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流言蜚語(유언비어)
[字解]
流(흐를 유)
言(말씀 언)
蜚(날 비)
語(말씀 어)
[出典]
사기(史記)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
[意義]
아무 근거도 없이 널리 퍼뜨려지는 무책임한 소문을 이르는 말이다.
流言(유언)이라는 말은 예기(禮記) 권41 유행(儒行)편의 "久不相見, 聞流言不信(구불상견, 문류언불신:오랫동안 서로 만나지 못해도 떠돌아다니는 근거 없는 말은 믿지 않는다)"라는 대목에서 유래하였다.
[解義]
정치권을 둘러싼 온갖 풍문과 의혹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그만큼 사회가 불안정하고 言路(언로)가 제대로 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정치적 음모와 사회적 불안정이 流言蜚語(유언비어)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流言蜚語라던 말들이 결국 사실로 밝혀지곤 했던 데 있다.
流言蜚語는 종종 誣告(무고)와 공격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그것이 단순한 의혹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대개는 그럴 듯한 정황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耳食者(이식자:남의 말을 듣고 줏대없이 그냥 그대로 믿는 사람)와 好事家(호사가)의 입을 거치다 보면 풍문이 바람처럼 금새 천리를 가게 되고,없던 호랑이도 시장에 생겨나게 된다.
그러기에 衆口鑠金[중구삭금:뭇사람의 말은 쇠라도 녹임(鑠:녹일 삭)]이요,三人成虎(삼인성호:근거없는 말도 많은 사람이 말하면 저절로 믿게 된다)라 했던 것이다.
전한 경제(景帝)때의 일이다.
두태후(竇太后)의 조카로 대장군인 두영(竇瓔)은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위기후(魏其侯)에 봉해 졌다.
대신들도 존경하고 다수의 인물이 그에게 사숙(私淑)했다.
그 무렵 황후의 아우 전분(田昐)은 신분이 낮은 출신으로 당시는 하급 시종이었는데, 두영의 권세를 보고 그에게 빌붙고자 술을 선물하곤 했다.
뒤에 전분은 누님인 황후의 덕택으로 차츰 황제의 마음에 들게 되어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었다.
기원전 141년 경제가 병으로 죽고 무제가 즉위하자 그는 무안후(武安侯)에 봉해졌다.
더구나 기원전 135년 두태후가 세상을 뜨자 두영은 차츰 후원을 잃어 위신이 저하했으나, 전분은 승상에 취임해 권세가 나날이 높아졌다.
전에 두영의 집에 모였던 사람들은 이번엔 전분의 저택으로 가기 시작했는데, 장군 관부(灌夫)만은 두영을 저버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항시 술을 같이 하고 서로 흉금을 털어 놓았다.
기원전 133년 봄에 전분과 연(燕)나라 왕 유가(劉嘉)의 딸과 결혼했다.
두영은 내키지 않았지만 관부와 함께 전분의 저택으로 갔다.
전분의 저택은 왕후 귀족이 모여 대단히 떠들썩했다.
술이 거나해지고, 득의 만면의 전분이 손님에게 술잔을 올리자 대신들도 부복하고 답례했다.
이윽고 두영이 술잔을 올렸는데,몇몇 친구외는 모른 체하고 답례하려 하지않았다.
두영을 업신여기는 이 행위를 본 관부는 노여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관부가 일어나서 전분 앞에 술잔을 바쳤다.
전분은 곁눈으로 "나는 이제 마실 수 없소." 하고 거절했다.
관부가 냉소지으며 다시 권했다. "그러지 마시고 부디." 그러나 전분은 듣지 않았다.
관부는 다음에 임여후(臨汝侯) 관현(灌賢)에게 술잔을 바쳤는데, 이도 옆사람과 이야기만 하고 받지 않았다.
참을 수 없게 된 관부는 마침내 큰소리로 관현의 무례를 꾸짖었다.
흥취는 깨지고 손님들은 모두 허둥지둥 일어나서 돌아가 버렷다.
두영도 관부를 달래어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전분은 호위병에게 관부를 체포케 했다.
집에 돌아온 두영은 목숨을 걸고 관부를 구하려고 결심했지만, 처자가 반대했다.
