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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작소설비평회♣ 원문보기 글쓴이: cafe
길을 묻다 이원화 내안에서, 또 다른 내가 소리친다. 뭔가 써야 한다고, 쓰지 않으면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다고. 아니다. 쓰는 걸 놓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왼손의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전기가 흐르는 듯 저리면서 먹먹하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맞잡고 주물러 보다가 손바닥을 펴고 찬찬히 들여다본다. 감각이 이상한 손가락이나 그렇지 않은 손가락이나 겉모양엔 차이가 없다. 창밖으로 보이는 공원의 풍경이 무성영화를 보는 듯하다. 공원 광장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의 양쪽으로 벌린 팔이 마치 새가 날 듯 자유롭다. 아마 데이트 중인 모양이다. 서로 손을 잡은 남자와 여자가 엉거주춤 허리를 구부린 채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자꾸만 미끄러지려는 여자를 안아 세우며 남자는 다리에 힘을 주겠지. 여자는 넘어지면서도 웃음을 날릴 것이다. 웃음이 꽃잎처럼 바람에 날리는 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속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보이는 날, 나는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컴퓨터의 본체에서 나는 윙윙거리는 소리와 수족관에서 들리는 도랑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뻐꾸기는 문을 닫고 들어갔고, 잣열매 모양의 시계추는 한없이 흔들거리며 시간이 흐르고 있다. 컴퓨터 앞에 마냥 앉아있는 사이 공원 주차장엔 차가 한 대 두 대 늘어나더니 금세 넓은 주차장이 가득 찼다. 주차요원의 호루라기 소리가 이명처럼 들린다. 아마 아파트 주차장에서는 차들이 한 대 두 대 빠져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연휴까지 끼어있는 이번 주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도착한 여행지에 하루치의 짐을 풀고 몸도 마음도 쉬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자동차의 창문을 열면 바삭바삭 마른 흙이 곧 눈으로 들어올 것 같았다.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의 발신 번호를 확인 한 김 기자가 핸드폰을 그냥 내려놨다. "그냥 받아요. 저는, 상관없잖아요." 서너 달 전 부서의 소속이 바뀌면서 담당 출입처가 바뀌어 알게 된 입사 십년 차의 기자였다. 시끄러운 벨소리 때문에라도 그가 전화를 받았으면 싶었다. 그에게선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동행의 불편함 때문일 것이다. 출장길에 동승하게 된 업무상의 관계.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관계. 마른 흙처럼 서걱거리다가 일이 끝나고 나면 산뜻하게 각 자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관계. 내가 일하는, 민간단체의 출입 기자와 '백제문화체험' 현장에 가고 있다. 민트향이 느껴지는 가벼운 캐주얼 차림인 그에게서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창밖은 가을인데, 그에게선 봄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다시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곳곳의 카메라를 의식했다. 속도위반 단속 카메라에 나란히 얼굴이 찍혀 나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란히 앉아 사진에 찍히는 순간 조수석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되는 사회적 방식에서 느껴지는, 투명함이 아닌 불신의 느낌. 그 느낌이 싫었다. 속도위반 단속 카메라의 센서의 반짝임이 아닌 생의 순간순간들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매월 제 날짜에 정확하게 지급되는 급여일까. 밀린 급여가 언제 나오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삶이 좀 더 명확하고 명쾌해질까. 선명한 빛깔의 은행잎과 단풍잎 가득한 고속도로 변 풍경들이 새로웠다. 풍경 속에서 나무들은 계절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니다. 풍경을 이루는 나무들은 제 각각 물관의 피돌기 속도를 조절하며 스스로 잎을 떨구어 내어 정리가 아닌 새로운 계절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년 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오르내렸던 길인데도, 머릿속에 풍경의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길이었다. 내 마음에 버석거림으로 남은 길. 이 길이 끝나고 나면 길의 위치가 분명해질까. 길이었다고, 막다른 길이 아닌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고 이름 지어질 수 있을까. 역사에 묻혀 버린 백제를 찾아가는 길. 죽은 자들을 땅 속에 꼭꼭 묻는 순간 기억도 그렇게 묻어버릴 수 있다면, 산 자들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땅 속에 그들을 꼭꼭 묻는 순간 남은 자들의 삶도 함께 묻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인용 병실의 왼쪽 침대에 남편의 자리를 만들었다. 