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월 첫째주 주일메시지
누가복음 6장 강해 4부 복 있는 사람
말씀: 누가복음 6장 20-26
요절 누가복음 6장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복 있는 사람이 오늘 말씀 제목입니다. 복 있는 사람을 복자라고 하고, 천안의 복자여고가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지난 주 설날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합니다. 성경에서도 복에 대해서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너는 복이 되라, 복덩어리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복이 나옵니다. 그들은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습니다. 그가 속한 곳과, 그의 소산이 다 복을 받습니다. 물질적인 복, 전쟁에서 승리하는 복, 건강의 복, 으뜸이 되는 복을 받습니다. 신약에서도 사도요한은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과 일치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 열심히 다니면 복 받는다는 기복신앙이 나온 것입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면 성공한다고 말하면 성공신학이고, 번영한다고 하면 번영신학입니다. 이런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고 헌금 열심히 하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을 지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복을 받는 것을 13절에 걸쳐 기록하고 저주를 받는 것은 54절에 걸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죽을 때 계명을 지키고 회개한 요셉이나 유다를 축복하고 죽습니다. 그러나 계명을 지키지 않고 회개치 않는 레위나 시므온, 단에 대해서는 저주를 합니다. 이 저주가 사실은 축복입니다. 이 저주를 듣고 레위 지파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복을 받습니다. 무조건 교회만 다니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기복신앙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에 순종할 때 복 받는다고 하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것입니다. 여기서 볼 때 진정한 복은 십계명을 지켜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바른 관계성을 맺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서 살면 아무리 물질적인 부와 건강을 얻어도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1) 복있는 자
20-23절에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나옵니다.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미움 받고, 욕 먹고, 버림 받은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부유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사랑 받고, 칭찬 받고, 인정 받는 사람은 저주 받는 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부자였고, 칭찬 받는 자였습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서 기뻐하면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도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감사하고 기뻐하는 자가 복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진정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나라’, ‘인자로 말미암아’ 라는 말에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슬퍼하고, 미움 받아서 예수님을 찾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면 그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부유하고 건강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떠난다면 그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여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건강하다면 금상첨화 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더 잘 믿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부유하고 건강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가난하고 우는 자가 복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예수님을 가장 닮은 사람을 한 사람 뽑으라면 다윗 왕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의 국기에도 다윗의 별을 그려 놓았습니다. 다윗은 어려서 골리앗을 물리쳐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으나 그때부터 사울 왕의 시기를 받았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겨 광야로 피난가며 동굴 생활을 했습니다. 블레셋 땅에 망명하여 살 때 아멜렉 사람에게 가족을 다 잃기도 했습니다. 30세에 유다의 왕이 되고 37세에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후에 이방 민족과 싸우는 전쟁을 하고 50살이 되어 잠시 평온한 때에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그의 집안에 성폭행, 살인 등이 일어났고 나라에는 반역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때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했습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이 시편에 나옵니다. 다윗은 고난을 당하였어도 복 받은 사람입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을 가장 닮은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은 후 동족으로부터 끊임없이 핍박을 받고 나중에는 로마 감옥에 갇혀서 로마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단의 가시에 의해서 평생 간질을 앓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난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장 많이 누리고 전한 사람입니다. 바울도 다윗과 같이 고생했지만 복받은 사람입니다.
이번 명절에 시골에 갔습니다. 제가 잘 아는 한 가정은 5남 1녀가 한 가정도 이혼하지 않고 명절이 되면 다 모이는 다복한 가정입니다.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자녀들도 다 좋은 직장을 구하고 결혼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기 어려운 가정입니다. 그런데 첫째가 심장 판막에 병이 나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심장 판막에 병이 난 것이 복이었던 것입니다. 셋째는 고등학생 때 감나무에서 떨어지고, 기차에 깔려 발가락이 잘리고, 폐병을 앓은 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것도 복입니다. 다섯째도 중학교 때 병에 걸리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막내 여동생이 자궁암이 걸리고 넷째 의 아들이 실직하고, 넷째 부인이 뇌경색 걸렸습니다. 이것도 어찌 보면 복입니다. 이들에게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인간적인 고통으로 우리가 슬퍼하고 고통할 때 그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2) 화 있는 자
24절- 26절에 보면 화 있는 자가 나옵니다. 24절-26절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복 있는 사람과 반대로 부유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는 자가 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고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고, 칭찬 받으면 그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부유하고, 배부르고, 칭찬 받으면서도 더욱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한다면 그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화 있는 자는 배부르고 부유해서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지도 않는 자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풍족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솔로몬입니다. 그는 지혜도 있고, 부유함도 있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아가서와 잠언을 쓴 그는 부유해지자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적인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말년에 여러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겨우 회개하고 전도서를 쓰고 죽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로마는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고 380년 기독교는 국교로 받아들였습니다. 기독교는 핍박이 사라지니 타락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6.25 직 후 기독교는 부흥했습니다. 그러나 1995년 GDP가 1만 달러를 넘고 2006년 2만 달러를 넘고, 2018년도에는 3만 달러에 진입했습니다. 우리나나는 GDP 만불과 함께 1995년 기독교는 쇠퇴의 길에 들어섰고 2006년 2만불 시대에 쇠퇴의 속도가 빨라지고 2018년도 삼만불 시대에는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경제 성장한 것이 어떤 면에서는 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서는 자원하여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더 부족한 곳으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박보영 목사는 목사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그는 절대로 목사는 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의사가 되어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많은 땅을 사고 좋은 집을 샀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집을 나가고 그는 심장병이 걸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심방병에서 치료되었습니다. 그는 신학을 하고 13년동안 부랑아와 노숙자와 함께 하며 목회하며 노숙자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일억오천을 가져다주고 매달 3백만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박목사는 돈이 생기니까 가장 먼저 생기는 현상이 바로 기도시간이 줄어드는 것이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박목사는 남은 돈을 찾아서 헌금하신 분에게 가져다 주었다고합니다. 물론 나중에 다시 교회를 지을 때 그것을 찾아서 썼습니다. 이렇게 돈이 무서운 것이고 세상적인 복 받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때 받은 복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은 후에 축복인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하였을 때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왕이 된 후에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지어드리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다윗의 씨에서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병들었을 때라도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로 나가면 복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주십니다. 그러나 축복의 때에 예수님을 찾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 더 큰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GDP 3만불 시대에 더욱 하나님께 나가서 주님을 찾아 진정한 복을 누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3) 결론 지금이 중요하다.
오늘 말씀에 보면 지금이라는 말이 네 번 나옵니다. 21절에 지금 주린 자, 지금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5절에는 지금 배부른 자, 지금 웃는 자가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현재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었다고 해도 사울 왕이나 가롯 유다 같이 지금 하나님을 떠나면 아무 쓸모 없습니다. 과거 아무리 죄를 지었다고 해도 세리 마태나 사도 바울처럼 지금 하나님을 잘 믿으면 성자가 됩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있습니까? 지금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기를 원합니다. 지금 굶주린 심정으로 말씀을 사모하고 성령님을 갈망하기 원합니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우리가 가진 것을 주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나누어주기를 원합니다. 금식 기도하며 배고픔을 맛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모두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한마디: 지금 예수님을 찾고 하나님을 소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