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상왕산 문수사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위치한 상왕산(象王山,307.2m) 뒤 편 용현리에는 국보제 84호로 지정된 백제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이 있어 이곳을 탐방하는 사람들이 더불어 즐겨 찾는 사찰 중 하나가 개심사(開心寺)와 문수사(文殊寺)다. 문수사는 개심사만큼 잘 알려진 사찰은 아니지만 봄철 일주문 주변은 왕벚꽃 겹벚꽃으로 장관을 이루어 서산 일대의 벚꽃을 즐기는 상춘객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찰이다. @서산 상왕산 문수사는 조선시대에 도둑의 무리들에 의하여 극락본전 외 모든 당우들이 불타버려 옛 가람의 규모를 비롯하여 창건연대와 창건자도 알 수 없지만 다만 가람의 배치 등으로 미루어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로 예속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당시 화재시 유일하게 화마(火魔)를 면한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1994년에 지은 산신각과 요사인 무량수각 등이 있다. 이 중 고려 말에 창건된 문수사극락보전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왕산 문수사가 세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극락보전에 안치되었던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34호인 문수사금동여래좌상이다. 1973년 문화재관리국에서 극락보전에 안치된 이 불상을 조사 하였는데 불상의 복장(腹藏)에서 발원문을 비롯하여 모시로 된 단수의(短袖衣)와 쌀·보리 등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어 문수사의 창건기록을 추측하고 있다. 이 발원문은 1346년(충목왕 2)에 작성된 것인데 이를 통하여 극락보전이 고려시대에 건립되었고 조선시대에 중건된 건물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극락보전은 조각수법이 수려하고 웅장할 뿐 아니라 많은 국보급 유물들이 금동여래좌에서 복장물에서 발견되어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오층석탑과 석등에 대한 자료가 없어 그 조성시기는 알 수없지만 형태로 보아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사료된다. <극락보전주련> 極樂堂前滿月容(극락당전만월용) 玉毫金色照虛空(옥호금색조허공) 若人一念稱名號(약인일념칭명호) 頃刻圓成無量功(경각원선무량공)
극락당 앞에 (떠오른)둥근 달과 같은 (아미타부처님) 용모 옥호 금색광명 허공을 비추네 만약 중생이 일념으로 (아미타)이름을 부른다면 잠깐 사이에 무량한 공덕이 원만을 이루리라.
@옥호(玉毫): 부처님 두 눈썹사이의 흰 털 <극락보전> @극락보전의 천장에는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오리 한 마리가 메달려 있다. 오리를 메단 이유는 오리는 물에 사는 동물이라 이를 통해 화마(火魔)를 피하고자 하는 일종의 바램이요 액(厄) 땜을 위함 상징적 방편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전쟁의 화마(火魔)로부터도 살아남은 유일한 전각이 극락보전이다. 문수사 극락보전은 고려시대 제작된 것이라 단청이 퇴색하여 선명하지는 않지만 회화와 조각수법이 수려하고 웅장하다. 내부에는 금동삼세불좌상과 불화로 1892년(고종 29) 금호(錦湖)가 그린 삼세후불탱화, 1919년 몽화(夢華)가 그린 현왕탱화, 1998년 제작된 지장탱화·신중탱화가 있다. 1774년(영조 50)에 제작된 지왕시왕도는 현재 수덕사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밖에도 1892년에 제작된 현판과 1912년 쓰여진 〈문수사불량계기〉가 걸려 있다. 서산 상왕산 문수사의 불상에 대해 중 2가지 눈여겨 볼 점이 있다. 하나는 극락보전의 3불에 대해 인터넷상에 여러 억측이 회자하고 있는데 보살이 들고 있는 지물(持物)을 보면 쉬이 판별할 수 있다. 문수사 극락보전의 주불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석가모니불로 보는 이가 있는데 아미타의 수인도 백양사의 아미타불과 같이 대개가 미타정인이나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수인으로 아미타 9품인이 있지만 우리나라 불상에서는 드물고 대개 미타정인 내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각명이 극락보전임으로 당연히 주불은 아미타불로 보아야 한다. 둘은 협시불에 대한 이견이 있는데 단적으로 말해서 문수사의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우측에는 육환장을 무릎에 둔 지장보살을, 좌측에는 보합을 오른 손에 든 약사여래가 봉안된 것이다. 이는 들고 있는 지물로서 판별된다. 일반적으로 아미타불 삼존불이라고 할 경우 협시불로 우측에 대세지보살, 좌측에 관세음보살을 모시거나,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모시는 경우는 좌협시불로 관세음보살을 모시는데 문수사는 관세음보살 대신 약사여래를 모신 것이 특이하다. 