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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무 려 산(醫巫閭山)과 대막(大漠) 그리고 달단(韃靼) <2편>
○ 몽고(蒙古) 및 몽고족(蒙古族)에 대한 기록(記錄)과 설명(說明)으로 들어가 보자.
(1) 반도 사(半島史)에서 ; 《삼위 달달(三衛達達)는, 만주(滿洲) 여진족(女眞族)과 몽고(蒙古)의 달달(達達)족 사이에 있던 혼혈(混血)족 우 량 하(兀良哈 : Uriangha)족을 말한다.》고 한다.
● 《烏 粱 海 ; 亦 作 兀 良 哈, 明 時 居 直 隷 長 城 外. 卽 蒙 古 東 部 地 方, 爲 朶 顔. 福 餘. 泰 寧 三 衛, 後 徙 外 蒙 古 西 北 部, 其 種 爲 突 闕 族, 語 言 風 俗, 則 以 喀 爾 喀 人, 自 稱 東 巴. 居 唐 努 山, 阿 爾 泰 山 之 間. 分 爲 三 部, 一 曰 唐 努 烏 梁 海, 二 曰 阿 爾 泰 烏 梁 海, 三 曰 阿 爾 泰 諾 爾 烏 粱 海. : 오 량 해(烏梁海) : 또 올 량 합(兀良哈)이다. 명(明)나라 때 직례(直隷)장성(長城)밖에 살았다. 곧 몽고 동부지방인데, 타안(朶顔). 복 여(福餘). 태 녕(泰寧) 삼위(三衛)이다. 후에 몽고(蒙古) 서북부로 옮겼는데, 이들 종족은 돌궐(突闕)족이며, 언어(言語) 풍속(風俗) 등은 곧 객 이 객(喀爾喀)사람들이다. 자칭 동파(東巴)라 하였다. 당 노산(唐努山). 아이태산 【阿爾泰山 : 금산(金山)】 사이에서 살았는데, 삼부(三部)로 나누어져, 첫째는 ‘당노오량해(唐努烏梁海)’, 둘째는 ‘아이태오량해(阿爾泰烏梁海)’, 셋째는 ‘아이태락이오량해(阿爾泰諾爾烏梁海)’이다. 》
㉠ 당노산(唐努山) : 外蒙古唐努烏梁海南境.阿爾泰山之大支幹也.唐書作唐麓嶺. : 외몽고(外蒙古) 당노오량해(唐努烏梁海) 남쪽지경이다. 아이태산의 큰 지간이다. 당서(唐書)에서 말하는 당 록 령(唐麓嶺)이다. ㉡ 당노오량해부(唐努烏粱海部) : 外 蒙 古 西 北 境. : 외몽고(外蒙古) 서북(西北)지경이다. ㉢ 아이태산(阿爾泰山 = 금산(金山) : 亦作阿勒壇.又作阿爾但.蒙古爲金爲阿爾但.故又稱金山.天山北出之脈.中略,與賀蘭山勢遙連 : 또 아륵단(阿勒壇)이며, 또 아이단(阿爾但)이다. 몽고(蒙古) 말로는 금(金)을 아이단(阿爾但)이라 하며, 고로 칭하기를 “금산(金山)”이다. 천산(天山)이 북쪽으로 뻗은 줄기이다. (중략). 하란(夏蘭)산의 산세는 멀리에 있다.
● <오 량 해(烏梁海)>는 <올 량 합(兀良哈)>이며, 이들은 <건주(建州)>에 살던 자(者)들을 말하는 것이며, 명(明)나라 때 직례 【현재의 하 북 성(河北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장성(長城) 밖에 살았으며, 이들은 몽고(蒙古)의 동부(東部)에 있었다. 【몽고(蒙古)의 동부(東部)란 현재의 외몽고(外蒙古) 동부(東部)지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眞實)된 몽고(蒙古) 강역(疆域) 곧 우랄산맥주위의 몽고(蒙古) 땅을 말하며, 그 동쪽지방이란 현 신강(新疆)의 북(北), 동북(東北)지방을 말하는 것이다.】 즉 <타안(朶顔). 복 여(福餘). 태 녕(泰寧)>의 삼위(三衛)지방을 말하는 것이다. 언어(言語) 및 풍속(風俗)은 모두 돌궐(突闕)과 같았으며, 한 측으로는 객이객(喀爾喀)인이라 한다. 이들은 스스로 칭하기를 “동파”라 했고, 이들이 거주하고 있던 곳은 『당노(唐努)산과 아이태산(阿爾泰山)지간』이었다. 이들은 『당노오량해(烏梁海), 아이태오량해(阿爾泰烏梁海), 아이태락이오량해(阿爾泰諾爾烏梁海)』등 3부로 나누어져 있었다.
