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서울에 가야 뭘 해도 행세할 수 있다는 중앙집권적 사고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중앙집중의 권력이 해체되고 있는 지방화 시대가 시작되는 탈중심의 포스트 모던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생각된다. 하물며 산중에서 수도하고 계시는 스님들까지 굳이 서울로 오실 필요가 있을까? 만약 스님들보고 [서울 가자]고 그런다면 필히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다.
*잘못 기획된 조폭 영화의 변주곡
달마는 그냥 심산유곡, 핸드폰도 잘 안터지는 절에 있는 게 좋을 뻔 했다. 교통지옥 환경오염 서울까지 와서 심하게 고생하는 달마를 보면, 그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화두가 살아있던 [달마야 놀자]의 맑은 웃음이 간절하게 생각난다. 달마를 거대도시 서울 한 복판으로 내려가게 함으로써, 이질적 문화의 충돌은 극대화 되고 웃음은 확대재생산 될 것이라고 믿었던 제작진들은, 커다란 판단 착오를 한 것이다. 스님/조폭, 절/도시의 대립적 충돌이 깊은 웃음을 만들어내려면, 근본적으로 각각 자신의 위치 확인을 현명하게 해야 한다. [달마야, 서울가자]는 전형적으로 전편의 상업적 성공에 무임승차하려는 속편의 얄팍한 제작의도를 보여준다.
[달마야...] 시리즈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스님들과 조폭들을 망가트려 단순히 희화화함으로써 말초적 웃음만을 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369 게임이나 고스톱, 물 속에서 오래 참기 등이 재미를 주었던 것은, 정신적 구원의 길을 걷고 있는 산중 스님들의 무소유 정신과, 세속적 성공과 야망에 시달리고 있는 도시 조폭의 갈등이, 인간 존재의 본질적 질문까지 연결되는 척이라도 했기 때문이다.
*말초적 웃음에 그치는 실패한 속편
그러나 [달마야, 서울가자]는 말초적 웃음에 그친다. 스님들과 도시 조폭의 노래방 대결이라든가, 술대결, 짱대결 등이 등장하지만 그런 에피소드들이 삶의 본질적 모순과 연결되는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파편적으로 에피소드 그 자체에 머물고 말 뿐이다. 스님/조폭의 전선이 선명하게 살아있지도 못하고, 캐릭터의 개성적 모습도 연출되어 있지 못하다.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청명스님/정진영 분), [불효자는 웁니다](현각스님/이원종 분) 등의 노래방 노래 대결 씬들은 배우들의 동네 노래잔치 이상이 아니고, 참선주 열반주 극락왕생주 등 숱한 폭탄주들을 제조하는 산중 스님들의 의뭉스러운 시치미떼기도 말초적 현상에만 치우치기 때문에 웃음의 효과는 극히 짧다. 술 마시기를 금기시하는 산중 불문율을 이용하여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극적 장치라는 것이 너무 뻔히 드러나 보인다. 거기에 스님과 처자의 키스씬까지 등장한다. 난처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그 역시 선정성을 강조하여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것임은 분명하다. 거기에 또 다른 깊은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뻔뻔한 일이다.
*스님/조폭이라는, 정신적/육체적 대립구도가 안살아난다
해탈이라는 정신적 무게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스님들과, 육체에 모든 것을 의지하여 세상을 평정하려는 조폭들은 모든 면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다. [달마야 놀자]에서 조폭들의 세력은 이원화되면서, 스님/조폭의 단순 대립은 스님/절속의 조폭/절 밖의 조폭으로 새끼를 치며 복잡해진다. 그리고 스님과 절속의 조폭이 한 묶음이 되어, 절 밖의 조폭들과 대결하는 구도로 전개되는 변주가 재미있었다.
그러나 [달마야, 서울가자]는 빚더미에 차압당해서 조폭들의 수중으로 넘어가려는 도심의 절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로또 당첨을 위해, 당첨 영수증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님들의 비정상적 활동이 파편적으로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그것들은 상당 부분 억지스럽다.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 캐릭터의 개성적 표출이 사라졌다는 것, 이것이 [달마야, 서울가자]의 가장 큰 단점이다. 전편의 스님들은 무언스님(류승수 분)을 제외하고 그대로 출연하고 있지만, 조폭들은 민간사업체로 위장한 대륙개발 개발부장 이범식(신현준 분) 일당으로 환골탈태하여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신현준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던 [킬러들의 수다] 이후 최악의 연기로서, 악을 쓰는데 그치고 있다.
[달마야 놀자]의 신선한 재미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심산유곡의 무공해 공기를 들이마시는듯한 스님들의 맑은 언행과 속세의 탐욕에 찌들은 조폭들의 한판 대결이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달마야 서울가자]는 탐욕의 한 복판인 서울까지 내려온 스님들이, 더욱 처절한 내공을 펼치고 감동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하게 갈팡질팡 주제를 찾지 못하고 좌충우돌만 하고 있다. 물론 원인은 잘못된 기획, 전체를 관통하는 힘 있는 연출력의 부재,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