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편다.
광주에서 왼쪽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법성까지 가면 되겠네.
잠은 텐트속에서 잔다.
밥은 해 먹는다.
그리고 나는 걷는다.
8월 3일 목요일
사정이 생겨 오전 11시에 출발했다.
50번 버스를 타고 송산유원지로 갔다.
잠시 숨을 고른다.
해야
발갛게 솟은 해야.
날 잡아 먹지 말거라.
삼도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그리고 해가 수그러질 때까지 큰 나무아래에서 잤다.
일어나니 아이들이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한다.
출발할 때가 됐네.
해가 진다.
그러더니 등 뒤에서 구름이 우르릉거리며 잔뜩 몰려온다.
죄 진게 많아서 천둥소리에 깜짝깜짝 놀랬다.
바람처럼 후다다닥 피해 학교 처마 밑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나니 소나기가 쏟아진다.
누가 준 우비가 집에 있는데....
모든 학교에는 물이 있다.
밥 해먹고 나니 집에 가고 싶어진다.
학교 앞길에 집으로 가는 500번 버스가 막 지나간다.
첫날만 지새보자.
그리고 정 안되면 집에 가자.
8월 4일 아침 5시
일어나보니 몸도 마음도 말짱하다.
가자 가자 가 보자.
오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영광군청까지만 가면 성공인데...
당산 아래에서 한참 쉬었다.
바람도 잘 통하고 어르신들도 안 계시고
정말 편히 쉬었다.
12시가 넘었을라나.
더위서 다리 밑에서 쉬고 있는데
고추 따서 집에 들어가시는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가서
점심을 먹여 주신다. 할머니만 바쁘셨다.
점심 먹고 할아버지 먼저 주무시고 할머니랑 나는 커피 마시고 잤다.
한 참 자고 나니 또 구름이 몰려오고 천둥소리가 들린다.
소나기가 한참 퍼부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소 깔베러,
할머니는 고추밭으로,
나는 길위로 나섰다.
오후 6시 월송초등학교에 도착했다.
멈출까 하다가 딱 한시간만 더 걷기로 한다.
7시가 되었다.
어디서 자야 할까?
마을은 보이는데 당산나무가 안 보여.
그런데 다행히 길 옆에 마을 회관이 보인다.
우리 아빠가 마을 이장님이신데 이 동네 이장님도 우리 아빠 같으실까?
일단은 물어나 보자.
마을로 들어서는데, 한 잔 거하게 드신 아저씨가 나오신다.
인사부터 하고 사정을 얘기했다.
앞 집으로 들어가시더니 다른 아저씨와 함께 나오셨다.
그 분이 회관 관리자이신 것 같다.
세상에나!!
어찌나 좋은 분이신지.
선풍기 갖다 주시고
물 갖다 주시고
행여 무슨 일 생길까 둘째 딸을 보내 같이 자라고 한다.
또 둘째 딸은 도시락통에 밥을 싸다 준다.
한참 있으니 아저씨가 포도는 어디서 나셨는지 두 송이나 주신다.
잘 때가 됐는데, 새 이불을 펴준다.
이렇게 황송하고 감사할 데가 있나.
8월 5일 아침 5시 50분
22번 국도는 걷는 곳이 아니였다.
주변 도로를 찾는데 한 참 고생했다.
그래도 서두른 보람이 있었다.
아침 해가 덜 가신 7시가 못 되서 법성에 도착했다.
왔는데, 이를 어쩌나.
기운이 남아 버렸다.
지도를 펴고 위쪽을 본다.
아직 배는 고프지 않아.
조금만 더 걸어 보자.
가마미加馬尾 해수욕장.
도보여행에 끝길...
그 길 참 좋았다.
밀물에 들어왔다가 썰물에 빠져 나가지 못한 물고기들..
오~~담에 잡으로 와야지.
귀여운 아이들도 만났다.
신기한건 가마미 해수욕장에서 수영하고 노는데
이 녀석들을 만난 것이다.
셋 다 놀랬다.
9시 무렵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밥을 해 먹었다.
복숭아 홍차 타 먹고 한 숨 잤다.
정오가 되니 덥다.
수영도 못하면서 갯벌물에서 잘 놀았다.
발에 물집이 세군데.
그만 가자.
어제 뉴스, 폭염이라던데.
됐어. 처음 치곤 잘 했어.
애썼어.
오후 2시 45분차.
광주 얼마에요?
5,800원요.
얼마나 걸려요?
1시간 30분요.
버스 타고 오는 길에
정말 많이 웃었다.
지금은 집이고 내일은 일요일이다.
낼 아침에는 무등산에 갔다가
시원한 도서관에서 책이나 봐야지..
휴~~살아서 다행이야....
* 2박 3일 걸으면서 사진 많이 찍었는데,
다른 분처럼 많이 올리는 방법을 몰라요.
플래닛에 다른 사진들 있는데..아주 심심하면 놀러 오세요..*^.^*
첫댓글 ㅎㅎ 젊은 아가씨가 사람 살아가는 뭔 맛을 보여주는것같아~~!!표현이좋은건지 성격이 그렇게 좋은건지~~??ㅋㄷㅋㄷ 수고했습니다.도서관도 좋고 마을회관도 좋아요~~~!!생각만 건강하면 뭐가 문제이겠습니까??
특별한 여행을 하셨네요.저희 친정동네도 지나쳐 가셨군요.젊음이 있기에 그대의 모습이 더 아름다워 보이네요...
어느 마을일까요? 걷다 보면 마을 이름이 적힌 돌들 많이 보거든요. 쉬어간 마을도 있고 지나친 마을도 있어요...지나는 가지만 그 마을에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고,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지 생각을 해 본답니다......마을에 사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연이 있을테고, 그 사람에겐 집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손 때 묻은 물건들이 있고, 마당이 있고.......그런 생각들요.......하얀나비님이 살고 있는 마을에도 벼는 무럭 무럭 자라고 있겠지요.........그 어느 마을에 사람 하얀나비님이 내게 마음을 남겨 주어서 감사해요....
솔로일때 그런놀이도 혼자 해보고 좋아요...아주 나도 하고싶다 그런데 딸린게 너무 많아서......ㅎㅎㅎ
ㅎㅎ. 둘째딸은 을매나 잠자리가 불편했을까요! ㅎㅎ.
대학교 3학년....마음이 참 고운 학생이였어요...너무 피곤해 9시 넘어 일찍 잠들었는데 그래도 불편은 했겠지요...항상 미안했던 사람들...감사했던 사람들이 많아요.....만약 저희 집에 여행자가 찾아오면 저도 그리 대접해 드릴꺼에요...따뜻한 웃음, 맛있는 밥, 다정한 관심, 진심이 담긴 응원을............
전 욕심이 많아서 올바른 여행자가 못 된답니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봐야하고, 또한 더 바빠야 하거든요. 고마운 마음만 감사합니다.
대학교때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첫날 잠자리로 정한곳이 학교였는데... ㅋㅋ 첨엔 학교가 젤 만만했더랬죠. 그리고 날이 갈수록 길을 가다가 걍 아무데나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드랬죠. ㅎㅎ 그 시절이 생각나 피식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