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가미카제
오후여담 또다른 ‘아리랑’
탁경현(卓庚鉉). 일본식 이름 미쓰야마 후미히로(光山文博). 1945년 5월11일 일본 공군
특별조종견습사관 1기로 오키나와 근교로 접근하고 있던 미군함에 돌입, 사망. 당시 24세로 계급은 소위. 쉽게 표현해 그는 가미카제 특공대
소속의 조선인이었다.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원들 가운데 일부는 일본
규슈 남부의 가고시마 시내에 있는 군지정 임시 숙소인 도미야(富屋)여관에 머물면서 출격 명령을 기다려야 했다. 이 여관 여주인의 회고에 따르면
탁경현은 출격 전날 밤 동료 대원들 앞에서 자신의 마지막 노래 ‘아리랑’을 불렀다. 도미야 여관 복도 벽에는 지금도 군복을 입은 채 입을 꽉
다물고 있는 탁경현과 여주인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가고시마 근처에 있는 지란(知覽)평화기념관은 이들 오키나와 앞바다에서 산화한 특공대원들을 기리는
곳인데, 이 기념관 한 구석에도 탁경현의 공책에서 발견된 ‘난세’라는 제목의 짧은 시 구절이 전시돼 있다.
‘젖 매달리던 어머니 근황이 마음에 걸리니, 3월의 하늘이라 봄안개가
끼었는가.’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할 출격을 기다리며 떠오르는
어머니 생각에 고인 눈물. 갑자기 봄안개가 자욱히 낀 것처럼 시야가 흐려옴을 절절히 전해준다.
그가 왜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知韓派)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 씨의 꿈에 나타났을까. 아무런 인연도
없이 1991년 어느 날 갑자기 꿈 속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구로다는 이후 온갖 관련 자료들을 뒤졌다고 한다. 그러다
1995년 마침내 탁경현의 얼굴 사진을 통해 그가 꿈속의 청년이라는 확신이 선 구로다는 탁경현의 고향인 경남 사천에 추모비를 세우기로
했다.(동아일보 9월27일)
“나는 비행기를 조종한다. 하지만
억울한 것이 있다면 조선인이 일본인의 이름으로 죽는다는 것이다”라는 독백을 남긴 꿈 속의 청년 탁경현의 유한(遺恨)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란 기념관에는 가미카제 특공대원 1026명의 젊은이가
잠들어 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한국인 출신은 탁경현을 포함해 모두 11명이다. 18세 소년비행병 박동훈군도 있다. 남의 나라에서 남의
이름으로 산화한 이들의 영령을 추모해마지 않는다.
[이신우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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