다른 하나는 사명(寺名)이 문수사인데 어찌하여 문수보살을 모신 전각의 흔적이나 불상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눈이 어두워서 그런가. 처음에는 있었는데 조선시대 도둑들의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기 때문인가. 빛바랜 극락보전 현판이 빙그레 웃는다. 보현이든 문수이든 모두가 내 안에 들어오기 위한 방편이라고. 지장탱 중앙에 치성광 여래를 그 아래 일월, 월광보살을, 좌우에 7여래와 7원성군를 주제로 한 칠성탱. 우측 머리가 뽀죡한 노인이 수성노인. 얼굴3개, 눈 3개를 한 예적금강을 상단에 모신 신중탱 일반사찰의 신중탱과는 색다른 기법이다. @문수사금동여래좌상 문수사 금동여래좌상(文殊寺金銅如來坐像)의 조성 연대는 발원문 중 ‘대원지정육년병술구월초팔일(大元至正六年丙戌九月初八日)’이라는 기록을 통해 1346년(충목왕 2)임을 알 수 있다. 1973년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腹藏) 유물 조사 시 경전·다라니 등의 인쇄 자료와 발원문 및 품목을 기재한 필사 자료 등 17종 504개에 이르는 다양한 전적류와 함께, 고려 후기 제작된 복식[답호]과 각종 직물류 및 팔엽통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복장 유물은 2008년 8월 28일에 ‘서산 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 유물(瑞山文殊寺金銅如來坐像腹藏遺物)’이라는 이름으로 보물 제1572호로 지정되었으며,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위치한 수덕사 근역성보관에 소장되어 있다.
높이는 69㎝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불상은 보물제337호로 지정된 고려 충목왕2년(1346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 장곡사금동약사여래좌상(長谷寺金銅藥師如來坐像)과 같은 시대로 추정되며 달걀형의 갸름한 얼굴, 가늘고 적정한 눈, 오뚝한 콧날, 미소를 머금은 단정한 입 등의 세부 표현이 섬세하고 단아한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균형 잡힌 체구에 길상좌(吉祥坐 : 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은 다음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에 놓은 자세)의 자세 그리고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의 수인(手印) 등의 신체는 편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신체의 특징뿐 아니라 적절히 가해진 옷주름, 왼쪽 팔꿈치의 Ω형 주름과 가슴의 승각기(僧脚岐)와 띠 매듭 그리고 승각기의 치레 장식 등 모든 점이 장곡사 불상과 동일한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 두 불상은 조성 연대도 같고 또 인근 지역에 있어 같은 조각장에 의하여 조성되었거나 혹은 동일 유파의 작품일 가능성이 짙다.
이 불상은 1973년의 복장(腹藏) 조사 때에 불상조성기(佛像造成記)와 복장기가 발견되어 제작 연대는 물론 300여 명이나 되는 불상 조성에 관련된 인물 등이 밝혀졌다. 또한 복장유물로는 『구역인왕경(舊譯仁王經)』과 「의천속장경간기(義天續藏經刊記)」 그리고 백저포(白苧袍)를 비롯한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문수사 금동여래좌상은 1974년 8월 31일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는데, 1993년 7월 24일 도난당하였다. 현재는 새로 조성된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지금까지 원 불상의 소재처는 파악되지 않고 있는데, 국보로 지정되어야 하는 고려 후기 최고의 불상으로 평가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극락보전의 닫집 닫집 천장의 조각 두 마리 용이 구름속에 유희하는 모습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생동감이 넘치고 화려하다. 산신각 |
출처: 현림의 소리 원문보기 글쓴이: 나그네
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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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감사히 머뭅니다
평안 하십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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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아미타불
감사 합니다,
좋은 글과 사진 감사히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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