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팬들은 “뛰지 않는 사람은 모두 잉글랜드인이다.”라고 노래를 불렀다. 월드컵 준결승에서 리드를 지키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분명 잉글랜드인은 아닐 것이다. 고질병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예전만큼이나 쉽게 전염됐다.
선수단은 달라졌고, 화려한 새 감독도 왔다. 하지만 결과는 여전히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똑같은 결말이었다.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되면, 아무리 팀워크가 좋고 선수들 사이의 유대감이 뛰어나더라도, 결정적인 믿음과 확신은 여전히 부족했다.
투헬의 잉글랜드도, 사우스게이트의 잉글랜드도, 에릭손의 잉글랜드도, 그리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없이 반복되어 온 잉글랜드 대표팀들처럼, 리드를 잡은 뒤 그것을 지키려 했고 결국 실패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훨씬 더 용감했다. 동점골을 넣은 뒤 승부를 끝내기 위해 계속 공격했다. 반대로 잉글랜드는 앞서가자마자 가장 중요한 목표를 '실점하지 않는 것'으로 바꿨다.
사우스게이트 시절에도 통하지 않았던 방식이었고, 투헬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투헬은 경기 막판이 되자 댄 번, 콘사, 게히를 모두 투입했다. 파이브백으로 전환해 장신 선수들을 앞세워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시점부터 경기는 투헬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잉글랜드는 헤더골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지난 8년 동안 잉글랜드는 중요한 경기에서 세 번이나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패했다.
먼저 앞서간 뒤, 수비진을 깊게 내리고, 상대의 거센 압박에 결국 무너지는 패턴이었다. 투헬은 이번 대회 내내 선수들의 정신력과 투지에 큰 믿음을 보였고, 그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강조했다.
실제로 멕시코전에서는 가장 끈질기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완전히 다른 상대였다. 그들은 댄 번이 손쉽게 걷어낼 수 있는 무의미한 크로스를 계속 올리는 팀이 아니었다.
그것은 메시의 크로스였다. 크로스는 완벽했고, 예술적이었으며, 메시가 의도한 그대로 정확히 동료들에게 전달됐다. 그 시점에서는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아르헨티나 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아르헨티나가 동점골을 넣은 순간부터 승자는 사실상 하나뿐이었다. 결국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됐다. 대회 전의 엄청난 기대와 열기를 떠올려 보면, 이번 대회는 언젠가 2018년 월드컵의 놓쳐버린 기회와 비슷한 사례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에서 피파 랭킹상 자신들보다 아래에 있는 팀들만 상대했다. 노르웨이, 멕시코, 콩고민주공화국, 심지어 크로아티아까지 모두 잉글랜드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기대했던 상대들이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진정한 시험대였다. 이유는 단지 상대가 노련함과 경기 운영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는 우리가 이제껏 본 적 없는 수준의 축구 천재인 메시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무엇보다 아르헨티나는 엄청난 정신력을 갖춘 팀이었다. 바로 투헬이 가장 높이 평가했고, 지난 기간 잉글랜드 대표팀에 심어주기 위해 그토록 공을 들였던 정신력이다.
그런데도 잉글랜드는 경기 막판까지 버텨내는 과정에서 정신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고든이 선제골을 넣었을 때만 해도, 이번 경기는 잉글랜드의 이번 대회를 대표하는 최고의 경기처럼 보였다. '왜 잉글랜드가 결승에 오를 자격이 있는 팀인지'를 증명해 줄 경기인 듯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곧 자신의 껍데기 속으로 숨어버렸다. 투헬이 단행한 교체는 아르헨티나를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상대를 막아내는 데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그런 방식으로는 막아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멕시코가 아니었다. 수비 숫자만 잔뜩 늘려놓고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장면을 이미 여러 번 봐왔다. 하지만 바로 이런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투헬이 부임한 것 아니었던가. 사우스게이트 시절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는 모든 책임이 그에게 돌아갔다. "너무 좋지 않았다." "너무 소극적이었다." 이런 비판이 이어졌다.
투헬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데려온 '업그레이드된 감독', 그리고 잉글랜드 유니폼에 두 번째 월드컵 우승 별을 달아줄 인물로 기대받았다.
그런데 결과는 똑같았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감독들이 결국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택을 한다. 투헬 역시 사우스게이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슷한 선수단을 맡았고, 결국 비슷한 선택을 했다.
아르헨티나는 계속 승리를 향해 달려들었고, 잉글랜드는 오직 살아남는 데만 집중했다. 그리고 승자는 아르헨티나였다.
지난 3월 투헬은 사우스게이트의 마지막 메이저 대회를 매우 신랄하게 평가한 적이 있다. "제 생각에 그들은 우승하려는 설렘과 갈망보다 탈락하지 않는 것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대표팀 감독이라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더욱 가슴 아픈 점은 경기 내용만 놓고 보면 오랜 시간 동안 잉글랜드가 더 좋은 팀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르헨티나는 경기의 흐름을 끊고, 잉글랜드를 거친 싸움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잉글랜드는 좋은 축구를 했고, 침착함도 유지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큰 경기에서 또다시 먼저 골을 넣었다.
하지만 마지막 한 방은 언제나 상대의 몫이었다. 이번 대회 아프리카 여러 팀이 그랬던 것처럼, 이상하게도 잉글랜드 역시 경기를 마무리하는 능력이 부족한 팀이었다. 잉글랜드가 탈락한 이유는 경기 운영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투헬이 심어줄 것이라 기대했던 확신과 자신감이 끝내 보이지 않았다. 투헬의 가장 중요한 선발 선택들은 경기 초반에는 모두 성공하는 듯했다. 로저스는 선제골을 만들었고, 스펜스 역시 긴 시간 동안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보수적인 사고가 팀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가 동점골을 넣기 전부터 이미 잉글랜드는 지키기 위한 팀으로 변해 있었다.
동점골을 허용했을 때는 수비를 위해 짜인 선수 구성으로 연장전을 치르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큰 불안감을 안겼다. 하지만 결국 연장전까지 갈 필요조차 없었다. 아르헨티나는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터뜨리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더 대담했고, 더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잉글랜드와 달리 끝까지 공격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바로 이런 차이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을 준비하게 됐고, 잉글랜드는 의미를 잃은 3·4위전을 치른 뒤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아르헨티나가 잉글랜드보다 더 간절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방법을 알고 있는 강인한 정신력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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