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을 끼고 있는 지리산으로 이인로의 뒤를 따라 나섰던 사람들은 누구였던가? 단테가「신곡」지옥 편에서 “모든 희망을 버리고 이곳에 들어오라”라고 노래했던 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찾기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은 누구였던가.
동학농민혁명이 끝나고 농민군의 잔여세력들이 저 지리산으로만 가면 살 길이 있다고 들어갔었다. 그 뒤로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 사이에 무사한 파르티잔들이 저 지리산으로 입산했었고, 그들은 나뭇잎이 부스러지듯 역사 속에서 스러져 가고 만다.
저 악양에는 기름지고 풍요로운 들판에 걸맞게 이름난 부자 집이 몇 채가 있었다.
악양 소재지 첫 마을 강 부자집이 첫 번째이고, 상신마을에 있는 조 부자 집이 두 번째다. 우리들은 가끔씩 기억 속에 최참판 댁을 찾아가듯 상신 마을 조부자집을 찾아갔다.
백 칠십 여년 전에 지었다는 조부자집은 대지만도 1천여평이 넘는데 소슬대문과 행랑채와 지금도 변함없는 몸채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집의 12월이나 1월은 곶감이 마루가득 걸려있다. 우리들은 그 곳에서 눈치껏 곶감을 빼어먹고는 즐거워(?) 했다.
섬진강 답사 길에는 빼놓지 않고 들렀던 조부자집에 가기 전 먼저 악양 소재지 삼미식당에서 봄내음 가득한 점심을 먹는다. 쑥국에다 취나물에 깻잎과 마늘장아찌 등이 어울어진 점심 반찬에다 맛있기로 소문난 악양 막걸리까지 한잔씩 걸치니 이 얼마나 한갓진 아름다움인가. 포만감으로 길을 나서서 조부자댁을 찾아가니 조한성씨는 기꺼이 저녁잠을 재워 주시겠다고. 그래 한나절만 열심히 걷고 저물어갈 무렵 돌아와 오랜만에 조선집 군불을 지핀 방에서 잠을 자보자.“
그때가 530리 섬진강을 처음으로 걸었던 때, 2021년 초였다. 눈 내리는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상초막골 데미샘에서부터 시작하여 임실, 순창, 남원 곡성, 구례거쳐 하동에 접어들었을 때는 사월이었다. 매화꽃 피는 사월에 악양면 상신리 조부자집의 조한성씨 댁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가 오랫동안 비워 두었던 방이라 따뜻해지지를 않아서 모텔방에 투숙했던 그때로부터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가 조한성씨가 70대였는데, 오늘 대청마루에서 물어보니 96세란다.
어디 조한성씨만 나이를 먹었는가, 사십대 중반이었던 내가 그사이 육십 대 중반을 넘어섰으니, 세월은 이렇게 저렇게 흔적을 남겨놓고 흐르고 흘러가는 구나, 강물이 흐르듯 흐르고 흘러가는 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