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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자택 임종
일러스트=박상훈
일본인들은 대부분 ‘다다미방’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 병원에서 치료받다가도 집으로 돌아가 사망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사실 병원의 목표가 환자를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의 방문 진료와 왕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일본의 의료기관에서 사망률은 2000년 81%에 달했지만 자택 임종을 지원하는 다양한 시스템을 갖추면서 최근 65%까지 낮아졌다.
▶살던 집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떠나는 모습은 사람들이 평온한 임종을 떠올릴 때 그리는 장면이다. 병원의 소독약 냄새, 각종 움직임들, 소음은 마지막 순간에 있는 환자를 긴장시킨다고 한다. 평생 살아온 집은 환자에게 ‘안전한 내 영역에 있다’는 심리적 보호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내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이루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현재 대다수 한국인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한 죽음의 모습은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기계에 둘러싸여 연명 치료를 받다 숨을 거두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68%의 환자가 마지막 임종 장소가 집이었으면 좋겠다고 답했지만 실제 임종 장소는 73%가 의료기관이었다. 자택 임종은 15%에 불과하다. 선진국에서는 의료기관에서 사망하는 경우와 집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거의 반반인데 집에서 사망하는 비율이 점차 느는 추세다. 각국이 환자의 선호를 의료·돌봄 체계에 반영해 자택 임종을 적극 지원한 결과다.
▶우리나라 병원 사망률이 유독 높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병원 사망이 가족들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집에서 사망할 경우 변사로 처리돼 경찰 조사를 받거나 부검까지 해야 할 수 있다. 아파트가 많아 시신을 운구하기 힘든 점도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중엔 “자택 임종이 이상적이지만 노후에 집에서 재택 의료 서비스를 받다가 최종 순간 병원에서 임종하는 것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성남시가 시민이 자택에서 의료 지원을 받으며 존엄하게 임종할 수 있게 돕는 사업을 시작했다. 의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임종 시에는 현장에서 사망진단서를 발급해 유족들이 다른 고통을 겪는 문제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엔 이렇게 국민의 삶과 죽음의 질을 개선하는 데 꼭 필요한 서비스인데 아직 부족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선거용 현금 살포 보다는 이런 서비스를 도입하고 정착시키는 데 국민 세금을 썼으면 한다.
김민철 기자 mckim@chosun.com
빛명상
행복패턴 1
오르고 내려가는 굴곡진 인생에서 행복을 이루고 기쁨이 넘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행복 패턴’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며, 그것의 연장선에 있는 죽음을 넘어선 이후에도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인간이 찾은 규칙과 법칙은 현실 세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빛VIIT은 유한의 문지방을 넘어서게 한다. 그동안 빛VIIT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과 빛VIIT을 알고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복된 행복 패턴이 그렇다. 빛VIIT과 함께한 삶은 현실 세계와 그 이후의 세계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출처 : 빛VIIT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21년 1월 18일 초판 1쇄 P. 286
행복패턴1 문인다취文人茶趣 빛(VIIT)터의 진정한 행복
보이지 않는 세계
“큰 은혜를 받고
갚지 못하고 가게 돼서 송구스럽습니다.
학회장님, 건강하게 이 땅에 오래오래 머물러주시고
생각하시는 빛VIIT의 뜻이
다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시길 진심으로 비오며….”
지난 2011년 4월 29일 유길영 회원께서
세상을 떠나기 전날 우표까지 붙여서 남겨놓은 편지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
사후의 세계로 넘어가는 분이 남기고 간 편지이다.
그분은 죽음 직전 무엇을 보았기에
밝은 미소 띠고 마지막 편지까지 남겼을까?
그 분은 어디로 갔을까?
육체는 남겨져 시체가 되었고,
시체가 되기 전까지 그 마음인 나는
보이지 않는 세계, 저승도 좋고 천국도 극락도 좋겠지만
빛VIIT의 나라
광채의 나라면 더욱 좋겠다.
보이지 않는 세계, 아름다운 빛(VIIT)의 나라
출처 : 빛VIIT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21년 1월 18일 초판 1쇄 P. 174
죽음 이후
우리의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
내안의 진정한 나, 빛VIIT마음이 원래 온 곳은 바로 우주마음이다. 따라서 그 빛VIIT마음이 죽음 후 되돌아가야할 곳 또한 마음의 고향, 우주마음이다.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두려움과 불안 없이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이는 어떤 철학적 이론이나 종교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한 주장이 아니라 많은 실제적 사례를 통해서도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두 사람의 죽음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해볼 수 있다.
