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만의 값진 ‘은빛 찌르기’
펜싱 女에페 대표팀, 단체전서 銀
코로나-中 넘었지만 결승서 석패
태권도 이다빈 銀-인교돈 銅 추가
한국 펜싱 여자 에페 대표팀 최인정 이혜인 송세라 강영미(왼쪽부터)가 도쿄 올림픽 단체전 은메달을 딴 뒤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패색이 짙었지만 마지막 주자 최인정(31)은 포기하지 않았다. 밖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3명의 동료 선수들은 “할 수 있다”며 응원을 보냈다. 10초 사이에 2점을 보탠 최인정은 종료 23초 전 30-31까지 따라붙었다. 하지만 승부를 뒤집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도 은메달을 따낸 4명의 선수들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한국 펜싱 여자 에페 대표팀이 9년 만에 올림픽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인정, 강영미(36), 송세라(28), 이혜인(26)으로 구성된 여자 에페 대표팀(세계 랭킹 4위)은 27일 일본 지바시 마쿠하리 메세B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에페 단체전 결승에서 에스토니아(세계 랭킹 7위)에 32-36으로 패했다. 이번 올림픽 펜싱 여자 대표팀의 첫 메달을 신고하며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9년 만에 다시 이 종목 은메달을 수집했다.
한국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세계 1위 중국을 꺾고 결승에 오르며 첫 금메달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평균 신장이 7cm 가까이 큰 에스토니아(174cm)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전신을 모두 공격할 수 있는 에페는 신체조건이 유리한 유럽 선수들의 전유물로 불린다.
한국은 8라운드까지 에스토니아와 26-26 동점을 기록한 뒤 최종 라운드에서 막판까지 숨 막히는 접전을 펼쳤다. 여자 에페 대표팀은 지난해 3월 헝가리에서 열린 대회를 마친 뒤 3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 국가대표 첫 감염으로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지만 도쿄 올림픽 시상대에 올라 활짝 웃었다.
한국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뒤 처음으로 ‘노 골드’에 그쳤다. 이날 이다빈(25)이 여자 67kg 초과급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혈액암을 극복하고 돌아온 인교돈(29)이 남자 80kg 초과급에서 동메달을 추가하면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지바=김정훈 기자, 지바=김배중 기자
“괜찮아, 잘했어” 코로나 이겨낸 4人의 女검객
펜싱 에페 女단체, 세계 1위 中 꺾고 결승行
에스토니아에 아쉽게 져 銀
한국 여자 펜싱의 강영미가 27일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세B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펜싱 여자 에페 단체전 에스토니아와의 결승에서 득점에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다.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서로 믿고 의지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뭉쳐서 더 강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이겨낸 그들이었다.
한국 펜싱 여자 에페 대표팀 4명은 앞서 열린 도쿄 올림픽 개인전에서 단 1명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시련 끝에 출전한 올림픽 무대였기에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 보였다.
27일 열린 단체전에서는 달랐다. 세계랭킹 4위 한국은 팀으로 뭉치자 ‘역대급’ 전력이 나오며 8강에서 세계랭킹 5위 미국을 38-33으로 꺾은 뒤 준결승에서 세계 최강 중국을 38-29로 완파했다. 결승전에서 세계랭킹 7위 에스토니아에 아쉽게 패했지만 이번 대회 한국 여자 펜싱 첫 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에페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단체전 은메달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위부터 최인정, 송세라, 이혜인
여자 에페 대표팀은 지난해 3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최인정(31), 강영미(36), 정효정(36), 이혜인(26) 에페 대표팀 4명 중 3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국제펜싱연맹(FIE) 그랑프리에 참가했다가 감염된 것으로 보였다. 도쿄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 해외 원정을 갔다가 날벼락을 맞았지만 오히려 ‘국가대표 1호 확진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정효정은 그 충격에 대표팀을 관두기도 했다. 당시 확진자 중 2명이 이번에 은메달을 합작한 강영미와 이혜인이다. 이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 위로했다. 강영미는 “당시 마음이 많이 힘들었지만 완치 뒤 마음을 다잡고 훈련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맏언니 강영미의 리더십도 빛났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노 메달’의 아쉬움을 맛봤던 강영미는 도쿄 올림픽을 위해 은퇴와 출산도 미루고 대회에 출전했다. 강영미는 “올해 결혼 5년 차인데 아이 갖는 걸 미루면서까지 죽기 살기로 훈련했다”고 말했다. 강영미는 동료들과 월계관 반지도 맞추며 올림픽 의지를 북돋았다.
결승과 준결승 마지막 선수로 나섰던 최인정은 ‘믿을맨’ 그 자체였다. 2012 런던 올림픽 은메달 멤버인 최인정은 결승에서 26-26으로 맞선 마지막 9라운드에 나섰다. 부담감이 컸을 테지만 힘을 짜내 자신보다 13cm나 큰 186cm의 에스토니아 선수와 당당히 맞섰다. 중국과의 준결승에서도 마지막으로 나서 결승 진출을 이끌며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최인정은 “2012 런던과 2016 리우 때도 마지막에 나섰다. 내가 나서 은메달을 따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 기분을 다시 느끼게 해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동료들은 비록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내진 못했지만 피스트 위에서 울먹이는 최인정을 다독이고 안아주었다.
후보 선수였지만 결승 7라운드에 나와 분전한 이혜인과 고비 때마다 매서운 공격으로 점수를 대거 획득한 송세라의 힘도 컸다. 무엇보다 여자 에페 대표팀은 하나로 뭉쳐 서로를 격려해 주고 응원해 준 것이 눈에 띄었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피스트 밖 선수들은 “괜찮아” “잘했어” 등을 외치며 기를 북돋아줬다.
여자 에페 대표팀이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다시 뭉칠 수 있을까. 강정미는 웃으며 말했다. “결승 뒤 파리까지 가자고 말했어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지바=김정훈 기자, 강동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