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놀랍지 않게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도대체 왜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내세우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비리도 많고 부도덕한 이명박을 뽑았나. 50%에 달하는 표는 어디서 왔을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1. 대선도 결국 게임이다. 우선 한나라당 부동의 지지표가 있다. 지금 나라에 한나라당 만큼 지지기반이 확실한 당이 있는가.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최대의 위협은 정동영, 이회창, 김경준도 아닌 박근혜였다. 경선에서 박근혜에게 승리한 순간, 이미 30% 정도의 지지는 확보한 것이었다. 더욱이 이번처럼 투표율이 저조한 상황에서 이러한 지지층은 빛을 발한다. 그뿐인가. 언론이 수시로 떠들어 대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들 지경이니 일단 한나라당에서 출마만 하면 40%는 먹고 가게 생겼다.
게임은 그 다음이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도 결국 게임의 승부처는 '한나라당 잡기'였다. 15대 대선에서는 이인제가 한나라당 표를 시원하게 갉아 먹고 김종필이 김대중에게 붙음으로써 가까스로 이회창을 이겼다. 16대 대선 역시 정몽준이라는 복병이 나타나 노무현과 단일화를 함으로써 또 가까스로 이회창을 이겼다. 잘 하면 이번 대선에서도 그 시나리오로 갈 뻔했다. 그간 연속으로 안타깝게 고배를 마신 이회창이 이번엔 이명박 표를 갉아먹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이회창이 정동영과 연합할 리는 없고, 그렇다고 이회창이 당선될 리는 더더욱 없으니 남은 표를 정동영 쪽으로 몰아주면 승산을 바라볼 법한 게임이었다.
여기서 정동영과 그외 후보들은 아주 바보짓을 한 것이다. 안그래도 뒤늦은 출발선에 있었던 처지에 이명박 까기에만 정신 없었던 정동영은 이명박이 비리가 있거나 말거나 한나라당 지지층은 변할 리가 없다는 것을 몰랐나 보다. 애초에 이명박을 감옥에 집어 넣을 것이 아니었으면 노무현처럼 행정수도 이전 같은 공약이라도 들고 나와서 호소를 했어야 했다. 방송 경력이 있는 스스로에게 가장 유리하게 작용했을 TV 토론회에 나와서 한 말이라고는 '국민여러분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명박 후보 해명하셔야 합니다'가 다라니.
여기에 문국현이라는 인물이 등장했는데, 다분히 놀랍게도 아주 판타지를 만들어냈다. 정몽준보다 훨씬 파워가 딸리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아니, 스스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자기 지지자들은 그렇게 믿게 만들었다. 대통령이라는 것은 자기보다는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대로 있으면 자기가 대통령 될 리는 전혀 없고, 뻔히 이명박이 대통령 되게 생겼는데 그럼에도 끝까지 정동영 쪽에 힘을 실어주지 않은 것은 세 가지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이 되는데, 첫째는 정동영 쪽으로 힘을 실어줘봤자 안되게 생겼으니까 끝까지 완주함으로써 모양새를 챙긴 것이고, 둘째는 정동영보다는 이명박이 낫다고 생각했거나, 셋째는 향후 5년간 나라가 어떻게 되든 말든 일단 다음 대선을 노리고 자기 지지기반을 붙들어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나 이명박을 싫어하던 문국현 지지자들이 결국은 이명박이 대통령 되는 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2. 어쨌거나 개인주의, 우리가 사는 민주사회 어쨌거나 이런 어리석고 바보 같은 이유로, 아주 싱겁게 이명박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국민이 선택했으면 겸허히 받아들어야 하는 게 우리가 일궈 놓은 민주주의다. 딴에는 투표율이 60%밖에 안되니 국민 30%의 지지라고는 하지만 나머지 40%는 누가 되든 상관이 없다는 사람들이니 70%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그렇게 치면 김대중이나 노무현의 득표율 역시 국민의 35%를 채 못 넘긴다. 이렇든 저렇든 대통령은 대통령이다.
