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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이불원(遺佚而不怨)
세상이 나를 버려도 세태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대범하게 처신함을 일컫는 말이다.
遺 : 버릴 유(辶/12)
佚 : 빠뜨릴 일(亻/5)
而 : 말 이을 이(而/0)
不 : 아닐 불(一/3)
怨 : 원망할 원(心/5)
(유의어)
유일불원(遺佚不怨)
출전 :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上
遺(유)는 '버린다'는 뜻이고 佚(일)은 '잘못해서 빠뜨린다'는 뜻이다. 이 말은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상(上)에 나오는 유하혜(柳下惠)에 대한 인물평이다.
맹자가 말했다. '유하혜는, 더러운 임금을 섬기는 것도 부끄럽게 생각지 않고, 작은 벼슬도 낮다고 생각지 않았다.
세상에 나아가게 되면 재주를 숨기지 않고 반드시 최선을 다해 일했고, 버려두어도 원망하지 않고, 곤궁하게 살아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너는 너요 나는 나다. 네가 비록 내 옆에서 팔을 걷어 올리고 몸을 드러낸다 해도 나를 더럽힐 수는 없다'고 했다.'
맹자는 또 백이(伯夷)와 유하혜에 대해 평(評)하기를, '백이는 너무 편협(偏狹)하고 유하혜는 너무 소탈(疏脫)하다. 편협과 소탈은 다 군자가 걸어갈 중용(中庸)의 길이 아니다.'
그러나 맹자는 다른 곳에서는 유하혜를 성지화자(聖之和者)라고 평했다. 마음이 너그러운 성인(聖人)이라는 뜻이다.
유하혜(柳下惠)와 맹자(孟子)
유하혜는 맹자와 친구였고, 도척(盜跖)의 형이었다. 맹자 제3권 맨 끝 장에 다음과 같이 평가되어 있다.
孟子曰: 柳下惠, 不羞汙君, 不卑小官, 進不隱賢, 必以其道, 遺佚而不怨, 阨窮而不憫.
맹자가 이르기를, '유하혜는 부덕한 임금에게 벼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낮은 작은 벼슬자리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여 나가서는 자기의 현명함을 숨기지 않고 반드시 그 도로서 하며, 버림을 받아도 원망함이 없고, 궁한 처지에 처해도 괴로워하지 않았다.'
故曰, 爾爲爾, 我爲我, 雖袒褐裸裎於我側, 爾焉能浼我哉. 故, 由由然與之偕而不自失焉, 援而止之而止, 援而止而止者, 是亦不屑去已.
고로, '너는 너고 나는 나니 비록 내 곁에서 벌거숭이로 있다 해도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히겠는가. 고로 유연하게 누구와도 스스로 일음이 없었으니 머물기를 원하면 머물고, 그것은 자기가 머물기를 바라는 사람을 떨치고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孟子曰: 柳下惠, 不恭. 不恭, 君子不由也.
맹자가 이르기를, '유하혜는 공손치 못했다. 불공은 군자는 좇지 않는 것이다.'
위 글을 통해 볼 때 맹자가 왜 유하혜의 행동을 불공이라 평가했을까?
그는 말하자면 어느 곳이나 누구와도 마다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도 저들의 잘못이나 불의를 탓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현명함을 굽히지 않았다.
크고 작음을을 불문하고 그 자리에 있으면서 반드시 그 도를 이루고자 하다가 그것이 안 되면 언제고 그만두고 머물라면 머물고 그만두라면 그만 두었을 뿐이다.
자기 중심으로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맹자는 왜 불공한 사람 공손치 못한 사람이라 했을까?
공자가 말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 한다 했는데 그는 소신껏 살아간 사람 같다. 내 보기에는 유하혜야 말로 자재인 즉 자유인이었다.
그는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보며 또한 세상 중심으로 모든 일을 수시로 따랐다. 군자가 그만 두라면 그는 언제고 그 일자리를 그만두었다. 또한 있으라면 그는 언제고 있었다.
공손추(公孫丑)
스승을 성인으로 추앙한 제자
不同道.
몸가짐을 갖추는 방법은 동일하지 않다.
非其君不事, 非其民不使.
