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것이 맞느냐 틀리느냐? 어떤것이 선이냐 악이냐에 대해서 항상 고민이 많은데..
저는 나름 결론을 내렸는데, 이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모순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먼저 어떤것에 대한 (선이냐 악이냐의) 판단 매카니즘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입력:사실(자극,감각) ----> [ Logic ] -----> 출력: 판단
보통 수행자나 스님들은 마음을 비우라고 하는데, 제 판단에는 logic을 처리하지 말라는것으로
생각됩니다. 흐르는데로 받아들이고 판단하지 않고. 그냥 사실만 인식하는것..
이러면 선악, 분별에서 자유로워지죠..
좀더 진행하면 나 자신도 잊고, 이 세계도 잊고, 생각도 잊는 단계로 가죠..
아주 고요한 우주심에 머무는 상태라고 할까요,
음.. 수행하셨던 분들은 어떤걸 말하는지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 상태가 좋으냐, 올바른 판단을 하는게 좋으냐..
어떤것이 낫다 틀리다는 제가 말씀드릴수는 없고요..
저의 관심은 우리가 판단을 했을때 어떻게 하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가 입니다.
먼저 제가 이런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20대 초반, 한참 수행을 할때 어느날 수행중에, 세상의 이치, 사람이 나고 죽는것, 사람의 사는 목적등을
불현듯 깨달았읍니다. 아, 부처님이 말한게 이런것이고, 성현들이 말한게 이거구나..
(참고로, 이때 5층에서 수련하고 있었는데 창문열고 뛰어내릴뻔햇읍니다.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뭐에 홀린듯이 그냥 창문열고 뛰어내릴려고 하고 있더군요.)
여튼, 너무 기뻤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저는 좌절을 했죠..
아는것과 행하는것의 차이가 이렇게도 크구나.. 부처님이 정말로 대단하신분이구나하는걸..
왜 생각과 행동에 차이가 날까, 왜 항상 깨어이있을 수 없는가를 고민하다가,
먼저 나를 아는게 우선이구나 생각이 들어서 수행도 때려치게 되었죠..
그 이후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보다는, 나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살고있읍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막연한 선악관을 가지고 있읍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다음것들은 선이죠..
- 남을 도와야 한다
-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된다.
좀더 확장하자면..
-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 (예. 독립운동)
- 군대는 꼭 가야한다.
- 공산주의에 반대해야 한다.
살펴보면 나를 향하는게 아니라, 집단을 향하는것이 많죠
(자기 마음 보다는 행동이 판단 기준입니다.)
그 다음 우리가 악이라고 생각하는것. 재밌게도 선이라고 하는 사례보다는
악의 사례를 대기가 훨씬 쉽습니다. 금지하는게 많으니까..
- 도둑질, 살인, 사기, ....
- 거짓말 (왜 거짓말이 나쁠까요?)
- 자살 (종교적 관점에서)
악이라고 생각되는것 대부분은 개인적 이기심이 집단을 향하는것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여기서도 마음(의도)보다는 행동에 촛점이 맞춰져있죠..
주로 개인과 집단간의 관계에서 선악 판단이 이루어지는데..
개인적 차원에서의 선악도 있읍니다. 일명 양심이라고 하는거 모호한 그것이죠..
사회적 기준보다는 개인적 차원에서, 스스로의 선악 판단이 일어나는 경우죠..
양심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세한 토론은 기회가 되면 다시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여기서 양심에 대해서, 짧게 결론을 내자면,
양심이란 우리에게 내재된 선악 판별 장치라기 보다는,
교육에 의한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표출되는것이라 생각합니다.
