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아침 편지]
2024. 9. 9.
한국 가곡(최신작)
<나리꽃>
(서경희 시/박경규 곡)
아름다움이 어찌 다소곳함에 있으랴
도도하게 몸 젖힌 꽃잎 여섯 장
오직 찬란한 자신감
노란 듯 붉은 듯 애절한 듯 아찔한 듯
색깔도 곱다
아무리 밉게 봐도 밉지 않은
점점이 박힌 자줏빛 얼룩들
호랑나비 너울너울 춤추러 올까
산과 들 어디에도 영롱하다 그리운 너
아름다움에 숨이 멎는 신비스러운 너
올해도 너를 보고 가슴이 멎었다
나의 여름 나의 태양
나리꽃이여
아름다움이 어찌 다소곳함에 있으랴
도도하게 몸 젖힌 꽃잎 여섯 장
오직 찬란한 자신감
노란 듯 붉은 듯 애절한 듯 아찔한 듯
색깔도 곱다
몸값 올리려 숨어 피지도 않는다
볼 때마다 생각이 깊어지는 너
호랑나비 너울너울 춤추러 올까
산과 들 어디에도 영롱하다 그리운 너
아름다움에 숨이 멎는 신비스런 너
올해도 너를 보고 가슴이 멎었다
나의 여름 나의 태양
나리꽃이여
나리꽃이여 🎶
* Youtube에서 바리톤 송기창 성악가의 음성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영어 명언>
Most people do not really want freedom, because freedom involves responsibility, and most people are frightened of responsibility.
Sigmund Freud
If you are patient in one moment of anger, you will escape a hundred days of sorrow.
Rainer Maria Rilke
<논개>
변영로(卞榮魯)
(시인, 전 동아일보 기자,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1.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은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2.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븕은
그 마음 흘러라.
3. 푸르른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아미(蛾眉):
누에나방의 모양처럼
아름다운 미인의 눈썹
<듣는 귀가 능력이고 행복이다>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아들 이맹희, 이창희, 이건희 3형제에 대한 일화입니다.
병석에 누운 이병철 회장에게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왜 3남인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지명하셨나요?”
기자의 질문에 이병철 회장은 짧게 대답했습니다.
“건희는 <듣는 귀>가 있어서!”
3남인 이건희 회장이 장남과 차남을 제치고 삼성의 후계자가 된 이유가 그것 한 가지뿐은 아니겠지만,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능력이 아버지 이병철 회장에게 인정받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가정이나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유능한 남편이고, 남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아내가 현명한 아내입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강의 시간에 선생님 말을 잘 듣습니다.
배우자의 말을 잘 듣는 것은 문제와 갈등을 풀어내는 능력을 배양하는 필수 과정입니다.
평화로운 가정,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위한 소통은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보다 상대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듣는 것이 진정한 대화의 능력이고 삶의 기술입니다.
조물주가 귀를 두 개 만드시고 입을 하나 만드신 이유도 두 배로 듣고, 절 반 만 말하라는 뜻이라고 여깁니다.
공자는 말하는 데 3년 걸리지만, 듣는 법을 터득한 데는 60년 걸린다고 하였습니다.
“경청(傾聽)”이라는 책이 오랜 기간 동안 베스트셀러가 된 것만 봐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답이 좀 늦고 진행이 빠르지 못해도 배우자와 열린 마음으로 천천히 다 듣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가면 가정은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 작가 장자크 상페는 자신의 책 ‘뉴욕 스케치’에서 뉴요커들의 긍정적인 말버릇을 관찰했습니다.
그들은 빤한 얘기인데도 습관처럼 상대의 말꼬리에 감탄사(!)를 붙이고, 물음표(?)를 달아줍니다.
이는 '내 말에 관심을 갖는다'는 표시로 받아들여지고, 서로의 삶과 이야기를 격려해 주는 말의 효과를 높입니다.
이를테면, 누가
“이번에 터키를 다녀왔어요.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옆에서
“좋은 곳이죠. 나는 두 번 가 봤어요.”
이렇게 말을 받으면 일단 주춤하게 됩니다.
이럴 때 뉴요커들은 자기 경험을 내세우지 않고
“정말요? 어머, 좋았겠다!”
“일정은 어땠어요?”
말머리를 계속 상대에게 돌려줍니다.
얼쑤 같은 추임새로 상대를 신나게 해주는, 뉴요커의 말 습관이 좋아 보이는 이유입니다.
"199대 1의 승리자"
파격적인 진급을 하고 현지에 부임한 李舜臣(이순신)은 당시 경상 좌수사 박홍, 경상 우수영 원균, 전라 우수사 이억기, 그 울타리에 전라 좌수영 절도사로 왔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 조직에서 파격적인 계급장을 달고 내려온 장수를 보고 순순히 인정하고
가만있었을 리는 없는 것이다.
1597년(정유년) 2월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한산통제영에서 체포된다.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형장이 열리고 선조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문무백관 200명 모두가 "이순신은 역적이오니 죽여야 마땅하옵니다."라고 외친다.
아침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읍조하며 임금(선조도 속으로는 동조함)을 압박하고 있으니, 이순신을 발탁해 주고 6계급 파격 진급에 힘을 써준 유성룡까지도 "공은 공, 사는 사"라고 하며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는 문무백관들의 의견에 반대를 하지 못한다.
당시 이순신의 누명 상황이 어떠한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틀이 걸려도 이순신 형 집행을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당시 領議政(영의정) 겸 都體察使(도체 찰사) 국가비상사태 직무 총사령관인
梧里 李元翼(오리 이원익)(1547~1634)이 임금의 어명으로 전시 상태의 모든 권한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전시상태에서는 임금과 문무백관들이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 외쳐도 이원익의 승낙 없이는 선조 임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원익은 거듭되는 선조의 형 집행 재촉에 청사에 길이 남는 그 유명한 명대사로 고한다.
전하께서 전시에 신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신 또한 전쟁 중에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을 해임하지 못하옵니다.
이원익의 이 말에 선조도 체념을 하고 이틀이나 걸린 이순신 "국형장"에서 문무백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체찰사가 그리 말을 하니 이순신이 죄가 없는가 보구나.!"
오직 한 사람의 곱고 바른 판단과 집념으로 199명의 고집을 꺾었다. 드디어 이순신은 사형을 면하게 된다.
당시 문무백관 199명 대 1명, 이원익 한 사람만이 반대를 하여 이순신을 살려 낸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오직 나라와 백성만 떠 받든 공복 그가 있으면 온갖 사물이 제 자리를 잡게 되는
소박하고 비범한 조선의 대표적 청백리 초가집에 살았던 "조선의 명재상 오리 이원익 대감"
세월은 400년이 지나고 시대만 수없이 변했을 뿐 정치는 변한 게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외롭지 않은 것이 대장부의 자존심이요 명예이다.
더구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쟁통에는 더 할 것이다.
온갖 시기 질투와 모함으로 사형 직전까지 간 만고의 충신을 알아보고 199대 1로 임금의 불신으로부터 믿어준 탁월한 先見之明 (선견지명)의 굳은 신념이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들의 생명과 조선 사직을 지켜낸 오리 이원익 대감이야 말로 만고에 길이 빛나는 충신이며 나라의 보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 사람이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명 이원익이 나라를 구했던 것이다.
한 사람! 올바른 한 사람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