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연결고리]
이왕 ‘질소과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한국 소비자들은 특별히 과자 내용물의 ‘온전한 형태’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과자회사들이 봉지과자에 질소를 과다하게 주입하는 행태에 대해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들어있네요!”하면서 비웃기도 하고, 호기심 많은 분들은 질소과자를 연결해 뗏목으로 만들어 한강을 건너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지만, 과자회사들이 질소과자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나름의 변명거리가 있다.
물론 가격은 인상해야겠고, 부피는 크게 보여야겠고, 내용물을 줄여 원가는 절감해야겠고, 그러다보니 ‘부풀어’ 수준의 질소과자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80~90%는 될 것이다. 하지만 10~20%의 이유를 찾는다면, 한국인들이 유독 과자 내용물 파손에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마트 도매유통을 하는 후배에게 “과자가 부스러졌다고 반품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니?”하고 물었더니 “글쎄…… 거의 없는 것 같은데”하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라는 반응을 보인다. (중국에서도 반품은 거의 도매유통사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한국에는 그런 손님이 제법 있다. 특히 얇은 감자칩 종류의 과자가 그러한데, 뜯어보니 내용물이 깨져있다고 바꾸러 오는 손님이 종종 있다. 물론 판매자인 나로서도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싶을 정도로 심하게 부스러진 경우도 있지만, ‘그냥 먹어도 될 텐데’하는 과자를 들고 오는 손님도 간혹 있다. 각자의 취향이니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 과자는 갈수록 최대한의 안정성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진다. 빵빵하게, 더욱 빵빵하게.
감자칩을 두고 그러는 것은 분명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종이로 된 박스과자의 형태가 살짝 찌그러졌다고 바꾸러 오는 손님은 나를 난감하게 만든다. 고래밥이나 초코송이 같은 과자들인데, 박스 모서리가 살짝 찌그러졌다고 내용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걸 부득부득 바꾸러 온다. (찌그러진 제품은 아예 진열을 안하기 때문에 사실 고객 부주의라 생각하지만, 굳이 그걸 따지지 않고 그냥 바꿔준다. 도매유통사가 뒤집어쓰겠지, 뭐!)
초코파이나 오예스 같은 박스과자는 포장을 쉽게 뜯기 위한 절취 라인이 있는데, 진열되어 있는 과정에 그것이 살짝 뜯기는 경우가 있다. 그런 과자들은 내부에 낱개포장이 되어 있으니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꼭 바꿔달란다. (초코파이를 ‘선물’하려는 건가? 혹시 공동경비구역?) 사실 이것도 손님이 제품을 고르다가 박스를 힘주어 누르면서 뜯긴 경우가 많을 테지만 역시 군말없이 바꿔준다. (도매유통사가 뒤집어쓰겠지, 뭐!)
심지어 새우깡을 바꿔 달라는 손님도 봤다. 새우깡 내용물 일부가 살짝 깨져있었다. 새우깡이 반토막이 났다고 새우꼬리 부분만 먹게 되는 것도 아닐텐데, 하면서도 바꿔줬다. 그건 그냥 애교스런 에피소드 정도로 삼아주리라! (역시, 도매유통사가 다 뒤집어쓰겠지, 뭐!)
일본 편의점에는 반품이라는 것이 없다. 일본 편의점 오나들에게 반품을 이야기했더니 “한국에는 반품도 있냐”며 깜짝 놀란다.
물론 고객이 제품 이상을 이유로 편의점에 반품을 하는 경우는 일본에도 있다. 그건 가맹점이나 본사에서 당연히 반품해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도 가맹점이 본사에 반품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 일본 편의점 오나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들이 반품을 ‘상상도 못한다’고 말하는 것에 나는 반대로 놀란다.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은 어떻게 합니까?” ― 손님이나 독자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듣는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본사에 반품을 한다. 삼각김밥이나 도시락, 우유 같은 후레쉬푸드를 제외하고, 음료수, 과자, 문구류, 스타킹 등은 대부분 반품이 된다. 유통기한이 지나도 상관없다. 파손이 되었어도 괜찮다. 이미 일부를 먹은 것, 완전히 너덜너덜해 진 것이라도 전혀 상관없다.