《 ㉠ 제 일부(第1部)인 당노오량해(唐努烏梁海)는 외몽고(外蒙古) 서북(西北)지경이며, ㉡ 제 이부(第 2部)인 아이태산(금산)오량해(烏梁海)는 신 강성(新疆省) 아산도(阿 山 道)에 속해 있고, ㉢ 제 삼부(第3部)인 아이태락이오량해(阿爾泰諾爾烏梁海)는 지금의 ‘러시아’에 속해 있다. 》고 기록, 설명(說明)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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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행록(燕行錄) / 심전 고 / 유관잡록(留 館 雜 錄) / 《 蒙 古. 一 名 韃 靼. 居 沙 漠 : 몽고(蒙古)는 일명 달단(韃靼)으로 사막(沙漠)에서 산다. 》
(2-1)《少憩禪堂.步登寺後高峰.徘徊四顧.海天一色.雲堞崢嶸.東臨大漠.西望居庸.氣象浩蕩.令人有憑虛御風.不知其所止之思. : 선당(禪 堂)에서 조금 쉬고 절 뒤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배회하면서 사방을 돌아다보니, 바다와 하늘은 한 빛인데, 운 첩(雲 堞)이 높고 가파르다. 동쪽으로 대막(大漠)에 임하고 서쪽으로 거용(居 庸)을 바라보니, 그 기상이 호탕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허공에서 바람을 타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은 생각을 갖게 하였다.》
㉠ 몽고(蒙古)는 달단(韃靼)이며, 이들은 사막(沙漠)에서 산다는 말에 따르면, 이들의 영역(領域)을 찾을 수 있다.
㉡ <東 臨 大 漠. 西 望 居 庸 : 동쪽으로 대막(大漠)에 임하고 서쪽으로 거용(居 庸)을 바라보니> 라는 말은, 지형지리(地形地理)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대막(大漠)지대의 “서(西)”쪽에서 설명(說明)하는 말이다. 그러니 “동쪽으로는 대막(大漠)에 임하고, 서쪽으로 거용(居庸)을 바라보니”라는 말을 할 수 있다. 현 하 북 성(河北省) 서북(西北)지방에 있는 “거용 관(居庸關)”의 실체(實體)를 바라볼 수 있는 척도(尺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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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現存)하는 세계사(世界史)와 조선사(朝鮮史)는 철저(徹底)하게 타인(他人)들이, 『그들만을 위한, 조선(朝鮮)을 배척(排斥)한, 조선(朝鮮)을 해체(解體)한 후, 조선(朝鮮)을 영원(永遠)히 지구(地球)상에서 말살(抹殺)하기 위한 것』이다. 지역감정(地域感情)! 이 역시, 이 연장선(延長線)에 반도(半島)를 통치(統治), 지배(支配)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조선(朝鮮)민족(民族)의 자아(自我)를 파괴(破壞)하기 위한, 고도(高度)의 술책(術策)이다. 바보같이 이 무대(舞臺)에서 광대(廣大)처럼 놀아나 앞장 선 자(者)들이 바로 반도(半島)의 신지식(新知識)인들이며, 이들 후예(後裔)들이 지금도 활보(闊步)하며, 앞장서고 있다. 이것은 망국(亡國)으로 가는 길의 첫 순위(順位)이다. 이런 자(者)들을 철저(徹底)하게 배척(排斥)하고, 철저(徹底)하게 없애야 한다.
고려(高麗) 태조(太祖)의 훈요십조 【訓要十條 : 십훈요(十訓要)】 를 들먹이는 자(者)는 “고려(高麗)의 땅이 반도(半島)로 한정(限定)한다는 철저한 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 출발(出發)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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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행록(燕行錄) / 연 원 직 지(燕 轅 直 指) / 몽고관기(蒙 古 館 記) : 《蒙古.或稱㺚子.元順帝北走.其後分爲四十八部落.長城北醫山以外.皆其地方也.無五穀宮室.其人常騎橐駝.逐善水草居之.以穹氈爲屋.以射獵爲業.噉肉飮血.蓋北藩習俗.自古然也. : 몽고(蒙古)는 혹은 달자(韃子)라고도 한다. 원 순제(元 順帝)가 북쪽으로 달아나고 난 뒤에, 48부락(部落)으로 나뉘었다. 만리장성(萬里長城) 북쪽 의산【醫 山 : 의무려산】바깥은 모두 그들의 땅이다. 그곳에는 오곡(五穀)과 궁실(宮室)이 없으며, 그 사람들은 늘 낙타(駱駝)를 타고서, 좋은 수초(水草)를 좇아 산다. 궁전(穹 氈)으로 집을 삼고, 사냥으로 업을 삼아, 고기를 먹고 피를 마신다. 이런 것은 대개 북 번(北 藩)의 습속으로서, 옛날부터 그러하였다. 》