임금이 임금답지 않으면 섬기지 않고, 백성이 백성답지 않으면 다스리지 않았다.
治則進, 亂則退, 伯夷也.
또한 세상이 잘 다스려질 때는 나아가고 혼란스러워지면 물러나는 것이 백이(伯夷)의 몸가짐이다.
何事非君, 何使非民,
治亦進, 亂亦進, 伊尹也.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고 누구를 다스린들 백성이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세상이 잘 다스려질 때도 나아가고 혼란스러워질 때도 나아간 것이 이윤(伊尹)의 몸가짐이다.
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孔子也.
벼슬할 때가 되면 나아가고,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되면 물러나고, 오래 있을 만하면 머무르고, 빨리 떠나야 하면 서둘러 떠나는 것이 공자(孔子)의 몸가짐이셨다.
皆古聖人也.
옛날 성인들은 모두 이와 같았다.
吾未能有行焉, 乃所願則學孔子也.
나는 그들처럼 행동하지 못하지만, 공자(孔子)를 따라 배우기를 원할 뿐이다.
(孟子/公孫丑上)
맹자의 또 다른 수제자
만장(萬章)과 함께 맹자의 또 다른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제(齊)나라 출신의 공손추(公孫丑)이다.
그는 맹자의 제자들 가운데 만장(萬章)과 더불어 가장 뛰어난 제자였으며, 맹자가 천하를 떠도는 유세(遊說)길을 접고 물러나 앉아 경전(經典) 편찬과 저술 작업에 몰두할 때 최측근에서 보좌한 제자이기도 했다.
청(淸)나라 시대의 고증학자(考證學子)인 최술(崔述)은 '맹자사실록(孟子事實錄)'이라는 책에서 '맹자의 저서인 '맹자'는 맹자의 제자인 만장(萬章)과 공손추(公孫丑) 등이 과거의 행적과 사실을 기억하여 서술한 것이다. 그래서 두 제자와의 문답이 '맹자' 7편 가운데 유독 많다'고 했다.
맹자가 말년에 몰두한 저술과 편찬 작업에 공손추(公孫丑)가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단서(端緖)들이 '맹자' 곳곳에 나타난다. 맹자 사상과 논리의 가장 중요한 내용들이, 공손추(公孫丑)와 맹자(孟子)의 대화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왕자(王者)와 패자(覇者)의 차이를 가르치다
제(齊)나라 출신인 공손추(公孫丑)는 맹자가 제(齊)나라로 간 후, 비로소 맹자에게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제자였다.
당시 제(齊)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옛날 춘추시대에 제(齊)나라의 환공(桓公)을 패자(覇者;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도록 보좌한 관중(管仲)과, 경공(景公)을 보좌한 안자(晏子; 안영)를 존경했다.
스승의 학식(學識)과 능력을 존경한 공손추(公孫丑)는, 맹자가 제(齊)나라를 다스려 관중(管仲)과 안자(晏子; 안영)와 같은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 주길 바랐다.
(…)
공손추(公孫丑)가 물었다. '선생님께서 제나라의 중요 관직에 오르신다면 옛날 관중(管仲)과 안자(晏子)가 이룬 공적(功績)을 또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으십니까?'
맹자(孟子)가 답했다. '너는 과연 제(齊)나라 사람답구나. 관중(管仲)과 안자(晏子)만을 알고 있을 뿐이구나.
어떤 사람이 증서(曾西)에게, '선생과 자로(子路)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어질다고 할 수 있습니까?'고 물었다.
이 질문에 증서(曾西)는 몸둘 바를 몰라하면서, '그분은 우리 선조부(先祖父; 증자)께서도 두려워 하셨던 분이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증서(曾西)에게, '그렇다면 선생과 관중(管仲)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어질다고 할 수 있습니까?'고 물었다.
이에 증서(曾西)는 벌컥 화를 내면서, '그대는 어찌 나를 관중(管仲) 같은 사람과 비교하는가! 관중(管仲)은 환공(桓公)의 전적인 신임을 받아 권력을 전횡하면서 40여 년 동안이나 제나라를 다스렸다. 그런데도 그 공업(功業)은 겨우 자신의 임금을 비천한 패자(覇者; 제후들의 우두머리)로 만드는 데 그친 위인이다. 그대는 어떻게 나를 그 같은 사람과 비교하려 드는가!'고 말했다.
