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TV를 놓지 않은 대신 스크린을 설치했어요. 손님들이 오시면 소파는 물론 계단 어디에서도 영상을 함께 볼 수 있어요. 계단이 객석이 되고 평상은 작은 무대가 될 수도 있고요. 아이가 크면 언젠가 저와 남편 모두 악기를 하나씩 배워 친척들, 친구들을 이 자리에 초대해 합주 공연을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답니다. 이렇게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부터 우리 가족만의 무비 나잇을 즐길 수 있어요 :) 라이온킹 마니아인 저희 부부는 이제 아들과 라이온킹을 함께 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중층의 거실 옆으로 저희 부부의 드레스룸, 욕실, 침실이 자리하고 있어요. 드레스룸과 욕실의 비중이 커서 침실을 옥탑에 배치했습니다. 사진의 계단으로 올라가면 침실이 나오는데 정말 침대 하나 딱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에요. 패션을 전공하고, 의류 회사에서 일했던 저는 옷 욕심이 참 많은 사람이었어요. 이 집으로 오면서 옷을 트럭으로 처분하며 맥시멀리스트의 삶도 정리했습니다. 오랜 기간 차(tea)를 사랑하다 보니 감정에 휘둘리며 하던 소비습관이 차차 사라지더라고요. 이제는 이 방에 쏙 들어갈 만큼만 남았네요. 계단 밑까지 알차게 수납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드레스룸 한쪽 벽은 안방 욕실처럼 베이비핑크로 칠해주었어요. 제가 평소에는 여자여자할 일이 많지 않은데, 여기만 들어오면 소녀 감성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제가 인테리어를 할 때 주방과 함께 제일 신경을 썼던 곳이 안방 욕실인데요. 살짝 톤 다운된 베이비 핑크 너무 사랑스럽죠? 이 컬러도 벤자민 무어에서 골랐어요. (사랑합니다. 벤자민 무어!) 수납장 문에 2cm마다 홈을 내어 라인을 넣어주었더니 훨씬 완성도 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 모든 수전, 수건걸이 등의 액세서리는 미국, 유럽 아마존에서 직구로 구매하였습니다. 세면대 쪽은 건식이고 맞은편은 샤워 수전, 욕조를 설치해서 습식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모든 위생 도기는 아메리칸 스탠다드로 넣었어요. 설계할 때 이 큼직한 욕조를 넣기 위해 침실을 포기했죠. 아이에게도, 저희 부부에게도 힐링이 되는 소중한 공간이에요. 스킵플로어 형태라 중층인 거실에서 반 층 올라가면 2층이 나오는데요. |
남편은 아파트처럼 편리한 곳을 선호했고, 저는 지금껏 살아온 대로 주택을 주장했어요. 착한 남편은 못 이기는 척 제 손을 들어주었는데 설계를 시작하면서 집안 곳곳에 필요한 공간들, 크고 작은 생활의 편리함을 위한 아이디어들을 내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고심했어요. 시공하는 동안에도 하루도 빼지 않고 현장에 나가 있었답니다.
구옥을 철거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네요. 추운 집이여 안녕.
8개월 동안의 설계, 5개월간의 시공 기간 동안 참 많은 날을 지새웠습니다. 건축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수많은 선택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이럴 때를 대비해서 읽어두었던 건축 관련 책들은 막상 일이 닥치니 정말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남편이나 저나, 건축이나 공간에 대한 표현이 서툴러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다가 스스로에게 답답해서 욱하고 올라오는 때도 있었습니다. 매일의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기윤재'가 탄생하게 되었죠. 아니, 한 번에 짠하고 탄생한 것이 아니라 아주 서서히 구체화되었다고 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지금도 우리가 꿈꾸던 집으로, '기윤재'다워지는 것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집 이름인 '기윤재'에서 저희 집의 건축 컨셉이 드러나는데요. 기이할 '奇(기)'자에 윤택할 '潤(윤)'자입니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특이하고 재미있는 집'이라는 뜻을 품고 있어요. 저희 남편과 아이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
이름처럼 저희 집은 구조가 재미있어요. 기본적으로 스킵플로어로 되어 있으면서 곳곳에 재미있는 장치가 있고, 동선이 순환되는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설계부터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넣었고 전부터 쓰던 가구 외에는 모두 붙박이장으로 설치했기 때문에 가구를 따로 구매한 것은 1인용 소파와 식탁 의자 정도입니다.
장식만을 위한 인테리어 소품을 두는 것은 최소화하는 편이라, 어떻게 보면 심심해 보일 수 있는 집입니다. 대신 시시때때로 달리 들어오는 햇살이 부족한 집안 곳곳을 채워준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자, 이제 기윤재에 들어오셨으니 하나하나 꼼꼼히 보여드릴게요.
이곳은 다이닝 공간입니다. 현관 중문을 지나 제일 먼저 보이는 공간이지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매일의 식사와 차 한 잔, 독서, 컴퓨터 작업 그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홈카페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가 사랑하는 주방입니다. 컬러는 벤자민무어에서 선택해서 인테리어 시공 업체에 우레탄 도장으로 의뢰했고요. 시공 맡아주신 업체에서 컬러를 정말 잘 맞춰주셨어요.
상부장을 최소화하고 오크 원목으로 선반을 짰습니다. 냉장고가 노출되는 게 싫어서 보조 주방 격인 다용도실에 배치했어요.
형태는 ㄷ자형이에요. 브릿지 부분은 평상과 맞닿아있어 아이가 평상 쪽에 서서 저와 함께 요리하거나 제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요. 아직 3살이라 어리지만, 정수기로 밥솥에 물을 받아준다든지 재료들을 섞어달라고 부탁하면 곧잘 들어준답니다.
식탁 테이블 옆에 소방봉이 설치되어 있어요. 남편이 기동력 있게 위아래로 다녀야 할 때 사용합니다. 주로 아이와 제가 1층에서 급히 찾을 때 사용하는데, 운동 삼아 2층으로 올라갈 때도 써요. 아직까진 남편 외에는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네요.
다이닝은 void로 되어있어 2층까지 뚫려있기 때문에 2층의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그대로 1층까지 전달됩니다. 식탁에 앉아 이런 빛의 변화를 보는 일은 정말 즐겁습니다.
다이닝 옆에 있는 게스트룸입니다. 평소에는 오픈되어 있어 남편이 맥으로 일을 하는 작업실이기도 하고, 편히 앉거나 누워 영상을 보거나 라디오를 듣는 공간입니다.
왼쪽에 우드 3단 폴딩도어를 닫으면 방으로 변신해서 손님이 묵고 가실 수 있어요. 가끔 부모님이 오시면 쉬어가실 공간으로 준비했어요. 침대를 두기는 부담스러워서 평상으로 대신 채워 넣었죠.
이렇게 바로 테이블 옆쪽으로 게스트룸이에요 :)
게스트룸에 누워 쏟아지는 햇살을 느끼며 라디오를 들을 때면.. 부러울 것이 하나 없지요.
1층 손님용 화장실입니다. 건식으로 사용할 거라, 수납장은 원목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비용 때문에 우드 느낌이 나는 E0급 자재를 사용해 만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