(3-1) 몽고(蒙古) : 蒙古卽元之遺種.而古韃靼也.東自黑龍江.西至于海北.沿古長城外.至寧古塔近處.皆其巢穴.而以我人歷路言之.山海關以東則蒙古地方最近.距大路遠者不過五十里 : 곧 원(元) 나라의 유종(遺種)으로 예전의 달단(韃靼 타타르)이다. “동쪽은 흑룡강(黑龍江)으로부터, 서쪽은 바다에 이르고, 북은 장성(長城) 밖을 따라, 영고 탑(寧 古 塔) 근처에 이르는 사이가 모두 그들의 소굴이다.” 우리들의 역로로 말하면, 산해 관(山海關) 이동(移動)은 몽고(蒙古) 지방이 가장 가까운데, 큰길에서 먼 것이 50 리에 불과하다.》
● <山海關以東則蒙古地方最近.距大路遠者不過五十里 : 산해 관(山海關) 이동(移動)은 몽고(蒙古) 지방이 가장 가까운데, 큰길에서 먼 것이 50 리에 불과하다.>는 말은 “산해 관(山海關)이나 몽고(蒙古)는 오늘날의 것과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3-2) 몽고인(蒙古 人) : 蒙古人與淸人自別.兩顴高.眼碧髥紫.皆悍惡麤健.不思室居.雖極寒之時.只設帳於車上而宿於道路.朝乃拂雪而起.飢則只噉駱肉.又與狗同器而食.其性之勁悍醜惡如此.故淸人上下.皆畏而賤之 : 몽고인은 청인과는 아주 다르게 생겼다.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눈이 푸르며 수염이 붉다. 그리고 모두 사납고 거칠며 집에서 살지 않는다. 아주 추운 때라도 단지 수레 위에 장막을 치고 길에서 자며 아침에는 눈을 털고 일어난다. 배가 고프면 다만 낙타의 고기를 먹을 뿐이고, 또 개와 한 그릇에 먹는다. 강한(强 悍)하고 추 악(醜惡)하기가 이와 같기 때문에, 청인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천하게 여긴다.
(3-3) 通典 卷 192 邊 防 八 / 西 戎 四 / 于 闐(우전) : 《 自高昌以西,諸國人多深目高鼻,惟此一國,貌不甚胡,頗類華夏 : 고창(高昌)의 서(西)쪽 지방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많은데, 눈은 깊고, 코는 높다. 유일하게 그 한 나라【우전 (于闐)국을 칭하는 것임】 는 얼굴모양이 호【胡 : 오랑캐】와 같지 않은데, 약간 화하(華夏) 무리와 같다.》
(3-4) 通典 卷 192 邊 防 八 / 西 戎 四 / 烏 孫 : 《 <注> 烏 孫 於 西 域 諸 戎 其 形 最 異. 今 之 胡 人, 青 眼 赤 髭 鬢, 狀 類 彌 猴 者, 本 其 種 也. 其 國 謂 王 曰 昆 彌, 亦 曰 昆 莫. 去 長 安 八 千 九 百 里. : 오손(烏孫)은 서역의 여러 융【戎 : 오랑캐. 되놈】중에서 그 형상이 가장 기이(奇異)하다. 지금의 호인【오랑캐 사람】이다. 청안【靑眼 : 푸른 눈동자】과 콧수염(髭)과 구 렛 나루(鬢)가 붉은 색이며, 형상(용모)이 원숭이【獼猴 : 미후】 종류와 같은데, 본래 그런 종족이다. 그 나라의 왕을 이르기를, “昆 彌(곤 미)”라 하는데, 또 “곤 막”이라 한다. 其 國 數 為 蠕 (蠕) 所 侵, 西 徙 蔥 嶺. : 후위(後魏=北魏) 때 오손(烏孫)땅에 연연(蠕蠕)이 침입(侵入)하자 『오손(烏孫)』은 서쪽의 총령(蔥嶺) 땅으로 옮겨갔다.(徙). 》
【색목인(色目人) : 색목(色目)은 명목(色目 : 얼굴의 생긴 모양)으로, 중토(中土) 민인(民人)의 족류(族類)가 아닌, 외번(外 番)에 속하는, 따로 명목(名目)이 있는 사람들이다. 원대(元 代)의 서역(西域) 여러 나라 사람의 총칭으로 31종(種)의 종족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 몽고(蒙古)는 달단【韃靼 : 달달(達達)=달자(達者)=타타르】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의 생김새(名目)은, 일반 동양인(東洋人)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본시(本是) 사막의 북(北)쪽【오환(烏桓)의 북쪽지방】에 살던 자(者)들이며, 이들은 “청안(靑眼)과 붉은 수염과 구렛나루와 몸에 털이 많이 