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 시대 이후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나라의 시황제는 강력한 중앙집권 통치를 확립하기
위해 여러 사상 중 엄격한 법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가사상에 기반을 두고 급격한 개혁을 추진하며
국가의 기반을 다져 나가지만
너무나 엄격하고 가혹한 법가사상에 치우친 통치로
농민반란과 내부 분열로 2대를 넘지 못하고
15년 만에 진나라는 멸망하고 맙니다.
진승,오광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며
일으킨 대표적인 농민반란이 도화선이 되는데
나중에 고려시대 최충헌의 노비였던 ‘만적’이
이 구절을 써먹으며 반란을 도모하지만 내부고발로
정작 거사는 일으키지도 못하고 실패하고 맙니다.
중국의 영어표기인 ‘China’ 는 진나라의 영어식
발음으로 ‘지나’가 차이나가 되어
지금까지 불리우고 비록 이른 멸망이지만
시황제가 후대에 끼친 영향력은 막대합니다.
진왕조 멸망이후 혼란의 시기를 거쳐 장기판의
초한전쟁으로 한고조 유방이 승리를 거두면서
한나라가 등장합니다.
전한과 후한을 통틀어 400년 이상 통일 왕조를
이어나가는데 이는 중국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랜기간 통일왕조를 이어간 나라이기도
합니다.
한나라는 ‘중국’ 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이고 중국을 대표하는 나라이며
중국을 하나의 나라로 만드는 중화사상의
근간이 되는 나라입니다.
중국인을 통칭해 ‘한족’ 이라하고
‘한자’ 도 한나라 ‘漢‘을 쓰며
촉한의 유비가 위나라 조조에 비해 비교도 안되는
국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유비는 영웅이며
조조는 간웅으로 우리의 뇌리에 박혀 있습니다.
친구와 우스개 소리로 제갈량이 조조에게 갔으면
조조의 인재들에 묻혀 제대로 대접도 못 받았을
거라며 농담한적도 있었는데
유비가 한황족의 후예이며 한나라의 계승을
표방한 이유하나로 대접받는 분이 될 만큼
중국사에서 한나라의 위치는 대단합니다.
한나라 시기에 어떤일이 일어났는지
대략 살펴보겠습니다^^
중국의 4대 발명품인 채륜의 ‘종이’가 후한때
발명이 되었고 ‘나침반’ 도 이 시기에 발명 되었다고
알려집니다.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시기도 한나라 때이며,
위만조선이 한나라의 침략으로 멸망한 시기도
전한 시기입니다.
(한나라를 상대로 1년을 버틴 고조선도 당시
철기의 유입과 중계무역으로 한나라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강한나라 였습니다^^)
시황제의 분서갱유로 소실된 유교경전을 다시 모으고
정리하며 유가사상을 발전시킨 ‘훈고학’이
발달하였고,
진나라때 쓰던 한자체인 ‘전서(소전)’의 자획을
간략화 하고 일상에서 쓰기 편리한 서체인
‘예서’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후의 서체인 ‘행서’나 ‘초서’가 다 한나라 때 나온
서체입니다.
‘漢字’ 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 집니다.
후한의 학자 ‘허신’이 한자를 연구하려고 자료를
모아보니 공통의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름하여 ‘부수 분류법’ 인데
이때 허신이 분류한 부수가 총 ‘540’여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는 부수는 총 ‘214’자)
중복되는 부수가 많기는 하지만 당시로서는
한자연구의 집대성 이라 할 만 합니다.
이렇게 허신의 한자연구로 편찬된 책이
그 유명한 ‘설문해자’입니다.
한자 사전의 기원이 되는 책이지요^^
이후 청나라때 설문해자의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는데 강희제 때 편찬된 ‘강희자전’ 은
설문해자 이후의 역대 자전을 모두 종합해 편찬한
가히 역대급 이라 할 만한 자전이 편찬되는
본보기 자전입니다.
어떤 것 에 대한 처음의 시도는 그 결과를 떠나서
후대에 이렇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 옛날 한자의 문을 처음 연 시기부터
겹겹이 어어져 내려오는 기록과 연구와 노력이
우리에게 끼친 은혜가 매우 큽니다~
오죽하면 ‘한자 문화권’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니까요^^
여름이 다시 오는가 했는데
지리산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가을 느낌이 쪼끔이라도
났으면 좋겠습니다.
아위자님^^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다음 한자이야기는 ‘천자문 이야기’를
예고 하면서 오늘 한나라 이야기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