평소 사람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삶을 살아왔던 한수우 씨는 오십대 초반 뜻하지 않게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늘 한창이라고 생각했던 그에게 암이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남의 일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남의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다행히 처음에는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거쳐 암도 이겨낸 듯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암 세포가 다시 임파선으로 전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한씨와 그의 가족들은 더욱 깊은 절망에 빠졌다.
처음 한수우 씨를 만났을 때 그는 큰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고 완강히 죽음을 거부하고 있었다. 부부에게 빛VIIT을 주며 이분의 건강이 최대한 맑게 정화되고 통증 또한 줄어 고통스럽지 않기를 청하였다. 그 때 문득 이분의 생명이 몇 년 더 연장되라는 느낌이 왔다.
이후 한 씨는 꾸준히 빛VIIT을 받는 가운데 건강이 급속도로 회복되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사이 그는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가 아닌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행복해지기 위해 빛VIIT과 함께 하고 있었다. 아내는 물론 자녀들과 친지들, 가까운 이웃들이 함께 빛명상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가벼운 감기증세처럼 나빠진 한 씨의 몸 상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순식간에 처음 빛VIIT을 만났을 때의 상태로 돌아갔다. 문득 시간을 돌이켜보니 처음 우주마음의 느낌과 같이 몇 년의 시간이 지나있었다.
그러나 한 씨의 마음이 지난 번 죽음을 앞두었던 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갑작스런 죽음 앞에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불안해하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평온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을 마감할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이제 제가 돌아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알기에 마음이 정말 가볍습니다. 이렇게나마 빛VIIT마음을 알고 죽는 것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합니다만 빛VIIT을 좀 더 일찍 알아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부디 제 아내와 아들, 딸들이 훗날 저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도록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진정한 복을 짓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것이 한씨가 사람들 앞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자 유언이었다. 이후 그의 몸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지만 말기 암이었음에도 고통이 전혀 없었다. 도리어 정신은 더욱 또렷해져갔다. 일절 음식을 먹지 않고 오로지 빛VIIT이 봉입된 초광력수만 찾았으며, 이따금씩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아내의 손을 꼭 쥐고 ‘고향의 봄’과 같은 동요를 불렀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한수우 씨는 평온한 상태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 시각, 빛VIIT의 터에 있던 나에게 한 영혼이 찾아왔다. 작은 빛VIIT방울 혹은 눈사람처럼 보였는데, 직감적으로 그것이 한수우 씨의 빛(VIIT)마음임을 알 수 있었다. 육신으로부터 벗어낫기 때문에 나이, 직업, 세상에서의 모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한 빛VIIT마음 그 자체, 어린 아이와도 같은 상태였다.
“어서 빛VIIT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그 빛VIIT마음이 내게 인사하더니 태양빛에 실려 온 환한 풍선 같은 모습의 빛VIIT에 휩싸여 두둥실 사라졌다.
수년 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
처음 윤희를 보았을 때 일곱 살이나 된 아이가 늘 엄마 등에만 붙어 있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아이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걷지 못하는 장애가 있었다. 이후 아이가 몇 차례 빛VIIT을 받고 걸음을 뗄 수 있게 되었다. 가족들은 아이가 곧 정상으로 회복되기라도 할 것처럼 기뻐했고 다시금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조금씩 걷게 되었지만 병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명이 너무 짧았다. 하루는 아이의 어머니를 불러 지나친 기대는 하지 말고 언젠가 넘어가야 할 일을 조용히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일러주었다.
아이 어머니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돌아간 지 얼마 안 되어 윤희가 쓰러지고 말았다. 소식을 듣고 달려가 보았을 때는 이미 아이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런데 윤희가 무의식중에도 무언가 꼭 쥐고 놓지 않고 있었다.
“아이가 끝까지 빛VIIT선생님을 찾았어요. 그리고 이 초광력봉을 손에 쥐고는 놓지를 않네요.”
그것은 윤희가 늘 빛VIIT과 함께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작은 빛VIIT봉입 물품이었다. 그런데 윤희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것을 꼭 쥐고 아무리 해도 손을 펴지 않고 있었다. 어린 것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정신을 잃고도 초광력봉을 놓지 못할까 싶어 마음이 짠했다.