이처럼 관중(管仲)은 증서(曾西)도 본받으려 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너는 내가 관중(管仲)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인가.'
(孟子/公孫丑上)
공손추는 관중(管仲)을 하찮게 여기는 맹자의 말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
공손추가 물었다. '관중(管仲)은 환공(桓公)을 도와 패자(覇者)가 되게 했습니다. 또한 안자(晏子)는 경공(景公)을 도와 그 이름을 천하에 드날렸습니다. 어떻게 관중(管仲)과 안자(晏子)를 본받을 만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맹자가 답했다. '제(齊)나라의 임금이 천하의 왕 노릇을 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공손추가 다시 물었다. '선생님의 말씀에 저는 더욱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이 어진 덕(德)으로 100여 년을 살다가 돌아가셨지만, 왕천하(王天下)를 이루지는 못하셨습니다. 아들인 무왕(武王)과 주공(周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왕천하(王天下)를 이루었습니다. 천하의 왕 노릇하기가 그토록 쉬운 일이라면 문왕(文王) 또한 본받을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맹자가 답했다. '문왕(文王)이라고 한들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느냐. 은(殷)나라는 탕왕(湯王)부터 무정(武丁)에 이르기까지 어진 성군(聖君)이 6~7명이나 나와 백성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이에 온 천하가 은(殷)나라에 귀속된 세월이 이미 오래되었다. 무엇이나 오래되면 변하기 어려운 것이다. 무정(武丁) 임금께서 제후들의 조회를 받고 천하를 소유하신 것이 마치 손바닥을 움직이는 것처럼 쉬웠다.
주왕(紂王)이 아무리 포악하다고 해도 무정(武丁)임금이 선정(善政)을 베풀던 시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옛날부터 내려오는 좋은 풍속과 전통 그리고 어진 정치가 아직 남아 있었다.
또한 미자(微子), 미중(微仲), 왕자 비간(比干), 기자(箕子), 교격(膠鬲) 등의 신하들이 모두 어질고 충성스러웠다. 이들이 주왕(紂王)을 도와 서로 보좌했기 때문에 주왕은 그토록 포악한 정치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라를 잃게 된 것이다.
한 치의 땅도 주왕(紂王)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었고, 한 명의 백성도 주왕(紂王)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었다.
그 같은 환경에서 문왕(文王)은 겨우 사방 100리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영토로 일어났으니, 포악한 주왕(紂王)을 제거하고 천하의 왕자(王者)가 된다는 것이 어떻게 쉬운 일이었겠느냐!'
맹자가 다시 말했다. '제나라의 속담에, '비록 지혜가 있다고 해도 시세(時勢)를 타는 것만 못하고, 비록 농기구가 있다고 해도 때를 기다리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지금은 아주 쉽게 왕업(王業)을 해나갈 수 있는 때이다. 하(夏), 은(殷), 주(周) 세 나라가 한창 융성할 때에도 왕(王)이 차지한 영토가 1,000리를 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제(齊)나라는 이미 그만한 넓이의 영토를 차지하고 있다.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 사방 국경지대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제(齊)나라의 백성 수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이만하면 영토를 더 확장하고 백성들을 더 모으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제(齊)나라의 임금이 어진 정치를 펼쳐 왕 노릇만 잘한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여드는 것을 어느 누구도 말리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처럼 왕도정치(王道政治)를 베푸는 왕자(王者)가 나타나지 않는 적은 일찍이 없었다. 또 천하의 백성들이 이토록 무서운 학정(虐政)에 시달린 적도 일찍이 없었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는 것은 쉬운 일이다. 공자께서도 '어진 덕이 퍼져나가는 것은 역마(驛馬)가 명령을 전달하는 것보다 더 빠르다'고 말씀하셨다.
