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단오날, 박물관 강의를 김홍영 운영위원장과 함께 찾았다.
주제 때문인지 오늘은 저번보단 참가인원이 좀 성기어 보였다.
배기동(裵基同)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1952년 대구태생으로 서울대와 미국에서
공부하고 전통문화학교 총장, ICOM한국위원회회장을 지냈고 현 전곡선사박물관장이라고
소개하였다. 처음에는 2주 후에 예정된 낙산사 답사 준비와 참가 문제에 대한 설명으로
주의가 조금 흐트러지기도 하였고, 미리부터 재미없을 거라는 듯 강사 선생이 졸아도
상관없다고 미리 해놓는 한마디가 강의 흐름을 예고하는 듯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로선 예년의 서울대 최몽룡 교수 강의 때보단 재미나게 들었다. 물론 다른
수강자들도 그렇다고 장담하진 못하겠다.
배교수의 강의는 마치 대학의 옆 강의실에서 건너와 다음 강의 진도를 서둘러 나가듯
진행하였다. 전문용어의 사용이나 절제 없이 튀어나오는 영어단어가 특히 그랬다.
요약본 파워포인트 화면에 대한 지루한 설명과 그림으로 보여주는 화면이 적었던 점이
다소 아쉬웠다. 강사 자신이 올해 얼마 전에 번역하여 출간한 책을 직접 소개하기도
하였지만, 강의 내용도 그것과 비슷하게 선사시대의 문화인류학 같았다. 강의를 마치고
마지막에 사회자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의 처음인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를
소개한다는 의미에서 강좌가 계획된 것이라고 그 의미를 부연하여 설명해줌으로써
왜 이 강의를 들어야 했는지를 다시 일깨워주는 해프닝 같은 멘트도 있었다.
처음 화면에 제시된 강의 제목 아래는 "상상, 상징, 그리고 기억의 진화"라는 부제가
보였다. 그리고 요약본의 소제목은 아래와 같았다.
1. 우리, 그 인간성의 기원
2. 환상하는 동물 - 현생인류
3. 인간성의 기원
4. 현생인류와 상징 5. 결어
이런 추상적인 말들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대체 무슨 내용일까? 사실 이 내용들은
최신의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선사시대 해석의 담론인 것이다. 인류가 진화하면서
거쳐온 진화 단계들마다 어떤 문화적 내용이 있었는지를 최신의 과학적 연구성과를 통해
해석하는 것이다. 거기서 종교나 예술은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의 문화적 특성의 표현
으로서, 애초 이런 것들은 소통의 구성원리로서 '상징'이라고 하는 단위로 표현한다. 이
상징이 문화적 진화의 기초단위이자 "인간의 사회적인 인지의 외형적 요건"이라고
해석한다.
호모의 두뇌용량이 1400cc가 되면서 상징이나 예술이 가능한 인지 수준에 이르는데,
기원전18,000년경 네안데르탈인이 없어지고 현생인류로 통일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여기서 35만년 전부터 유럽서부에서 서아시아에 이르는 지역에 있었던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는 문제가 있고, 기존에는 머리만 컸지 멍청해서 현생인류에 의해 멸종되었다는
설이 최근 연구성과들로 반박되는 양상도 소개되었고 또한 그들에게도 문화적 특징이라
할 만한 고고학적 증거들이 많이 발견된다는 점도 소개하였다. 내가 알기로 대대적으로
소개하는 유럽에서의 네안데르탈인 연구 분위기와는 다소 다른 미국식 논조라고 보이기도
하였다.('네안데르탈'이란 네안더 지방의 골짜기라는 독일어임)
(* 아래는 7만년 전의 네안데르탈인 골격을 토대로 복원한 모형이라고 함)
아무튼 현생인류가 문화적 특징을 드러내는 것은 후기구석기문화 때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동굴벽화와 비너스상이라고 소개하였다. 역사책이나 미술책에서 흔히 보던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벽화다. 이것이 왜 스페인의 피레네 지방이나 프랑스의 이베리아
반도에서만 나타나는가에 대해서는 "이 지역의 생태환경이 사람들의 적응에서 보다
고차원적인 정신적인 힘을 기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생태적
원인"을 드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다. 지구가 가장 추웠던 18,000년 전 이후의 것이란