“윤희야, 이제 괜찮으니 손 편안하게 펴라.”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때껏 꼭 쥐어져 있던 아이의 손이 스르르 풀렸다. 어머니가 이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무서워서 집에 못 가겠어요. 혹시 아이가 길에서 어떻게 되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객사를 시킬 수는 없잖아요.”
“괜찮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큰일 없을 테니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가서 아이를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 나 또한 4시에 열리는 회원 모임에 늦지 않게끔 되돌아왔다. 그런데 모임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볕이 들지 않는 북창으로 선명한 빛 한줄기가 새어 들어왔다.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그 빛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무언가 작은 빛VIIT방울 같은 것이 그 빛줄기를 쪼르륵 타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순간, 알 수 있었다.
“윤희 왔니?”
작은 빛VIIT방울이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흔들렸다.
“그래, 이제 빛VIIT으로 되돌아가라.”
그러자 창문 틈으로 들어왔던 작은 빛VIIT방울이 다시 한 번 흔들리더니 이내 점점 멀어져갔다. 이 광경을 본 회원들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주일 후 윤희 어머니가 회원들의 정기 회합시간에 찾아와 그날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후 주체할 수 없이 잠이 쏟아져 한동안 윤희도 저도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깨어났을 때 아이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난 후였어요. 아이는 제 품에서 잠들 듯 편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시간이 4시가 조금 넘었다고 했다. 그날 회합 시간에 창문 틈으로 빛줄기가 들어온 바로 그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세상을 궁금해 하지만, 그 세상은 산 사람의 귀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아예 죽음 이후의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가 흔히 '고인의 명복(冥福)을 빈다'는 말을 한다. 명복이란 무엇인가? 죽음 후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왜 우리는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일까?
죽음 이후의 세상은 살아서 자신이 가졌던 생각, 관념을 따라간다. 즉, 살아있을 때 죽음 후 자신이 어디로 갈지 알고 있었다면 마치 잘 아는 길을 찾아가듯 갈 길을 찾아간다. 만약 열심히 믿는 종교가 있었다면 종교 교리에 따라, 생각이 있다면 자신의 생각에 따라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없다면 갈 길을 몰라 방황하는 어린아이와도 같다. 갈팡질팡 어디로 갈지 몰라 서성거리다 길을 잃고 만다.
하지만 빛VIIT과 함께 맞이한 두 사람의 사례와 같이 죽음 이후 우리의 마음이 가야 할 곳을 알고 있다면 풍요롭고 행복한 죽음, 웰다잉(well-dying)이 가능해 진다. 가야 할 길을 알기에 그 길이 전혀 두렵거나 고통스럽지 않다.
출처 : ‘빛명상’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행복순환의 법칙
초판 1쇄 발행 2009/09/14
2021/06/01 초판 45쇄 P. 215-220
행복한 죽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님, 저는 윤초희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과 만나는 선생님께 윤초희라는 이름은 어쩌면 낯선 이름 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얼마 전 선생님게서 이 세상의 미련을 버리고 완전한 저승의 세계, 즉 하늘나라로 보내 주신 한명혜 씨 얘기를 한다면 쉽게 기억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한명혜 씨를 모시고 선생님을 찾아뵈었던 그 분의 딸입니다.
선생님을 찾아 갔을 때 저는 오랜 어머니의 병 간호와 삶의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어머니의 짜증에 지칠 대로 지쳐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요. 그 때, 선생님께서 그윽한 눈빛으로 우선 저를 바라보시며,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모든 것이 그대로 보여지는 법인데…….”
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선생님께서는 어머니보다 제 마음의 병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 어머니의 49제를 지내고 돌아오면서 한없이 눈물이 솟았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회한도 회한이려니와 무엇보다 어머니가 평온한 얼굴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을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나오더군요. 저는 그 와중에도 ‘내 몸 속의 탁기가 정화되어 나오는 것이야…….’ 라고 기뻐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집에 도착하니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솟아올랐지만, 마음은 따뜻해져 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이렇게 감사의 편지를 올리기로 한 것입니다. 제 욕심 같아서야 선생님과 마주 앉아 긴 이야기를 나누고도 싶지만, 그것이 쉽게 허락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이렇게 펜을 든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삶의 명제 중 하나입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 죽음이 두려운 것은 그 최후의 순간이 도대체 언제 오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조금씩 준비를 하십시오. 여사님은 아주 행복한 분입니다. 그 때를 알 수 있으니 말입니다.”