옛날 주(周)나라 문왕(文王)에 비해 오늘날 제(齊)나라의 환경은 말할 수 없이 유리하다. 이토록 유리한 시기에 만승(萬乘)의 강대국인 제(齊)나라가 어진 정치를 베푼다면, 천하의 백성들은 마치 쇠사슬에 거꾸로 매달렸다가 풀려난 사람마냥 기뻐할 것이다.
그렇다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왕천하(王天下)의 대업(大業)을 이룰 수 있지 않겠느냐. 일은 옛 사람 문왕의 반 밖에 하지 않고도 공적(功績)은 그 배가 된다는 것은 지금의 시대를 두고 하는 말이다.'
(孟子/公孫丑上)
맹자는 제자인 공손추(公孫丑)가 관중(管仲)과 안자(晏子)와 똑같은 길을 걸어 큰 공적(功績)을 세우기를 원하자, 심하게 공손추를 나무랐다.
인(仁)과 덕(德)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주창한 맹자가 보기에, 오로지 힘과 무력으로 천하를 제패(制覇)하고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된 패자(覇者)들은 거론할 가치도 없는 비천한 존재일 뿐이었다.
더욱이 패자(覇者)들을 보좌한 관중(管仲)이나 안자(晏子)와 같은 신하들은 맹자의 정치 이상인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짓밟아버린 적(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훗날 맹자의 수제자가 된 공손추(公孫丑)였으나, 처음 맹자에게 가르침을 받을 때만 해도 그는 맹자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인물에 불과했다.
맹자에게 호된 꾸지람과 함께 인(仁)과 덕(德)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왕자(王者)의 정치(政治)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난 후에야, 비로소 공손추(公孫丑)는 힘과 무력으로 천하를 지배하는 패자(覇者)의 정치(政治)에 대한 존경심을 버릴 수 있었다.
배우는 일을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 뿐이다.
맹자의 가르침을 받고 감복(感服)한 공손추(公孫丑)는 스승이 이미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기쁜 마음에 맹자에게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으로, '선생님께서는 성인(聖人)이냐?'고 물었다.
수많은 선배 학자들을 젖혀두고 자신이 '공자의 도(道)'를 계승했다고 선언할 정도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던 맹자가 이 질문에 과연 어떤 답변을 내놓았을까?
(…)
공손추가 물었다.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재아(宰我)와 자공(子貢)은 언변이 뛰어나기로 이름이 높았고, 염우(冉牛)와 민자건(閔子騫) 그리고 안연(顔淵)은 언변도 좋지만 덕행(德行) 또한 뛰어났습니다.
공자께서는 언변과 덕행을 모두 지니셨는데도 '나는 말을 잘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선생님께서는 언변과 덕행 모두 뛰어나십시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성인(聖人)이 되신 것입니까?'
맹자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옛날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선생님은 성인(聖人)이십니까?'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께서, '내가 어떻게 성인(聖人)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다만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을 뿐이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자공(子貢)이 다시 '배우는 일을 싫어하지 않는 것은 지혜(智慧)이고,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은 어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롭고 또한 어지시니 선생님께서 바로 성인(聖人)이십니다'고 말했다.
공자께서도 스스로 성인(聖人)이라고 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떻게 성인(聖人)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공손추가 다시 물었다. '저는 예전에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와 자유(子游) 그리고 자장(子張)은 모두 성인(聖人)의 한 부분을 갖추고 있었으며, 염우(冉牛)와 민자건(閔子騫) 그리고 안연(顔淵)은 모든 부분에서 성인(聖人)이 갖추어야 할 면모를 지녔으나 약간 미흡했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가운데 어느 쪽이십니까?'
맹자가 말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공손추가 다시 물었다. '그럼 백이(伯夷)와 이윤(伊尹)은 어떠합니까?'
맹자가 말했다. '몸가짐을 갖추는 방법은 동일하지 않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으면 섬기지 않고, 백성이 백성답지 않으면 다스리지 않았다. 또한 세상이 잘 다스려질 때는 나아가고 혼란스러워지면 물러나는 것은 백이(伯夷)의 몸가짐이다.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고 누구를 다스린들 백성이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세상이 잘 다스려질 때도 나아가고 혼란스러워질 때도 나아간 것은 이윤(伊尹)의 몸가짐이다.
