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 김이강
어디로 가고 싶다고 했었죠?
네?
어딘가로 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요 지난번에?
제가 그랬나요?
스칸디나비아반도 근처였던 것 같은데요
아, 핀란드요?
아, 핀란드
맛도 없는 싸구려 와인을 몇 곱절의 값을 내고 마시던 저녁이었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놀이터에 앉아서 맥주를 마셨을 거였다
핀란드에는 왜 가고 싶어요?
그냥요, 겨울만 있잖아요
추운 게 좋아요?
예전에는요
하필 휴가 나온 날, 날씨 참
아, 내 인생엔 저주 같은 게 걸려 있는 게 아닐까
최병사가 앉은 창가 자리로 계속해서 비가 들이치고 있었고
나는 와인 잔을 퉁겨보며 핀란드가 아닌 지중해의 이탈리아가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국땅을 그리워하는 것보다는 고국을 그리워하는 편이 더 행복할 거라 생각하듯이
난 사실은 이제 겨울도 핀란드도 무엇도 다 그저 그래 모든 것이 다 그저 그런 것 같아
그래? 겨울도?
응. 겨울이 너무 추워졌어 여긴 남쪽이 아니잖아 서울 겨울은 너무 추워
아, 정말 날씨 짜증 나 전엔 비 오는 거 정말 좋아했는데, 홍대 이 거리로 돌아오면 너무 가슴이 설레고 벅찰 것 같았는데, 옛날처럼 거닐어보고 싶었는데, 모든 게 다 한때인 것 같아
그날 나는 결국 상심해하는 최병사와 핀란드를 기억하는 그와
또 누구인가 말수가 적었던 한둘을 빗속에 두고, 홀로 귀가했다
춥고 허탈했다
다시 오지 않을 계절의 다시 입지 않을 옷처럼
핀란드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