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찾은 화신
이월 초순 월요일이다. 어제 정월 대보름날 북면 양미재를 넘어 칠원 산정과 무기마을을 지났다. 그즈음 고향의 유년기 추억을 떠올리면서 달집을 지어 태웠던 지난 시절을 떠올린 현장을 보게 되어 반가움이 더했다. 고개를 넘어 들녘으로 접어든 길손은 지역 유관 단체와 자원봉사 부녀들의 손길로 마련한 걸쭉한 잔치 마당에서 수육 안주와 맑은 술을 대접받아 황송할 뿐이었다.
새날이 밝아와 전날 동선을 일기로 남겨 놓았다. 온종일 집에 머물면서 책이나 몇 줄 읽고 시간을 보낼까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 전부터 왼쪽 무릎과 발뒤꿈치가 시려와 장시간 보행은 무리가 와서였다. 지난 소한 절기 지기의 표고목 참나무 토막을 자른 일손 지원에서 통나무가 무릎을 가볍게 스친 후유증인 듯하기도 했다. 시큰거리는 무릎은 시일이 흘러야 치유될 테다.
점심때가 다가오니 아침나절 정한 마음은 바뀌고 말았다. 안중근 의사는 유묵에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하루도 걷지 않으면 발바닥에 가시가 자라 나올 지경이었다. 점심 식후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를 벗어나니 높다란 메타스퀘어 꼭대기에는 까치 부부가 집짓기를 시작했는데 헌 둥지를 개보수하는 작업으로 부스러기들이 떨어졌다.
퇴촌교 삼거리로 나가 사림동 주택지로 들어섰다. 봄이 오는 길목 고급 주택지 담장에서 봐둔 영춘화를 살폈더니 일찍 꽃잎을 펼친 두 송이가 아주 화사했다. 영춘화 그 인근 묵혀둔 집의 정원에는 시든 잡초 덤불에 자란 만첩 백매는 개화가 절정이었다. 창원의 집 경내 홍매가 망울이 부풀 때지 싶었는데 월요일은 휴관이라 대문이 닫혀 있어 들어갈 수가 없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림동 주택지 골목에서 버스가 다니는 찻길을 건너 십여 년 전 근무했던 학교 교정으로 가봤다. 교문 근처 볕 바른 자리에 자라던 산수유나무가 일찍 꽃망울을 터뜨려 궁금했더랬다. 그새 세월이 흘러 전정 작업으로 둥치만 살려 놓아 잔가지가 적어 꽃망울은 몇 개 달지 않았다. 교정을 벗어나 봉곡동 단독 주택 골목길로 접어들어 봄이 오는 낌새를 찾아 나선 발걸음은 이어졌다.
나는 집에서는 초본에서나 수목으로는 돈나무 화분이 유일한데 산천을 주유하면서 많고 많은 꽃을 완상한다. 초여름 이른 아침 단독 주택 골목을 지나면 담장 너머로 피던 장미꽃도 아름다웠다. 입춘이 지난 이즈음이면 주택 뜰에 피는 매화를 보기 십상인데 내 기대는 빗나가질 않았다. 어느 골목 모퉁이를 돌아가니 선홍색 꽃잎을 펼친 홍매화가 향기를 뿜고 있어 반갑기 그지없었다.
또 다른 집의 뜰에서는 산수유나무가 연방 꽃잎을 펼칠 기세로 망울이 부풀고 있었다. 아까 지나왔던 전 근무지 교정에서 전정이 잘못되어 꽃눈이 붙은 산수유 가지가 사라졌던 아쉬움을 보상받게 해주었다. 골목에는 꽃을 파는 가게가 한 군데 있었는데 진열된 화분에서도 눈요기를 잘했다. 이제는 봉림사로 오르는 진입로를 비켜 새로 지은 아파트단지와 한들공원으로 향해 갔다.
폐사지 봉림사지로 가는 들머리 분재원 뜰에 피는 운룡매를 살펴봤다. 이미 대한 이전부터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는 그새 영하권 추위에 꽃잎이 냉해를 입어 시들다가도 다시 기운을 차렸다. 내가 사는 생활권에서 유난히 일찍 핀 매화 그루 주변을 서성이다가 담장에 붙어 자라는 영춘화를 살폈더니 노란 꽃잎이 몇 장 붙어 있었다. 영춘화는 봄을 맞이한다는 이름에 걸맞게 화사했다.
도심에 봄이 얼마만큼 침투했는지 살핀 걸음 종착지는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상가 주점이었다. 그새 연락이 오간 같은 아파트단지 꽃대감 친구와 김치찌개 안주로 맑은 술을 잔에 채워 비웠다. 마주 앉은 꽃대감은 유튜브에 올릴 올봄 방송 첫 소재로 블루펜시아를 준비한다고 했다. 우리도 웬만큼 든 나이인데 옆 테이블에는 우리보다 열 살 더 들어 뵈는 노인은 자작으로 잔을 비웠다. 23.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