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계
황 인 찬
머그잔에 얼음을 담았고 거기 커피를 내렸습니다 쩍 하고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바깥은 분홍빛 하늘 어제도 그제도 봤지만 매일 놀라는 마음입니다 요즘은 휴거가 제철입니다 창밖을 내다보면 아이와 놀던 엄마가 혼자 들려 올라간다거나 산책 나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아 찾으러 나온 사람들이 늘었다거나 봄날 저녁의 풍경입니다 너는 웃으면서 이곳을 보고 있습니다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반투명 처리가 되었군요 플레이한 적도 없는 게임의 엔딩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익숙한 일입니다 작은 영혼마저 수차례의 죽음 끝에 너덜너덜해진 것이 작금의 처지 퇴근 후 봄날 저녁 커피 한 잔의 여유 같은 것만이 저의 작은 위안입니다 쩍 하고 얼음이 깨지는 소리 커피는 검고 그 맛은 물에 한없이 가깝습니다
- 시집〈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문학동네 -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 예스24
“삶도 사랑도 그렇게 근거 없이 계속되는 것입니다”명명됨에서 비롯되는 마음들불합리한 세계 속에서도 근거 없이 지속되는 사랑황인찬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서정제66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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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시집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문학동네 /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