선생님께서 시들어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저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주 몹쓸 딸이었지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신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때 저는 너무도 지쳐 있었고, 어머니의 삶에 대한 애착을 감당할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참으로 이상한 것은 집이나 병원에서는 그렇게도 포악하시던 어머니께서 선생님 앞에만 앉으면 순한 양으로 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어머니께서는 병원과 집을 오가며 자신이 암에 걸릴 이유가 없다는 것에 집착하셨습니다. 왜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당신이 그런 몹쓸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 하느냐는 것이 어머니의 불만이었고, 그 불만은 끝내 강한 삶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1년여 동안 해 보지 않았던 것도 없고, 드시지 않았던 것도 없었습니다. 장안의 용하다는 무당 하나는 먼저 작고하신 아버지께서 구천을 떠돌며 어머니를 괴롭힌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망할 놈의 늙은이! 살아생전 호강 한 번 안 시키더니 이제는 저승길을 같이 가자고? 말도 안 될 소리다…….” 시며 굿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굿이 끝나고 병원을 찾으면 어머니의 병세는 여전 했지요.
기공치료사를 찾았을 때에는 마치 그 기氣로 인해 어머니의 암이 ‘툭’ 소리라도 내면서 떨어질 듯한 표정까지 지으시며 몰입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지요. 어머니는 온작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다인의 몸속에 있는 암덩이를 떨어뜨리려 하셨고, 암덩이는 점점 더 온몸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어디 그 뿐이었겠습니까? 뱀이며 상황버섯이며 암에 좋다고 하는 약재들은 언제나 집 안 구석구석에 자리를 넓혀갔습니다. 식탁에 앉으면 멀쩡한 삶들이 먹어야 할 반찬의 가지 수보다 그런 건강 보조 식품들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었을 정도니까요.
‘요 망할 놈의 계집애! 내가 갓 스물에 그저 책이나 파는 니 애비 한테 시집 와서 안 한 것 없이 다 해 가며 뒷바라지 해 줬더니 이제와서 얼른 에비가 에미 데리고 가길 학수고대하는 게지? 내가 니 눈빛만 봐도 안다. 이 망할 놈의 계집애…….
어머니는 제 머리채를 휘어 잡기도 하셨습니다.
제 나이 서른 둘 , 저도 일찍 결혼 했다면 자식도 남편도 있을 나이였지만, 어머니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제게 푸는 것이었지요.
사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희 어머니도 참 불쌍한 생을 사신 분이었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여겨를 졸업하고 갓 스물에 여섯 살 위의 아버지를 중신으로 만나 결혼하셨습니다.
아버지 집안이야 원래 학자 집안이었기에 부와는 관련이 없으셨지만, 어머니 집안은 달랐습니다. 외조부께서는 월남하시기 전까지도 개성에서 포목점을 하셨던 분이고, 월남 후에도 비슷한 일을 하시는 외조모를 만나 가정을 꾸리셨으니 말입니다. 외가댁은 신기할 정도로 이모며 외삼촌들이 모두 장사를 해서 떠르르하게 사는 집안이었습니다. 외조부 말씀에 장돌뱅이 집안이라 손가락질 안 당하려고 어머니를 학자 집안에 시집 보냈셨다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야말로 공부만 하시는 아버지의 생활 능력이 좋았을 리 만무했었겠지요. 결국 어머니는 당신이 팔을 걷고 일선에 나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늦게까지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면 늘 어머니께서는,
“장사꾼의 피를 속이겠냐…….”
하시며 반은 자조적으로 반은 자랑삼아 얘기하셨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자 어머니는 속된 말로 돈놀이를 하셨습니다. 웬만한 장사꾼은 어머니 돈을 빌려 쓰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자신할 만큼 돈놀이도 잘 되었나 봅니다.
아버지는 평생 공부만 하시다가 페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하루에도 서너 갑을 족히 피워 넘기시던 실력을 감안하면 분명 담배가 원인이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하나도 슬퍼하지 않으셨습니다. 신기할 정도 였지요. 하지만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던 저는 어머니보다 아버지께 사랑이 더 깊었습니다.