끊임없이 고통을 호소하는 남편의 손을 붙잡고, 점점 흐려가는 남편의 눈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 줄까?" "추워." 남편은 끝없이 추위를 호소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 여름인데, 남편은 혈액의 수치가 떨어지면서 나타나는 추위에 더욱 고통스러워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한꺼번에 서너 팩의 수혈을 받아야 했다. "저거 폭탄, 폭탄이 곧 터질 것 같아. 저거 좀 어떻게 해 줘." 링거 거치대에 매달린, 혈압기의 원리로 압력을 가해 공기를 넣어 혈액팩을 누르는 둥그런 모양의 고무로 된 기구로, 혈액팩에서 혈액이 잘 흘러나오도록 하기 위해 설치한 보조 기구를 남편은 폭탄이라며 불안해했다. 폭탄. '에 매달린 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안전핀 뽑힌 폭탄. 남편 자신에 대한 위치설명은 아니었을까? 하루하루 입원 날짜는 늘어가는데, 자신의 몸에선 자꾸만 힘이 빠져나가는 이상한 날들. 오늘밤이 지나면 힘이 좀 나겠지. 내일은 좋아지겠지. 그렇게 스스로 자위하며 보낸 시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저 딸아이를 두고??. 좋아지겠지. 의지만 있다면 살아야 해. 그렇게 남편은 힘을 얻으려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더욱 나빠지고 있었다. 다시 수혈을 하자는 의사에게 물었다. "혹시 내 욕심 때문에 그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아닌가요? 수혈로 오히려 생명을 연장해서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거라면 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습니다. 치료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몸 상태를 좀 더 좋게 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럼 기다려야하는 건가요? 무작정??. 뭘 기다리죠?" 남편은 활짝 피었다가 스러져가는 한 송이 꽃이었다. 꽃이 아름다건 꽃이 필 수 있는 희망이 있었고, 스스로의 힘으로 꽃을 피워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그 꽃에 생명이 있는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사랑이라는 마술에 최면이 걸려 자신의 온 힘을 다해 꽃을 피워 내고, 그 정점에서 스러져가는 자신을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난 결혼 생활동안 내가 남편의 진기를 다 뽑아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생명은 있으나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자신의 의지로는 몸을 돌려 누울 수도 없는 상태의 남편이었다. 스스로는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병실을 나섰다. 따스한 햇볕이라도 쪼이고 나면 곧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모자를 씌우고, 담요를 덮어 발아래 햇볕이 따스한 곳에 휠체어를 세웠다. 미동도 없이 앉아있는 남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통통해서 손으로 만지면 매끈한 느낌이 너무 좋던 볼은 움푹 패었고, 반짝반짝 윤이 나던 얼굴은 푸르스름하게 변해있었다. 저 얼굴이, 불과 몇 달 전까지도 울퉁불퉁하던 어깨근육이 뼈만 앙상하게 남아 추위와 아픔을 호소하는 저 사람이 남편이 맞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집결지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동행한 김 기자 뿐, 대다수가 칠팔십 세가 넘은 할아버지들이었다. 할아버지들을 보면서 남편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겨우 절반 살고 가다니??. 남편은 뭔가. 남편은 잘 있을 거라고, 애써 나 자신을 다독였다. 백제 시대의 벽화를 볼 수 있는 능산리 고분군에 들렀다. 울타리처럼 둘러쳐진 금은화로도 불리는 인동초 덩굴을 보았다. 백제 지역에서 출토 또는 발견되는 유물들에서 보여주는 왕과 왕비, 6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머리에 쓰는 관에 꽂았다는 인동꽃 무늬의 장식품들이 가을 햇살 아래 피어난 인동꽃과 잘 비교되었다. 왕은 금색의 꽂이를 머리 양쪽 귀 위에 꽂았는지, 앞뒤로 꽂았는지 아니면 앞면에 사선으로 꽂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으나 금도금인 것만은 분명하고, 벼슬아치들은 하나의 은꽂이를 이마 정 중앙에 꽂았다. 왕과 왕비가 금도금 꽂이를, 6품 이상 벼슬아치 부부들은 은꽂이를 꽂은 모습은 먼 옛날 백제에서도 아내는 남편의 출세여부에 따라 그 신분이 구분되는 것으로 보였다. "이 카드, 정지됐는데요." 어느 날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신용카드를 내밀었을 때, 카드체크기에서 확인을 한 종업원이 말했다. 아뇨. 그럴 리가, 연체된 것도 없는데??. 카드사에 확인 전화를 했을 때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상담원의 기계적인 답변에 또다시 절망했다. 금융감독원을 통해 남편의 사망사실이 카드사에 통보되었고 카드가 정지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번쯤 카드 명의자에게 통보는 해 줘야하지 않았을까. 바다 속 물고기의 알까지도 모조리 건져 올릴 수 있는 저인망 그물처럼 빈틈없이 연결된 전산망에 의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카드가 정지되고, 미망인이라는 꼬리표를 다시 확인했다. 흐르는 시간을 이기지 못해 삭아 없어지고 약탈당하고 도굴당하고??. 