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 한 알
아버지가 적어준 쪽지를 움켜쥐고 뛰고 또 뛰었다. 언덕배기를 내리 뛰고, 빈 보리밭과 시장골목을 지났다. 숨이 턱에 닿아 양장점 처마 밑에 잠시 멈춰 섰을 때는 사정없이 눈물이 솟았다. 한겨울 찬바람이 얼굴을 할퀴어도 등에서는 진땀이 났다. 마침내 시장 끝에 있는 우체국에 도착했다. 나는 헐떡거리며 여직원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쪽지를 받은 여직원은 황급히 전보를 치기 시작했다. "또르륵 똑 똑" 여직원의 손끝에서 모르스 부호가 다급하게 쏟아졌다. 이 부호들은 다시 문자로 해독되어 삼촌과 고모들에게 전해질 것이었다. 쪽지에는 "모친 위독" 이라고 쓰여 있었다.
다음날 앞서거니 뒤서거니 삼촌과 고모들이 도착했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그로부터 대략 일 년이 지난 뒤였다. 함박눈이 펑펑 오던 날, 나는 다시 뛰어서 우체국으로 갔다. 그때 쪽지에 써진 글자는 "모친 사망"이었다.
사십 년도 더 지난 그때의 일이 불쑥 생각난 것은 한 통의 문자 때문이었다. 문자에는 "비펜트린 나온 달걀번호" 라는 발음도 어려운 제목 아래로 숫자, 알파벳, 한글들로 이루어진 짧은 조합들이 칸을 메우고 있었다. 그 조합들은 무슨 암호 같기도 했다. 축약된 표가 긴장감을 주며 전문(電文)을 연상시켰다. 소위 살충제 달걀의 번호들이었다. 이 화급한 소식을 지인이 카톡을 통해 전보처럼 날렸던 것이다.
참으로 참담했다. 방송에서는 연일 그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루고 있었다. 정부 대책을 설명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행인의 심정을 묻는 인터뷰도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양계장을 찾아가 실태를 보도한다며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화면에 목털이 듬성듬성 빠진 암탉이 그 벌건 목을 비좁은 창살 바깥으로 내밀고 있는 장면이 잡혔다. 암탉의 검은 눈이 절망적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철없는 사내아이들은 막대기를 휘두르며 수탉의 꽁무니를 쫓아다녔지만, 우리들의 관심사는 오직 암탉뿐이었다. 할머니가 마당 구석에 만들어준 둥지에서 암탉이 알을 품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여자아이들은 사과상자에 등겨와 모래를 넣은 암탉의 둥지 앞에 모여 앉았다. 목덜미로 따끔거리는 봄 햇살이 느껴졌다. 암탉을 보호하기 위해 쳐놓은 갈색 천을 살며시 들쳐보기도 했다. 암탉이 한껏 부풀린 날개를 부르르 떨며 꾸룩거리면, 우리는 얼른 천을 내려덮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달려가 며칠을 더 기다려야 병아리가 나오는지 다시 묻곤 했다.
학교에서도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는 암탉과 병아리의 그림을 찾아보았다. 마침내 어느 날, 암탉 둥지에서 삐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신기하게도 정말 병아리가 부화한 것이다. 한동안 우리들은 장독대 아래로, 채송화 사이로, 마루 밑으로 쪼르르 몰려다니는 병아리들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병아리들을 부화시킨 암탉은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했다. 행여 아이들이 수상한 행동이라도 할라치면 멀리서라도 병아리들 곁으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마당을 파헤치며 벌레를 잡는 시범을 보이기도 하고, 밤이 되면 다시 날개를 부풀려 병아리들을 품에 안았다. 어린 우리에게 생명의 신비와 모성의 따뜻함을 일깨워준 암탉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낳고 어미가 되자, 다시 닭을 키울 기회가 생겼다. 새 학기의 들뜬 마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교문 앞에 병아리를 파는 아저씨가 나타난 것이다.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딸아이가 기어코 병아리 한 쌍을 사왔다. 정성껏 보살폈지만 한 마리는 이내 죽고, 다른 한 마리는 무럭무럭 자라 암탉이 되었다. 꼬꼬라고 이름 붙였다.
꼬꼬는 병아리일 때와는 달리 날카로운 부리로 보이는 대로 쪼아대고,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 걸리는 대로 찢어대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파트라는 환경이 닭에게 맞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아이들과 의논 끝에 아파트 뒤에 있는 농장에 보내기로 했다.
농장에서의 꼬꼬는 행복해보였다. 소 여물통 위에 올라앉아 실컷 모이를 쪼아 먹고, 밭고랑을 파헤쳐 지렁이를 잡아먹었다. 낮에는 넓은 농장을 활개 치며 돌아다니다가, 밤에는 주인아저씨가 만들어준 횃대 위에서 잠을 잤다. 우리가 놀러가 "꼬꼬야"하고 부르면 쪼르르 달려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꼬꼬가 보이지 않았다. 삼복더위를 맞아 주인아저씨의 몸보신이 된 것이다.
모든 생명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생명의 행복이란 제 생육조건이 맞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행복은 생명존속의 절대적 조건이 되는 셈이다. 한때 삶의 행복을 누리다가 서로의 먹이가 되는 것은 자연의 순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생명으로 태어난 환희를 느낄 새도 없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암탉들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암탉들은 차마 마주보기조차 힘든 몰골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양계장은 집단 학살을 목적으로 세운 수용소 같았다. 몸 하나 돌릴 공간도 없는 곳에서 죽을 때까지 알을 낳는다고 했다. 세상의 끝을 본 것처럼 송연한 느낌조차 들었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의 끝일 터였다.
그래도 나는 냉장고를 열어 남아있는 몇 알의 달걀을 표와 대조해 보았다. 황토색 껍질에 녹색으로 표기된 생산지 번호는 마치 수인번호 같았다. 털 빠진 목을 창살 사이로 길게 늘어뜨린 암탉이 또다시 떠올랐다. 나는 달걀 하나를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암탉이 보낸 쪽지 같은 달걀을 들여다본다. 두 개의 숫자와 한글이 나란히 찍혀있다. 이 달걀이 살충제 명단에 있거나 없거나 무엇이 다르랴. 나는 달걀을 낳은 암탉을 떠올린다. 불현듯 달걀에 찍힌 암호가 해독이 된다. "모친 위독" 정말 이 암호는 절망에 빠진 암탉이 달걀을 통해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타전하고픈 전보의 내용이 아닐까.
첫댓글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매순간 몹쓸짓을 번복하는 일인것 같아요
코로나19 전염병으로 박쥐도 자신이 위독하다고 전보를 보낸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