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사탕을 훔치는것 - 양심에 꺼리낌 없음
초등학생이 사탕을 훔치는것 - 걸렸을때 혼날것에 대한 두려움
어른이 사탕을 훔치는것 - 양심 (=두려움의 다른 표현)
그래서 처벌을 잘 피할 수 있게된다면, 양심이라는 이 허무맹랑한 개념은 동작하지 않게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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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적으로 선악에 대해서 결론을 내자면, 사실 자체에 선악은 없고 어떤 판단에 의해서
선악이 결정되게 되는데, 이 판단이라는것이, 사회적 안전 (=집단의 생존)을 위해,
사회적 약속에 의해서 개인의 이기심을 제어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즉, 사회적 약속이 선악의 판단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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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모즐로의 욕구발전 이론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저는 욕구발전을 모슬로와는 약간 다르게, 다음과 같은 순서로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욕구발전단계 : 생존/안전/사회/명예/자아실현
욕구발전 단계에 따라 악이라고 규정되는 범죄를 구분해 보겠습니다.
생존 - 살인(개인생존), 내란음모/간첩/사상범(집단생존)
안전 - 도둑질, 침입, 폭행
사회 - 불량식품, 환경
자아실현 - 예술이냐 외설이냐?, 아청법, 음란물,
명예- 명예훼손
묘하게도, 처벌수위가 가장 높은순으로 배열됩니다.
의도적 살인은 법정 최고형이고, 과실치사도 최소 5년을 받습니다.
(뭐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범죄 또한 있고, 처벌 수위도 다양한데,
일반적인 경우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범죄)를 대상으로 했읍니다.)
즉, 우리는 본능적으로 생존에 위협이 되는 행위를 가장 큰 악으로 정의합니다.
죄의 경중은 욕구발전 단계와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존/안전 욕구 단계에 머물러 있기에..
이러한 범죄에 대해서 아주 예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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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결론은 선악은 욕구발전 단계에 따른, 사회적 관계에 따라서 경중이 나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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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으로 내가 알고있던 선악관이 무너진게..국민학교 2학년때였읍니다.
그때 시골에 살았는데, 겨울이었읍니다.
강원도 산골이라 겨울에는 아주 춥습니다.
저희집은 외딴집이라 주변에 아무 집도 없고 밭정도만 있었고, 주변은 모두 산이었읍니다.
이 산에 근처 군부대에서 동계훈련을 나왔는데, 그때 군대란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군대였죠..
사병들은 달랑 야상 하나만 입고.. 텐트도 없이 나무가지로 얼기설기 얽은 움막집 비슷한데서
며칠씩 지내고 있었읍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군인들 불쌍하다고 김치를 퍼주셨는데..
한번은 김치를 퍼주시다가, 김치독 근처에 있는 나무가지에 눈 위쪽을 찔리셨읍니다.
그걸보면, 분명 남을 도와주는것은 복받을 만한 일인데, 왜 다쳤을까?
남에게 무언가를 주는것은 착한일이 아닌가? 등등 거의 한달 이상을 고민해서..
선악이란 정해진것이 아니고 그때 그때의 판단이다라고 결론을 내렸죠..
제가 생각하는 선악이란, 개인의 이기심 (주로 생존)을 만족시키고,
집단의 영속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계약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기득권 보장을 위한 선악개념도 은근슬쩍 포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근로의 신성함
- 자랑스러운 국방의 의무
- 정직한 납세의 의무
어떤것이 진정 맞고, 틀려서 선악이 아니라, 집단에 유리해서 선악이라는게 현재까지의 제 주장이고요.
그렇기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막연한 선악관을 의심해봐야 한다는게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예로, 살인이 나쁘다라는것을 진정한 선악의 관점에서 설명할수있을까요?
겨우, 공익적 관점(=사회적 계약)에서만 설명할 수 있지, 진짜 악이라는것은 설명할 수 없죠
(하느님이 나쁘다고 하셨기에 나쁘다라고 하신다면, 하느님이 말씀하셨다는 증거를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것이 개인의 생존욕구를 지키기 위해서 시작하였다면, 인간은 처음부터 이기적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즉 저는 인간은 이기적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이기적인 인간에 있어서 선악이란 개념자체는 없는데,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선악개념이 생긴것이죠.
당연하겟죠.. 혼자 무인도에 사는 사람은 선악 자체가 없겠죠..
우리는 막연한 선악관을 가지면 살고 있읍니다. 보통은 의심하지 않죠..