나있는 자(者)들”이며, 역사서(歷史書)에서는 “미후(獼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설명(說明)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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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계산 기정 (薊 山 紀 程) / 부록 (附 錄) / 산천 (山 川) : 의 무 려 산(醫巫閭山) : 《 의 무 려 산(醫 巫 閭 山) 은 요(堯)임금이 봉한 12산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 장백산(長 白山)에서 산맥(山脈)이 갈라져 내달아 큰 사막(沙漠)을 가로질러 막았다. 서북(西北)으로 7, 8백 리를 가도 산만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의 무 려 산’ 밖은 옛 흉노(凶 奴)의 땅인데, 명(明)나라에서는 달단 【韃 靼 타타르】 이라 하였고, 지금은 몽고(蒙古)라고 일컫고 있으니, 이것이 하늘이 이적(夷狄)과 중화(中華)를 한계(限界)지어 준 것이다. 의 무 려 산(醫巫閭山) 뒤는, 모두 몽고(蒙古) 땅에 속하며 망망한 큰 사막(沙漠)인데, 북해(北海)가 둘러 있다. 醫巫一山之後.盡屬蒙古之地.茫茫大漠.北海環之.》
(4-1) 잠 곡 유고 제2권 / 영안 위(永 安 尉) 홍 주원(洪 柱 元)이 북쪽으로 가는 것을 전송하다. : 《 의 무려 산(醫巫閭山) 북쪽 사막(沙漠) 연하여 있고 / 醫 巫 連 朔 漠 》하였으며,
● 의 무려 산(醫巫閭山) 뒤 【뒤란 말은 후(後)로써, 산의 배면(背面)을 말하는 것으로 방향으로 보면 “북쪽”이다.】 로는 몽고(蒙古) 땅이며, 또한 광활(廣闊)한 사막(沙漠)의 땅이며, 그 뒤로는 북해(北海)가 둘러있다【동서로 걸쳐있다는 말】는 설명(說明)이다. 현 요 녕 성(遼寧省) “의 무려 산【醫巫閭山 : 해발고도 867 m】” 뒤로는 요 녕 성(遼寧省) 땅이며, 또 그 뒤로는 내몽고(內蒙古)이며, 이 내몽고(內蒙古) 땅을 지나야 “몽고(蒙古)” 땅이며, 이곳은 어디를 가든 “사막지대(沙漠地帶)”는 존재(存在)할 수 없는 곳이다. 이곳 지형(地形)은 본래 “사막(沙漠)”을 형성(形成)할 수 있는 조건(條件)이 없다.
또한 해발고도(海拔高度) 867m의 흔하디흔한 산(山)에, 동북(東北)쪽 별 볼일 없는 곳에 “북진(北鎭)”을 설치(設置)했다는 것 역시(亦是) 희극(戱劇)이다. 더하여 『반도(半島) 북방(北方)의 백두산 【白頭山 : 장백산(長白山)】 에서 산맥(山脈)이 갈라져 내달아, 큰 사막(沙漠)을 가로질러 막았다. 서북(西北)으로 7, 8백 리를 가도 산만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다. 』 는 설명을 보고 있노라면, 황당(荒唐)하기에 앞서, 분노(憤怒)를 억누를 수 없을 정도(程度)로 역겹다. 식민사관(植民史觀)논자(論者)들은 조선사(朝鮮史)를 조작(造作)하기 위해, 지구(地球) 땅덩어리의 산천(山川)지리(地理)도 조작(造作)하는 자(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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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 정중(金 正中)의 연 행기 <조선 정조 15년(1791) / 의 무 려 산(醫巫閭山) : 自此堡遠望西北.有一山崷崒嵽屼.爲北方之鎭.其名醫巫閭.自崑崙落脈.連延橫亘.經遼薊千里之野.爲此山一支.東走爲我東之白頭.蓋崑崙,白頭爲東西祖宗.而此山倔强北方.中立若不庭者.自周,漢以來.其下種落太盛.或抗衡中國.良以是山之氣也 : 보(堡)에서 서북(西北)으로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우뚝 높은 산 하나가 있어, 북방의 진(鎭)이 되는데, 그 이름을 의무 려(醫 巫 閭)라 한다. 곤륜산(崑崙山)으로부터 내려온 줄기가, 이어가서 가로 뻗어 요주(遼州)ㆍ계주(薊州)의 천 리 들을 지나서 이 산이 되고, 한 곁줄기가 동(東)으로 달려서, 우리나라의 백두산(白頭山)이 된다. 대개 곤륜산과, 백두산이 동서(東西)의 조종(祖宗)이다. 이 산은 북녘 한가운데 뻣뻣하게 서 있어서, 조회(朝會)하지 않는 듯하다. 주(周)ㆍ한(漢) 이래로, 그 밑의 부족(部族)이 크게 번성하여, 중국에 맞서기도 하였던 것은, 진실로 이 산의 기운 때문이었다. 》
