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0년대🌺 |
✿1401년 신문고 설치
조선의 제3대 임금인 태종은 1401년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해결해 주기 위해 신문고를 설치했다. 신문고란 대궐 밖 문루에 북을 달아 두고,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이 북을 울리면 그 사연을 들어 해결해 주는 제도였다. 임금의 지휘를 받는 사법 기관인 의금부가 신문고를 관리했다.
조선 시대에는 백성들이 억울한 판결을 받았을 때 다음과 같은 절차를 거쳐 항소할 수 있었다. 지방에서 일어난 범죄의 경우 수령이 먼저 판결을 내리고, 관찰사가 이를 다시 살펴본 다음, 그래도 억울하면 사헌부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해결이 안 되면 신문고를 울릴 수 있었다. | |
| 🌱1900년대🌱 | |
🌲07년 고종, 황태자에게 국사를 대리시킨다는 조칙 발표 🌲07년 서울 시민 2000여 명, 덕수궁 대한문서 고종 양위에 반대하여 시위.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의 집에 불을 지름. 🌲10년 항일우국지사 전해산 순국 🌲19년 남산의 조선신사 준공 | |
🌲25년 히틀러 ‘나의 투쟁’ 출간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 초판본.
1923년 11월 8일 오후 8시, 히틀러가 나치 돌격대원 300명을 이끌고 뮌헨 교외의 한 맥주홀에 난입, 천장을 향해 총을 쏘고는 큰소리로 “혁명은 시작됐다”며 맥주홀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맥주홀에서는 바이에른주(州) 통감 카를이 3000여명의 군중 앞에서 연설 중이었다.
히틀러에게 바이에른 분리주의자 카를은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암적인 존재였다. 따라서 카를은 제거돼야 했고 주 정부는 전복돼야 했다. 그러나 감시 소홀을 틈타 도주한 카를은 이틀 뒤 히틀러를 체포했다. 재판에 회부된 히틀러에게 이 기간은 오히려 선전·선동을 강화하고 입지를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반역죄로 5년 금고형을 선고받고 란츠베르크 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도 자신의 궤변을 정리하는 호기로 삼았다. 그는 감옥에서 반(反)유대인과 반(反)마르크스주의의 논리를 가다듬었다. 히틀러에게 아리안족은 천재 민족이었고 유대인은 기생동물이었다.
1924년 12월 출소했을 때 이미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히틀러는 자신의 생각을 비서 루돌프 헤스에게 받아적게 했다. 그리고 1925년 7월 18일,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 제1권을 출간했다. 원래 제목은 ‘허위, 우열, 비겁에 대한 4년간의 투쟁’이었으나 강렬한 인상을 주자는 출판사 사장의 권유로 제목을 바꿨다. 연말까지 팔린 책은 1만여권에 불과했지만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고 나서 ‘나의 투쟁’을 나치의 바이블로 삼은 뒤부터는 거의 2000만부나 팔려나갔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 보다는 큰 거짓말에 더 쉽게 속는 법이다.” 그가 ‘나의 투쟁’에서 강조했던 말이다. | |
🌲25년 한강인도교 최고수위 12.26m로 한강 범람, 철교 유실(을축년 대홍수) 🌲29년 평양역 기공 🌲30년 함남 서천, 삼림조합을 반대코 군청.경찰서를 습격 | |
🌲36년 스페인 내전 발발
공화국 정부군과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모습. 많은 여성들이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2차대전의 리허설` `신병기의 실험장` 그리고 `지식인들의 전쟁`등으로 표현되는 스페인 내전이 1936년 7월 18일 발발했다. 이날 오전 5시. 스페인령 카나리아 군도에 좌천돼 있던 프랑코 장군은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와 국민을 향해 쿠데타를 선언했다.
인민전선 정부는 5개월 전인 1936년 2월 19일 정교 분리, 농지 개혁 등 진보적 정책을 펼쳐 중산층과 노동자 농민의 지지를 받으며 스페인에 수립된 정부였다. 반면 가톨릭교회와 대지주, 대자본가들은 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품었다. 이들의 불만에 군부, 왕당파, 우익 정당들이 호응한 것이 스페인 내전이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반란군은 모로코 주둔부대들을 필두로 본토의 세빌리아 바르셀로나 안다루시아 등 전국적으로 궐기했다. 이들은 압도적인 우세로 쉽게 수도 마드리드를 점령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뜻밖에 민중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대도시에선 반란군이 민병들에 대패했다. 스페인 민중들의 힘은 전세계 지식인들을 흥분시켰다. 공황과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분위기에 질식할 것 같던 그들이었다. 앙드레 말로, 어네스트 헤밍웨이, 네루다, 시몬느 베이유, 조지 오웰, W H 오든 등 세계적인 지성들을 포함, 4만여명의 외국인 용병이 삽시간에 모여 `국제여단`을 조직했다.