그 희소성 때문에 더욱 가치를 지니는 물건들. 어느 한 때 후원을 거니는 왕과 왕비의 권위를 더욱 높여줬을 여러 장식품들. 마흔네 명의 자식을 거느린 의자왕은 당나라로 끌려가 소정방에게 치욕적 수모를 당했다고 하니, 영욕의 세월 뒤의 무상함은 또 뭔가. 끌려간 뒤 달포 만에 그 숨을 놓은 의자왕이 묻혀 있다는 북망산. 지금 남편은 어디쯤 있을까. 남편은 편안할까. 숨을 놓은 그 순간 남편의 고통은 사라졌을까. 더 이상 뼈마디를 만져주지 않아도, 마약성 진통제가 없어도 괜찮을까. 문 밖이 죽음이라고? 아니다. 삶과 죽음은 늘 한자리에 있다. 서 있는 그 자리에 삶도 죽음도 함께 있다. 벽과 천장 등 삼면에 사신도와 연화당초문양 등 채색벽화를 재현 해 둔 모형 전시관에서 한 뼘 정도의 크기로 늘어선 정사각형 화강암 관 받침대를 보았다. 산 자들의 기준에 맞춘 죽은 자들의 집에 들어가 벽화를 구경하고, 구석진 천장을 차지하고 거꾸로 매달린 귀뚜라미들을 보았다. 무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들이었다. 남의 집에 들어와 천연덕스럽게 자리를 차지한 귀뚜라미들. 누가 진짜 주인일까. 죽었으므로 무덤의 주인이 되었을 테지만, 죽었으므로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면 그 자연의 진짜 주인은 생명을 지닌 귀뚜라미들이다. 광물질로 채색한 벽화의 아름다운 문양과 그 색에 감탄하면서 산 자와 죽은 자가 구별되지 않은 느낌 때문에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졌다. 초대받지 않은 남의 집을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산 자들이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 무덤이라면 죽음이 구경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먼저 집에 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나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왔다. 남편을 뒤로하고 장농문을 열며 기억을 헤집었다. 무슨 일이지? 자켓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스커트 후크를 열고, 블라우스의 단추를 푸는 나를 향해,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편으론 떨리는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일 병원에 좀 가봐야 할까봐." 순간 오 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 달이 넘도록 자리에 누워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하면서도 쉬지 않고 검은 물을 토해내던 시어머니. 단추를 풀던 손가락을 멈췄다. 단추를 풀어내던 손가락을 멈추고 짧게 뒤돌아보았을 때, 남편은 한 쪽 손으로 허리를 짚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내 고개를 돌리고 심상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었다. 어린아이가 엄마의 허락을 기다리듯, 소풍을 가려는데 엄마가 따라오는지 아닌지 확인하듯 남편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모른 척 아무것도 못 본 척 단추를 풀던 내 가슴속에서 뭔가 쿵, 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그 동안 건강검진을 받아보자고 늘 말해도 안 듣더니??. 고덜 떨리는 손가락의 떨림을 애써 감춘 채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더운물에서 찬물로, 찬물에서 더운물로를 여러 번 반복하도록 서 있었다. 그렇게 서 있는 동안 새벽안개처럼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늘 다니던 길인데도 한치 앞도 알 수 없도록 짙은 안개. 한 발만 내딛으면 낭떠러지일 것 같은 안개 속에서 손을 내저어 흐릿한 거울을 닦아냈다. 더운 물줄기에서 피어난 안개로 거울은 이내 부옇게 흐려져 실루엣을 지워버렸다.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에 몸을 내맡긴 채 마치 할 일이 그 뿐인 양 서 있었다. 오래도록 샤워를 하고 나면 머릿속까지 맑아져 병원에 가는 일 따윈 까맣게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가 맞부딪치며 몸이 떨려올 때쯤 타월을 두르고 나와 남편 곁에 누웠다. 남편의 얼굴이 창문에 든 달빛에 젖어 흐릿하게 보였다. 남편의 고개를 들어 팔에 올리고 꼭 안았다가 내려놓은 뒤 천천히 남편의 몸을 더듬었다. 아침에 면도를 한 까실까실한 수염이 자라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안고 긴 입맞춤을 했다. 이두박근 삼두박근하며 만지고 장난치던, 운동으로 잘 다져진 근육질의 어깨를 안고 깊숙이 남편을 받아들였다. "내가 당신 사랑하는 거 알지? 오래오래 곁에 있을 꺼지? 난 당신 없으면 못 사는 거 알지?" 남편을 안으며 마치 다짐을 받듯 물었다. 남편을 향한 그 물음들이 나 자신을 향한 물음들이기도 했다. 지난 결혼 생활동안 내내 한 순간도 잊지 않고 남편을 사랑했는가? 지금까지 남편의 그늘 속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저 부부라는 이름으로 의무처럼, 당연한 것처럼 살아오지 않았나,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피검사와 초음파 검사 등 간단한 몇 개의 검사를 마치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좋은 결과에 만족한다는 듯 반말투로 의사가 말했다. "무지하게 건강하구만. 위내시경 검사나 한 번 해봅시다." 성실납세 대통령 표창장과 온갖 골프시합 수상 컵으로 진료실 전부를 장식 해 놓은 의사를 의사로 보이게 한 것은 벽면에 걸린 사진이 붙은 의사면허증이 전부였다. 수면 내시경 검사로 남편은 잠시 잠이 들었다. 개인 병원인 때문인지 검사실에서 남편의 위상태를 직접 볼 수 있었다. 