벼슬할 때가 되면 나아가고,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되면 물러나고, 오래 있을 만하면 머무르고, 빨리 떠나야 하면 서둘러 떠나는 것이 공자(孔子)의 몸가짐이셨다. 옛날 성인들은 모두 이와 같았다. 나는 그들처럼 행동하지 못하지만, 공자(孔子)를 따라 배우기를 원할 뿐이다.'
공손추가 또 물었다. '백이(伯夷)와 이윤(伊尹)이 공자(孔子)처럼 대단합니까?'
맹자가 말했다. '아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공자(孔子) 같은 분은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다.'
공손추가 물었다. '백이(伯夷)와 이윤(伊尹) 그리고 공자(孔子) 세 분이 서로 비슷한 점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있다. 100리의 땅을 얻어 임금 노릇을 한다면 모두 제후들의 조회를 받고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그러나 세 분 모두 단 한 가지라도 불의(不義)를 행하고, 단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여 천하를 얻는 일 따위는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서로 비슷한 점이다.'
공손추가 다시 물었다. '그럼 세 분의 서로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맹자가 말했다. '재아(宰我)와 자공(子貢)과 유약(有若)은 성인(聖人)을 알아볼 만한 지혜가 있었다. 그들은 사람을 볼 때 적어도 자신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치우치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재아(宰我)는, '나는 공자가 요순(堯舜)보다 훨씬 더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공(子貢)은, '사람의 예(禮)를 보면 그 사람의 정치를 알 수 있다. 사람의 음악을 들으면 그 사람의 덕(德)을 알 수 있다. 100세의 왕들을 살펴보더라도 그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공자(孔子) 같은 분은 일찍이 없었다'고 말했다.
유약(有若)은, '어찌 사람에게만 그러하겠는가. 짐승 가운데서 뛰어난 것은 기린(麒麟)이고, 새 가운데서 출중한 것은 봉황(鳳凰)이다. 마찬가지로 성인(聖人)은 사람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다. 인간이 탄생한 이후로 오늘날까지 공자(孔子)보다 더 훌륭한 분은 계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孟子/公孫丑上)
맹자는 공손추의 물음에 공자(孔子)도 성인(聖人)이라고 자처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신이 성인(聖人)이라고 하겠느냐고 답변했다.
그러나 공손추가 다시 공자의 문하(門下)에서 가장 뛰어났던 10대 제자들(十哲; 십철)과 비교하여 묻자, 아예 대답 자체를 거부했다. 자신을 그들과 비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맹자의 대답에는 자신이 비록 공자(孔子)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제자인 십철(十哲; 10대 제자)보다는 더 성인(聖人)에 가깝다는 자부심이 은연중에 나타나 있다.
특히 맹자(孟子)는 공손추(公孫丑)에게 공자(孔子)가 갖춘 두 가지 몸가짐을 따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하나는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이고, 다른 하나는 '벼슬할 때가 되면 나아가고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되면 물러나며, 오래 있을 만하면 머무르고 빨리 떠나야 하면 서둘러 떠나는 것'이었다.
公孫丑 章句 上 9
맹자는 그의 제자인 공손추(公孫丑)와 왕도정치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리고 패도정치를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가의 의리(義理)를 밝히고 자신의 포부를 나타내었다.
상편은 9장, 하편은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구저기(反求諸己), 호연지기(浩然之氣), 인화(人和)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이 편에서는 맹자의 유세 족적이 잘 드러나고 있다.
맹자가 가장 희망을 걸었던 제나라 선왕과 맹자의 관계가 점차 틀어지고, 마침내 맹자는 제나라를 떠나게 된다. 이 과정에 관한 일련의 묘사들은 이 편의 백미이다.
孟子曰: 伯夷, 非其君, 不事, 非其友, 不友.
맹자가 말하였다. '백이는 섬길만한 군주가 아니면 섬기지 않으며, 벗할 만하지 않으면 벗을 삼지 않았다.
不立於惡仁之朝, 不與惡人言, 立於惡人之朝, 與惡人言, 如以朝衣朝冠坐於塗炭.
