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빼, 바지 한 벌에 담긴 한국 근현대사의 풍경]
몸빼는 단순한 ‘헐렁한 작업복 바지’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여성들의 노동, 해방, 유머, 그리고 생존의 상징이었다. 한때는 농촌의 할머니들이 입는 촌스러운 옷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그 어원과 역사를 들여다보면 근대화의 거친 파도 속에서 피어난 ‘생활의 미학’이 숨어 있다.
일본군 군복에서 노동복으로
몸빼의 유래는 일본어 “もんぺ(몬페)”에서 비롯되었다. 원래 몬페는 일본 농촌 여성들이 일할 때 입던 바지형 작업복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여성들이 남성을 대신해 공장과 농촌에서 일하게 되자, 이 몬페가 ‘전시 여성의 유니폼’처럼 전국적으로 퍼졌다.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 말기, 여성 근로정신대가 강제로 착용했던 복장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에도 몸빼는 노동현장에서 유용했다. 천이 튼튼하고 움직이기 편하며, 허리끈으로 조절해 누구나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 공장 여공들과 농촌 여성들이 입던 그 바지는 땀과 기름, 흙과 햇빛을 함께 머금은 ‘노동의 제복’이었다.
이름의 변천과 오해
‘몸빼’라는 명칭은 사실 ‘몬페’가 한국식 발음으로 변형된 형태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이 단어가 그대로 남았지만,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며 일본어 흔적을 지우려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하지만 “몸빼”는 이미 한국식으로 토착화된 단어가 되었고, 그 특유의 어감이 대중의 언어 속에 뿌리내렸다.이후 몸빼는 단순한 복장 이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1980~90년대에는 ‘촌스럽고, 나이 든 사람의 옷’으로 풍자되며 희화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몸빼는 그야말로 시대의 거울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상징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유머와 저항의 아이콘이었다.
산업화 시대의 무명 히어로
1960~70년대 여공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미싱 앞에 앉아 몸빼를 입고 일했다. 그것은 노동복이자 “현대 한국을 만든 옷”이었다. 농촌의 여성들은 논두렁에서, 도시의 여성들은 봉제공장에서, 모두 몸빼를 입고 ‘근대화’의 톱니바퀴를 굴렸다.몸빼의 화려한 꽃무늬는 실은 그 시대의 색채감각을 반영한다. 새마을운동으로 초가집이 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고, 거리마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던 시절 — 몸빼의 붉은 장미와 초록 잎사귀 무늬는 “한국형 미적 감수성”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것은 고된 일상 속에서도 ‘조금이라도 예쁘게 살고 싶다’는 여성들의 조용한 욕망이었다.
몸빼의 재해석
최근에는 몸빼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젊은 디자이너들은 몸빼의 패턴과 실루엣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K-복식의 유머와 자유’를 강조한다. 더 이상 부끄러운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사를 입은 패션 아이콘으로 돌아온 셈이다.몸빼는 결국 “편하게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과 “당당하게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동시에 담은 옷이었다. 전쟁과 가난, 산업화를 지나온 수많은 여인들의 땀과 웃음, 그리고 꽃무늬가 그 안에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