(5-1) 계산 기정 (薊 山 紀 程) / 부록 (附 錄) / 산천 (山 川) : 의 무 려 산(醫 巫 閭 山) 은 요(堯)임금이 봉한 12산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 장백산(長 白山)에서 산맥(山脈)이 갈라져 내달아 큰 사막(沙漠)을 가로질러 막았다. 서북(西北)으로 7, 8백 리를 가도 산만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의 무 려 산’ 밖은 옛 흉노(凶 奴)의 땅인데, 명(明)나라에서는 달단【韃 靼 타타르】이라 하였고 지금은 몽고(蒙古)라고 일컫고 있으니, 이것이 하늘이 이적(夷狄)과 중화(中華)를 한계(限界)지어 준 것이다. (중략). 의무려산(醫 巫 閭 山) 뒤는 모두 몽고(蒙古) 땅에 속하며 망망(茫茫)한 큰 사막(沙漠)인데, 북해(北海)가 둘러 있다. 5년에 한 번 얼음이 얼고, 자고로 중국(中國)에 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다 밖은 무슨 괴물이 있는지 모른다. 》(중략). <출처 : 고전번역원의 연행록 번역본>
● 위에서 말하는 곳이 “반도(半島)나 그 북방(北方)의 삼성(三省)지대(地帶)”라면, 『반도(半島) 땅과 서해(西海)바다는 중국(中國)이며, 현 대륙(大陸)의 동쪽지방은 롱서(隴 西)지방이다.』이런 해 괴(駭怪)한 논리(論理)가 반도(半島)나 대륙(大陸)에서 활보(闊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사(朝鮮史)를 없애기 위한 ‘억지(抑止)방편(方便)’이다. 이런 해괴망측(駭怪罔測)한 논리(論理)에 빠져 언제까지 허우적거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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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원사(元史)지리(地理)지 서문 / 《若元,則起朔漠,並西域,平西夏,滅女真,臣高麗 : 원(元)은 삭막 【朔漠 : 북쪽 사막지대를 말함. 삭막(朔漠)지대는 영하(寧夏) 북방(北方)의 서(西)쪽 지대(地帶)이다. 이곳의 북쪽 사막(沙漠)지대가 서역(西域)으로 연(連)이어져 있으며, 서(西)쪽으로 ‘카자흐스탄’까지 연결된다. 영하(寧夏) 북방(北方)의 그 동(東)쪽 지방은 삭막(朔邈)지대는 될지언정 삭막(朔漠)지대는 아니다.】 에서 일어나, 서역(西域)을 아우르고, 서하(西夏)를 평정하고, 여진(女眞)을 멸하였으며, 고려(高麗)를 신하로 하고 (중략).》
(6-1) 明史 列傳 第 205 外國 八 / 韃 靼 : 《 即 蒙 古, 故 元 後 也 : 달단(韃靼)은 곧 몽고(蒙古)이다. 옛 원(元)의 후예(後裔)이다. 》
(6-2) 청장관전서 제23권 / 송사(宋史)전 몽고열전(蒙古列傳) / 『화림(和林)』은 『오환(烏桓) 이북 내만(乃 蠻)ㆍ외라(畏 羅)ㆍ구성(九姓)ㆍ회골(回鶻)의 고성(故城) 화림(和林) 부근에 흩어져 살며, 대(代)마다 요(遼)ㆍ금(金)에게 조공(朝貢)하다가, 다시 달단(韃靼)에게 붙었다.』고 하였으며, 『와 활 태(窩 闊 台)는 사막(沙漠) 서쪽 화림(和林)에서 즉위하니 』하였다.》
● 이렇게 보면, 당시의 몽고(蒙古 : 달단)의 도읍지(都邑地)는 사막(沙漠)의 서(西)쪽 지방에 있었던 “화림(和林)”이란 곳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막(沙漠)의 서(西)쪽 “화림(和林)”은 대략 어느 지방을 말하는 것일까?
㉠ “고비사막”의 서(西)쪽은 알타이산맥(금산 산맥)과 신강 성(新疆省) 이오(伊吾)의 천산산맥(天山山脈) 동쪽지방이다. 이곳에 “화림(和林)”이 있었다고 볼 수 없는 없는 것은 위에서 말하는 “회골(回鶻)의 옛 성(城)이 될 수 없기 때문이며, 이곳은 오환(烏丸)의 동남(東南)쪽이지 북쪽이 아니기 때문이다.”
㉡ “준갈이(準喝爾)사막(沙漠)”의 서쪽지방은 “화림(和林)”이 위치해 있을 수 있는 가장 근접(近接)한 곳이다. 왜냐하면, 『오환(烏丸)은 천산산맥(天山山脈)의 북쪽과 준갈이(準喝爾)사막(沙漠)지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서쪽지방은 신강 성(新疆省) 서북(西北)지대와 카자흐스탄 동북(東北)지방으로 “아스타나”의 동쪽지방이다.
