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문화]
지금 열도는 다시 한류
"위안부 문제와는 별개"
일본에 다시 찾아온 한류
"소레와 소레, 간류와 간류(그건 그거고, 한류는 한류죠)"
정치·외교에 덜 민감한 日 젊은층, 新한류 이끌어… 도쿄 신주쿠 코리아타운 부활
"위안부 합의 파기 별 상관없어"
치즈 닭갈비 식당 3시간 줄서고 에뛰드 등 한국 화장품에 열광
혐한시위 열리던 신오쿠보 거리, 한류 팬 몰리면서 임대료 상승
지난 13일 오후 도쿄 신주쿠구(區) 신오쿠보의 코리아타운. 한국어 간판을 내건 음식점과 화장품점, 카페가 일본인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한국 음식점 앞에 줄을 선 여고생 이시다 가나코(18)양은 최근 살얼음판을 걷는 한국과 일본의 외교 관계에 대한 질문에 "소레와 소레, 간류(韓流)와 간류(그건 그거고, 한류는 한류)"라고 답했다. 그는 "(위안부 합의 파기 분위기에 관한 것은) 어른들 얘기일 뿐 나랑은 별로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2012년 한·일 관계 악화 이후 촉발된 일본 내 반한(反韓) 분위기로 '몰락 위기'에 빠졌던 도쿄 코리아 타운이 되살아나고 있다. 2015년 330곳으로 줄었던 신오쿠보 한국 상점 수가 올해 1월 현재 440여곳으로 다시 늘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한류 팬이 다시 몰리면서 1층 기준으로 평당 3만엔(약 28만7000원)까지 떨어졌던 임대료가 5만엔(약 47만9000원)까지 뛰었다"고 했다.
◇신한류 세대가 주도한 신오쿠보 부활
한국 드라마와 K팝 인기로 한류 팬이 몰렸던 신오쿠보는 2012년 한·일 관계 악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일장기를 들고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인종차별적 혐오 발언)'를 퍼붓는 혐한 시위대 400~500명이 신오쿠보 거리를 점령했다. 이승민 신오쿠보학원장은 "한류 거리였던 이곳이 '데모와 욕설 거리'로 전락했고, '신오쿠보는 위험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2012년 4만1017명이던 하루 방문객이 2013년 3만7996명으로 줄어들었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양국 국민이 모여 서로를 응원해 '한·일 우호의 상징'이 됐던 '대사관' 등 한국 식당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2013년 628곳이었던 신오쿠보 한국 상점 수는 2015년 330여곳까지 줄었다.
▲2018년 도쿄 - 지난 20일 일본 도쿄 신주쿠구에 있는 코리아타운 신오쿠보에서 일본인이 한국 식당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도쿄=이동휘 특파원
▲ 5년 전에는… - 2013년 9월 8일 120여명이 도쿄 신주쿠구 신오쿠보 인근 거리에서 “한국인은 나가라” 등 혐한(嫌韓)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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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오쿠보의 부활은 한·일 관계에 덜 민감한 10·20대를 중심으로 '신(新)한류 세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최근 "기성세대가 한·일 관계 악화 등에 신경을 많이 써 한류도 부침을 겪었지만 최근 젊은 층은 그런 경향이 옅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마카와 다카시 도요대학 교수는 "문화 소비에서 외교 문제 등 정치적 바람을 타지 않는 새로운 세대가 한류 전면에 등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문화를 즐기는 일본 신한류 세대
전통 매체가 아닌 SNS(소셜 미디어)와 유튜브에서 정보를 얻어 주고받는 신한류 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정치적 편견에 물들지 않았다. 이들은 한국 문화를 먹고, 보고, 듣고 있다.
신오쿠보 상인들은 "일본 소녀들을 신오쿠보로 오게 만든 원동력 중 하나가 2016년 말 유행하기 시작한 치즈닭갈비"라고 말했다. "치즈닭갈비가 관광객 20%를 몰고 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치즈닭갈비를 처음 시작한 음식점 '서울시장' 관계자는 "오전 11시에 줄 서면 2시가 넘어서야 매장에 들어올 수 있다"며 "찬 바람 맞으며 기다리는 일본인 손님들에게 미안할 지경"이라고 했다. 회원 수 750만명인 일본 4위 규모 전자상거래 업체 Qoo10(큐텐)에서는 찹쌀호떡믹스와 허니버터칩, 불닭볶음면을 포함한 7개 한국 제품으로 꾸민 박스가 음식 부문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한국 화장품도 인기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에뛰드하우스, 국내 20대 여성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의류·화장품 브랜드 스타일난다 제품이 요즘 특히 ‘뜨는’ 상품이다. 신오쿠보에서 한국 화장품을 판매하는 스킨가든 매장을 찾은 사토 애무(20)씨는 “색깔이 다양하고 가격이 저렴해서 매달 이곳에 들른다”며 “이걸 바르면 한국 아이돌처럼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정주 스킨가든 사장은 “2012~2015년 암흑기를 견딘 가게들이 다시 호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화장품의 일본 수출은 2015년까지는 감소하다가 2016년과 지난해에는 전년보다 각각 33%, 23% 성장했다.
◇되살아난 K팝
K팝 인기도 되살아났다. 가장 인기 있는 연예인의 대형 사진이 걸리는 것으로 유명한 도쿄 시부야역 앞 쇼핑몰 ‘시부야 109우먼’ 벽에는 2010년대 이후 한국 가수가 등장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엑소, 블랙핑크가 자리를 잡았다. 방탄소년단과 워너원도 일본에서 한국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에 수출된 한국 음악 콘텐츠는 2010년 712억원에서 2016년에는 약 3000억원으로 4배로 늘었다. 한국 대중문화 저널리스트 후루야 마사유키씨는 “K팝은 이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주류 문화의 한 부분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성장하는 소녀들과 함께 ‘지속 가능한 한류’가 될 것”이라고 했다.
CJ E&M은 글로벌 한류 페스티벌 케이콘(KCON)의 올해 첫 개최지를 일본으로 정했다고 22일 밝혔다. CJ E&M 관계자는 “일본에서 열린 케이콘에 참석한 관객은 첫해인 2015년 1만5000명에서 2016년 3만3000명, 지난해에는 4만8500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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