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타닉호는 역사상 수많은 침몰선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특유의 상징성과, 침몰의 드라마틱함으로 인해 여러 침몰선 이야기 중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만큼 그 이야기는 여러 신화와 오해로 둘러싸여 있어서 역사적 진실로의 접근이 상당히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사실 타이타닉호 침몰의 진상은 당연히 생존자들의 증언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생과 사가 갈리는 급박한 상황에서 인간의 기억이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리라고 보는 것은 무리이며, 당연히 여러 상반된 증언들이 존재한다. 또한 정확한 기억인지, 살아남은 자의 자기 변명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더해서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같은 사건도 다르게 해석할수가 있는 것이고, 또 대중의 기호에 맞는 자극적인 이야기들은 여러 영상매체를 통해 확고히 사실로 굳어지게 되어, 이후의 연구결과가 이를 반박한다 해도 대중의 인식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몇몇 오해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과연 3등실 승객들을 가둬놓고 탈출했는가?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에서 유명한 이미지는, 3등실 승객들이 물이 차오르는 배 밑에서 탈출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승무원들이 통로를 잠가놓고 있는 모습이다. 이 이미지는 지금까지 나온 타이타닉 관련 영화에 빠짐없이 등장한 덕분에 타이타닉호에 대한 확고한 기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당시의 신분차별적인 사회구조 덕분에, 1등실 승객들이 먼저 탈출하기 위해 3등실 승객들을 가둬놓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일단 3등 객실에서 보트 갑판으로 올라가는 통로 몇 개가 차단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등실 승객을 먼저 탈출시키기 위해 3등실 승객을 가둬놓았다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첫째로, 그 문은 3등실 승객들이 구명보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잠가놓은 것이 아니다. 그 문들은 출항때부터 잠겨있던 문들이었다.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당시 미국의 이민법 규정을 살펴봐야 한다. 당시 미국은 검역의 편의를 위해서 1등실, 2등실과 3등실을 엄격하게 분리하고 출입을 통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 규정에 따라 타이타닉호는 3등실 구역에서 1,2등실 구역으로 통하는 통로를 차단해놓았다. 그런데 보트 갑판으로 올라가는 가장 빠른 길은 1,2등실 통로를 통과해서 올라가는 것이었고,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었다.
이 통로의 감시를 맡고 있던 선원들 중에는, 3등실 승객들이 상황의 급박함을 들어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자 바로 열어준 이들도 있었지만, 명령을 받지 못한 이상 문을 열 수 없다고 거부한 이들도 있었다. 선장 이하 상선사관들은 승객들에게 보트 갑판으로 나오라고 지시하기는 했지만, 급박하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 이 문을 개방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듯 하다. 혹은 극도의 혼란 상황에서 지휘체계에 문제가 생겨서 명령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었을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이 3등실 승객의 피해를 키운 원인이 된 것은 사실이나, 일부러 1등실 승객 먼저 탈출하도록 하려고 3등실 승객을 잡아두었다는 말과는 엄연히 다르다.
둘째로, 정말 1등실 승객을 먼저 구출하려고 했다면, 보트 갑판으로 어떻게든 빠져나와 올라온 3등실 승객이 차별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증거상에는, 일단 보트 갑판으로 올라왔다면 구명보트에 탑승하는데 있어서 3등실 승객이(여자와 아이라면) 차별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보트 갑판으로 올라왔다면, 선원들은 1등실 승객이건 3등실 승객이건 가리지 않고 구명보트에 태웠다.
브루스 이스메이의 경우
화이트 스타 라인의 이사로서, 타이타닉호의 역사적 첫 항해에 동승한 조셉 브루스 이스메이는 침몰 직후부터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그동안 여러 타이타닉 관련 매체에서 속물 자본가 겸 비겁한 악역의 자리를 차지해왔다.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에서도 이스메이는 다른 이들이 고귀하게 생명을 포기하는 동안 혼자 비겁하게 탈출하는 모습으로 등장하였다.(덤으로 속도를 높이라고 명령하는 장면도 있는데, 많은 최근 연구들은 여기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리고 그가 청문회에서 한 '여자와 아이들이 주변에 없어서 배에 탔다'는 주장은 치졸한 변명으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과연 이스메이는 과연 이런 비난을 받아 마땅한 악당이었을까?