대선 결과를 두고 민주주의는 죽었다거나 대한민국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같은 반응들이 오히려 더 황당하다. '이것밖에 안되는 국민이라니'라는 말들은 그대로 말하는 사람 수준이 그것밖에 안되는 걸 의미한다. 이명박을 찍지 않았다고 해서 혹은 특정 후보를 찍었다고 해서 무엇이 그렇게 우월하고 열등한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비리 후보 이명박을 뽑는 사람들은 왜 뽑는 것인가, 그걸 그렇게나 궁금해하던데 사람의 사고방식이란 우선 순위가 있는 법이다. 그 사람들은 정권 교체 혹은 경제 성장을 도덕성보다 앞에 놓은 것이겠다(내가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바람을 펴도 돈만 벌어다주면 되는건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바람을 펴서 잃는 손해보다 돈을 벌어줘서 얻는 이익이 많으면 된다는 것이 현실적인 논리다. 돈을 벌어준다는 보장이 어딨느냐 하는 의문은 다른 후보들에게도 모두 적용이 되는 것이겠고, 딱히 잘한 경력이 없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선 그나마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도 해본 바 있는 후보에게 손이 가는 것이고. 물론 그 경제 성장이라는 것은 나라의 경제 성장보다는 자기에게 맞춘 성장이라는 의미이다. 빈곤과 마찬가지로 절대적 부보다는 상대적 부가 중시되는 것이랄까.
거기에 이미 대통령이 혼자서 뭘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노무현의 예에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그렇게 대통령 이명박이 마음에 안들면 총선에서 이명박 끌어내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을 신당에 힘을 실어주면 된다. 힘만 있으면 대통령 탄핵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인터넷에서는 이미 뭐 하나만 잘못해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후폭풍을 맞게 생겼다. 대통령을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 민주사회는 이렇게나 좋은 것이다.
그렇다고 대통령 이명박이 일을 잘 할 것 같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공약의 최전선에 내세운 대운하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뜯어말리고 싶다. 그렇지만 대운하 역시 이명박 혼자서 하고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국민의 뜻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또 아닐 것이다. 그 외에 공약들 상당수 역시 맘에 안들기는 매한가지다(나는 전혀 이명박 지지자가 아니다. 태생적으로 그런 후보를 찍어줄 수가 없다). 다음 혹은 다다음 대통령은 그걸 뒷수습한다고 고생깨나 할 것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역사가 판단할 일이지만.
4. 여담으로 이 글을 쓰는 곳 또한 인터넷이라서 하는 말인데, 이번 대선이 보여준 또다른 시사점은 인터넷의 무서움이다. 인터넷이 파워가 있어서 무섭다는 얘기가 아니라, 일방향으로 몰아가기 좋아하고 순식간에 여론이 불타올랐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인터넷의 무서움이다. 문국현 지지자들이 점령해 버린 많은 커뮤니티에서 그들이 보여준 결집력은 대단했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고, 정리해서 말할 자신이 없을 경우라도 스크랩이니 트랙백이니 하는 편리한 문명의 이기 덕분에 누구나 손쉽게 여론몰이에 동참할 수 있었다. '이명박 지지하면 알바, 문국현 까면 사살'이라는 분위기는 반대 입장이 쉽게 말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 다음에 왜 우리가 인터넷에서 본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았죠 라고 묻는 건 어리석기 짝이 없다. 스스로가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를 자처하며 정확한 결과를 애써 볼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5. 앞으로 누가 죽더라도 산 사람은 살아가듯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자기 살 길을 찾는 게 현대가 만들어낸 개인주의의 결과이고, 누구도 쉽게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대운하 예정지에 땅이라도 사 둔 사람들은 그 개인주의 정신이 아주 투철하신 것이다. 개인주의도, 그리고 민주주의도, 아주 대단한 가치라기보다는 결국은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낸 결과다. 최선을 찾을 수 없어 택한 차선. 이미 지나온 길을 두고 후회하는 것은 부질없을지 몰라도 그것을 타산지석 삼아 어떤 길이 후세를 위해 나은 것인지 고심하는 시간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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