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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를 보았는가
얼마 전 막내가 영화 관람권 두 장을 들고 와서는 아내와 내 등을 떠다밀었다. 막내둥이는 더러 관람권을 들고 오는데 한번은 혼이 난 일이 있었기에―관객이 전부 새파란 20대였을 때 먼저 알아봤어야했다(결국 미련하다고 아내에게 타박을 당했지만). 영화 내내 남녀 주연배우 둘이 홀딱 벗고 침대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아예 침대에서 먹고 자고 난리굿을 벌렸다―목구멍에서 침이 꼴깍했다. 젊은 패들이 짝을 지어 앞뒤 좌우(우리 부부는 완전히 포위된 채 보이지 않는 폴리스 라인에 갇혔다)에서 실습을 하면서 눈총을 날렸는데도, 우리부부는 의뭉스럽게도 엔딩 크레디트가 내려 올 때까지 버티다 며칠간 몸살을 앓은 적이 있었다.
대충 어떤 영화냐고 물었더니 요즘 뜨는 영화로‘아바타’하고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생각을 비우고 보다보면 영화가 꼭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허망해 지기도 하고 삶이 무엇인지 생각나게도 하는 뭐 그런 영화라고, 제깐 놈이 무슨 인생의 간을 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기가 차 놈의 말을 싹둑 무질렀다. “상영관은?” “대구에서 4DX 상영관은 CGV 그곳 하나 뿐이시더.” 하고 위치를 가르쳐 주면서, 영화관 의자가 둥둥 떠다니고 화면 속에서 풍기는 냄새까지 진동을 한다고 뻥을 치기에 그냥 피식 웃어넘기며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하지만 영화관에 들어가서는 혹시나 하여 앉은 자리에서 들썩거려 보기도 하고, 앞의 의자를 잡고 흔들어도 보았다. 허나 좌석들은 완강하게 나의 시도를 무산 시켰다. 역시나, 그럼 그렇지. 멀쩡한 의자가 움직이다니? 뻔히 알면서도 막내 놈의 구라 펀치에 넘어 간, 덜떨어진 내 꼴에 웃음이 나 낄낄 거렸더니, 이번에는 아내마저 암팡지게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가격하며 퉁을 주었다. “왜 이래 당신, 실성했어?”
그건 그렇고, 영화 줄거리는 지구로부터 600km 떨어진 우주 공간에서 두 과학자가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다 직면한 위기를 그린 영화다. 샌드라 불록이 ‘스톤 박사’역을, 조지클루니가 ‘매트’ 역할을 하고 있었다―두 유명 배우 이름을 보고 기대가 컸었는데 헬멧을 쓰고 있어 그저 그랬다. 둘은 폭파된 러시아 인공위성의 잔해와 부딪히면서 위기에 직면한다. 매트는 스톤을 구출하고는 우주의 영원한 미아가 되고, 그곳에 홀로 남겨 진 스톤은 매트를 생각하며 우주에서 혼자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리는데….
영화 시작과 동시에 광활한 우주가 펼쳐진다. 그 신비함과 광활함에 숨이 막히고 글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적막’도 함께 공존했다. 지구는 아름다웠고, 홀딱 반할만 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동했다.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면서 매트(조지 클루니)는 우주공간에서 무중력 유영을 즐기는가하면 음악도 듣고, 몰래 보드카도 마신다. 머릿속 나사가 풀려 혼잣말―자신과 대화한 적이 있는가? 쌍욕도하고 스스로 칭찬도하고. 그래도 내가 날 칭찬하면 기분 좋더라―도 하고, 지구와 신나게 교신하며 암탉 옆에 있는 수탉처럼 벼슬을 세워 우쭐거리며 떠벌렸다. 꽂히면 무조건하고야 마는 또라이였고, 엉너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까뒤집었다. 곰살궂은 마초였고 테스토스테론이 흥건했다. 작업을 하면서도 둘은 죽이 척척 맞아 쉴 새 없이 수작을 주고받지만 알파걸인 스톤(샌드라 불록)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린 딸을 잃어버린 상처 때문에 삶을 즐길 여유와 주변과 소통하는데 익숙하지 못해 쭈뼛거린다. 누군들 아물지 않는 상처가 없으랴만 스톤은 유독 헤어나지 못해선지 도리어 마뜩찮게 여기는 느낌마저 받는다. 인생을 이렇게 소비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녀는 타인과 공감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는 비관주의자 쪽에 서 있었다.
