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하나님은 무지한 종교적 열심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30,31절에 보면 입다가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 임하면서 하나님께 서원한 사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원의 내용인즉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39절에 보면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귀환할 때 그를 자기 집에서 맨 먼저 나와 영접한 자신의 하나뿐인 딸에게 서원한 대로 시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입다의 행위와 관련하여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입다의 서원과 이행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해석에 따라 입다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첫번째 해석은 입다가 문자 그대로 번제를 염두에 둔 서원을 했고, 자기 딸에 대해 그대로 시행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해석은 입다가 번제가 아닌 성막 봉사를 염두에 두고 서원했고 그에 따라 자기 딸을 평생 성막 봉사자로 지내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만일 후자의 견해를 취한다면 입다의 서원은 바른 것이었고, 또한 한번 한 서원에 대해서는 자기에게 해로울지라도 지키려고 한, 그의 신앙을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만일 전자의 견해를 취한다면 이것은 입다의 행동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견해를 취한다면, 그는 이방 땅에서 우상 숭배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에 무지한 종교적 열심을 보인 것으로, 오히려 하나님께 심판받아 마땅한 가증한 행위를 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즉 입다의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열심으로 오히려 화를 자초하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는 하나님께 대해 무지하여서 그릇된 종교적 열심을 보이는 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실례를 들자면 구약 시대에는 사울 왕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이 오기로 한 시간보다 지체하자 스스로 제사를 지내는 망령된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분명 종교적 열심으로 그와 같이 행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악행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 일로 하나님께 버림받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삼상 13:8-15).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열심히 지켰습니다. 십일조도 꼬박꼬박 했고, 금식도, 기도도, 전도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무지했기에 하나님의 뜻에서 먼, 악한 일에 몰두했고, 심지어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잘못을 범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해 무지한 종교적 열심이 얼마나 큰 오류를 낳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적 열심도 중요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종교적 열심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칭찬과 상급을 기대할 수 있게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습니까? 그 열심이 하나님의 뜻에 무지한 인본주의적 열심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또 그에 대해 열심을 보임으로써, 하나님께 칭찬듣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