“이놈의 계집애! 에미 죽었냐? 왜 아침부터 울어? 인명은 제천인거다. 사업하는 집에 아침부터 눈물바람 하면 망하라고 고사 지내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만 못 그쳐? 니 에비가 도대체 너나 나를 위해서 뭘 해 준 것이 있다고 그리 한 달이 되도록 밥상머리에 앉아 눈물을 찔금거리는 것이냐? 돈을 못 벌면 명예라도 걸머지던가. 쥐뿔 학자 자존심 내세운다고 남들 다 가지고 있는 명예도 없었다. 무식한 이 에미랑 살기 싫어 매일 담배만 뻐끔대더니 그 담배 때문에 죽은 것을 어쩌라고 이렇게 에미 속을 뒤집냐? 뒤집길?”
가끔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반찬이 식탁에 오르면 목이 메어 하는 나를 보시며 어머니는 언제나 그렇게 소리지르셨습니다. 저로서는 납득이 안가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그런 어머니께서 수저를 놓으면서 바로 소화제를 삼키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하지만 좁은 소견으로 ‘저 소화제로 욕심은 소화 안되나…….’ 하는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참 못된 딸이었지요. 그래도 저를 뱃속에 넣으시고 열 달, 제 나이 서른 다 되도록 그리운 것 없이 길러주신 어머닌데 말입니다.
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자 어머니께서는 다른 대학병원에 특진 신청을 하셨습니다. 믿어지지 않으셨던 것이죠. 그리고 또 다른 병원, 또 다른 병원…….
검사와 진단만도 수 차례를 받으시고도 어머니는 당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어떻게든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하고 고통을 덜어드릴 방법만 생각하다가 어머니의 집착에 질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넘도록 병원만 찾으면서 저는 박사 코스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자식이라야 저 하나였지만, 제가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때를 쓰는 어머니 때문에라도 저는 두분불출 어머니 곁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도록 선생님의 도움을 찾고자 마음먹었던 계기는 충북 어딘가에 살고 있는 체내림 도사를 만난 다음이었습니다. 그 도사는 다짜고짜 어머니를 엎어 놓고 등을 두르렸습니다. 그리곤 뭔가 이상한 나무 뿌리 같은 것으로 입안을 쑤셔댔지요. 어머니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당신이 참고 있는 한 저는 그것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체기가 분명하다. 암은 무슨 암……. 쑤시고 나니까 이렇게 시원한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점점 잦아들고 계셨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버텨도 힘든 세월이었을 2년을 그렇게 엉뚱한 짓으로 보내고도 아직 암을 인정하지 못하시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그 후 아는 선배 한 분의 소개로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라는 책을 읽게 된 저는 그 순간 이제 어머니를 선생님께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뭐야? 암도 고쳐?”
어머니를 선생님께 모시거 가는 제 저의야 솔직히 말씀 드릴 수 없었지요. 선생님께서는 암으로 죽어가는 생명도 살려내고 못 쓰던 다리도 살려 낸다는 거짓말로 어머니를 설득 했습니다. 당신의 암을 고칠 분이라는 것만 믿고 어머니는 저를 따라 나섰던 것이지요.
“우리가 새로이 태어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각입니다. 그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지요…….”
“그럼, 선생님. 제가 죽는단 말씀이세요? 그래서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라는 건가요?”
“제가 말씀드린 다시 태어나는 것이란 꼭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삶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떠나느냐는 것이지요. 무엇이 그렇게 여사님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까? 아직 하지 못하신 일이 아주 많은 모양입니다.”
“못한 것 많지요. 많아요. 아니, 그것보다 왜 내가 이 더러운 병에 걸려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죄 지은 적 없고 남에게 신세 진 적도 없고 남 못 되라고 더러 욕은 했으되 진심은 아니었고……. 왜 내가 이 더러운 병으로 죽어야 하는지 그것이 제 발목을 잡지요…….”
