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우리나라의 자랑 남한산성
(남한산성 제4편)
루수/김상화
북문을 살펴보고 마지막 서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새삼스럽게 숲의 고마움을 생각하게 되었다. 남한산성은 어느 산보다 산림이 매우 잘 보존되어온 아름다운 산이다. 잘 가꾸어 놓은
남한산성의 숲은 맑은 공기를 토해내고 피톤치드가 흘러나온다. 또 숲은 새들이 모여들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미로운 노래를 들러준다. 봄
여름엔 야생화가 잠시 쉬어가라고 손짓하며 방끗 웃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야생화의 신비로운 자태를 보노라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또한
꽃들은 향기를 뿜어내 벌과 나비를 불러드린다. 우리는 그들이 부지런히 꿀을 따는 광경도 볼수 있다. 또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기도 한다. 가을에는 나뭇잎 물들여 오색 단풍을 감상하게 하고 겨울에는 설경까지 볼 수 있는 천하의 명산이다. 사람들은 맑은 공기를
마시고 새소리 들으며 야생화의 아름답게 웃는 모습과 단풍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봄가을 할 것 없이 사계절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명소가 되었다.
우리는 이 귀중한 숲을 잘 가꾸고 지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
드디어 마지막 서문까지 왔다. 서문(西門)은
우익문(右翼門)이라고도 한다. 서문은 남한산성 4개의 문중 규모가 가장 작다. 산성을 처음 쌓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조 3년에
다른 문과 같이 개축하며 우익문(右翼門)이라 칭하였다. 행궁을 중심으로 국왕은 남쪽을 바라보며 국정을 살피니, 서문이 행군 우측에 있어
우익문이라 하였다. 서문은 인조 15년(1637년) 1월 30일 왕이 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항복하기 위해 남한산성을 나간 바로 그 문이다.
남한산성의 서쪽 사면은 경사가 급해 물자수송이 어렵지만, 광나루나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남한산성은 수백 년간 산성을 읍성으로 삼은 우리네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고대 이래 중세까지 동양의 성곽 축성 발달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북한산성과 더불어 서울을 지키는 4대 요새 중 하나였던 남한산성은 청량산, 검단산, 망덕산 등이 있다. 서울의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있는 남한산성은 지형적으로 평균 고도 해발 480m 이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방어력을 극대화한 곳이다.
둘레가 12km에 이르며 산 위에 도시가 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분지이기 때문에 백성과 함께 왕조가 대피할 수 있는 조선 왕실의
보장처(保障處, 전쟁 시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곳)였다. 또한 남한산성은 성곽을 쌓는 축성술 면에서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계속된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의 한국(조선), 일본(아즈치 모모야마시대), 중국(명나라, 청나라) 사이에 광범위한 상호 교류가 이루어진 결과다. 이 기간에
유럽의 영향을 받은 화포의 도입이 이루어졌고, 이런 무기 체계의 발달은 남한산성의 성곽 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남한산성을 잘
빚어 내린 류병구 시인님의 시가 하도 아름다워 올려본다.
남한산성
류병구
섣달 한겨울이 소리내어
운다.
정적을 가르는 산 울음 소리
믿을 데라곤 오직 하늘뿐인 고독한 성에서
차가운 눈비에 어의를 적시며
치욕을 삼키고
피눈물 쏟아낸
왕의 통곡이었다.
"내 한 몸이야 죽어도 애석치 않지만
만백성이 하늘에 무슨 죄가
있습니까
조금이라도 날이 개게 하여
우리 백성을 살려주소서..."
이제는 아주 옛날이 되어버린
우익문의 처절한
기억
1637년 1월 30일 그날,
왕은 이 문을 통해 산성을 나가
송파 삼전도로 향했다.
신하들이 서문 안에
서서
가슴 치며 통곡했다.
먹구름이 흘러간 삼백여든 몇 해
복받치는 비문으로 울컥일 때마다
찬 바닥에 엎드렸던
역사가
불현듯이 불끈 일어서는 남한산성
그 통한의 진문(陳門)에는
울긋불긋 등산객들로 미어진다.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는
동안
아픈 유적 틈새로 봄이 가고, 가을이 온다.
그리고 다시 섣달 한겨울이 온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남한산성
성곽길을 따라 5시간 동안 걷는 등산은 수도권 최고의 산행코스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렇게 성곽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작부터 끝까지 성곽
주변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적 의미도 대단하다. 또 하늘이 내려준 그 아름다운 절경을 보노라면 어디에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
쏟아진다. 느껴보지 못한 경치를 음미하며 걷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린다. 누구일까 하고 보니 산울림 리더이신 신인희 님이시다. 우리가 궁금해서
전화한 것 같다. 네 하니까, 여보세요 하며 반가운 목소리로 어디까지 왔느냐고 댓 뜸 묻는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때야
안심을 하는 듯 빨리 오셔서 회식에 참석하라는 상쾌한 목소리다. 이렇게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한 아름 안고 걷는
기분이다.
남한산성의 4대문을 드디어 모두 돌았다. 돌고 나니 감격스럽다. 한양의 4대문처럼 남한산성의 4개 문은
좌익문(左翼門:동문), 우익문(右翼門:서문), 지화문(至和門:남문), 전승문(全勝門:북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치 한양 도성의 문
이름들과 비슷하다. 필자가 생각해도 오늘 남한산성 성곽을 한 바퀴 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였다. 남한산성은 중국의 만리장성과는 비교할 순
없지만, 필자는 오늘부터 한국의 말리장성이라 부르고 싶다. 4회에 걸쳐 글을 썼지만, 많이 부족한 감이 든다. 시간이 되면 아직 가서 보지 못한
남한산성 안에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을 쓸 것이다. 그곳엔 임금님께서 거처하신 행궁이 있다. 태고의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남한산성이 서울에
있다는 것은 서울 시민의 크나큰 축복이다.
2018년 12월 23일
─━☆그대가 머문자리 클릭☆─━??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사랑초님 감사합니다
다녀가심을 환영합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행복한 꿈 꾸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