악한 사람의 조정에 벼슬하지 않으며, 악한 사람과 더불어 말하지 않더니 악한 사람의 조정에 벼슬하며 악한 사람과 말을 섞는 것을 마치 조복을 입고 조관을 쓰고서 진흙과 숯 구덩이에 앉은것과 같이 여겼다.
推惡惡之心, 思與鄕人立, 其冠不正, 望望然去之, 若將浼焉.
악을 미워하는 마음을 미루어서 생각하기를 고향 사람과 더불어 서있을 때라도 그 관이 바르지 못하면 되돌아보지 않고 떠나가 마치 장차 자신을 더럽힐 듯이 여겼다.
是故諸侯雖有善其辭命而至者, 不受也, 不受也者, 是亦不屑就已.
이 때문에 제후들이 비록 초빙하는 말을 좋게 하여 찾아오는 자가 있더라도 받으들이지 않았으니,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또한 나아감을 달갑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柳下惠不羞汙君, 不卑小官, 進不隱賢, 必以其道, 遺佚而不怨, 阨窮而不憫.
유하혜는 더러운 군주를 섬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작은 벼슬을 낮게 여기지 않아서 벼슬해서는 어진 것을 숨기지 않고 반드시 자신의 방법대로 했으며 벼슬길에서 내침을 받아도 원망하지 않으며 곤액을 당하여도 근심하지 않았다.
故曰, 爾爲爾, 我爲我, 雖袒裼裸裎於我側, 爾焉能浼我哉.
그러므로 유아혜가 말하길,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비록 네가 내곁에서 옷을 걷고 알몸을 드러낸들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
故由由然與之偕而不自失焉, 援而止之而止. 援而止之而止者, 是亦不屑去已.”
고로 유유하게 악한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있으면서도 스스로 올바름을 잃지 않아, 잡아당겨 멈추게 하면 멈추었으니, 잡아당겨 멈추게 하면 멈춘것은 또한 떠나가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孟子曰: 伯夷隘, 柳下惠不恭. 隘與不恭, 君子不由也.
맹자가 말하였다. '백이는 좁고 유하혜는 공손하지 아니하니 좁음과 공손하지 아니함은 군자가 다르지 않는다.'
(解說)
백이는 결벽증이 지나쳐서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면 상대하지 아니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극에 달하여 갓을 바로 쓰지 않은 것만 보더라도 용서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유하혜는 지나치게 너그러워 상대의 잘못을 따져야 할 것도 따지지 않는 폐단이 있었다.
상대의 잘못을 따져야 하는데도 따지지 않는것은 시비를 가리는 인간의 본마음을 따르지 않는것이며, 남의 잘못을 결코 용납하지 아니하는 것은 남을 나처럼 여기는 마음인 인(仁)을 실천하지 않은 것이다.
▶️ 遺(남길 유, 따를 수)는 ❶형성문자로 遗(유)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貴(귀; 많은 보배, 재산, 가진 것, 유)로 이루어졌다. 물건이 어디로 가버리다, 잃는 일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遺자는 '남기다'나 '끼치다', '버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遺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貴(귀할 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貴자는 양손에 흙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귀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런데 遺자의 금문을 보면 새집을 떨어트리거나 버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遺자의 본래 의미도 '버리다'나 '떨어뜨리다'였다. 후에 遺자는 '남기다'나 '전하다'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는데, 길 위에 떨어트린 물건을 선조들이 남기고 간 유산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遺(유, 수)는 ①남기다, 남다 ②끼치다, 전하다 ③잃다 ④버리다, 유기(遺棄)하다 ⑤잊다 ⑥두다, 놓다 ⑦떨어지다, 떨어뜨리다 ⑧빠지다, 빠뜨리다 ⑨쇠퇴(衰退)하다 ⑩빠르다 ⑪더하다, 더해지다 ⑫음식을 보내다, 음식을 대접하다 ⑬오줌 ⑭실수(失手), 그리고 ⓐ따르다(수) ⓑ좇다(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마음에 남는 섭섭함을 유감(遺憾), 건축물이나 전쟁이 있던 옛터를 유적(遺跡), 내버리고 돌아보지 않음을 유기(遺棄), 사후에 남겨 놓은 재산을 유산(遺産), 끼치어 내려옴을 유전(遺傳), 죽은 사람의 뒤에 남은 가족을 유족(遺族), 사후에 남겨진 물건을 유물(遺物), 죽은 사람을 화장하고 남은 