긴 검사용 내선이 식도를 지나 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보았다. 선홍색이어야 할 남편의 위는 마치 개펄 같았다. 육지에서 밀려온 개흙에 덮여 썩어가는 개펄. 바지락도 게도 지렁이도 아무 것도 살 수 없는 개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썩은 냄새가 날 것 같은 개펄. "그 동안 건강 진단 받지 않으셨나요? 위암입니다. 지금 당장 수술은 어렵군요. 경과를 지켜본 다음에 수술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죠.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내시경 검사 전 반은 농담처럼 건강을 장담하던 의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을 하고 말했다.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리지 않아도 확연하게 알 수 있을 만큼 남편의 병은 깊게 진행되어 있었다. 어떻게, 얼마만큼 나쁘다는 설명도 없이 의사는 수술도 안된다고 했다. 오히려 지금 개복을 하는 경우 더 나빠질 수 있다고 했다. 수술 중 사망으로 다시 깨어날 수 없다고도 했다. 나는 절망했다. 의사의 설명 때문이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본 남편의 개펄 같은 위 상태 때문에, 나는 절망했다. "어떻던가?" 위내시경 검사의 상태를 묻는 남편에게 고개를 돌린 채 아무렇지도 않는 듯 말했다. "위에 문제가 좀 있나봐. 지금 수술하는 것보다 좀 더 지켜보자네. 약물로도 치료가 가능하데." 나는 수술도 할 수 없을 만큼 나쁘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수술보다 약물치료 효과가 더 빠르다는 쪽으로 남편에게 전했다. 한껏 밝은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화장실에 가 펑펑 울었다. "우리 이쁜이를 위해서라도 살아야지." 남편은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었을까? 병원 문을 나서며 중얼거린 남편의 첫마디였다. 서른 넘어 결혼해서 얻은 아들과 딸. 이름 대신 늘 이쁜이로 부르는 딸. 세상에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을 예쁜 딸. 이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인 딸. 어쩌면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딸아이 때문에라도 살아야한다고 말하는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내 곁에 남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대부분의 환자나 보호자들이 그렇듯 쉽게 의사의 말을 납득할 수도 없었고, 납득한다 하더라도 전문 암센터에 간다면 좀 더 희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길 위의 날들이 시작되었다. 광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광주로, 병원의 예약 시간과 맞추기 위해 밤이나 낮이나 차를 타고 떠돌아야 했다. 검사실을 찾기 위해 층마다 코너마다 안내자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이 그곳 같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늘 허둥거렸다. 병원은 거대한 밀림 같았다. 아니 거대한 수렁이라는 말이 더 정확한 지도 모른다. 한번 들어가면 벗어날 수 없는, 한 발 담그면 나머지 발까지도 기어이 끌어들이고 마는 거대한 수렁. 그 수렁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한 웅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견딜 수 없어 면도날로 맨들맨들하게 남편의 머리카락을 밀어내면서, 곧 치료만 끝나면 머리카락은 금방 자랄 테니 이 기회에 기념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두자며 웃었다. 낯선 땅에서 혼자 맞는 저녁. 창밖으로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내일쯤 보름인가보다. 내일 밤엔 꽉 찬 보름달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인일실로 배정 받은 방엔 밤늦도록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문을 닫으면 저절로 잠금 상태가 되는 호텔방문의 특성상 누군가 벨을 누르면 깨어 있다가 문을 열어줘야 할 것 같았다. 디럭스트윈룸 더블베드에 혼자 누워 텔레비전의 채널을 이쪽저쪽으로 맞춰보다가 텔레비전을 끄고, 내일 일정표를 꼼꼼히 읽고, 가져간 책을 몇 페이지 보다가 책을 덮어 버렸다. 누구라도 함께 달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달빛 환한 바닷가에서 모래밭에 발이 푹푹 빠지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업어주던 남편. 발에 묻은 물기를 닦고 모래를 털어주느라 호호, 입김을 불던 남편??.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달 때문인지도 몰랐다. 늘 집에서 혼자 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으면서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바로 옆방에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고 있을 김 기자에게 맥주라도 한 잔 하자고 전화를 하려다 포기했다. 요염한 달빛이 비쳐드는 방안에서 밤을 함께 보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달빛 때문이었다고, 혹은 술 때문이었다고 핑계 대고 싶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호텔 주위를 산책하고 돌아와 식사를 하면서 전체 진행자에게 물었다. "원래 이인일실 사용 아닌가요? 