그럼 본사에서는 이렇게 반품으로 들어온 물건을 어떻게 처리 할까? 간단하다. 공급자에게 떠넘긴다. 업계의 ‘관행’이다. (이게 편의점만 그러는 것 같은가? 우리나라 모든 유통이 거의 그렇다. 서적 유통은 안그럴 거라고? 천만에! 당신이 서점에서 거칠게 뒤적거린 책은 다 그렇게 출판사에게 떠넘겨진다.)
물론 이것이 ‘갑질’이라는 지적이 있자 지금은 제도가 바뀌었다. 지금은 반품이라 하지 않고 ‘재고처리’라고 부른다. 용어만 바뀌었다. 완전히 말장난이다. 그러한 재고처리에 일정한 한도금액을 두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본질은 대체로 바뀌지 않았다. 매입가격에 반영하는 방식 등을 통해 여전히 반품의 상당 부분은 공급자가 떠안고 가는 몫이다.
얼마전 뉴스에 롯데마트가 그동안 ‘후행물류비’를 받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정위에서 수천 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예정이란다. 사실 이게 롯데마트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대형유통사는 거의 대부분 그렇게 한다. 이마트도 홈플러스도 GS슈퍼도 하이마트도 다 그럴 것이다. 대대로 그렇게 해왔다.
용어가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후행물류비’는 간단한 개념이다. 보통 마트에서 판매되는 물건은 납품업체 → 마트 물류창고 → 각 마트 순으로 물건이 이동한다. 마트 본사에서 납품업체에 “새우깡 10박스를 창고로 갖다 놓아라”하고 주문을 하면, 마트 본사는 그것을 다시 1박스씩 10개의 가맹점에 나눠주는 방식이다. 여기서 1단계 ― 그러니까 ‘납품업체가 마트 물류창고에 물건을 갖다주는 비용’을 납품업체가 부담하는 것은 모두가 수긍할 것이다. 그런데 2단계 ― ‘물류창고에서 각 마트로 가는 비용’까지 납품업체에 부담시킨다면? 그것을 그동안 그럴 듯하게 ‘후행물류비’라 불러왔다. 갑질의 표본이다.
당신이 납품업체 관계자라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수긍할 사람도 있고, 수긍못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트 입장에서는 “어차피 너희(납품업체) 물건을 우리가 팔아주는 거니까 너희가 부담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일부 납품업체 입장에서는 “마트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왜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가”라고 ‘가진 자의 횡포’로 여길 것이다. “억울하면 앞으로 납품하지마!”하는 것이 마트의 최종적인 입장일 테고.
사실 나는 이 사안에 회의적이다. ‘반품’이라는 용어가 ‘재고처리’로 바뀐 것처럼, 어차피 마트는 ‘후행물류비’라는 용어만 없앨 것이다.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납품업자에게 계속 부담시키겠지. 그래서 세상은 ‘눈 가리고 아웅’인 것이다.
자, 이것만 알아두시라.
당신의 반품은 고스란히 공급자에게 돌아간다. 편의점 점주는 웃으면서 반품해줄 것이다. 어차피 자기는 별로 손해 볼 것도 없으니까 손님이랑 얼굴 붉힐 이유가 없다. 이 지점에서 간단히 생각해보라. 손님도 손해가 없고, 점주도 손해가 없고, 본사도 손해가 없고, 그럼 대체 누가 손해를 보는 거지? 지금껏 반품을 하면서 이런 생각은 쉬이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본사에 반품하는 것을 한국의 편의점 점주들은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한다. 일종의 ‘권리’라고까지 여긴다. 좀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본인이 재고관리를 잘 하지 못한 책임을 왜 ‘누군가’에게 떠넘긴단 말인가? 일본 편의점 점주들은 한국의 반품 관행을 바로 그렇게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의 다름인가, 혹은 어느 한쪽의 틀림인가?
보통 갑질을 하는 사람(혹은 회사)은 그것을 권리 혹은 관행이라 말한다. 확신 있게 그렇게 생각한다.
앞으로는 감자칩 하나를 바꿔달라 요구하는 일에도, 그동안 당신이 ‘권리’라고 무심코 생각해왔던 행위에도, ‘갑질’의 비릿한 고리가 얽혀있을 수 있다는 사실 ― 딱 그것 하나만 기억해두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