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민수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직역하면 ‘임금은 배(君舟)이고 백성은 물(民水)이다.’라는 상황을 지칭한다. 이는 원래 임금은 배(舟), 백성은 물(水)과 같은 존재로서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의미로 임금과 백성의 관계를 한 마디 말로 요약한 표현으로 ‘백성은 나라의 군주(지도자)를 택해 내세울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서 끌어 내릴 수도 있음’을 경고한 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민심의 무서움을 일깨워주는 말’로서 요즘 개념으로 한다면 ‘주권재민(主權在民) 사상을 선지자적인 가르침처럼 정곡을 꿰뚫어 천명했던 고사성어’로 이에 대한 살핌이다.
관련 고사(故事)를 전하고 있는 출전(出典)은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오의해(五儀解)⟩와 ⟪순자(荀子)⟫의 ⟨왕제편(王制篇)⟩이다. 이들 출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에 관련된 사연과 그 의의와 뜻을 간추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편 유의어로는 군주인수(君舟人水), 서인해정(庶人駭政), 재주복주(載舟覆舟) 등이 있다.
⟪공자가어⟫의 ⟨오의해⟩에 따르면 그 옛날 공자(孔子)가 노(魯)나라 임금 애공(哀公)에게 이런 말을 한데서 비롯되었다.
/ 군주(君主)는 배(舟)이고(夫君者舟也 : 부군자주야) / 백성(民)은 물(水)이니(庶人者水也 : 서인자수야) /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水所以載舟 : 수소이재주) / 배를 뒤집기도 합니다(亦所以覆舟 : 역소이복주) / 임금께서 이를 위험하다고 여기신다면(君以此思危 : 군이차사위) / 무엇이 위험한지 알고 계신 것이지요(則危可知矣 : 즉위가지의) /
한편 위의 말이 훗날 ⟪순자⟫의 ⟨왕제편⟩에서 비록 몇 글자는 달라도 의미가 동일한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전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군주민수’의 실체와 만남이다. 군주의 도리를 일깨우기 위해 세상 이치를 들어 이르고 있다.
말(馬)이 수레(輿)에 놀라면 군자의 수레가 편치 못하니 이때 놀란 말을 진정시키는 것이 최상의 대응이다. 백성이 정치에 놀라면 군자의 지위가 불안해지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 어떤 무엇보다 으뜸의 대응이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을 발굴해 등용하기 위해 신실하고 중후한 인재를 천거 받고, 효(孝)와 우애를 권장하면서 어려운 과부를 보살피며 가난하고 궁색한 이들을 적극적으로 보살펴준다면 백성들은 정치를 부담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게 백성들이 정치에 편안해진 연후에 비로소 군자의 자리도 안정된다고 일갈하며 이렇게 이르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내용에서 ‘군주민수’가 비롯되었다.
/ 전하는 말에 따르면(傳曰 : 전왈)* / “군주는 배이고(君者舟也 : 군자주야) / 백성은물이로다(無人者水也 : 무인자수야) /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水則載舟 : 수즉재주) / 물은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水則覆舟 : 수즉복주)”고 했는데 / 이는 정치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此之謂也 : 차지위야) /
따라서 군주가 평안해지려면 첫째로 정치를 안정되게 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平政愛民 : 평정애민)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둘째로 번영을 원한다면 예(禮)를 장려하고 사(士)*를 공경하는 것(隆禮敬士 : 융례경사)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셋째로 공명(功名)을 원한다면 어진 이를 받들고 능력자를 기용하는 것(尙賢使能 : 상현사능)보다 나은 길은 없다. 이들(平政愛民, 隆禮敬士, 尙賢使能)을 군주의 대절(大節 : 큰 뜻 혹은 대의(大義))이라고 일컫는다. 이 세 가지가 합당하다면 그 나머지는 합당하지 않을 게 없다. 하지만 이들이 합당하지 않으면 나머지 모두가 합당하다고 하더라도 훗날 기대할 희망이 전혀 없다는 지적이다.