말이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옮긴 알타미라동굴벽화)
(아래는 라스코 동굴벽화)
(더 자세히는 세계유산 사이트인 http://whc.unesco.org/en/list/310/documents/ 및 http://whc.unesco.org/en/list/85 참조. 라스코는 베제르 계곡이란 명칭으로 올라 있음)
회화보다 장신구들은 훨씬 먼저부터 있었는데, 오스트리아의 뷜렌도르프에서 발굴된
'비너스상'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뷜렌도르프 비너스상이라고 불리는데,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유럽 전역에 걸쳐 계속 발견된 분포지도를 보여주었다. 현재의 미녀상과는 영판
다른 모습으로 당시 추운 지역의 지방축적, 사회적 유대감 등을 상징한다고 설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국보인 반구대암각화도 잠시 설명이 있었다. 그물, 창을 맞은 고래,
사람, 배 등이 그림에서 보였다. 몽골 암각화가 동쪽으로 분포한 마지막 지점으로서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란 설명과 함께 보존문제가 거론되는 요즘, 현대조선이
거기에 있어서 식수문제가 커진 것이므로 현대에서 적절하게 조처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소망(?)아닌 바람을 피력해보이기도 하였다.
(비너스상. 바로 아래것이 뷜렌도르프비너스상=빈자연사박물관 소장)
(* 아래는 강의에서 언급이 없었으나 몇 년 전 정수일 교수가 요동의 초원실크로드에
대한 연재에서 소개한 훙산문화의 유물인 5천년 전의 나체여인상임. 시기가 훨씬 후대지만
공통성을 찾아볼 수 있는 '자생적 문화적 보편성'이라고 설명한 바 있음)
(아래는 반구대암각화)
다소 거칠게 요약을 해보았으나 사실 선사시대라고 하면 갑갑한 점이 한둘이 아닌 듯하다.
가까운 삼악산 등선폭포도 가장 오랜 땅인 5억7천만년 전의 원생대 사암이 지각변동의
고온과 고압 아래서 규암(차돌)으로 변성된 것이란 사실(최영선, <자연사 기행>, 1995년)을
아는 사람이 드문 것처럼, 1879년에 발견된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그 오랜 정보의 인지
덕분에 뭔가 조금 아는 듯해도 반구대암각화라고 하면 잘 모르지 않는가. 신석기시대설과
청동기설이 있지만, 1973년에 있었던 단양 고수동굴의 암각화 발견에 대해서는 그 후
별다른 진전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동아일보 1973년 11월 5일자)
기후와 환경문제로 요즘은 '지구사'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고(이화여대의 지구사연구소),
'거대사(big history)' 책들도 간간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선사 이전의 지구 지질시대에
대한 인식도 깊어진 듯하다.
(*참고로 화석인류들과 현생인류의 계보 그림을 인터넷에서 옮겨본다. 몇 번을 봐도 그게
그건지 헷갈림이 다반사 아닌가 싶다)
5백만년 전에 지브롤터해협이 닫혀 지중해가 말라버렸다가 다시 물이 찼다든가, 그래서 지금은
지중해 수중에서도 동굴벽화가 발견되었음을 알고 있다. 또 4백만년 전에 지각의 융기로
파나마지협이 생기면서 해류 순환이 바뀌고 멕시코만류의 순환체계가 생기면서 유럽대륙이
고위도까지 따뜻해지기도 하였으나,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대륙붕이 빙하로 덮이기를
반복하였단 사실도 마찬가지다.(앤터니 페나, <인류의발자국>, 2013년 참조)
그런 면에서 인류의 조상들이 거쳐온 진화의 문화인류학적 해석들도 찬찬히 챙겨볼 필요가 있다.
다만 오늘 강의는 미술사적 센스란 점에서는 좀 덜 친절하거나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배교수 번역의 책 표지사진이다.
첫댓글 전문위원님의 고찰이 더욱 흥미가 있게 느껴집니다...전체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조금더 걸리겠지만 이런 정도의 모니터링은 역사문화연구회 사이트의 질을 두어단계 뛰어넘게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드립니다...
격으로 따지자면 문화평론가로서도 손색이 없는 강평입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