뼈를 유골(遺骨), 죽은 사람의 몸을 유해(遺骸), 갖추어지지 아니하고 비거나 빠짐을 유루(遺漏), 활자 따위가 책이나 활판 가운데서 빠짐을 유탈(遺脫), 죽음에 임해서 남기는 말을 유언(遺言), 유언하는 글을 유서(遺書), 잃어 버림을 유실(遺失), 죽은 사람이 생전에 이루지 못하고 남긴 뜻을 유지(遺志), 마음에 둠을 유의(遺意), 남이 잃어버린 물건을 주움을 습유(拾遺), 남김없이 모조리를 무유(無遺), 남편이 죽고 남긴 자식을 고유(孤遺), 자면서 모르는 가운데 정액이 나옴을 몽유(夢遺), 보태어 채움을 보유(補遺), 냄새가 만 년에까지 남겨진다는 뜻으로 더러운 이름을 영원히 장래에까지 남김을 일컫는 말을 유취만년(遺臭萬年), 마땅히 등용되어야 할 사람이 빠져서 한탄함을 이르는 말을 유주지탄(遺珠之歎), 오래 전하여 오늘에 이른 풍속을 일컫는 말을 유풍여속(遺風餘俗), 청렴결백하거나 선정을 베푼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감당유애(甘棠遺愛), 계책에 빈틈이 조금도 없음을 일컫는 말을 산무유책(算無遺策),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아 고치게 함을 보과습유(補過拾遺), 있는 힘을 남기지 않고 다 씀을 이르는 말을 불유여력(不遺餘力), 큰 바다에 남아 있는 진주라는 뜻으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현자나 명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창해유주(滄海遺珠) 등에 쓰인다.
▶️ 佚(편안할 일, 방탕할 질)은 형성문자로 逸(일)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失(실, 일)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佚(일, 질)은 ①편안하다(便安--) ②숨다 ③달아나다 ④잃다, 없어지다 ⑤예쁘다 ⑥아름답다 ⑦요염하다(妖艶--) ⑧허물 ⑨실수(失手) 그리고 ⓐ방탕하다(放蕩--)(질) ⓑ질탕하다(佚蕩--: 신이 나서 정도가 지나치도록 흥겹다)(질) ⓒ흐리터분하다(질) ⓓ갈마들다(서로 번갈아 들다)(질) ⓔ대범하다(大汎--)(질) ⓕ벗어나다(질) ⓖ서로, 번갈아(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방탕할 탕(蕩)이다. 용례로는 흥취가 썩 높거나 방탕함을 질탕(佚蕩), 뛰어난 바탕이나 훌륭한 바탕을 질재(佚材), 도망친 백성이나 세상을 등진 사람을 일민(佚民), 마음대로 편안히 즐겁게 놂을 일유(佚遊), 어떤 직위의 사람을 바꾸어 다른 사람을 임명함을 경질(更佚), 옛날에 빠져 없어짐을 고일(古佚), 교만하고 방자함을 교일(驕佚), 흩어져 없어짐을 산일(散佚), 유능한 사람이 등용되지 않아 세상에 나타나지 않음 또는 그 사람이나 사물이 흩어져서 없어짐 또는 그 사물을 유일(遺佚), 마음껏 음탕하게 놂을 음일(淫佚), 사치스럽고 질탕함을 사일(奢佚), 교만하며 사치스럽고 방탕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교사음일(驕奢淫佚), 편안함으로써 피로해지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여 전력을 비축하고 나서 피로해진 적을 상대한다는 말을 이일대로(以佚待勞)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말을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일컫는 말을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일컫는 말을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이르는 말을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말을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르는 말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는 뜻으로 미리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지나간 뒤에는 아무리 서둘러 봐도 아무 소용이 없음 또는 자기가 급해야 서둘러서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갈이천정(渴而穿井),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것을 이르는 말을 사이비(似而非), 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아니함 또는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꺼리어 멀리함을 이르는 말을 경이원지(敬而遠之), 뾰족한 송곳 끝이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뜻으로 뛰어나고 훌륭한 재능이 밖으로 드러남을 이르는 말을 영탈이출(穎脫而出),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베개를 