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매일 어떤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한 것에서 한 생명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혹한 선택까지. 선택은 때론 대상에게 축복이 되기도 하지만 병아리 감별사에게 선택된 수컷에게는 목숨이 달린 심각한 문제다.
지금부터 이렇게 운명의 결정 속에 선택받지 못한 불행한 다이아몬드에 대한 이야기해 볼까한다
녹턴은 보석감정사다. 보석을 가품으로 부터 구별하고, 그 정확한 가치를 평가하는 일을 한다. 아침 일찍 출근해 창문을 활짝 연다. 며칠 모임도 나가지 않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던 것은 오늘 다이아몬드를 감정하기 때문이다. 창문사이로 가을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이런 자연광은 다이아몬드를 감정하기 가장 좋은 빛이다. 감정을 시작하기 전 주변을 정리한다. 특히 작업 테이블은 공을 들여 닦는다. 청결은 다이아몬드 분실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감정 장비를 점검한다.
마이크로스코프(현미경)를 10배율로 맞추고, 폴로라이스코프(형광기)불빛을 확인한다. 이어 스펙트럼(분광기)의 모듈을 조절 하고 루페(휴대용 현미경)홀더의 느슨한 나사를 조인다. 마지막으로 마스터스톤(컬러체크용 다이아몬드 세트)을 순서대로 칼라박스에 놓는다.
시계가 10시를 가르친다.
녹턴, 손가락의 깍지를 끼고 쭈욱 팔을 뻗는다. 탁자에 린넨천을 펼치고, 주름을 쓸어 평평하게 한 후 심호흡을 합니다.
자 시작해볼까, 녹턴은 파슬(봉지)을 열어 다이아몬드를 접시에 차르르 쏟는다. 햇볕이 쏟아지는 바다처럼 다이아몬드가 접시에서 찰랑거린다. 한손으로 트위저(다이아 집게)를 잡아 손등 위에서 뱅그르르 돌린다. 학창시절 펜을 돌리는 것 같은 이 동작은 트위저에서 튕겨져 다이아몬드를 잃어버린 후부터 생긴 일종의 액막이다.
잃어버리지 않고 무사히 마치게 하소서
첫 알을 집어 중량계 위에 올린다. 숫자들이 쇼팽의 피아노 전주곡처럼 액정 안에서 춤을 추다 멈춘다.
‘0.53ct 약간은 비만이군. 중량 초과는 아니지만 다이어트가 필요해’
칼라를 측정할 차례, 알을 칼라박스로 옮긴다. 다이아몬드의 칼라는 검사알을 마스터스톤과 비교해 결정한다. 녹턴은 D F G H I J K M의 총 7개의 0.3~0.4캐럿의 천연 다이아몬드의 마스터 스톤을 갖도 있다. 무려 3개월치 월급을 모아 산 이것은 감정사인 그에게는 큰 자부심을 주는 물건이다. 조사대상이 되는 알을 G와 H스톤 사이에 놓는다. H스톤 보다는 약간 하얗고, G와 비교해 비슷하거나 약간 노랗다고 판단 한다
펜을 들어 감정지에 G라고 쓴다.
다이아몬드의 칼라는 무색에 가까울수록 비싸다. 최고의 무색은 D컬러. 거기에 약간의 노란빛이 가미 되면 E, F, G...의 알파벳 순서로 내려 간다. 칼라는 바로 4C 감정 중 핵심항목이다. 4C 즉 Color(칼라), Carat(중량), Clarity(내포물), Cut(컷팅)은 다이아몬드의 감정기준이다. 바로 이 기준을 처음 만든것은 바로 GIA(Gemological Institute Of America, 미국보석학회)이다. 1940년대 설립된 이 학교의 4C감정은 현재 전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표준 감정체계가 되었다. 녹턴은 바로 이곳 GIA학교에서 보석공부를 했고, 감정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알은 형광기 아래에 놓는다. 스위치를 누르니 파란 불빛이 비친다. 형광 아래에서 알은 약간 푸른빛을 띤다. 이 미세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Faint(약한 형광)라고 쓴다
형광은 나이트클럽에서 흔드는 파란 형광봉이나 도깨비불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형광은 다이아몬드의 identity(존재론적 특징)이며, strong(아주 강한 형광)이면 자연광 아래서도 파란빛을 띠어 불투명하며 투명도에 영향을 주어 가치하락의 요인이 된다.
형광검사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현미경을 통해 다이아몬드의 내부를 살핀다. 트위저로 잡은 알을 마이크로스코프(보석현미경)에 중앙에 놓는다. 4C 중 칼라와 더불어 가장 핵심이 되는 Clarity 즉 내포물 검사다. 보석용 현미경은 항상 10배율로 검사한다. 60배 100 배로 볼수는 있지만 너무 확대하면 오히려 타당성이 결여되기 때문에 육안보다 약간 높은 배율을 기준으로 삼는다. 등급은 내포물의 다소 밀접성과 치명적 feather(얼, 쪼개짐)등 감정해 매긴다. 녹턴은 조절기를 돌려 표면에서 안쪽 깊숙한 곳까지 꼼꼼하게 조사한다. 중앙 좌측의 표면에 실금 같은 Feather(쪼개진 금이나 얼)이 보인다. 알 중앙으로 쌀알 같은 작은 다이아몬드 알갱이 서너 개를 발견한다. 좀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제법 큼직한 다이아몬드 알갱이가 보인다. 다행히 무색에 투명하다. 만약 검은색이었다면 미관상 좋지 않아 등급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현미경을 통해 검사한 최종 결론은 많은 내포물과 안정성에 영향을 주는 feather가 있어
SI2 이라고 적는다.