밤새도록 기다렸는데, 아무도 안 왔어요." 새벽 다섯 시에 시내에 나가 과일 등의 간식을 준비 해 왔다는 진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집에 전화하세요. 얼른 오시라고." 아이들밖에 없는 집에 뭐라고 전화를 해야 할까. 옆에 있던 김 기자가 끼어들었다. "오메, 나 부르제. 할아버지 때문에 집에서도 안 보는 연속극이란 연속극은 다 봤는디??." 뭔가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소 내가 보내는 보도 자료의 내용에 따라 신문 기사가 달라지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을 전화로 물어오는 경우도 많아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꼭 통화를 하는 김 기자는 사실 나의 사적인 부분은 거의 모를 것이다. 취재차 기자가 방문했을 때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서 걸려오는 전화 통화를 통해 아이들이 있음을 알고 있는 김 기자였다. 나 자신 스스로 남편에 관한 부분을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으나, 사회부에서 십년을 보낸 기자라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낙화암에 올랐다. 처자식을 제 손으로 모두 죽이고 나온 계백 장군의 오천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싸워 이틀 만에 패하자, 궁녀 삼천 명이 백마강에 떨어져 죽었다는 낙화암. 궁녀들의 죽음을 미화시키고 은유시켜, 꽃이 떨어져 내린 바위로 불리는 낙화암에서 탁하게 흐르는 백마강의 물줄기를 보았다. 산자의 편에서 기록되는 역사, 백제를 망하게 했던 신라가 쓴 역사는 철저하게 의자왕을 패악한 왕으로 몰아 민심을 수습하려 했을 것이다. 역사는 싸움에서 이긴 자들이, 살아남은 자들이 자신들의 이기심을 더 해 부풀려 기록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백마강에서 부부가 운행하는 유람선을 타고 강변의 갈꽃을 보다가 부선장인 부인에게 소망을 물어보았다. "우리야 뭐, 이제 애들도 많이 커서 쉬엄쉬엄 하는 거지요. 큰 소망이랄 게 있겠어요. 그저 강변에 갈대나 꽃을 좀 더 심어서 관광객이나 좀 늘었으면 좋겠어요." 아침 8시부터 해질녘까지 손님이 일곱 명만 타면 무조건 출발한다는 부선장의 수줍은 소망에 맞아요, 하며 마주보고 웃었다. 소망은 하늘의 별을 따야하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사소하지만 삶의 힘이 되어주는 그런 것이다. 관광객이 늘어 수입이 늘면 고단함 따윈 까맣게 잊고 집에 돌아가 아이들과 살 부비고 누워 하룻밤을 보내는 것, 그것이 소망을 넘은 삶의 가장 원초적 행복일 것이다. 백제금동대향로를 보기 위해 박물관에 갔다. 세 발로 중심을 잡고 한 발을 '에 세운 채 입으로 여의주 대신 향로의 몸체를 받든 용의 모습이 마치 우리 가족의 모습 같았다. 기둥이 되어 서로를 받치고 있는 아이들과 나, 그리고 '에 자리한 남편. 스물네 옆의 연꽃잎 모양의 몸체 아랫부분에는 현실과 상상 속에 나타나는 동물과 물고기와 인물상이, 뚜껑인 윗몸체에는 일흔네 개의 산봉우리에 상상과 현실 속의 동물 서른아홉 마리와 다섯 명의 악사를 비롯한 열여섯 명의 인물상이, 향로의 손잡인 맨 윗부분에는 여의주를 턱밑에 끼고 날아오르는 봉황이 표현되어 있었다. 향로에 표현된 여러 형상들의 정교함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문양과 문양 사이사이로 구멍까지 뚫려 있어 향을 피우면 그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고 했다. 죽은 자들을 위한, 시간이 녹아 흐르는 향로 앞에서 시간의 깊이를 보고 있었다. 연꽃잎 속에 흐르는, 삶속에 자리한 종교의 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종교, 거기 실린 사람들의 염원. 다섯 명의 신선인 악사들이 들고 있는 악기들의 현을 켜면 향로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구름인 양 그 향에 취해 선계를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어느 새 춤을 추고 있었다. 현을 켜고 있었다. 벽화 속 여인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멈추어 있었다. 선계의 남편이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하이라이트로 빛나는 백제금동대향로에서 남편이 줌-인으로 내게 오고 있었다. 향로의 연기 속에서 유영하는 남편은 관자재보살이었다. 미륵부처였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동사무소에 사망신고를 하자, 열두 살 아들이 호주가 되어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 나의 보호자, 열두 살, 겨우 초등학교 5학년 아들. 남편의 호적을 정리하고 발급 받은 주민등록등본을 아들에게 보여주며 네가 우리 집 호주다. 네가 내 보호자다, 하고 씁쓸하게 웃었을 때 아이는 만화 영화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의 신학기 생활기록조사서의 아버지 이름란에 이름을 적어 넣어야하나 말아야하나, 한참을 망설였다. 아이들의 뿌리가 남편에게 닿아있는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당연한 것처럼, 공란으로 남길 수 없었다. 이혼의 경우는 또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각자 다른 집에서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룬 경우는 어떻게 적을까. 분명한 건 현재형을 표시 해 줘야했다. 주민등록등본 한 통을 첨부하라는 학교생활 안내서를 보며 결국 이름을 적지 못했다. 