● 당시 몽고(蒙古)의 도읍지(都邑地)를 가려 한다면 기필코 통과(通過)해야 했던 곳이 곧 “사막(沙漠)”지대(地帶)다. 여기서 중요(重要)한 대목(臺木)은, 당시 몽고(蒙古) 서울인 “화림(和林)”이었으며, 이곳을 가려면 사막지대(沙漠地帶)를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며, 이곳에서 말하는 사막(沙漠)은 “고비사막”일 수 없다. 이곳의 서쪽에 “화림(和林)”이란 곳은 없기 때문이다. 몽고(蒙古)의 본래 인종(人種)의 형상(形相)을 생각해 보면, 왜 이들이 ‘중앙아시아’ 지방에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 옛 몽고족(蒙古族)에 관한 “조선사(朝鮮史)”와 “대륙 사(大陸史)”에 기록된 몇 가지를 보았다. 이것들에 대한 설명(說明)은 “대륙조선사(大陸朝鮮史) 논리(論理)【참 역사라고 주장한다.】”로 펼쳐나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오손(烏孫)인들과 옛 몽고(蒙古)인들의 신체적(身體的) 특성(特性)이 아주 똑같다. 인간(人間)의 외형(外形)은 유전자(遺傳子)가 전해져 그 특성(特性)이 나타나기 때문에, 형상(形象)이 아주 똑같다는 것은 같은 부족(部族) 또는 종족(種族)일 때 가능하다. 따라서 『옛 몽고(蒙古)인은 곧 “오손(烏孫)의 종족(種族)이라 할 수 있다.』이들은 북위【北魏 : 후위(後魏)】에 쫓겨, 총령(蔥嶺) 서쪽으로 종족이 옮겨갔다는 말은, 북위(北魏) 이후 신강(新疆)지방에 이들【오손(烏孫)】은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 중요(重要)한 것은, 『오손(烏孫)인과 옛 몽고(蒙古)인들의 형상(形象)이 같다는 것이며, 이는 오손(烏孫)인과 몽고(蒙古)인은 같은 종족(種族)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오늘날의 ‘러시아’ 일부 종족(種族)과 같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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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두우(杜佑) 통전(通典) / 서융(西戎)전 / 대완(大宛)
대완(大宛) : 『大 宛, 漢 時 通 焉. 王 理 貴 山 城, 去 長 安 萬 二 千 五 百 里. 其 人 皆 深 目, 多 髭 髯. : 대완(大宛), 한(漢)시에 통하였다. 왕은 귀산성에서 다스렸는데, 장안(長安)에서 12,500 리 떨어져 있다. 그 사람들은 모두 눈이 깊고, 콧수염과 구레나룻 수염이 많다.』
○ 이들의 형상(形象) 역시 오손(烏孫)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인종(人種)이다. 대완(大宛) 역시 현 신 강성(新疆省)의 서쪽지방에 있었다. 현재의 신 강성(新疆省) 서쪽지방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형상(形象)이다.
【장안(長安)으로부터 12,500 리라면, 직선거리로 ‘카스피 해’ 주변이며, 최소한으로 “아랄 해” 서쪽지방이며, 총령(蔥嶺)의 북(北)쪽과 서북(西北)지방이다. 】
(7-1) 전한서(前漢書) / 서역(西域)전 / 오손(烏孫) / 烏 孫 國 : 『師 古 曰 :烏 孫 於 西 域 諸 戎 其 形 最 異 。 今 之 胡 人 青 眼 、 赤 須 , 狀 類 彌 猴 者 , 本 其 種 也. : 안사고(顔師古)가 이르기를 : 오손(烏孫)은 서역(西域)의 여러 오랑캐(戎)들과는 그 형상(形狀)이 매우 다르다. 지금의 호인(胡人)과 같이 푸른 눈(靑眼)이며, 붉은 수염과 여러 종류의 원숭이(獼猴) 형상이다. 본시 그 종류이다.』
(7-2) 두우(杜佑) 통전(通典) 서융(西戎)전 / 오손(烏孫) / 오손(烏孫) :『주석(註釋) / 烏 孫 於 西 域 諸 戎 其 形 最 異. 今 之 胡 人 ,青 眼 赤 髭 鬢 ,狀 類 彌 猴 者 ,本 其 種 也. 其 國 謂 王 曰 昆 彌 ,亦 曰 昆 莫. : 오손(烏孫)은 서역(西域)의 여러 융(戎 : 오랑캐. 되) 중에서 그 형상이 가장 기이(奇異)하다. 지금의 호인(오랑캐 사람)이다. 청안(靑眼 : 푸른 눈동자)과 콧수염(髭)과 구 렛 나루(鬢)가 붉은 색이며, 형상(용모)이 원숭이(獼猴 : 미후) 종류와 같은데, 본시 그 종족이다. 그 나라의 왕을 이르기를, “昆 彌(곤 미)”라 하는데, 또 “곤 막”이라 한다.』
○ 위 전한서(前漢書)나 그 후대(後代)의 통전(通典), 기타 사서(史書)속에 기록된 “오손(烏孫)”에 관한 설명(說明)은 아주 특이(特異)하다고 볼 수 있다. 『오손(烏孫)의 종족(種族)은 주위의 다른 나라들과 그 형상(形象)이 아주 특이(特異)해서 “푸른 눈 (靑眼 : 푸른 눈동자. 벽안(碧眼)과 같다.) 과 콧수염(髭)과 구 렛 나루(鬢)가 붉은 색이며【구레 나루와 콧수염이 붉다는 말은 머리털도 붉다는 이야기다.】, 형상(용모)이 원숭이 (獼猴 : 미후) 와 같이 팔, 다리, 몸 등에 털이 많이 나 있는 인종(人種)』이란 이야기다.