“더러 우리의 삶을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하고 바라보면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은 앞을 보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지만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비로소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도 이해하기가 쉽지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여사님은 잃어버린 것보다 발견하지 못한 것이 훨씬 많을 겁니다. 이제라도 서서히 살아온 인생을 점검하시고 언제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지 마십시오. 죽음만 생각하면 그렇게 억울함이 발목을 부여잡고 여사님은 물론 모든 주변 사람들을 힘겹게 만들기 마련입니다. 더러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보다 그것들이 사실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행복하답니다. 그것이 더 큰 부자가 되는 방법이지요. 이제라도 인생의 항로를 따라 천천히 가 보십시오. 그러면 마음은 평온해지고 모든 집착에서 놓여나면 모든 것이 달리 보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그날 그렇게 말씀하시는 동안, 저는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도 그렇게 내 인생의 뒤안을 돌아보며 새로이 태어나길 거부하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에고이스트였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날의 선생님의 말씀은 어머니께나 제게 약이 되었습니다. 물론 초광력을 받으면서 오로지 그 말씀만을 생각했지요.
“내가 너한테 제일 잘못한 것은 형제를 만들어 주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니 애비 떠나고 나마저 떠나는 마당에 재산이 많아 전부 네 앞으로 해주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 홀홀단신으로 고아가 되어 결혼도 못하고……. 그래도 이제 와서 어쩔 수 없고……. 돈은 니가 죽기 전까지 공부할 만큼은 있으니 공부해라. 기왕지사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나는 죽어도 너한테 붙어 댕기지 않을게다. 그러니 훨훨 날아다니며 너 하고 싶은 것 다해. 정기적으로 건강 진단 꼭 받고……. 니 애비도 에미도 암으로 죽으니 너도 조심해라…….”
선생님을 찾은 지 한 달이 되면서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제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백미러를 통해 보여진 어머니의 얼굴은 안정되고 평온해 보였습니다. 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드디어 돌아가시는 것이 아닐까…….
결국 어머니는 며칠 뒤 눈을 감으셨습니다. 선생님께 받은 광력봉과 씰이 붙여진 수첩을 가슴에 얹은 채로 말입니다. 저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엇부터 처리해야 할지 몰라 서두르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선생님을 떠올리며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머니가 좋은 곳으로 가실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그래요. 내가 기도 했으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 아무 걱정 말고 꿈에 나타나면 다시 한번 전화 줘……. 힘 내라고……. 우리는 모두 혼자지만 함께라는 것을 잊지마세요.”
전화선을 타고 흘러나오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설움이 북받쳤습니다. 정말 어머니께서 제 곁을 떠났다는 사실이 절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장례를 마친 뒤에야 알았지만, 어머니는 선생님께 초광력을 받으러 다니시면서 조금씩 아니, 말끔히 당신의 사후 처리와 당신이 돌아가신 뒤에 제가 황망하게 맞을 재산권 문제까지 처리해 놓으셨습니다.
그렇게도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기던 어머니는 선생님 덕분에 행복한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저는 그 어머니 때문에 선생님을 만나 인생을 돌아보며 살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한 번쯤 나는 잘 갔노라 제 꿈에 나타나 주시길 간절히 바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끝내 제 꿈에도 나타나 주시지 않습니다. 철저히 혼자가 된 느낌입니다. 하지만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맏습니다. 저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닙니다. 제게는 선생님과 우주의 빛이 함께 하니까요.
길고 긴 제 이 편지를 끝까지 읽어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말을 아꼈던 것은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이 편지를 다 읽으시길 간절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저 흔하게 선생님을 찾는 사람들의 넋두리 중 하나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어쩌면 삶의 애착으로 인해 중요한 것을 놓치고 돌아가실 뻔한 한 생명에게 인생을 정리하고 행복한 죽음을 맞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돌아볼 줄 몰라 많은 것들을 놓칠 뻔한 젊은 인생 하나를 구제 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날이 오면 꽃이라도 한 다발 들고 선생님을 찾아뵐 작정입니다. 그 때는 제 얼굴도 많이 맑아져 있겠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
방배동에서 윤초희 올림
죽음이란 새로운 통로를 여는 문입니다
초희씨의 초췌하고 모든 것에 대한 끈을 놓을 듯 흔들리던 첫인상을 기억합니다. 가망이 없는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는 자체보다 초희씨는 세상에 너무 지치고 힘들어하는 듯 보였습니다.
