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사도행전(31) 스크랜턴 선교사(9)
선교사의 딸 유관순
1910년대 충남 목천군 이동면(현 천안시 병천면)은 서울과 공주를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이 부근을 자주 왕래하며 교회를 세웠다. 유관순의 고향인 이동면 지령리 (현 병천면 용두리)에도 교회가 세워졌고 선교사들이 방문했다. 이 교회에서 유관순이 푸른 눈의 여성 선교사 앨리스(Alice)를 만났다.
앨리스 J 해몬드 샤프(Alice J. Hammond Sharp 1871~1972) 선교사는 미국 북감리회 소속으로 1900년 조선에 왔다. 앨리스 선교사의 한국 이름은 사애리시(史愛理施). 사람들은 그녀를 ‘사부인’으로 불렀다. 초기엔 메리 스크랜턴 부인과 함께 이화학당 교사이자 상동교회 주일 학교 교사와 순회전도자로 활동했다. 1903년 한 살 연하인 로버트 샤프 선교사와 결혼, 1905년 충남 공주로 내려가 충청지역 최초 근대적 학교인 명설학당(영명학교 전신: 남학생)과 명선학당(영명학교 전신:여학생)을 설립했다.
신혼의 꿈과 새로운 사역에 대한 희망도 잠시, 남편인 로버트 샤프 선교사는 노방전도 중에 장티푸스에 걸려 1906년 사망했다. 앨리스 선교사는 남편을 영명학교 인근 언덕 (영명동산)에 묻고 미국으로 귀국했다가 1908년 돌아와 선교사역을 이어갔다.
앨리스(史愛理施) 선교사 유관순을 양녀로 삼다
이런 앨리스 선교사는 어린 유관순이 교회에 나오는 것을 기뻐했고 성경을 술술 암송하는 것을 기특하게 여겼다. 유관순 집안은 일찍부터 기독교를 받아 들였다.
집안에서 가장 먼저 개신교에 입문한 사람은 작은 할아버지 유빈기로 한글 성경을 파는 매서인이 되었다. 이후 숙부 유중무가 개신교를 받아들이면서 일가 친척들도 개신교인이 되었다. 다만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은 일가 친척이 모두 개신교로 개종하는 상황에서도 조상에 대한 의무 때문에 혼자서 제사 지내며 전통의 풍습을 지켜냈다. 그러면서도 유관순이나 장남 유우석이 교회에 다니는 것을 막지 않았고 아이들을 신식 학교에 보내는 것을 허락했다.
유관순, 공주(公州) 영명 학교에서 성장하다
유관순이 11살일 때 앨리스 선교사는 그녀 가족을 만나 그녀를 공주에 데려가 영명학교에서 공부를 시키겠다고 제안했다. 가족들이 허락했고 유관순은 1914년부터 2년간 영명학교의 중등 과정을 다녔다. 선교사의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앨리스는 유관순을 양녀로 삼았고 1916년엔 서울 이화학당에 교비 장학생으로 전학시켰다.
이후 유관순은 1918년 이화학당 고등 보통과에 진학했다가 1919년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