"관부장군은 왕태후에게 무례를 저지른 겁니다."
두영은 이 말을 듣지않고 무제에게 상서했다.
"관부의 실례는 취중에 한 일인데 승상은 사적인 감정으로 관부를 체포했습니다."
무제는 이튿날 조정에서 이를 심리하기로 했다.
이튿날 심리때, 두영과 전분은 자기 주장을 양보하지 않았고, 대신들의 의견도 둘로 갈렸다.
그리고 의사를 분명히 하지 않는 자도 많아 황제는 몹시 화를 냈다.
이 일이 왕태후의 귀에 들어가자 태후는 내전으로 돌아온 황제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모두가 우리 자제(姉弟)를 모욕하고 있소. 내가 죽어도 그들을 그냥 둘 작정이오?"
모친이 노하는 것을 본 무제는 일이 귀찮게 되었다고 보아 두영을 탄핵시키고, 또 관부를 변호한 것은 주군을 기만한 죄가 된다 하여 두영을 체포,투옥시켰다.
한편 관부 일족은 죽을죄라 결정했다.
일이 급하다고 본 두영은 조카에게 "위급한 경우에 황제를 알현할 권리를 경제로부터 허락받고 있으니 배알을 청하라." 며 상서케 했다.
이 상서를 받은 조정에서는 그 유조(遺詔)를 찾았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법무대신은 왕태후의 의향에 따라 두영을 유조위조죄(遺詔僞造罪)에 의해 사형하기로 했다.
기원전 132년10월,관부 일족의 처형을 들은 두영은 비분한 나머지 식음을 끊고 자살하려고 했으나 이듬해에 은사가 있다고 일러주는 사람의 말을 믿고 그만두었다.
그 무렵 장안(長安)에 위기후가 천자를 비난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더니 천자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乃有蜚語爲惡言聞上)."
이에 무제는 격노하여 두영을 사형에 처하고 말았다.
後漢(후한) 때의 일이다.
馬援(마원)이라는 장수가 交趾(교지:지금의 베트남 북부지역)에 태수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율무를 옮겨심기 위해 수레에 싣고 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馬援이 남방의 귀한 明珠(명주)를 싣고 왔다는 헛소문을 퍼뜨리는 바람에 그는 영문도 모르고 피해를 보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薏苡之讒[薏(율무 억) 苡(질경이 이) 讒(참소할 참)]의 고사이다.
流布(유포)라는 말도 있거니와,이처럼 무엇을 퍼뜨리는 것이 流이다.
이를테면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 의도적으로 퍼뜨린 말이 流言(유언)인 것이다.
流聞(유문) 流說(유설) 또는 流語(유어)라고도 한다.
단,流配(유배)의 流는 '귀양 보내다'는 뜻이다.
言은 손잡이가 달려있는 날붙이를 상형한 辛과 맹세의 뜻을 담은 문서를 뜻하는 口의 합성자이다.
言은 말과 관련된 갖가지 글자를 이루는데,言에 그러한 뜻이 있는 것은 말을 함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信義(신의)이며 이를 어기면 죄를 받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蜚의 非는 날개를 펴서 나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즉,蜚는 그렇게 날개를 펴서 나는 벌레 또는 그렇게 나는 행위 그 자체를 나타내는 글자라고 할 수 있다.그런 점에서 蜚는 飛와도 통하며 蜚語를 飛語로 쓰기도 한다.
語는 言에 '번갈다'는 뜻의 互(호)와 통하는 吾가 붙어서 이뤄진 글자이다.
따라서 言이 말하는 것을 통칭하는 것이라면,語는 쌍방 간의 대화라는 측면이 강하다.
의혹을 덮어두면 流言蜚語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리고는 강물처럼 흐르고 날개 달린 새처럼 날아 천하를 휩쓸며 민심을 어지럽힌다.
그러고 보면 각종 의혹을 얼버무리는 행위야말로 국가의 안위를 뒤흔드는 국사범이라 할 만하다.
[English]
유언비어(流言蜚語) a groundless[wild] rumor:a false[baseless] report.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 a rumormonger
유언비어를 퍼뜨리다 spread a (sensational) rumor
여러 가지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다 All sorts of rumors are in the air[noised ab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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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언비어에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