생활기록조사서의 아버지 이름란을 공란으로 보내고, 먼 거리 통학하는 딸아이의 교통편을 처음엔 돌아가면서 승용차로 태워다 주자고 했다가, 말도 없이 아이를 빼 버린 이웃 엄마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서로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말하며 그 아이 엄마들에게 물어보라고 말할 때, 남편 때문은 아닐까 생각되어 서러움 때문에 한나절을 울었다. 때로는 사람이 사람을 더 견디기 어렵게 한다. 카드사에 내 명의의 카드 발급신청서를 냈으나 남편이 같은 집에서 살지 않는 것, 외의 모든 조건이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소식이 없다. 아이는 아침이면 오빠보다 먼저 나가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은 여전히 결혼식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하루하루 남편이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주말이면 남편을 찾아가 그의 집에 돋아난 잡풀을 뽑아내기도 하고, 이름 앞에 등 돌리고 서서 날마다 그가 바라보고 있을 들판을 향해 서 있기도 하고, 주위의 다른 무덤에 성묘 온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남편에게서 등 돌리고 서서 바라보는 먼 산의 아득함. 남편이 늘 내가 오는 길을 살피고 있는 거라면 남편의 이름에서 등을 돌려 바라보는 것으로 한 방향을 바라보고 살라던 결혼식 주례사를 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햇살 가득한 남편의 집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주말부분가? 생각하다가 돌아오곤 했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입원을 권유하는 주위의 여러 이야기들에도 나는 병원을 고집했다. 남편에게 삶을 정리하라는 따위의 말을 할 수 없었다. 죽음을 의미하는 호' 병동으로의 입원은 삶의 포기로 여겨졌고, 마지막까지도 그의 죽음을 남편도 나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위에 생긴 종양의 압박 때문에 바로 누우면 숨을 쉴 수 없어 늘 왼쪽으로 돌아누워 있어야하는 남편의 고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빨리 힘내서 일어나야지? 어떻게 해 줄까?" 마치 무엇이든 해 줄 수 있는 양 밝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힘이 없어 눈도 잘 뜨지 못하는 남편이 원한 것. 단 하나. "손으로 좀 만져 줘. 거길 좀 만져 줘." 첫아이로 아들을 낳아 키우면서 기저귀를 갈 때마다 시어머닌 아이의 고추를 손바닥으로 쓸어 올려주라고 늘 당부를 했다. "사내아이의 고추는 늘 만져서 올려주는 것이란다. 그래야 고환의 협착을 막을 수 있어. 만져주지 않아서 고환이 한 쪽으로 몰리면 걸음걸이가 불편해지고, 성인이 되어도 낫지 않는다." 시어머니의 거듭된 당부에도 쉽게 아이의 고추를 만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기저귀를 손에 들고 시늉만으로 아이의 고추를 올려줄 뿐이었다. 잠자리에서 어쩌다 남편의 요구가 있을 때에도 쉽게 응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하루하루 상태가 나빠지면서 성기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살이 빠지면서 뼈만 앙상한 치골을 왼손으로 더듬어 주름진 채 올라붙은 고환과 새끼 손가락만한 성기를 만져 주물러주고, 오른손으론 링거액 바늘이 꽂힌 남편의 왼 쪽 어깨를 조심스레 만져주며 차라리, 차라리, 단 1초라도 빨리 숨이 끊겨 남편의 고통이 멈출 수 있기를 기원했다. 두 아이를 낳고 10년 넘게 살 섞고 살아온 남편의 성기는 아무리 정성껏 만져도 반응이 없었다. 남성으로서의 반응이 아니라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치골에 올라붙어 있던 성기의 종잇장처럼 얇은 표피가 따뜻함으로 힘없이 풀어질 때, 남편은 잠시 아픔을 잊었다. 하루하루 양을 늘려 24시간 투여하는 진통제로도 멈출 수 없는 남편의 고통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손안에서 느끼는 온기로 남편이 살아있음을 느껴야 했다. 눈을 맞추고 욕창이 생기려는 어깨죽지와 엉덩이뼈를 손으로 만져 풀어주고 공기가 통하도록 해 주는 것, 그리고 왼 손으로 그의 성기를 만져주는 것, 그 외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암이라는 게, 마지막엔 뼈 속으로 전이가 됩니다. 뼈마디마디 아프지 않은 곳이 없게 되요. 좀 더 강한 진통제를 처방하겠습니다." 의사는 차트를 들여다보며 아침 밥상에 올라온 나물의 간을 말하듯 무심하게 말했다. 하루하루 마약 성분 진통제의 양을 늘려 처방하는 것이 의사 역할의 전부인 양 했다. 남편이 다니던 교회에서 목사와 성도들이 병문안을 왔다. "우리 성도가 하나님 품으로 가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신 이 세상에서의 직분을 마치고 돌아가기 위해 준비 중이오니 그 영혼을 받아주소서. 예비된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우리 성도를 맞이해 주소서??. 아멘." 무슨 소린가? 예비된 천국의 문을 열어 그를 맞이해 달라니. 지금 남편을 빨리 데려가 달라는 얘긴가? 감았던 눈을 뜨고 남편을 보았다. 무슨 소린지 알아듣고 있는지 모르는지 남편의 얼굴은 평온했다. 목사의 입을 바라보았다. 알 수 없다. 한 생의 결과가 천국에 이르는 것과 그렇지 않음으로 평가되려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의 생활이 오직 천국에 가기 위한 한 생이었음을 말하는 목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선악의 대비로 천국과 지옥을 나뉘어왔다면 지금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선하게, 착하게 살았으므로 천국이 예비되어 있다면 지금 남편의 몸은 아프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신이 있어 신을 증명하는 거라면 지금 남편은 일어나야 맞다. 