(7-3) 후한(後漢)의 『順 帝 永 建 二 年, 勇 復 擊 降 焉 耆. 於 是 龜 茲, 疏 勒, 于 窴, 莎 車 等 十 七 國 皆 來 服 從, 而 烏 孫, 蔥 領 已 西 遂 絕. : 순제 영건 2년, 용감하게 재차 쳐 언 기(焉耆)를 항복시키자, 이때 구자(龜茲). 소 륵(疏勒). 우전(于闐). 사거(莎車)등 17개 나라가 모두와 복종하였는데, 오손(烏孫)은 이미 총령(蔥嶺)의 서(西)쪽으로 나가 끊어졌다.
후한(後漢) 순제(順帝)때, 『이들은 후한(後漢)의 공격(攻擊)에 두려움을 느껴, 총령【蔥嶺 : 파미르고원】의 서(西)쪽 지방으로 도주(逃走)하였다.【 총령(蔥嶺)의 서쪽지방은 현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등지】고 기록(記錄)해 놓고 있음을 상기(想起)할 필요(必要)가 있다.
● 이렇게 본다면, 당시 후한(後漢)의 순제(順帝) 영건 2년 이후(以後), 『오손(烏孫)은 현 신 강성(新疆省)지방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것은 이들의 특이(特異)한 형상(形象)으로 볼 때, 이들의 후손(後孫)들이 바로 현재(現在)에도 그곳 지방에 살고 있는 인종(人種)과 별 다름이 없다는 것으로 추정(推定)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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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연행록(燕行錄) / 심 전 고 / 회자(回 子)는 회회 국(回回 國) : 《 回子.亦稱回回.國在海中.五閱月.始抵中國.康煕時逆命.遂發兵討之.擒其王.俘于京師.納其女後宮.其人黧面深目.勒鬚髼鬆.衣帽如淸人.女子服斑爛衣.辮髮下垂.道光時又叛.送楊遇春.討平之. : 회자(回子)는 회회(回回)라고도 하며, 바다 가운데에 있어, 다섯 달이 걸려야 비로소 중국에 이른다. 강희(康煕) 때에 명령을 거역하였으므로 드디어 군사를 풀어 토벌하여 그 왕을 사로잡아 서울로 데려오자 그 딸을 후궁으로 바치었다. 그곳 사람들은 검은 얼굴에 눈이 깊고 구레나룻이 더부룩하다. 옷과 모자는 청인과 같고, 여자는 알롱달롱한 옷을 입으며 머리는 땋아서 늘어뜨린다. 도광(道光) 때에 또 반역하였으므로 양 우춘(楊 遇 春)을 보내어 토벌, 평정하였다. 12부는, 합 밀(哈密)ㆍ벽전 토로 번(闢 展 土 魯 藩)ㆍ합 랍 사 랍(哈 拉 沙 拉)ㆍ고지기[庫直]ㆍ사 아이(沙 雅 爾)ㆍ새 리 목(賽 里 木)ㆍ배(拜)ㆍ아 극소(阿 克 蘇)ㆍ오십(五 什)ㆍ객 승랍이(喀 升 臘 爾)ㆍ대 이강(蔕 爾 羗)ㆍ화전(和 闐)등이다.》
● 회회(回回)국은, 『바다 가운데 있으며, 동북(東北)으로만 통했다.』는 말은 현 신 강성(新疆省)지방이 될 수 없음이 확실(確實)하다. 신 강성(新疆省)에 있었다는 『회회(回回)국』은 아라비아반도(半島)를 위시한 중앙아시아지방으로 옮겨져야 하며, 신 강성(新疆省)지방은 “조선(朝鮮)의 땅”이 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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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색(地方色)이란 것은 프랑스도, 영국도, 일본도, 미국도, 지구(地球)상의 대부분(大部分)의 나라에서 얼마간은 존재(存在)한다. 이것은 당연(當然)한 것이다. 지방(地方)에 따라 종족(種族)이나, 역사(歷史), 문화(文化), 풍속(風俗)등등이 조금씩 다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발생(發生)되기 때문이며, 또 그 지방(地方)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自身)들의 특색(特色)을 살리기 위한 방편(方便)으로 조장(助長)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이 건국(建國)된 후 지방색(地方色)은 크지 않았는데, 정치가(政治家)들이 자신(自身)들의 영달(榮達)을 위해, 고의적(故意的)으로 확대재생산(擴大再生産)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오늘날의 대한민국(大韓民國) 지역(地域)차별(差別)과 지역감정(地域感情)이다. 이것은 도(度)를 지나쳐, 이젠 나라의 주요(主要)정책(政策), 인사(人事), 국론(國論), 국민(國民)개개인의 차별(差別)로 까지 이어져 망국(亡國)의 지름길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이며 무슨, 무슨 공화국이란 말까지 스스럼없이 한다.
