도착하자 그가 또 전화를 했습니다. “반장님, 다 와가십니까?” “뭐? 무슨 반장?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디야?” 그가 오라고 한 곳은 어느 여관이었는데 6층에 어느 방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올라가 방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충성!” 하면서 그 친구가 경례를 붙였습니다. 옆을 보니 여성이 알몸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채팅을 했는데 5만원을 주면 몸을 주겠다고 해서 만났고 현장에서 체포했다는 것입니다. 여성은 신랑이 사업이 힘들어서 그런 일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옷 입혀서 내려오라 하고 먼저 내려왔습니다. 비가 오는 탓에 여관 앞 놀이터 처마 밑에 앉혀놓고 그 여성에게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훈계하고 교도소 동기에게 데려다 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성 앞에서 그 친구는 경찰이 아니고 신분증은 가짜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떴는데 두어 달 뒤에 그 일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무죄주장을 했지만 그 여성이 증인으로 나와서 제가 그랬다고 말했습니다. 성폭행하고 돈도 300만원 주었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녀석도 그랬고 여성도 그리 말하니 저는 꼼짝없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재판 8개월째 저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2천만 원 현금을 들고나가 그 여성과 합의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사람 많은 커피숍에서 그 여성을 만난 친구는, 합의는 하지만 그래도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내 친구는 그런 친구가 아닌데 왜 그런 증언을 했냐고 물으니 가짜 경찰 노릇을 하던 그 녀석이 그렇게 증언하지 않으면 보복하겠다고 말해서 할 수 없이 그리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주범으로 만들고 자신은 할 수 없이 따라 간 것처럼 꾸며서 형량을 낮게 받으려는 수작이었습니다. 내 친구는 그 여성과의 대화를 녹음하여 법정에서 판사에게 녹음 정황을 말하고 겨우 무죄를 받았습니다만 재판 8개월 동안 그렇게 하느님께 기도한 적이 예전에는 없었지 싶습니다. 고통을 겪을 때만이 당신을 피난처라고 생각하는 저의 마음, 주님 그것이 저의 인간성입니다. 내가 전과자라서 나를 믿지 못했던 경찰과 검사처럼 나자렛의 땅은 인간인 주님을 봤기에 믿지 못했습니다. 8개월 동안의 억울한 고통의 기억, 지금은 잊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좋은 일만 기억해 주십시오.
- 엄청나게 가난한 것을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합니다. 내 고향은 영양입니다. 6~7살 때 기억으로 봄에 산을 쳐다보면 소나무가 하얗습니다. 사람들은 먹거리가 없어서 소나무 껍질 안에 송구라는 하얀 속살을 벗겨서 말린 것과 봄나물과 함께 끓여 먹었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변을 볼 때 많이 아프기 때문에 심하게 가난한 것을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하다는 말로 표현 했다고 합니다. 자라오면서 이사를 참 많이 다녔습니다. 어머니가 시집올 무렵은 집에 하인이 서른 명이나 되어서 밥해주다 하루가 다 갔다고 할 정도로 잘살았었는데 큰 아버지가 그 재산을 다 탕진하시고 결국 선산도 없이 공원묘지에 묻히셨습니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단칸방 신세를 면할 수 없었고 그도 일 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 한 구석에는 항상 두세 가마니의 쌀이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생각할 때마다 방안에 있던 쌀가마니가 생각납니다. 고생 중에 상고생을 하면서도 아버지는 자식들 밥은 굶기지 않으시려고 무던히 애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런 아버지께서도 이제는 돌아가시고 형제와 함께 하지도 못하고 다른 공원묘지에 계십니다. 하느님 아버지도 육적인 내 아버지도 저에게 제 삶의 큰 빚입니다. 그 빚을 제가 언제가 되어야 갚을 수 있고, 언제쯤 그 빚을 모두 청산할 수 있을까요.