징벌 때문에 몸이 아픈 거라면 남편은 천국에 갈 수 없을 것이다. 남편은 아직 자신의 직분을 다 수행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 남편이 필요하다. 천국에 이르는 조건을 나는 모른다. 어쩌면??. 남편이 고통에서 벗어나 천국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단 1초라도 빨리 그가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었다. 언제나 마지막이라는 말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미묘한 상태의 흥분. 또는 기대감. 팔십여 명의 전체 참가자 중 몇 명이 어울려 함께 백제의 밤거리를 구경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들러 노래를 부르다가 슬그머니 빠져 나와 혼자 호텔로 돌아왔다. 김 기자는 지금 쯤 어디에 있을까. 관광호텔이라고는 하지만 산 속에 있는 듯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호텔 주위로는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아직 거둬들이지 않은 볏짚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밝은 보름달 아래서 이슬을 밟으며 들길을 걷는 기분도 괜찮았다. 하얗게 서리가 피어나는 들길에서 어김없이 남편을 떠올리고 있었다. 남편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무거운 짐이다. 내가 산 자와 죽은 자들로 나뉜 길에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중간한 길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미안하네, 그 한마디에 발목이 잡혀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만 그 무거운 짐을 부려놓고 싶다. 휘황한 보름달이 이제 이쯤에서 그 짐을 부려놓을 때가 되지 않느냐고 부추겼다. 달빛에 기대어 밤새도록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일 따윈 잊고 싶었다.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단 한사람, 동행한 김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연히 창문을 열었다가 혼자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고 했다. "아줌마가 이래도 되는 거예요?" "그럼 아줌마는 걷는 것도 안 된데요?" 맞받아치는 나에게 김 기자는 쐐기를 박듯 한마디 더 했다. "집에 있는 아저씨가 알면 어쩌려고??." "집에 있는 아저씨? 그럼 남편 있는 여자는 걷는 것도 안 되면 남편 없는 여자는 어떤가요? 남편 없는 여자는 아무하고나 걸어도 되나요?" "어쨌거나 선생님은 남편이 있잖아요." "김 기자님은, 부인, 사랑, 하나요?" 남편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없어요, 라고. 남편은 죽었어요, 라고. 그의 집과 내 집이 다르죠, 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쉽게 말할 수 없었다. 문장에 마침표를 찍어 끝을 마치듯 그렇게 쉽게 남편에 대한 마침표를 찍을 수 없었다. 몰라서 좋은 부분도 있는 것이다. 굳이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묻어두고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것도 살아가는 한 방법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 회진을 왔던 의사가 나를 불러 오늘 잘 지켜보세요, 라고 말했다. 마침 저녁 식사 배식이 이루어지고 있는 복도엔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환자보호자들과 환자들이 수저나 반찬통 찌개 냄비 등을 들고 오가고 있었다. 마치 생소한 이국의 언어인 양 되물었다. 어떻게요? 어떻게 보는 것이 잘 보는 건데요? 그날 밤 남편은 그와 나 사이의 끈질긴 인연의 끈을 놓았다. 그렇게 남편을 보냈다. 의사의 말이 가장 정확한 건 그 한마디였다. 그 밤 남편은 죽었다. 새벽이 되기 전에??. 미안하네, 한마디를 남기고??. 여전히 왼 손으로 그의 성기를 만지며 오른손으로 그의 어깨죽지를 만지는 나를 두고.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끈을 놓으며 남편은 위안에 있던 모든 내용물들을 토해냈다. 남편이 내게 미안한 것은 뭐였을까.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던 긴 인연의 끈을 툭, 소리나게 끊어내면서 오히려 현생을 통한 내생의 마술로 나를 묶어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심폐소생술을 할까요? 묻는 간호사에게, 하지 마세요. 편안하게 보내주세요. 하고 말했다. 심폐소생술을 해서 뭘 어쩌자는 건가. 온 몸 구석구석 암세포가 퍼진 남편을 심폐소생술로 갈비뼈를 모조리 부러뜨려 놓은 뒤 살려내서 뭘 어쩌자는 건가. 울지 않았다. 울 수도 없었다. 독한 년, 스스로에게 욕을 하면서 안심했다. 이젠 남편이 편안해졌을거라 여겨져 차라리 안심이 되었다. 이제 남편은 아프지 않을 것이다. 춥지 않을 것이다. 심장 박동수를 기록으로 남겨야하거든요. 간호사는 이미 사망한 남편의 심전도를 체크하고 심장박동수를 0으로 기록하며 남편의 공식 사망을 알렸다. 그들에겐 남편의 사망이 그저 일상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죽은 한 남자였다. 영안실로 남편을 옮기는 그 순간 다른 환자의 침상을 마련하는 일상,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관심도 없는 하루치의 일상일 뿐이었다. "능산리 고분군에서 벽화 보았죠? 