높이 하고 누웠다는 뜻으로 마음을 편안히 하고 잠잘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고침이와(高枕而臥), 형체를 초월한 영역에 관한 과학이라는 뜻으로 철학을 일컫는 말을 형이상학(形而上學), 성인의 덕이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유능한 인재를 얻어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짐을 이르는 말을 무위이치(無爲而治)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怨(원망할 원, 쌓을 온)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夗(원)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怨자는 '원망하다'나 '미워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怨자는 夗(누워 뒹굴 원)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夗자는 달이 뜬 어두운 밤에 뒹구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누워 뒹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怨자는 이렇게 누워 뒹군다는 뜻을 가진 夗자에 心자를 결합해 너무도 분하고 원통하여 바닥을 뒹굴 정도(夗)의 심정(心)이라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怨(원, 온)은 (1)원한(怨恨) (2)원망(怨望) 등의 뜻으로 ①원망(怨望)하다 ②고깝게 여기다 ③책망(責望)하다 ④나무라다 ⑤미워하다 ⑥슬퍼하다 ⑦위배(違背)되다 ⑧어긋나다 ⑨헤어지다 ⑩풍자(諷刺)하다 ⑪원수(怨讐) ⑫원한(怨恨) ⑬원망(怨望) 그리고 ⓐ쌓다(온) ⓑ축적(蓄積)하다(온)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원망할 앙(怏), 한 한(恨), 근심할 담(憾),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은혜 은(恩), 은혜 혜(惠)이다. 용례로는 원통하고 한되는 생각을 원한(怨恨), 남이 한 일을 억울하게 또는 못마땅하게 여겨 탓함을 원망(怨望), 자기 또는 자기 나라에 해를 끼친 사람을 원수(怨讐), 원망하는 소리를 원성(怨聲), 자기에게 원한을 갖고 있는 사람을 원가(怨家), 남편이 없음을 원망하는 여자를 원녀(怨女), 원한을 품은 여자를 원부(怨婦), 원망하고 꾸짖음을 원구(怨咎), 무정한 것을 원망하면서도 오히려 사모함을 원모(怨慕), 원한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불화를 원구(怨溝), 원한을 품고 악한 짓을 저지름을 원특(怨慝), 원한을 품음을 구원(構怨), 남이 저에게 해를 주었을 때에 저도 그에게 해를 주는 일로 앙갚음을 보원(報怨), 노여움과 원한으로 노하여 원망함을 노원(怒怨), 원수를 맺거나 원한을 품음을 결원(結怨), 어떤 일로 말미암아 남의 원한을 삼을 매원(買怨), 털끝만큼 하찮은 원망이나 원한을 발원(髮怨), 깊이 원망함 또는 깊은 원망을 심원(深怨),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원망을 적원(積怨), 몹시 분하여 생기는 원망을 분원(忿怨),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자나 자기에게 사랑을 베푸는 자를 평등하게 대한다는 말을 원친평등(怨親平等), 원한이 골수에 사무친다는 뜻으로 원한이 깊어 잊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원철골수(怨徹骨髓),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한다는 말을 원천우인(怨天尤人), 원한 있는 자에게 은덕으로써 갚는다는 뜻으로 앙갚음하지 않는다는 말을 보원이덕(報怨以德),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도에 지나치면 도리어 원망을 사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은심원생(恩甚怨生), 잘못을 뉘우쳐 다시는 그런 잘못이 없도록 함을 이르는 말을 자원자애(自怨自艾),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수가 없다는 말을 수원숙우(誰怨孰尤), 원망이 쌓이고 쌓여 노염이 깊어짐을 이르는 말을 적원심노(積怨深怒), 원망을 사면서도 꿋꿋하게 일을 진행함을 이르는 말을 임원감위(任怨敢爲), 서로 술잔을 나누고 있는 사이에 묵은 원한을 잊어 버린다는 말을 배주해원(杯酒解怨),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모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말을 여원여모(如怨如慕)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