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전
1949년 6월 6일 새벽 중부경찰서장 윤기병이 지휘하는 50여 명의 경찰들이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특경대원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해체 시킨날 입니다.
출근하는 특위 요원들(35명)을 강제 연행하여 경찰서 유치장에 감금하는 불법을 자행하던
경찰은 이들의 비행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무차별적인 고문을하며
신익희 국회의장 등 의원 대표가 경무대를 항의 방문했을 때 대통령 이승만은 “특경대 해산은 내가 지시한 것”이라고 숨김없는 고자세를 보였다고 하죠...
그리고 이어 김구 선생 암살과 제헌국회 內 무소속 소장파 의원들을 '남로당 프락치'로 씌워버린 사건까지 이어지고.. 연일 '반공 궐기대회' 집회들이 일어납니다.
반민특위는 위원장 김상덕 선생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물러나고, 이후 후임자로 이승만측 인사이자, 한민당 당원출신 이인 선생(일제강점기때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독립운동가)가 반민특위 위원장 자리 맡으면서 반민특위를 박살냄.(이인 선생은 반민특위에 대해 처음부터 반대해왔던 입장 가졌습니다.)
[의혹과 진실 - 한승헌의 재판으로 본 현대사](4) 반민특위 사건 (下)
첫댓글 일제 시대 때 독립운동가 체포하고 고문하던 순사가, 해방 후에는 경찰이 되어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 체포하고 고문한다는 말이 있죠.
우리 나라의 본격 막장 역사의 시작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생각,.
친일문제.. 저는 최소한이라도 과거사에 대한 반성하는 자세 + 친일경찰만 제대로 정리만 했었으면 오늘날 친일문제가 이렇게까지 크게 문제가 남거나 논란이 격렬하게까지 가지않았을거라 확신합니다.
저는 가장 이해가 안가는 얘기 가운데 하나가 '친일 경찰들 없었으면 새로운 나라 이끌어갈 인재가 없다'는 소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어요. (해방 직후에 건국준비위원회-인민위원회로 이어지는 지방민간 자치 기구들이 치안,행정 업무를 훌륭해 처리했다는것만 봐도 그 주장은 논박되버립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85638&cid=40942&categoryId=31691
@Wehrmacht 오히려 그 친일경찰들 때문에 민심이 더 흉흉해진 원인이 컸다고 보는 측면에서 크게 봅니다. (이 부분은 80년대 '개념찬 기자' 시절의 조갑제씨가 지적했던부분이었습니다. 친일 경찰들이 한국 사회를 왜곡된 가치관들 투성으로 만든 장본인들이라고.. 그들은 반드시 단죄되어야한다고 까지 말했던게 그때 조갑제씨...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이란 책에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치안과 행정, 초동수사 관련등 경찰로써 기본적으로 지녀야할 임무이런거 제대로 수행하기는 커녕 고문과 조작 같은거에 굉장히 유능했던 사람들이었어요.
친일 경찰들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지고 불만터진게 대구 10.1 사건이었지요.
@Wehrmacht 결국 근본적으로는 당시 미국의 세계전략의 일환이라는 보다 넓은 차원에서 이해 할 필요가 있는거죠. 일본도 기본적으로 마찬가지의 경우였으니까요.
@kweassa 일본 GHQ 경우는 그래도 '간접통치' 방식으로 초창기에는 민주주의 교육 의식 제도를 확립하고자 하기라도 했었어요.. 초창기에는 사회주의 활동, 노조활동에 대해서도 보장했었던게 GHQ였습니다.(물론, 레드퍼지-역코스 정책- 전후로 급속히 방향 틀어서 구 일본 극우파들 키워주는 짓을 했지만..) 반면, 한국의 미군정(미 24군단) 경우는 GHQ와 달리, '직접통치'를 했었다는거...(...) 이 직접통치가 저는 미국이 한반도의 실정을 전혀 이해못하고 저지른 실책이라고 보고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