기분이 어땠어요?" 엉뚱한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리며 김 기자에게 물었다. "이 밤중에 죽은 사람들 이야기는 무슨??." "사랑을 믿으세요? 어쩌면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모두 한 공간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 안 들어요? 백제금동대향로는 어떻든가요?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들이 분리되던가요? 원죄의식 같은 거 느껴지지 않았어요?" 내 손 안에서 느꼈던 남편의 생명과 마지막 온기. 손 안에 남은, 그 따뜻한 느낌을 지울 수 있을까. 지울 수 있다면 무엇으로 그 기억을 대신할까. 다시 사랑을 믿을 수 있을까. 사랑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을 쉬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이쯤에서 남편의 짐을 부려놓고 그와 하룻밤을 보내도 괜찮을 것도 같았다. 달빛에 기대어보는 것도 내 생의 아름다운 한 때 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이 함께 한 이 공간에서라면 내일의 시간 따위는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남편은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미안하다고 말했을까. 사랑과 미안의 간극. 그 틈 속에 남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들어있다. 남편과 함께 한 시간의 깊이와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의 깊이. 남편은 그 시간의 깊이를 알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나는 아직 살아있으므로 앞으로의 시간을 꿈꾼다. 죽은 자들에겐 없는 것, 영원히 멈춰진 것. 시간. 어디에든 누구에게든 시간을 묻고 싶다. |
심사평 평이한 문체 사용 삶의 본질 그려내 언제나 이런 원고를 받아들고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단 하나다. 우리는 왜 쓰는가? 당신은 그리고 나는? 이런 질문을 가슴 속에 품고 예심을 통과한 열 작품을 읽었다. 어느 중앙 문예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작품들의 수준이 좋았다. 마놀로 블라닉(조혜경) 은 트렌스 젠더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도입부가 신선했으나 중반 이후 장악력을 좀 상실한 듯했고, 손톱이 자라는 나무 (백정희)는 나무랄 데 없는 문체와 구성력을 가졌으나 주제의 신선함이 좀 모자랐다. 나머지 작품들도 모두 오래도록 습작을 한 노력들이 보였으나 역시 문제는 주제의식의 깊이와 그것을 얼마나 장악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았다. 우리 두 사람은 이원화의 <길을 묻다>에 이르러, 잠시 눈길을 멈추고 이견 없이 당선작으로 동의했다. 남편과 사별하고 백제 문화 탐험을 떠난 여자의 내면을 통해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생명과 시간의 의미를 잘 버무려 낸 이 소설은 과장되지도 않고 감정적이지 않은 문체를 사용하여 모든 죽음 앞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삶의 본질을 그리고 있다. 신라와 당 연합군에 패배한 백제와 죽음 앞의 삶은 그러나 그 사이에 아름다움을 남기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새해 새아침에 뛰어난 수작을 써준 이원화씨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건내며 중후한 작가의 탄생을 예감해 본다. <공지영.윤대녕> |
당선소감 이원화 친구와 함께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전화를 받았다. 눈 때문에 버스가 자주 오지 않아서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이 50여명 쯤 되었을까. 친구에게 신문사래! 라고 말했더니, 친구가 먼저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둘이 안고 한참 소리를 지르다가 이러다 파출소에 끌려가겠다며, 웃었다. 지금 목이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 때 지른 소리 때문인지, 감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전화를 받는 순간, 주위 분들께 고맙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여기에 고마운 분들의 이름을 다 적기엔, 원고지 네 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 동안 지켜봐 주시고, 격려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늘 내 인생의 가장 큰 보너스라고 생각하는 아들 최유민이와 딸 최선다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소설 쓴다는 핑계로 아이들이 가장 큰 짐을 나누어진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이 있게 한 남편 앞에서 이젠 울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남편과 함께 한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날들이었다고, 사랑한다고, 가만히 남편의 이름을 불러본다. 길을 열어주신 윤대녕 선생님, 공지영 선생님, 이만큼 키워주신 채희윤 선생님, 용매 언니를 비롯한 아름다운 도반, 언니들께 깊이깊이 감사드린다. 푸른 파도 일렁이는 바다가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