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18번지

[신웅순]

나의 노래 18번지

2020.8.8

석야 신웅순

누구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곡을 갖고 있다. 아버지는 ‘사랑가’였고 어머니는 ‘소주 뱃사공’이었다. 힘들 때마다 삶을 달래곤했던 내 아버지, 어머니의 18번지였다.

내 인생곡은 ‘번지 없는 주막’이다. ‘나그네 설움’과 함께 1940년대 나라 없이 떠도는 민족의 아픔을 함께한 백년설의 노래이다.

가사가 내 지나온 삶과 많이도 닮아 있다. 어렸을 때부터 불러왔고 고향을 떠나왔을 때도 불러왔던 노래이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 비 내리는 그 밤이 애절쿠려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나만큼 이사를 자주 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사한 것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수십번을 했다. 일년에 세 번을 이사한 적도 있었다. 집 없는 설움을 뼈저리게 느꼈던 젊은 날들이었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그런 젊은 시절의 나그네 생활이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좋아했던 것일까.

내가 처음 집을 산 것은 30여년 전이었다. 15평 아파트였으나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모른다. 아이들 전학 시키지 않아서 좋았고 더 이상 이사 하지 않아서 좋았다.

…전략…

찾다가 되돌아 갔던 친구들에게 알려주어야겠다.

편지가 되돌아갔던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어야겠다

막 도착한 이삿짐 박스에 하얀눈이 얇게 쌓이고 있었다.

-신웅순의 「집」일부

얼마나 이사를 했으면 이런 시를 다 썼을까 싶다. 40대 석박사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또 얼마 후 이사를 하고 말았다.

석박사 시절도 지났고 교수 시절도 지났으니 그 세월이 30년이다. 지금은 번지 없는 주막이 아니라 번지 있는 주막이다. 그래도 이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렸을 때부터, 고향을 떠나서도 지금까지도 불러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마다 술 한 잔까지 곁들였으니 말이다.

나는 악보를 보며 이 노래를 배운 것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여기저기 귀동량하며 저절로 익힌 노래였다. 며칠 전에 악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음미하면서 천천히 불러보았다. 음정과 박자가 비교적 정확했다.

이제는 번지 있는 주막에서 번지 없는 주막을 부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에서 번지 있는 주막은 몇 번이나 있을까.

늦가을 찬비가

몇 번을 왔다 갔다

누가 밤새 등불과 한잔 하고 갔을까

주막에 시 한 수 써놓고

홀연 떠난

겨울 바람

- 신웅순의 「아내 24」

                                                                  석야 신웅순의 '아내 24'

겨울 바람은 내 가슴에다 시 한 수 붙여놓고 홀연 떠났다. 그 때문에 여태껏 나는 주막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비도 번지수가 없는가 보다. 종착지를 찾지도 못하고 주룩주룩 며칠 동안 비가 내린다. 참으로 많이도 내린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이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이제사 내 이름 있는 문패를 달았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하늘이 내려주신 무한한 사랑이었다.

아이들의 18번지는 무엇일까. 아빠 인생의 18번지 이 ‘번지 없는 주막’은 아이들게는 무슨 느낌으로 다가올까.

어두운 밤에도 저기 어머니 같은 불빛이 있어서 나는 쉬지 않고 걸어왔다. 내가 걸어가면 그 불빛도 저 앞에서 따라서 걸었다. 오늘은 저만치서 불빛이 멈춰선다. 날 보고 쉬었다 가라하는 따뜻한 배려이리라. 살면서 그 불빛은 나에게는 서러운 신앙이었다.

석야 신웅순의 서재 ‘매월헌’에서

[默靜]

이사를 많이 하셨으니
불필요한것들은 소유하지 않는 무소유의 삶을 사셨겠습니다~~~
가볍게^^

잘 감상하였습니다 ~~~^^

[신웅순]

또 이사해야하기에 보따리를 풀러놓지 않은 적도 많았습니다.
잘 쓰지도 않는 보따리였으니 생각해보면 그도 욕심이었습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