다음은 전체적인 사이즈를 측정한다, 전자 캘리퍼스로 다이아의 원주와 높이를 측정해 기록한다. 측면의 각도를 재고 전체 알 대비 테이블(윗쪽 가장 넓은 컷팅면)의 비율을 측정한다. 이어 다이아몬드의 Girdle(허리)의 두께를 살핀다. 허리는 매우 앏음부터 매우 뚜꺼움 까지 여러단계로 등급이 매겨진다. 알을 반지에 세팅할 때 허리가 얇으면 깨질 염려가 있고, 너무 두꺼우면 Fish eye효과 즉 동태눈 처럼 주변이 검게 보여 미관상 매우 좋지 않다.
다음은 다이아몬드의 컷팅을 살필 차례, 컷팅은 58개면이 매끄럽게 연마되었는지, 좌우가 대칭을 이루는지, 각 부분들의 비율이 적절한지에 따라 전체적으로 판단한다.
사람은 흔히 균형 잡힌 몸매, 뚜렷한 이목구비, 좋은 피부를 갖고 있으면 아름답다고 한다. 다이아몬드도 잘 깎여져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면 뛰어난 빛 반사를 보여준다.
보석이 뛰어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은 바로 빛이 만드는 아름다움이며, 좋은 빛은 바로 좋은 컷팅에서 나온다. 이러한 컷팅은 미관상 관련된 주요한 감정지표이며, 가격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검사하는 알은 깔끔하게 잘 연마되어 있다. 또한 각 부분들이 적절한 비율로 잘 구성되어 있어 검사지에 최고의 등급인
Excellent 라고 쓴다.
중량 0.53ct / 칼라 G /내용 SI2/
원주와 높이 4.98- 5.01mm, 3.21mm
테이블비율 57%/ 컷팅 Excellent
거들두께 Sl.Thin to Medium/
형광 Faint / 내포물 종류 Xtl, Pp, Ftr/
감정표에는 암수표같은 숫자들로 모두 채워지면 한개의 알은 마무리가 된다. 한 알을 감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5분 남짓, 하지만 항목별로는 수많은 등급이 나뉘게 되니 결과는 수만가지 조합이 가능하며 매우 복잡하다. 이런 이유로 감정사에게는 엄청난 집중력과 정확한 판단력이 요구된다.
시계가 1시를 가르킨다. 감정이 끝난 알들이 접시에 가득하다. 이제 마지막 알만 보면 모든 감정은 끝난다. 집중! 혼자 말을 하고 트위저로 알을 집는다. 수 많은 알들을 하나 하나 정리하다보면 비로소 만나는 마지막 알. 그 마지막 알을 마무리 할 때 느끼는 성취감 때문에 녹턴은 감정하는 일을 정말 좋아한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알을 살핀다.
트위저로 잡고 여기저기 돌려가며 관찰한다. 표면은 크게 이상한 점이 없다. 조리개를 돌려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 본다. 중앙 아래쪽으로 파란색 알갱이가 보인다. 주변으로는 노란색 먼지 같은 알갱이들도 모여 있다. 모양이 마치 토성 주위를 둘러싼 긴 고리처럼 타원을 이룬다. 잠시 머리를 들어 현미경에서 눈을 뗀다. 숨을 고르고 다시 현미경을 바라본다.
먼저 파란색 알갱이를 다시 살펴본다. 그간 경험했던 일반적인 다이아몬드 내포물 과는 전혀 다른 색깔과 형태를 띠고 있었다. 더욱 주변을 둘러 싼 고리는 마치 잭슨플록의 액션페인팅처럼 거칠고 불규칙적인이다. 마치 노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녹턴이 지금까지 감정한 다이아몬드는 소도시의 사람 수만큼 많았지만 이런 내면을 갖은 다이아몬드는 처음이다.
너 대체 누구니? 알에게 말을 걸어본다. 내포물의 빈도수나 안정성을 보면 보석용으로 쓰는 등급을 매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표에 등급을 표기하려다 멈추고 다시 알을 살펴본다. 그래도 무언가 이상하단 말이야 녹턴은 머리를 흔든다. 모든 것이 미궁에 빠진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파란 알갱이의 정체는 무엇이지?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혹시 다이아몬드가 아닌 다른 광물일까?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우주에서 온 미지의 광물일수도 녹턴은 심각한 혼란에 빠진다. 볼수록 더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 녹턴은 깊은 수렁에서 헤어날 수 없는 묘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동료들이 점심을 마치고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녹턴은 문제의 알을 앞에 놓고 많은 생각에 잠긴다. 손바닥으로 식은땀이 흐르고 순간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동안 결정했던 감정 작업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자신이 내렸던 많은 결정들이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이 알처럼 사실 모든 것들은 애초에 미지의 존재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환청이라고 생각했던 소리는 점점 또렷하고 명확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난 1600km의 뜨거운 용암 속에서 무려 200만년을 기다렸어. 반지 위에 앉아 사랑하는 사람들의 징표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참고 견뎠던 거야. 하지만 너의 선택으로 난 모든 것을 잃었어. 이 엄청난 운명을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순 없어. 제발 나를 버리지 마”
녹턴은 다이아몬드를 가만히 손으로 쥐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