일찍이 공자도 같은 맥락의 설파를 하셨다. 대절(大節) 즉 대의(大義)가 바르고 소절(小節) 즉 소의(小義)가 바르면 훌륭한 왕(군주)이다. 이에 비해 대의가 바르고 소의 중에 일부는 바른데 비해서 일부가 그르다면 보통의 왕이다. 한편 대의가 그르면 소의가 비록 바르다고 해도 그 나머지를 볼 필요가 없다고 설파했다.
공자는 이런 예를 들어 일깨우려고 했다. 위(衛)나라 43대 성후(成侯)나 45대사공(嗣公 : 혹은 효양공(孝襄公))은 수탈을 잘하고 술수에 능했으나 민심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정(鄭)나라 명재상(名宰相) 자산(子産 : BC580~BC522)은 백성을 다스리기는 했을지라도 아직 정치에는 이르지 못했었다. 또한 제(齊)나라 재상(宰相)인 관중(管仲)은 정치를 터득했으나 예(禮)를 닦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었다고 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생각할 때 “예를 닦으면 제왕(帝王)이 되고, 단순히 정치를 하면 강력해지며, 백성을 다스리면 편안해지고, 재물을 거둬들이면 망한다.”고 일갈했다. 그러므로 결국 제왕은 백성을 부자로 만들고, 패자(霸者) 즉 덕이 있는 임금은 ‘사(士)’를 더욱 잘살게 만들며, 큰 탈 없이 명맥을 이어가는 나라는 대부(大夫 : 지배층)들을 더욱 부유하게 하며, 망해가는 나라에서는 금고(筐篋)가 넘쳐나고 나라의 곳간만 가득 찬다고 했다.
임금의 금고가 흘러넘치고 나라의 곳간이 가득차면 뭘 하나? 백성이 헐벗고 기아에 허덕이는데 말이다. 예로부터 이런 정황을 ‘위는 넘쳐나고 아래에서는 샌다.’라고 이른다. 자고로 들어오면 지키지 못하고 나가면 싸우지 못한다고 한다면 기울어져 전복됨으로써 멸망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재물은 내가 모으면 망하게 되고 적이 얻는다면 강해지게 마련이다. 결국 재물을 거둬들이는 것은 도둑을 부를 뿐 아니라 적을 살찌게 만들며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며 자신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첩경(捷徑)이다. 그런 까닭에 현군(賢君)은 이러한 길을 걷지 않는다는 맺음말이 공자의 결론이었다.
이름 없는 백성의 사회적 지위나 힘을 제왕이나 대통령의 그것과 직접 견줌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하늘의 뜻을 배척하고 천심(天心)이라는 민의를 크게 거스를 경우 성난 민심은 지엄한 그들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무서운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옛 선인들이 이러한 이치를 꿰뚫고 ‘군주민수’라고 에둘러 경고했던 게 아닐까? 그럼에도 나랏일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일개 아녀자에게 빠졌던 여성 대통령이 민심의 이반에 따른 촛불집회로 이어지며 사상 초유로 탄핵을 당해 쫓겨나 영어(囹圄)의 신세가 되기도 했었다. 이런 역사적인 비극을 거울삼아 ‘민심의 무서움을 곱씹어보라.’는 견지에서 교수신문이 2016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군주민수’를 선정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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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전(原典)에서 ‘전왈(傳曰)’ 즉 ‘전하는 말에 따르면’이라고 명기(明記)하고 있다. 이는 뒤에 나타나는 내용은 순자(荀子)에 앞서 누군가(공자가)가 했던 말을 인용함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 사(士) : ‘사(士)’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중산층(中産層)’이라고 한다.
《수필과비평》, 2025년 10월호(통권 288호), 2025년 10월 1일
(2024년 10월 26일 토요일)
첫댓글 의미있는 글 잘읽었습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