하루 하루 살기 바쁜데, 언제 그런 고민을 하겠습니까? ^^
선악의 개념외에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믿고 따르는 개념이 많습니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나는 행복하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다
-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
- 무엇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가?
- 왜 부자가 되고 싶은가?
하나 하나 의심해서 자신의 논리를 체계화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했고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싶습니다.
다음은 도움을 받고 싶어서 올리는 글 입니다.
의문 : 인간은 이기적인데, 자기종족을 제외한 다른 대상에게 까지 이타심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가 인간은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해결 안되는것이 이타심입니다.
이타심은 남의 아픔을 공감하고 도와주는것인데..
사람이 이기적이라면 이러한것은 없어야 할것입니다.
나름, 집단의 영속을 위해서 이런것이 존재한다고 설명하기는 하지만..
이타심의 범위는 같은 종족을 벗어나, 동물 곤충 하다못해 식물에까지 미칩니다.
제가 이타심이있다라는걸 느낀것은.. 5살쯤인데,
그때는 제가 첩첩산중 산골에 살았었읍니다.
봄이었던것 같은데.. 그때 집앞 개울 바위벽에 조그만 새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고 있었읍니다.
키는 닿지 않는 위치에 새집이 있고 언듯 언듯 새끼들이 지저귀는게 보여서..
새끼새들을 너무 보고 싶었읍니다. 그래서 이리 저리 방법을 찾다가..개울이라 돌이 많았읍니다.
그래서 돌을 막 던져서 새집을 맞추려고 했읍니다.
어미새 부부가 주변을 막 날면서 짹짹 울던 말던, 한참을 던져서 드디어 새집을 떨구었는데,
살펴보니 털도 나지 않은 새끼새가 5마리가 있었읍니다.
처음에는 신기해 만져보기도 하고, 안아보기도 했는데..
나중에 어미새한테 줄려고, 새집에 넣어서 올려줄려고 하니 키도 안닿고 한참을 고민했읍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우리가 잘때처럼 이불을 덮어주면 된다는 생각에..
얼렁 집에가서 호박잎을 따다가 새끼새들을 바위에 눞히고 덮어줬거든요..
그리고 집에 갔다가, 그 다음날 새끼새들이 어찌되었을까하여 부리나케 가봤더니.
호박잎을 덮은 상태로 5마리가 다 죽었더군요..
그때 너무 마음이 아팠죠.. 새끼새의 마음이나, 어미새의 마음이 느껴져서..
저는 이런게 이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타심이 우리에게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댓글 선,악은 종이 한장차이..???
제 생각에는 판단차이...??? ^^
너도좋고 나도좋으면 선 아닐까요.
>>보통 수행자나 스님들은 마음을 비우라고 하는데, 제 판단에는 logic을 처리하지 말라는것으로...<<
마음을 비우라고 하는것은 "참나"를 찾기 위함이지, logic을 처리하지 말라는것이 아님. 마음(생각의 집합)도 몸도 내가 아니고 나의것임. 참나를 찾아야만 깨닮음이 오는것이고 세상의 이치, 사람이 나고 죽는것, 사람의 사는 목적을 올바로 이해하는 법입니다.
이건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는대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나란 무엇인가...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제 생각은 선악은 절대 기준은 없고, 상황에 따른 상대적 기준만 있다고 봅니다.
저는 마음공부하는 사람은 아니고요.. 무각님이나 라무님이 공부하시는분들 같아요..
저는 그냥 프로그래머입니다. ^^
길고 긴 질문 혹은 주장의 요지는 이기적존재인 인간의 이타심인가??인간의 생물학적 속성,사회적속성,영적속성이 분리된 건 아닐진대, 잉간들은 어느 한쪽만 붙들고 목숨건다..ㅠㅠ
저는 사회적, 영적속성은 본능의 그림자라고 생각합니다.