왜 자꾸 나만 갖고 그래...
일단 유명한 영화에서는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한 시점에서, 이스메이가 탈출하기까지의 시간동안 그의 행적을 그려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시점에 대한 기록은 '비겁자' 이스메이의 또다른 면모를 묘사한다.
배가 침몰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일단 이스메이는 패닉 상태에 빠졌던 것 같다. 그 직후 그는 선원들에게 어서 구명보트를 내리자고 재촉하다가 5등항해사 해럴드 로에게 면박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뒤 바로 정신을 차린 그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승객 구조에 임했다. 배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그는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많은 여자와 아이들을 찾아내어 구명보트로 데려왔던 것이다. 그 와중에 승무원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탈출하지 못하고 있던 여승무원을 구해서 구명보트에 태운 에피소드도 있다.
그렇게 다른 승객들을 돕던 그가 탄 구명보트는 타이타닉호에 제일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접이식 보트C였다. 그마저도, 보트가 빈자리가 있는 채로 내려가기 시작하자 올라탄 것이었다. 이 보트는 39명의 승객을 태우고 새벽 2시 경에 바닷물에 내려졌다. 침몰 20분 전의 일이었다.
사실 당대 사람들에게 이스메이의 진짜 죄는 스미스 전장이나 다른 많은 남성들처럼 고결하게 생명을 포기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사라는 지위에 있었으나, 그는 엄밀히 말해 선원이라고 볼 수는 없었고, 배와 운명을 같이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출하려면 더 일찍 탈출할 수도 있었음에도(실제로 구명보트를 신속하게 내리기 위해 1등 항해사 머독 같은 경우는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태우고 빈 자리가 있을 경우 남자들도 많이 태웠다) 그는 최선을 다해 다른 승객들을 구조하다가, 문자 그대로 마지막 순간에 빈 자리를 찾아서 탈출했다. 이렇게 목숨을 구한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지, 과연 비겁자라고 욕을 먹을 일인지는 모르겠다. 모두가 알다시피,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선장이라는 사람이 그 책임을 죄다 내팽개치고 도망친 사건의 기억이 아직도 이 나라에 생생하다는걸 생각해본다면 더욱더.....
이후 열린 타이타닉호 청문회는, 이스메이가 많은 승객을 구조하는데 최선을 다했음을 인정하고, 다음과 같이 판결을 내렸다. "그가 마지막 보트에 탑승하지 않음으로서 달라지는 것은 사망자 명단에 이름 하나 더 추가하는 것 뿐이었을 것이다."
타이타닉의 선원들
이 부분은 오해까진 아니지만, 은근히 잘 알려져 있는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잘 안 알려져있는 경우가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타이타닉호의 남성 승무원들은 2등실과 3등실 남성들 못지 않게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었다. 더욱이 선장, 수석항해사, 1등항해사와 같은 고위 사관들도 상당수가 사망했고, 2등항해사는 배가 침몰할때까지 남았다가, 접이식보트에 매달려서 간신히 생존했다. 선원들 상당수의 출신지였던, 타이타닉호 출항지 사우스햄프턴은 졸지에 거대한 초상집이 되어버렸다.
이들 승무원 집단들의 대처에 아쉬움이 많았다고 지적하는 소리도 있다. 제대로 된 비상훈련이 부족해서 사고직후 우왕좌왕했으며, 구명보트에 정원을 다 채우지 않고 내리는 바람에 더 많은 생명을 구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감안해야 될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이 시기는 인류 역사상 대양횡단이 가장 안전해진 시대였다. 이러한 상황은 안전불감증 외에도, 가장 경험 많은 선원들도 이러한 규모의 사건사고를 겪어보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그런면에서 미증유의 참사를 겪었을때 패닉상태에 빠지거나 혼선이 빚어진 것은 이해할 만 하다.