-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믿습니다. 제가 6년 실형을 받고 교도소에 들어왔던 99년도입니다. 10개월 된 딸아이가 있었습니다. 미혼모 사이에 태어난 내 딸입니다. 10년 연하인 아이엄마는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가기엔 너무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업고 집으로 갔을 때 아이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반응은 안 봐도 상상이 갑니다. 죽지 않을 만큼 맞고 쫓겨나기를 수회, 그리고 아이를 버리라는 수없는 종용도 이해합니다. 아이 아빠라는 작자는 전과범에다 당시 구형 12년을 받았으니 당연했습니다. 6년의 복역이 끝나고 나가보니, 수감된 지 2년 됐을 때 아이가 버려진 것을 알았고 백방으로 찾아봐도 헛수고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버려지고 잃어버린 실종인구를 보면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신분증을 위조했습니다. 경찰 신분증이 있어야 관할 관공서 문서를 쉽게 열람을 할 수가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노력한 결과 6개월 만에 놀이방에서 버려진 아이가 육영재단으로 간 것을 알아냈고 그곳을 방문하니 제 딸이 있었습니다. 10개월 된 딸아이를 보았을 뿐인데 7살 된 아이를 봤을 때 내 딸이란 것을 한 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저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지금은 열여섯이 됐습니다. 믿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하느님의 모습이시라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 저는 주님 보시기에 참으로 못나고 부끄러운 신자입니다. 부끄러운 신자. 그러나 주님 당신을 갈망했습니다. 주님께서 나 여기있다하시며 보여주시길 너무도 원했습니다. 당신께 발걸음 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그랬습니다. 엠마오 길에 동반한 그 두 사람은 그나마 나중에라도 눈이 뜨였고 주님을 알아보았지만 저는 이게 뭔지요. 어느 때는 주님이 보일듯하다가도 어느 때는 제겐 없는 분인 듯 공허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나쁜 놈이라 손가락질 받아도 그래도 숨은 나의 선을 보시는 분이시니까 하는 생각에 가끔은 그렇게 가슴을 펴기도 합니다. 정말 당신의 허락 없이 주님을 사랑해도 되는지 그런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꼭 당신의 허락을 받아야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 같습니다. 허락해 주소서.
이우람(마태오) - 순수 우리말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사랑’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사랑, 너무도 흔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저 그런 낱말일까요? 그러나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이 낱말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랑 그 자체로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낱말도 없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사는 모든 삶 곳곳에 빛으로 비추고 소금으로 스며져 있습니다. 사랑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과 한 사람 사이의 사랑, 인류전반의 사랑, 우주를 향한 사랑, 등등 다채로운 사랑이 곳곳에 존재하지만, 그 모든 사랑의 근본이자 기원은 주를 향한 사랑, 사람을 향한 주의 사랑이라 진리합니다. 한 사람의 인류전반의, 우주를 향한 사랑이라고 함은 한 번 지나감으로써 완성되어 고정되는 것으로 그리움과 애틋함에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그날 잊혀져버리는 망상입니다. 하지만 주의 사랑은 우리의 피와 살이 진토 되어 사라진 후 아득한 시공간 저 너머에서도 팔딱거리는 생동감 넘치는 생명으로 풍경을 이루어 끝없이 뻗어감입니다. 그러함의 증거를 논하라면 너무도 쉽고 자신이 넘칩니다. 2천여 년 전 주님의 아드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사랑하시어 살아가시며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신 그 크신 은혜로움은, 성령으로 고스란히 전율해 살아가는 교회와 사제들의 삶이요 또한 그 세월 무수한 사람들이 십자가 길을 나아감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지금 앞에서 이끌어주는 성직자와 수도자의 모습과 옆자리에 어깨동무로 함께 나아가는 형제자매들의 삶 역시 주의 사랑을 증거 하는 진실인 것입니다. 세월에 흩어진 다채로운 사랑은 모두가 정해진 시한과 틀에 묶여져 있으나, 주의 사랑은 무한으로 끊임없는 뫼비우스의 고리로, 주의 사랑이 사람에게 사람의 사랑이 주께 이어짐의 은혜입니다. 진실한 사랑의 완성인 아가페로 진리가 완성해짐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의 사랑이 제게 오심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인의 나아감을 온전히 이루게 하소서.’ 아멘.
- 주님은 나의 사랑이다. 나는 그 사랑에 빠져 기쁘게 죽어갈 것이다.
또한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 사랑으로 살아가고 사랑을 퍼뜨릴 것이다.
사랑은 부활의 파장으로 퍼져나가 너울로 너를 태우고 너의 사랑이 될 것이다.
그렇게 주는 죽고 살아나는 부활의 사랑으로 내가 될 것이다.
<무제 無題>
살다보면
살아가다보면
저 아득한
주님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되고
온전히
하나가 되겠지.
깃털처럼
가볍게
석산石山처럼
무겁게
그렇게
살다보면
살아가다보면
주님의 모습으로
살아가겠지.
첫댓글 목련
이우람
옛 골목 목련나무 몇 그루
가로등 아래여서 더 좋다.
때마침 봄의 이른 석양은
고양이 앉은 담장을 넘어 가는데
머리 위로 새 한 마리
짙푸름에 휩싸인 먼 산
창창한 어둠으로 날개짓 한다.
오고가는 사람 뜸한 옛 골목
다만 목련나무 몇 그루
하얀 비단꽃잎 가로등에 채색되어
저녁달 꿈으로 희미하게 서 있다.
- 새길 2014 봄 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