의문에 대한 답글을 적는 것은 솔직히 어렵습니다... 이런 의문에 답하는 것은 저의 처지상 지혜가 아닌 지식이 될 것 같네요... 틀림없이 답은 있는거 같은데 아직도 갈 길이 멀어서...//
저의 의견이라고 할게요... 시비도 선악도 이타심도 없는 것이죠... 일단 의문점에만 답한다면 구조들의 합창이라고 할까요? 우리 몸의 각 기관들은 다른 기관들을 위한다는 마음없이 우주의 질서에 따라 각기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작용들이 결과적으로 몸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이런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각 기관들은 그냥 자신의 일에만 열중합니다... 간이 심장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의식없이 주어진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심장에 유리해지는 것과 같죠... 어릴 적 님의 새에 대한 마음이 바로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닐까요? 이름을 규정한다면 이타심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타심과 다른 것 같아서요... 왜냐하면 제가 오래 전에 마음수련을 좀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어떤 할머니께서 무조건 시키는대로 몇 달 동안 마음을 없애고 나서 한다는 말씀이 "이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난다...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모든 것이 너무 좋다'' ... 아마도 이런 감정은 이타심과 구별되는거 아닐까요?
저는 이 경지가 참나의 그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는 아직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만나는 사람 모두가 사랑스러워 보면 눈물이 나는 것을 경험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참고가 혹시라도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경지가 안되어서 말할 것은 없네요/// 다만 위의 할머니로 부터 유추해 본다면 참나의 경지에 도달하면 각각 분리의식을 느끼는 세포들이 완전체를 인식하게 되고... 그 인식으로 인해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의식이 드러나는거 같네요... 구태여 이름 붙이자면 이타심의 순수체? 라고 할 수도 있겠죠... 이타심은 마음이지만 그건 마음을 없애야 나오는 마음?(형용할 수 없으므로 이렇게 씁니다...)이니까 다른 개념이겠죠... 어린이의 마음은 오히려 참나에 가까울 수도 있겠죠... 아니 어른의 마음이라도 위와 같은 사례에서는...도는 완성이라고 하지만 시작일 수도 있다고 보니까 땡은 아니겠죠... 참나의 경지가 위의 것과 비슷하다면...
쓰다 보니 개념상 저도 헷갈리네요... 하여튼 전체적인 구성은 님이 이해하신거 같아서 설명은 된거 같네요...^^
개념상 헷갈린 것이 쓰다보니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잘못 이해한데서 나온 거였네요... 가짜인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은 가짜이지만 그 안에는 참나의 성질을 가진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이것을 도외시한 잘못이 있군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마음과 행동 속에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참나의 그것이 영화의 필름 중에 하나씩 끼여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무각// 항상 좋은 말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분석적이고, 무각님은 종합적이신것 같아요. 아마 예전에 공든탑이 무너진경우를 많이 겪어서 하나라도 모순이 있는것을 못참는 성격이 된것 같네요. 확실하게 검증이 되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않는다고 하는게 맞을것 같네요. 무각님은 확신으로 가시는건가요? 아니면 희망으로 가시는건가요? 가보지 않는한 희망일거라 생각하는데, 저는 그런것을 참지 못합니다. 검증 되기전까지는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있는것이겠지요.. 무각님 말씀은 좀더 곱씹어보고 다시 말씀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사람은 감정이 무엇보다 발달된 존재~
그 감정이란 걸 스스로가 바라보고 인지할 수 있는 상태가....
관조는 인간만의 특징이라고 하죠.. 뭐 모르죠.. 동물이랑 얘기해본것이 아니니까.. ^^
저는 몇년 전부터 입을 닫고 삽니다. 처음에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막 떠들었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제 블로그를 보시면(제 블로그를 방문하시라는 뜻이 아님), 몇 개의 카테고리를 만들어놨는데 제일 위에 ‘종교’가 있습니다. 역사, 시사 등은 글을 채워 넣고 있지만, 종교에는 전혀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머리로 아는 깨달음은 깨달음이 아니고 몸으로 깨닫는 것이 진짜 깨달음이라 합니다. 그래서인지, 제 딴에는 머리의 지식을 남에게 잘 설명을 해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군요. 그래서, 가끔 입이 근질근질하긴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제 자신에게도 해가 된다는 것을
알기에 침묵합니다.