반도(半島) 땅, 세계지도(世界地圖)를 펴 놓고 보면, 손가락 하나만 한 땅덩이에서, 무슨 놈의 지역(地域)차별(差別)이란 말인가? 똑같은 땅, 기후(氣候), 종족(種族), 문화(文化), 풍속(風俗)등등 무엇이 그렇게도 다른가? 소위(所謂) 역사가(歷史家)라는 자(者)들이, 이 땅은 마한(馬韓), 이 땅은 진한(辰韓), 이 땅은 변한(弁韓)이라는 식으로 갈라놓고는 자기들 멋대로 만들어 놓았지, 누가 그것을 증명(證明)하고, 고증(考證)한 것인가? 이 자(者)들이 바로 원흉(元兇)이다. 이 자(者)들이 누구인가? 바로 매국(賣國)식민사학(植民史學)자(者)들이 아닌가! 이런 더럽고, 치사하고,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자(者)들이 만든 “조작(造作)된 역사(歷史)에 놀아나는 우리들은 또 무엇인가?” 다 똑같다. 모두 다 똑같다. <2편/끝>
2012년 12월 25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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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량해는...현재의 외몽골인들도 자신들 서북방 오랑카이족을 대체적으로 오량해라 지칭합니다.
타이가지대에서 순록을 방목하며 사는 산타클로스와 유사한 종족으로...그 게르(천막)의 형태는 북아메리카 아파치족들같은 A텐트 형식입니다.
주의해야할 건...
현재의 외몽골 서북부는...연행사들이 연경으로 갈 때의 기준으론 몽골족들의 가장 동쪽땅이 맞습니다.
천산남부가 북부의 청나라에 먹힌 명나라 북경지역으로 봤을 때...그 동쪽인 내 몽골은 이미 조선 함경남도에 편입됀 북원(北元)의 옛 땅이며...외몽골은 함경북도격의 땅이라 봐야 하니...
연행사가 청나라 갈 때의 몽골이란 국명을 쓰는 나라들은...몽골의 발원지인 옛 북원땅엔 없던 싯점임을 간과해선 않됀다 봅니다.
오손"이...몽골인들과 같ㄷ은 색목인이라 규정한 싯점도...연행사가 청나라 방문할 싯점이 대부분이며...
한무제이후의 오손이...서역으로 밀려 도망치고서의 백인혼혈족들을 이름인가 함이며...
그 백인의 한계가 꼭히 파미르 이서로 규정됄 이유도 없는게...현재의 타클라마칸사막 상당 지역에도 순수 백인의유골이 나오며...극동의 한반도 고인돌에도 순수 백인유전자 유골이 나온단 점 때문입니다.
부여인은 털도 희고 몸도희다...곧 순수 백인이 꾀많단 말이 있고...환국 5종의 인간들중 분명 백부인이 기록됐음을 보건데...백인종을 꼭히 고조선이나 고구려,부여인종관 다른 종족였다 단정함도 위험해 보입니다.
특전싯점부터...유독 검고 곧은 머릿털을 상투로 튼 황인종이...세계대륙을 호령했으며...그들이 선비족(센삐)의 주류이고...그들의 동쪽 이주족이 동선비격 기자의 조선(朝鮮)...그들의 관경엔 황인을 주류로한 흑인 백인공존했다 봄이 타당해 보입니다.
그중 부여계는 완연한 백인과 황인혼혈였다고 전 봅니다.
아시아 황인종들 중에도...북부로 갈수록 흑백혼혈인종이라고 전 봅니다.
그걸 아리안(아라랑)이라하고...이들이 인도나 페르시아,이집트로 가선 에리트의 브라만(부여계로 보임)들의 서방불교(배화교)가 생기고...서북으로 가선 스키타이(서쪽 힛타이트)가됀다 봅니다.
시작은 모두...천산과 알타이(金山)...천해(天海)는...고지도들 그대로...수량 많았던 시절의...
알알해+발하쉬호+중가르 보해(副海)...거기가 바로 세계의 현생인류들 천자(天子)들의 중세이전까지의 영원한 도읍지...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궐한! 님
반갑습니다. 또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지명이나 산, 하천등의 위치 비정이나 확정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 일뿐입니다.
나의 생각이 다 옳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역사서에서 말하는 내용을 보고 따라가 보는 것일 뿐입니다. 위치 확정은 여러 번에 걸친 시행작오를 거친 후에나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님의 아이디어 넘치는 글을 보고 싶군요.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