그나저나 영화 중반 들어 러시아 우주선의 잔해가 밀어 닥쳐 온통 북새통이 벌어지고 비현실적인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정말 내가 앉은 의자가 하늘을 날고 망원경 부품들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두 사람에게 머리꼭지가 돌 정도로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가 닥쳤지만 매트는 낙천적으로 위기를 해결해 나가며 고장 난 부품을 따짝이며 되작거리기만 하는 스톤을 보호한다. 아무리 ‘열씨미’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아니 더 많다. 결국 신이 한 사람만 허용했을 때 매트는 스톤을 위해 무한대의 우주 공간으로 죽음의 여행을 떠나고. 굳이 스톤을 사랑해서라기보다 이럴 경우에는 이래야 한다는 것처럼…. 매트는 혼자서도 즐겁게 살아왔고, 죽음도 혼자서 즐길 사내였다. 스톤 박사 곁에 그런 매트가 없었더라면 일찌감치 재난에 굴복하고 말았을 것이다. 스톤은 매트의 배려로 무사히 지구로 귀환한다.
이 영화가 나에게 주는 메타포는 결국 인간은 혼자이고, 혼자로 살아가지만 배우자든, 친구든, 연인이든,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진정 위로가 되고 플렉서블하게 인생을 마무리 할 수 있는 방점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뭐 그런 것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男에게는 女가, 女에게는 男이. 그나저나 어찌 되었든, 결국에는 자기 스스로 모든 위기를 극복해야만 한다는 슬픈 현실을 지울 수는 없었다. ‘
그건 그렇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나는 아내에게 물어 보고 싶었다. 나 말고 남은 삶의 빛과 결을 오롯이 살려낼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화를 나눌 사내가 있느냐고. 그러나 묻지는 않았다. 뻔할 뻔자니까. 멋대가리 없게 하느님이 계신다고 할 게 뻔하니까.―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없으면 내가 구해줄 처지도 아니지만 있다고 해서 흉터로 남을 일은 아니지 않는가. 하기야 부부는 한 몸이라지만 오랜 세월 생활이란 더께가 켜켜이 가로막아 새삼스레 인생을 논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궁상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작정하고 한마디 했다. “당신 오늘 참 곱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받았다. “느닷없이 마누라가 예뻐 보이면 치매기에 접어든다는데…” 그래도 눈동자에 파랑새 한 마리 폴, 날았다.
저 맵시 좋고 아리따운 단풍잎도 가고 이젠 발밑에서 서걱거린다. 검푸른 하늘 저편에선 눈보라가 뿌옇게 몰려온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시구를 절로 웅얼거리게 한다. 고독이 동행하는 길엔 바람이 또 불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삶의 떨켜’ 는? 거대한 질문이 되어 내게 닥아 선다.
蛇足; 얼마 전 대구 친구들과 장생포에 갔었다. 타원형 오석 기둥을 세우는 곳이 있었다. 친구들이 세워도, 세워도 미끄러져 넘어지기만 했다. 구경하던 내가 에멜무지로 세웠는데 단번에 굳건하게 섰다. 옆에서 구경하던 건계(김상동)가 툭 내뱉었다. 잘 세우는 놈이 잘 세우네! |
첫댓글 나도 아네와 영화관에 간 일이 있었던가
자네가 부러우이
"칠십넘어 부인에게 따뜻한 밥 얻어먹는 남자는 행복하다"고 했는데 효자 자녀 잘둔 덕분에 영화까지 봤다니
자네는 확실히 "잘 세우면서" 멋지게 사는구나.
우리 모두 부디 건강하고 재미있게 살자!
지송의 말에 100%공감,동감일쎄!!!
노후를 부인과 함께 자녀들의 효도를 받으며 멋지고
아름다운 제2의 인생을 행복하게 사시길 기원드리네.
공상을 사실처럼 꾸민 놀라운 거짓의 "그래비티"를 꼭 봐야겠구나.
우리내외도 현대백화점 CGV에 한달에 몇번은 들리는데...ㅡ義峰ㅡ
그래요 그런거 있지요~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건,,, 축복중 축복이라지?
직접 영화관람 못해 아쉽긴 하지만 내용설명으로 좀 알만할려고 하네요...ㅎㅎ
마무리 글에서는 역시나 님의 글재주 그대로 흥미로워~~요. 재밋슴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