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들녘에서
입춘 이후 추위는 물러가 아침 기온이 영상권인 이월 초순 화요일이다. 근교 들녘과 강둑을 걸으려고 도시락을 준비해 길을 나섰다. 배낭엔 냉이를 만나면 캘까 싶어 호미도 챙겨 넣었다. 동정동으로 나가 창원역을 출발해 유등 강가로 가는 2번 마을버스를 탔다. 가끔 이용하는 마을버스인데 기사가 중년 여성이라 운전대를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는 나는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용강고개를 넘은 버스는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을 지나 주남삼거리로 향했다. 주남저수지와 인접한 동판저수지는 갯버들 사이 수면엔 철새들의 개체 수는 흔하지 않았다. 본향으로 복귀를 앞둔 철새들은 먼 비행의 체력 비축을 위한 먹이활동과 이륙 연습으로 어디선가 몸을 푸는가도 싶었다. 주남을 지난 들녘은 일모작 벼농사 지대와 비닐하우스 특용작물 단지가 겹쳤다.
마을버스는 대산면 소재지 가술에서 모산을 거쳐 강변의 북부동으로 갔다. 대산 들녘 북단이라 북부동인데 작년 방송 드라마에 나온 고목으로 전국에 알려졌다. 야트막한 산등선이 동부마을과 서부마을로 나뉘는데 동부마을을 지키는 팽나무가 드라마 배경이 되어 유명세를 탔다. 한때는 팽나무를 보려고 외지인들이 몰아온 차량과 관광객이 넘쳐 작은 마을은 수용 한계에 넘쳐 났다.
차창 밖으로 당근을 경작하는 비닐하우스 건너 우뚝한 위용을 자랑하는 그 팽나무가 보였다. 대산 들녘은 예전에는 벼농사 뒷그루로 비닐하우스에 수박 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근래 당근 농사로 작목이 바뀌어 갔다. 들판이 광활해 수박이든 당근이든 경작 면적이 넓어 비닐하우스 설치와 철거에는 인력의 수요가 많았다. 파종과 수확 시기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유청을 지난 종점 유등에서 나는 내리고 남은 승객 둘은 들판 마을을 더 가서 내릴 손님인 듯했다. 동읍 산남저수지 인근에서부터 흘러온 죽동천은 샛강이 되어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이 유등배수장이다. 배수장은 평소 조용하다가 여름철 큰비가 내리면 내륙에서 모여드는 물이 농지를 잠식하기 전에 강둑 바깥으로 퍼내는 기능으로 홍수 방재에 반드시 있어야 할 시설물이었다.
4대강 사업으로 강변 둔치는 공원이 조성되고 자전거 길이 뚫렸다. 나는 자전거가 아닌 도보로 나선 산책을 자주 다녀 익숙한 주변 풍광이었다. 말을 키우고 조련하는 승마클럽을 지나다 논둑에 냉이가 보여 몇 뿌리 캐서 행정 구역이 창원 대산에서 김해 한림으로 바뀐 가동마을로 갔다. 강변 따라 새로운 지방도를 개설하는 공사는 예산 확보가 더뎌서인지 수년째 진행 중이었다.
술뫼 생태공원 파크골프장에는 여가를 즐기는 동호인들이 운집해 잔디밭을 누볐다. 골프는 서너 명이 한 조가 되어 각자 표식이 된 작은 공을 채를 휘둘러 홀로 몰아가는 방식이던데 나는 관심이 전혀 없는 운동이다. 내가 현직이었을 적에 인연이 닿은 한 분은 창원에 살면서도 그곳 파크골프장을 자주 이용한다고 들었다. 한림면 소재지 식당들도 골퍼들이 찾아 맛집이 늘어났다.
파크골프장과 인접한 시산동산에 올라 점심때가 일렀지만 도시락을 비웠다. 이후 술뫼마을 언덕의 지인 농막을 찾아갔더니 그는 유튜브에 영상으로 올릴 기타 연주 연습에 열중이었다. 실내로 들어 차를 마시며 밀린 안부가 오갔다. 자갈치시장에서 구했다는 장어 어묵을 맛봤는데 식감이 특이했다. 장어 껍질을 삶아 굳혀 돼지머리를 누른 편육과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어묵이었다.
농막은 훗날 다시 들리기로 하고 둑길을 걸어 화포천이 흘러온 한림 배수장에서 들녘을 걸었다. 신촌에서 시전마을을 지나니 딸기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단지가 펼쳐졌다. 농수로에 자라는 냉이가 보여 쪼그려 앉아 캐 모았다. 지난해 가을 싹이 터 자라다 겨울을 넘긴 잎맥은 암녹색으로 바뀌었다가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냉이 곁에는 엷은 하늘색의 봄까치꽃이 점점이 피어났다. 23.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