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느껴본 적이 있다.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순식간에 물밀 듯 밀려와 나를 숨 막히게 했던.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놓을 수 없던 감정. 여전히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는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죽어가는 걸. 자신을 보고 살려달라, 그리 말하지도 못한 체 죽어가는 것을…그도 아마 안쓰러이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어디가 좋았냐고 묻는다면. 그의 눈웃음이 좋았다. 활짝 웃을 때 반달모양으로 접히는 그의 눈이 좋았다. 그의 큰 키가 좋았다. 그 넓은 어깨에 기대고 있으면 마치 아빠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내 머리를 쓸어넘기는 큰 손이 좋았다. 언제까지고 나를 사랑해줄 것 같았다. 세상 모두가 내게 손가락질 해도, 그는 내게 아니라 여전히 소중한 내 사람이라고 말할 사람 같았다.
내가 그에게 기대한 것은 진정, 오로지.
'사랑'이었다.
“ 그 스물의 봄 ”
< 02. 첫사랑을 닮은 남자 >
“ 다음 승차시 충전이 필요합니다. ”
기계음에 고갤 돌렸다. 벌써 이만큼 썼나. 괜시리 시간이 요즘따라 더 빠른 것 같다고 느낀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한다. 아까 그 남자가, 계속해서 머릿 속에 빙빙 맴돈다. 괜히 잊고 산 첫사랑까지 떠올라서, 머릿 속은 더욱 복잡해져 버렸다. 그를 잠깐 추억하는 동안 어느세 나는 집에 다다라서, 한숨을 푹 쉬고 대문을 열었다.
“ 나 왔어. ”
“ 왔니? 피곤하지. ”
나를 반겨주는 엄마에게 웃음을 지어보인다. 하나 있는 남동생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몇년 전엔 한참 방황을 하는 것 같더니, 요즘엔 독서실에서 공부한다고 늦게 들어온다. 돈 좀 아끼면서 집에서 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거기가 더 잘되겠지 하고 좋게좋게 생각하려 애썼다.
방에 들어와 침대에 몸을 폭 하고 던지니 기분좋은 이불 감촉이 느껴졌다. 게다가 빤지 얼마 되지 않아서, 향도 좋다. 잠깐 이렇게 누운 것도 정말 꿀맛이다.
“ 으아아아- ”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쭉 펴곤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봤다. 지금 첫사랑의 페북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참는다. 아아, 도통 이 첫사랑은 잊혀질 생각을 안한다. 벌써 자그마치 2년이다 2년!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고백에 성공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미련이 남고 후회만 가득한지 모르겠다.
으으, 이게 다.
그 남자때문이다.
*
“ 대박사건 대박사건~ ”
“ 또 왜~ ”
과에서 제일 친한 내 옆의 지혜는 뭐가 그리 대단한지 연신 대박사건 대박사건을 운운하며 쫑알거리고 있었다. 이제 이런 일에 익숙해질 때 즈음 되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뭔가 하고 물어보며 쳐다보는데 이 놈의 기집애가 뭔가 음흉한 눈빛으로 날 보는게 아닌가. 왜 이러지.
“ …뭐야 왜 이래. 내가 싫음 말로 하시지~? ”
“ 임나리 너! ”
뭐가. 나 잘 못한거 없는데.
“ 어제 고백받았다면서!! ”
“ …아. 그랬었지. ”
“ ..? 아 그랬었지? 야 너 지금 장난해? ”
그래, 잊고 있었다. 지혜가 남의 연애사에 정말정말정말 관심이 많다는거. 아니 그 남자를 두고 연애사 운운하는 것도 참 웃기지만 말이다, 얘가 어떻게 그걸 알았는지가 나는 더 궁금하다.
“ 근데 어떻게 알았어? ”
“ 내가 여기저기 발이 좀 넓어. 암튼, 엄청 초초 대박 울트라 훈남이었다면서! ”
“ 그랬나보지. ”
“ 너 꼭 못봤던 사람처럼 얘기한다? ”
“ 아 그래 저기 저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 닮았었다! 왜! ”
그러고서 깨달은 건데. 정말로 저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 그 남자랑…닮았다. 지혜는 어디어디? 하다가 이내 찾은 듯 방방 뛰며 내 팔을 툭,툭 쳐대며 '짱이다 대박대박.' 을 연발하고 나는 멍하니 그 사람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남자인가?
“ 대박, 너 첫사랑이랑 닮았다 얘! ”
그 소리에 놀라 남자에게서 시선을 땠다. 지혜에게로 시선이 향했지만 지혜는 여전히 그 벤치에 앉은 남자를 보며 조잘조잘 말을 이었다.
“ 진짜 닮았네. 얼굴도 그렇지만 옷 입는 스타일이 딱… ”
“ 지혜야, 가자. ”
“ 어, 엉? ”
그 애의 팔을 이끌고 그 남자에게서 돌아섰다. 아닐거다. 아닐거다. 아니였으면, 좋겠다. 다시 그 첫사랑이라는 굴레에 얽매여서 뺑뺑 쳇바퀴 도는건 정말이지 싫다. 이젠 정말 벗어날 때도 됬잖아. 그리고 나도 이제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도 않고.