하지만, 잔잔한 호수에 모래알 하나 던져 넣는 마음으로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이기심만 있습니다. 이타심은 없습니다. 우주 그 어디를 뒤져봐도 이타심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티끌의 티끌만치도 없습니다. 이기심만이 존재합니다. 그 이기심이 예수께서 강조하고 강조하신 사랑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고맙습니다.
라무// 저도 이야기 하지 않은지 오래되기는 했네요.. 저는 저 자신에게도 확신이 없기에..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모든것이 상대적이라 생각하기에..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의 사랑이 이기심이라는 이해가 안됩니다. 뭐 억지로 이해할려면 할수야 있겠지만.. 더 궁금한것은 라무님이 사용하시는 이타심이 제가 사용하는 이타심이라는 말고 같은것인지요?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말하는 이타심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반하는 행동만을 말하는것이거든요. 어떤 판단이나 교육의 결과가 아닌 그냥 내재된것이라고 생각되는 본성같은것..이 이타심을 말씀하시는것이 맞는지요?
라무님~
음~ 어쩌면 저와 비슷한 사유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우주가 존재하는 근거이지 싶기도 합니다만~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그렇기에 절대적 선악 기준은 없고, 어떤 사실에 대한 상대적인 개인의 판단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논객분들이 여기에서 이런 문제를 토론하는 자체가 선의의 행동이고,
또한 이타심 아닌가요?
그럼 여러분들이 지금 무엇을 위해서 토론하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선,악과 이타심,이기심이 구분될것도 같습니다.^^.
역사나무님 반갑습니다. 어떤 것을 토론하는 이유는 시혜의 뜻도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배우기 위함입니다. 좀더 저의 논리체계를 완전하게 하고자 하는 욕심도 있고요. 만약 베푼다는 생각으로 토론하면 이타심이겠지만, 배운다는 생각으로 토론하면 이기심이겠죠. ^^
꼬마야님은 어디에 쓰려고 배우는지 물어도 될까요?^^.
그냥 아주 단순하게 지적인 호기심인지,
아니면 공부를 많이 해서 깨달음을 얻기위함인지,
만약 꼬마야님께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정도의 지적인 깨달음을 얻었다고 가정한다면,
그 깨달음을 어떻게 사용하실 생각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역사나무// 깨달음이 목표는 아닙니다. 깨달음은 허구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인간은 자신의 실존을 증명할 수 없기에 내가 진리 혹은 깨달음을 얻는다해도 그게 맞는지 틀리는지 증명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깨달음을 추구하던것을 그만둔지는 4년되었고.. 저의 주 관심사는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발현되고 무엇에 영향을 받는가 입니다. 사용하고자하는곳은 제가 프로그래머인데, 인간 의식을 그대로 구현해내는게 제 꿈입니다. 근데 안될것같아요.. ㅎㅎㅎ 모르는게 너무많아서.. ^^
처지에 따라 선악의 구분됨이 크겠지요.
그렇다고 선악의 절대적 기준이(근원이) 없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이것을 설명하기엔 제가 부족하네요.
선악의 크기와 질은 가치와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가치를 높게 보느냐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고 봅니다.
이타심은 사회, 조직의 유지를 위한 중요한 덕목이죠.
또한 자신의 이타심으로 자신이 온전히 유지되는 효과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는 생각에서 이타심이 발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안정을 찾기위해 다르게 말하자면 내가 편해지기 위해 이타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또한 강함, 우월함에서 오는 무관심이나 자신감에서도 이타심을 종종 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서 생기는 것이라 봅니다.
이타심을 모두 선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당당함과 편안함에 있다면 거기에 옳음이 있고 선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과연 절대적 기준이 있는가가 의심이 들거든요.. 의심이야 하지만, 증명할 방법도 없고.. 좀 난감한 상황입니다.. 저는 그래서 모든것은 상대적이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답이 없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