둘째로, 후세의 우리와 달리 승무원들은 침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지 알 수 없었다. 타이타닉호는 두시간이 넘게 버텨줬지만, 1시간 이내에 침몰할거라고 예측한 이들도 많았다. 그런면에서 당장 급한 것은 배에 있는 구명보트를 모두 내리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자와 아이들 먼저 태워야 하고, 또 사고로 인해 당연히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원을 다 채우지 않고 급히 보트를 내린 것도 크게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혼란에 빠지거나 실수를 한 사람, 혹은 패닉 상태에 빠져 주저앉은 이는 있었을지 몰라도 자기 의무를 버리고 비겁하게 행동한 승무원은, 전혀 없었다고 단정하지는 못하겠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 적어도 마지막까지 주어진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다수의 타이타닉호 승무원들은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잘 부각되지 않은 숨겨진 영웅중에 객실 승무원이었던 존 에드워드 하트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3등실 승객들은 미로 같은 구조때문에 탈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혼란통에 상선사관들과 선원들도 보트 내리는 일을 감독하느라 이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하트는 3등실을 다니면서 승객들을 인솔해서 보트 갑판으로 데리고 올라왔다.(참고로 그는 청문회에서, 그 시점에서 이민법 규정에 따라 잠겨져 있던 문들은 모두 열려있었다고 증언했다) 언제 배가 침몰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는 세 차례나 배 밑으로 내려가 3등실 승객들을 갑판으로 인솔했다.
존 에드워드 하트, 타이타닉호의 3등실 승무원
사실 하트만이 유일한 영웅은 아니었다. 그의 동료 승무원 두 명도 그와 마찬가지로 3등실 승객들을 구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3등실 승객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은 이들 개개인의 독자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비록 침몰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객실 승무원들은 팀을 짜서 체계적으로 3등실 승객들을 찾아내어 인솔해서 보트 갑판으로 탈출시켰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3등실 승객이었던 미니 쿠츠는 두 어린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녀의 선실에는 구명조끼가 둘밖에 없었다. 우선 아이들에게 조끼를 입히고 다급하게 나갈 길을 찾던 그녀는 도중에 마주친 선원에게 다급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 이름모를 선원은 두말없이 그녀에게 자기 조끼를 입혀주었다. 그리고 보트 갑판으로 나가는 길을 알려준 뒤 이렇게 말했다.
"자, 만일 이 배가 가라앉는다면, 나를 기억해주시오."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구명보트에 타고 나서야 그 선원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나오며
타이타닉호의 침몰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던 이유는, 그 거대한 배가 여러 면에서 에드워드 시대 영국, 더 나아가 유럽 사회의 복사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그 시대의 빛과 어두움, 그리고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고결한 모습과 더러운 모습들, 순수한 생존의 욕구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신분차별적인 사회구조가 남아있던 시대이니만큼, 생존에 있어서도 그러한 면이 반영되어 있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로 1등실 승객 중에는 당장 앞에서 죽어가는 3등실 승객들보다도 자신의 잃어버린 재산들을 더 안타까워한 이들도 있었고 말이다. 또한 1등실 여성과 아이들이 생존에 있어서 가난한 아이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를 점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구출에 있어서 의도적으로 차별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부유하고 권력 있다고 해서 반드시 목숨을 건진것도 아니었다. 당장 타이타닉호에서 가장 부유한 승객도 구명보트를 타지 못하고 죽었다.
더욱이 많은 승객들이 보여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승무원들의 자기희생을 상당히 훌륭한 편이었다. 1등실 남성 승객들 중 67퍼센트가 사망했으며, 그 중 상당수는 자발적으로 배에 남았다. 또한 타이타닉호 승무원들은 다른것은 몰라도 3등실 승객들을 일부러 가둬놓고 탈출할만큼 비인간적인 이들은 결코 아니었다. 이들의 행적에 대해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지적하기는 쉽다. 그러나 당시 그들의 입장에 서서 본다면 그렇게 쉽게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참고문헌
Daniel Allen Butler, "Unsinkable": The Full Story (London, 1998).
G. J. Cooper, Titanic Captain: The Life of Edward John Smith (Stroud, 2011).
Sam Wils, Shipwreck: A History of Disasters at Sea (London, 2008).
첫댓글 적어도 가만히 있으라. .는 안햇지요..
적어도. 자기가 제일 먼저 빠져나가는 짓은 안 했지요.
잘 읽었습니다.
이스메이 저 판결 듣고 울었겠다. ㅠㅠ
적어도 선장이 책임감을 느끼고 배와 운명을 함께 했지요.
세월호랑 비교할 수준이 아니죠... 에이..
세월호와는 비교할수없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