…근데 왜 난 지금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있나. 책 여백에 오만 이상한 외계생물체 같은 그림에, 그도 아니면 책에 보이는 동그라미란 동그라미엔 온통 까만칠……. 마음같아선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데 교수님이 앞에서 열심히 수업하시니 그럴 수도 없고. 이미 옆에서 지혜는 온갖 연애 루트를 짜며 신이 났다.
야야, 이거봐라.
지혜가 내민 종이에는 자신이 생각한 온갖 느끼한 멘트나 고백, 절대 내가 지을리 없는 감동받은 표정등등을 과장되게 그리고있었다. 내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자 지혜는 이내 그 종이를 다시 쌩하고 가져가서 열심히 다시 무언갈 쓰고 그리고 그러길 수업 내내 반복했다. 하여튼 당사자보다 더 들떠선.
“ 근데 너 진짜 그 남자 오늘도 오면 어떡하려고 그래? ”
“ 오면 오는거지 뭐. ”
수업이 마치고 학식을 먹으며 하는 이야기였지만, 나도 내심 겁이 났다. 진짜 오늘도 오면 어떡하지. 뭐라고 말해야 하지. 어떻게 대처하지? 그냥 어제처럼 대처하면 되려나. 괜히 지혜 저 녀석이 첫사랑을 닮은 것 같다고 말하는 바람에 그 사람까지 정말 첫사랑을 닮은 것 같이 보일 것 같은데.
“ 내 생각엔. ”
“ …? ”
“ 그 남자가 진짜로. ”
“ 진짜로? ”
“ 널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
그걸 결론이라고 내리고 있냐. 당연한거잖아. 뭔가 대단한게 나올 줄 기대했던 나는 지혜의 말에 실망하며 밥을 크게 떠서 입 안에 넣었다. 중요한건, 그 남자가 무슨 목적으로 내게 접근하냐 그건데 말이지. 우물거리며 내뱉는 내 말에 지혜가 뭔갈 크게 깨달았단 듯이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 니가 돈이 많다고 착각한게 아닐까? ”
“ 그런가? 근데 나 돈벌라고 카페 알바하는데? ”
“ 아 그러네. 음 그럼…복수하려는거 아닐까?! ”
“ 말을 말자 말을 말어. ”
하여튼, 지혜는 너무 드라마를 많이 본단 말이야.
*
근데 막상 일하고 있으니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긴 한다. 왜 나에게 갑자기 그렇게 대뜸 고백했을까. 진짜 복수하려고 그랬나? 나 뭐 원한같은거 있나. 머리가 터져나갈 지경이다. 차라리 손님들이 막 몰려오면 생각할 시간이 없어서 괜찮을 텐데, 적막하니 머릿속만 더욱 복잡해져간다.
아직 그 남자는 오지 않았다. 이건 분명, 절대로 기다리는건 아니다. 그냥 오나 안오나 보고 있는거지. 어제 생각이 많아 좀 뒤척였더니 잠이 솔솔 쏟아진다. 원래 이 시간엔 저녁먹고 커피 먹으러 오는 직장인이 많아 피크시간인데. 오늘따라 이상하네.
“ 나리야~ ”
“ 네? ”
“ 탈의실에 가서 앞치마 하나만 빨아놓은 걸로 가져다 줄래? ”
“ 네 알겠어요. ”
졸린데 마침 잘 됐다. 잠도 오는데 움직이면 좀 덜하겠지 하며 탈의실에 들어가서 케비넷을 열어 하얀 앞치마를 찾아냈다. 사장님이 직접 빵이나 디저트를 만드셔서 가끔 이런 일은 흔했다. 들어온 김에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흔들기도 하고 주무르기도 했다. 너무 오래 안나가면 눈치보이니까 막 일어나야지 했는데.
“ …어. ”
“ ……. ”
왜,
그 남자가,
여기로,
들어오는거지?
안녕하세요! 지난 화가 약간 호러물처럼 무서우셨다면 죄송합니다 :>
알콩달콩 연애를 보여드릴(+가끔 진지하기도하고) '그 스물의 봄' 작가 빼꼼입니다! :D
사실 오늘부터 상큼발랄 돋는 BGM 를 깔려다가 앞 부분이 조금 무거운 감이 있어서 참았습니다..:>..
다음화에선 상큼발랄 돋는 음악과 함께 찾아뵐게요!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
첫댓글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다음편 기대할게요~
가뭄 속의 댓글이네요! T^T (감동) 다음편도 열심히 써서 들고올게용^.~
분위기가 좀 호러같지만?!ㅋㅋㅋㅋ 이제 곧 정리되어 알콩달콩해지겠져? ㅋㅋ
ㅋㅋㅋ절대 호러는 아니예요 ^▽^ㅋㅋㅋ 넹 다음화부터 알콩달콩해 질거예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