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 한 결정도 충분히 기도하고 결과를 기다리라
(창 16 : 1~5)
하나의 사건으로 인하여 가정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그 가족구성원들이 겪는 심리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 먹고 사는 문제 보다는 외적인 압박과 심리적인 고통이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듭니다.
이 시대에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좀 더 마음 편하게 살자고 해도, 쉽게 되지 않음으로 고통 받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서두름의 문제로 인하여 발단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서두름의 문제는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이를 악물고 기다려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분들, 육체로는 이미 많은 곳이 무너져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이렇게 어렵도록 만들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쉽게 순종할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럼 쉽게 순종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있는 그대로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이 물 흐르듯이 쉽게 흘러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면 될까요?
어떤 문제가 있을 때에 기도하는 일을 쉬지 말아야 합니다.
새벽에 제단을 쌓는 사람은 평생 그 자리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는 다 해결 됩니다.
아브람에게 자녀의 문제가 있었을 때, 그의 아내인 사래가 자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대안이 제시 되었을 때, 대안을 바로 시행하기보다 그 대안을 하나님께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제 아내가 이런 제안을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물었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대답을 하셨을까요?
하갈을 첩으로 두고, 아내로 삼아 자녀를 낳으라고 하지 않으셨을 것이 자명합니다.
만약 기도생활이 있었다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람이 이 문제를 놓고, 기도를 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단지 아내의 말을 듣고, 실천에 옮긴 것이 전부입니다.
본문말씀 2절을 보면,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데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내의 말을 들어서 잘 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인생의 갈 길에 있어 최종적인 질문과 대답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아내에게만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물은 뒤에 실천해도 늦지 않습니다.
사기 당할 때에 대부분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렇게 빨리 선택하고 결정하는지, 오늘 지나면, 이것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쉽게 승낙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주신다면, 기도함으로 주실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되지만, 기도하지 않고,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성도들 가운데, 대부분 자기 결정으로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기를 맞는 경우, 어떤 사람은 시점이 맞지 않아서 손해 보는 경우, 등. 기도 없이 결정함으로, 훗날을 걱정과 염려로 사는 사람이 너무도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문제를 수습하는 것에 세월을 보내게 됨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백화점에서 옷을 살 때에, 쉽게 결정하지 않습니다.
한 번 더 보고, 또 다른 곳에 갔다가 마음의 결정 내리지 못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데, 결혼문제에 있어서는 생각 없이 덥석 결정하고, 모든 문제가 해결 된 것처럼 결정하는 경우, 이렇게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행동인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자기 기분과 자기 기준에 맞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라고 자기 확신을 갖는 사람들 또한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시작과 동시에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그나마 시작도 하기 전에 깨지는 것은 감사할 문제입니다.
모든 결정권은 내가 쥐고, 하나님께 의견을 묻는 일들 이제는 버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결정할 때는 기도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이미 만나고 있으면서, 이미 행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위해 기도하려고 하면, 자기 뜻이 들어있는 것이므로, 오히려 깨질 징조입니다.
인생의 문제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균열이 보이는 그릇을 누가 사용합니까? 개밥그릇으로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개가 다칠까봐 쓰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균열이 있는 상태에서 서로를 포장하는 것에 힘쓰는 사람들에게 어느 날 수습의 시간이 찾아온다면, 지금까지 행복했다고 생각한 시간보다 더 아픈 시간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런 결과는 바로 서두름의 문제입니다.
뻔 한 결정이라 할지라도 하루 이틀 충분히 기도해보고, 또 기도해봐야 합니다.
중대한 문제라면, 확신이 설 때까지 기도해보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부작용이 없습니다.
기다리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라’가 내 신앙생활에 자리 잡아야, 온전해 지게되며,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삶”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충분히 기도하고, 결정을 내린 사람은 충분히 기다리며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의 삶을 살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우리들에게 기도의 삶을 살라고 강조한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지 기도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사랑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를 만드실 때에 사랑에 대한 감정을 잘 모르도록 만드신 것 같습니다.
지금도 남자들은 사랑에 대한 감정을 잘 모릅니다.
대다수의 남자는 충동적이고, 육체적인 접근을 많이 할 뿐 사랑은 잘 모릅니다.
사랑은 여자가 잘 압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여자의 속도에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여자의 속도에 맞추다보면, 남자에게는 어려운 것입니다. 답답합니다.
여자 속도에 맞추다보면, 남자도 사랑을 배워갑니다. 여자가 좋다고 따라다니다 보면,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사랑이 꽃이 핍니다.
남자는 언제나 악합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반면에 여자는 예전에는 착했으나 지금은 악합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사랑이 사라졌습니다.
요즘 젊은이의 표현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밀고 당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깊은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주 쉽습니다. 성경말씀대로 하면, 됩니다. 또 “혼전관계를 깨끗이”하면 됩니다.
결혼하기 전까지 관계를 깨끗이 한다면, 뭐든지 자연스럽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의 책임은 90% 이상 여자에게 있습니다.
여자가 하나님 앞에 순결하게 되면, 자기도 사랑할 수 있고, 남자에게도 사랑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요즘에 사랑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전에 선했던 여자가 이제는 악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멋대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려워진 것입니다.
혼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 사랑도 없는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올바른 사랑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사랑이 식었다고 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찾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뿌리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면,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에 집중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일을 결정 할 때에는 충분히 기도로 준비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 때, 움직이면 됩니다.
이미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서, 내 뜻대로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한다면, 수습하는 것에 평생을 보내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도는 뻔 한 일도 하나님께 한 번 더 묻는 습관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때를 기다리는 주의 신실한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 합니다.
PS.
군함 같은 교회
내가 낸 표 값에 어울리는 대우를 원하는 것이 아닌, 목숨을 내놓고 타는 것이 군함이다.
승선한 모든 군인들은 각자의 사명, 직능이 있다.
그래서 편의시설보다 사명완수, 작전수행을 위한 훈련과 시스템이 우선시 된다.
물론 그 배에도 적당한 편의시설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과 제도를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군함은 사명과 명령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사명은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희생은 당연한 것이고, 헌신은 강요하지 않아도 사명을 다하기 위해 함께 해야 할 업무수칙이다.
그래서 교회는 헌신과 희생 때문에 지켜지고 이루어질 위대한 역사가 있는 것이다.
- 김봉현 목사의 ‘하나님의 소원’에서 -
유람선을 타는 사람들을 승객(passenger)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보호받아야 되고, 약속된 서비스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군함을 탄 사람들은 선원, 승무원(crew)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역할과 직능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배에 타는 것입니다.
승객이 많아지면, 유람선이 되고, 선원이나 승무원이 많으면, 군함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선원이 되는 교회!
역할이 있고, 사명이 있어서, 주님의 명령에 따라서 그것을 묵묵히 감당하는 공동체가 바로 주님의 교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