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名, 字, 號는 어떻게 다른가?
오늘날의 사람들은 대부분 이름은 있으나 字는 없다. 그러나 이전 사람들은 이름도 있었고 字도 있었다.
중국 고대의 人名은 일반적으로 매우 소박했다. 夏殷時期(하은시기)의 孔甲·盤庚(반경)·武丁·帝辛 등은 모두 干支를 사용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시간을 중시하는 관념과 관련이 있다. 후에 언어·문자·문화가 발달하면서 이름 역시 갈수록 복잡해졌다. 周代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예를 들면 어린이는 일반적으로 출생 후 백일이 되어야 비로소 이름을 지었다. 때로 제후 자제의 이름을 두고 大夫들이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일반 백성들의 경우 "狗"나 "奴" 등 특별히 나쁜 이름을 짓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아이가 잘 자란다고 믿었다.
字는 보통 이름에 대한 해석과 보충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또한 이름과 서로 표리의 관계에 있어서 다른 말로 "表字"라고도 한다. 禮記 에 "男子二十, 冠而字", "女子許嫁(여자허가), 而字."라고 하였다. 이것은 字란 남녀가 성년이 된 후에 취하는 것임을 말하며, 또한 그들이 이미 사람들의 존중을 받기 시작했음을 나타낸다. 옛날 사람들의 字는 대부분 이름과 그 뜻이 유사하거나 서로 보완적인 것이 많았다. 예를 들면 諸葛亮(제갈량)의 자는 孔明인데, "亮"과 "孔明"은 뜻이 비슷하다. 岳飛(악비) 字는 鵬擧(붕거)인데 "飛"와 "鵬擧" 역시 뜻이 서로 비슷하다. 關羽의 字는 雲長인데 이는 깃을 펴서 구름 속으로 날아오른다는 뜻으로 서로 보완적이다. 趙雲의 자는 子龍인데 구름이 용을 좇는다는 의미이다. 때로 옛 사람들은 이름과 字를 책 속의 유명한 구절이나 成語에서 따오기도 했다. 그리고 이름과 字 사이에는 서로 반대되는 뜻을 가진 것도 있다. 예를 들면 朱熹의 字는 元晦이고, 원대 趙孟 부의 字는 子昻(자앙)이며, 淸代 산문가 管同의 字는 異之인데, "熹"와 "晦", " "와 "昻", "同"과 "異"는 모두 반대말이다. 어떤 사람은 또한 小字, 즉 乳名을 갖기도 했다. 南朝 宋武帝 劉裕의 小字는 寄奴였고, 조조는 阿瞞, 劉禪은 阿斗였다.
이름과 字는 가족 사이의 항렬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先秦時期에는 늘 이름과 字에 伯(孟)·仲·叔·季를 집어넣어 형제의 長幼를 나타냈다. 白夷·叔齊의 경우 伯은 형, 叔은 동생을 말한다. 孔丘의 字는 仲尼인데 仲은 곧 둘째를 의미한다. 한대 이후 점차로 이름이나 혹은 字에 같은 글자나 혹은 같은 부수를 사용하여 同輩라는 것을 나타냈다. 당대 顔眞卿의 사촌형제 이름은 卿·曜卿·春卿이었다. 송대의 蘇軾과 蘇轍兄弟는 "車"부를 써서 同輩關係를 표시하였다. 이런 현상은 현재에도 흔하다.
號는 사람의 별칭으로 別號라고도 한다. 이전에 문인들은 왕왕 자기의 별호를 가지고 있었다. 李白의 호는 靑蓮居士였고, 杜甫의 호는 少陵野老였다. 송대 이후 호를 취하는 풍조가 더욱 성행하여 어떤 사람은 수십 개의 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오늘날 작가들의 필명과 같은 것이다. 호는 왕왕 그 사람의 취미나 기호를 반영한다. 자주 쓰이는 "山人"이나 "居士" 등은 그 사람이 利祿을 우습게 보고 스스로 淸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말한다. 歐陽修의 만년의 호는 六一居士였는데 이것은 "一萬卷書·一千卷古金石文·一張琴·一局棋·一壺酒"에다 "一老翁"을 합쳐서 모두 6개의 "一"에서 따온 것이다. 어떤 사람은 호에 자신의 속마음을 담기도 했다. 남송의 화가 鄭思肖는 송이 망한 후 스스로 호를 "所南", "木穴國人"("木"과 "穴"을 합쳐 쓰면 "宋"이 됨)이라고 했다. 물론 호와 그 사람의 행실이 별개인 경우도 있다. 袁世凱는 파직을 당하여 고향에 머물고 있을 때 스스로 "洹上漁人"이라고 했으나 그의 뜻은 "東山再起"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름과 字는 부모나 연장자가 지어 주지만, 호는 본인이 스스로 취하기 때문에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정서를 반영할 수 있다.
이름·字·號의 사용도 법도가 있었다. 이름은 일반적으로 謙稱·卑稱으로 쓰이며,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 혹은 나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을 부를 때 쓴다. 尊稱으로 쓸 때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를 때는 字나 호를 쓴다. 같은 연배끼리라도 매우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많은 경우 상대방의 이름을 바로 부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군주 혹은 부모나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불렀다가는 大不敬, 심지어는 大逆이 된다. 이것이 바로 중국 고대의 避諱制度이다.
이외에 옛 사람들은 자주 그 사람과 관련이 있는 지명·관작명·시호로 이름을 대신하였다. 孔北海(孔融), 韓昌黎(韓愈), 杜工部(杜甫), 岳武穆(岳飛) 등.
[출처] 姓名, 字, 號는 어떻게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