내전은 국제전의 성격도 띠어 독일과 이탈리아가 반란군을 도왔고, 소련이 인민전선 정부를 도왔으나 1939년 3월 28일 프랑코군이 마드리드에 입성함으로써 파시스트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전세계를 휘감고 있던 보수와 갈등,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파시즘과 자유, 공산주의와 문명의 긴장ㆍ대립이 스페인 내전 한판에 응축된 양상이었다. 스페인 내란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 |
🌲46년 서울대학교 신설 🌲47년 여운형, 현직 경찰관등에게 피살(8월3일 국민장) 🌲52년 중석불 사건 국회로 비화 | |
🌲55년 미국-영국-프랑스-소련 4국정상, 제네바회담
제네바회담 이틀째 되던 날, 회의장 밖의 정원에서 소련 수상 불가닌,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 프랑스 수상 피에르, 영국 수상 이든(왼쪽부터)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국 정상회담이 1955년 7월 1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됐다. 이번 회담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 열린 동서수뇌회담으로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 영국 수상 이든, 프랑스 수상 피에르, 소련 수상 불가닌이 참석했다. 참가국들은 독일의 통일문제, 유럽의 안전보장, 군비축소, 동서간의 교류촉진 등에 대해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23일 막을 내렸다.
독일문제와 관련해서 프랑스 수상 피에르는 독일의 재통일이 나토잔류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소련 수상 불가닌은 독일 재통일에 있어서 최대의 장애는 서독의 재무장과 미군의 서독주둔이라고 응수했다. 군비축소문제에 있어 최종 공동성명서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제안한 자유영공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아이젠하워는 미국과 소련이 방위계획을 교환하고 방어시설에 대한 공중감시를 서로 허용하자고 제의했다. | |
| 🌲63년 한ㆍ미경제위(ECC) 신설협정 체결 | |
🌲63년 민주당 창당(총재 박순천).
1963년 7월18일 민주당 창당(총재 박순천) | |
🌲68년 인텔 창업
앤디 그로브 인텔 회장.
최고 전성기 때는 세계시장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며 세계 CPU 시장을 좌지우지해 온 인텔의 역사적인 항해가 시작된 것은 1968년 7월 18일이었다. 출항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페어차일드 부근이었다. | |
🌲68년 유엔군사령부, 국군에 작전권 대폭이양 🌲73년 로저스 미국 국무장관, 한ㆍ미외무장관회담 (서울)후사회주의국가 수교,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지지 언명 | |
🌲76년 코마네치,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세계 체조사상 첫 10점 만점 기록
‘10’점이 아닌 ‘1.0’점을 표시한 전광판. 당시만 해도 ‘체조 만점’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최대 9.99점까지 나오게 되어 있었다.
1976년 7월 18일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경기장. 1m53에 39kg, 가냘픈 14세 소녀가 2단 평행봉에서 현란한 연기를 펼치고 사뿐히 착지했다. 전광판 숫자는 ‘1.0’. 관중석은 술렁였다. 항상 9.0 이상의 점수를 받던 소녀도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것은 1.0이 아니었다. 만점인 10.0을 표시한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체조 만점’은 불가능하다고 여겨 전광판은 최대 9.99점 까지 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 소녀는 루마니아에서 온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였다. 코마네치는 그후에도 여섯번이나 만점을 더 받아 2단 평행봉과 평균대, 개인종합에서 금메달 3개를 거머쥐었다. 미국의 타임지는 코마네치를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나타난 요정”이라고 극찬했다.
코마네치는 4년 뒤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더 땄다. 여성미를 강조하던 여자 체조는 코마네치 이후 기술 위주로 바뀌었다. 1989년 미국으로 망명한 코마네치는 체조선수 출신의 미국인과 결혼했다. | |
🌲81년 부평도서관 개관 (조례 제 1431호) 🌲83년 서울형사지방법원, 민간항공기를 납치하여 한국으로 탈출한 중공인 6명에 첫 공판 🌲84년 위장귀국 간첩 3명 검거-이발사 가수 어부등 으로 가장 🌲84년 회현동 남자 암달러상 피살-범인은 중국인 1명 검거 🌲84년 서울시경, 서울 회현동에서 남자 암달러 상인 살해 출국하려던 중국인 범인 2명 중 1명 체포 🌲85년 이재형 국회의장, 남북국회회담 예비접촉수석 대표에 권정달 의원 임명, 평양측에 통보 🌲85년 대검찰청, 삼민주화투쟁위원회 학생 56명 구속. 주동 13명에 보안법 적용 🌲85년 미국무성, 북한에 소련으로부터 미그23기 40~50대의 제공 확인 🌲87년 태풍 셀마 호 피해로 사망 99명 실종 236명 재산피해 1243억원 🌲88년 한은, 5월말현재 30大 재벌의 은행빚은 19조8000억원으로 금융기관 전체여신의 22.56% 밝혀 🌲88년 제143회 임시국회 개회 🌲88년 서울형사지법, 새마을 비리사건의 전경환 피고인 등 첫 공판 개정 🌲88년 전주 우석대, 12억 받고 86명 부정입학시킨 사실 드러남 🌲89년 서울형사지법, 전두환 전 대통령경호실장, 장세동 피고인에게, 징역 10월ㆍ자격정지 1년 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