어머니의 삶에 대한 집착은 버리게 할 수 있어도 초희씨의 절망 어린 모습은 다시 회복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해 저로서도 초희씨를 대하기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지식을 쌓는 사람들이, 특히 현대 과학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그러하듯 초희씨 역시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누구의 말보다 굳건히 믿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만나고 돌아가신뒤,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초광력을 받으셨습니다.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당신을 질책하며 말입니다. 그리고 홀홀단신으로 남겨질 초희씨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초희씨가 혼자 일어설 수 있도록 기도하겠노라 약속했습니다.
사실 어머니께서는 초희씨를 위해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먼 길을 더욱 재촉하여 오셨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초희씨가 알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뒤늦게 전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주 좋은 곳으로 가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뵙지는 못했지만 명상으로 떠나시는 길에 빛의 축복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초희씨의 걱정으로 쉽게 발길을 못 떼는 어머니를 떠밀어 서둘러 떠나시도록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초희씨를 만났던 날, 저는 확신했으니까요. 초희씨가 오늘 내게 이렇게 편지를 띄울 만큼 마음의 평온과 정신적인 안정을 찾아 홀로서기에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제고 힘이 들 때는 우주의 빛, 초광력의 힘을 청하십시오. 결코 초희씨는 혼자가 아닙니다. 항상 우주의 빛이 함께 하고 초희씨를 도와 줄 테니까요. 그리고 정진하시던 공부는 계속 하십시오. 그래서 이 사회에 밝고 맑은 인재들을 많이 키워 주십시오. 초희씨 같은 사람들이 많은 인재들을 키워야 이 사회가 밝고 맑게 진행될 것입니다. 그 또한 초희씨에게나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끝으로 오래 전 제가 읽은 책 가운데 초희씨에게 띄우고 싶은 글이 있어 첨부합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시인이며 교수이자 명상가이고 철학자라 들었습니다. 그가 쓴 저서 <빵장수 야곱>이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참으로 가슴에 와 닿아 이 글을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는 초희씨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라면서 띄웁니다.
두 아이가 야곱이 더 나이가 들어 죽게 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야곱은 이를 눈치채고 아이들을 불렀지요. 그리곤 옛날 어떤 제자가 스승과 행복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스승이 자신이 죽을 때가 온 것을 알고 제자들에게 죽음을 가르쳤던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스승은 그날 밤 햇불을 들고 제자와 함께 숲속으로 들어갔더랍니다. 그리곤 깊은 숲속에 이르자 스승은 아무 말 없이 햇불을 꺼 버렸답니다. 제자들은 놀라 스승에게 물었지요.
“선생님 웬일이십니까?”
스승은 ‘이 햇불은 꺼졌다’라고 말하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답니다. 제자는 두려움에 떨면서 ‘이 어둠에 저를 남겨두고 가시렵니까?’라고 외쳤지요.
어둠 속에서 스승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니다! 너를 어둠 속에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네가 빛을 찾아가도록 남겨두는 것이란다.”
저는 이글을 읽으며 새로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주 행복한 죽음에 대해서 말입니다. 자신이 떠날 시간을 준비하며 행복하게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남겨진 사람은 또 다른 빛을 찾아 발걸음을 옮겨 주는 것이 바로 행복한 죽음이라는 것이지요. 만일 떠나는 사람이 아무리 행복하다고 해도 남겨진 사람이 그를 놓지 않으면 결코 그 죽음은 행복한 죽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초희씨, 이제 새로운 빛을 찾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십시오. 그래서 어머니의 죽음을 행복한 죽음으로 만드십시오. 그리고 가시는 길에 힘겹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언제든 우주의 빛, 초광력을 찾으십시오. 작은 등대가 되어 당신의 앞날에 새로운 빛을 찾을 때까지 영우너히 지켜드릴 것입니다.
초희씨의 말대로 꽃 한 다발 같은 맑은 얼굴로 만나 뵙길 고대하며 좋은 날 정광호가 몇 자 적었습니다.
출처 :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2000.07.07. 초판 P. 171~183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웰다잉의 빛, 감사합니다.
행복한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빛VIIT책의 글, 감사합니다.
빛을 알고 함께 할 수 있음에 우주마음님과 학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빛과 함께 살아서도 행복하게 죽어서도 빛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번 뿐인 지구에서의 삶을 보다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빛책속의 귀한글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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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죽음이란 새로운 통로를 여는 문입니다>
깨우침을 주시는 귀한 빛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빛의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