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生과 死는 인생의 가장 중요 사항이 아닐가 싶습니다.
生死觀(생사관)을 공자와 장자를 통해서 알아봅니다.
공자는 夏殷周(하나라,은나라,주나라)의 帝政政治(제정정치)가 紊亂(문란)해진 春秋時代(춘추시대) 사람으로 당시 사회상이 혼란해지자 仁이라는 새로운 규범을 들고 나와 사회를 바로 잡으려 했던 사상가였습니다.
仁이란 부모형제를 우대하는 孝를 실천사상으로 옮기고 周시대 禮樂(예약)을 펼쳐 천하를 제도하려했던 사상이었습니다.
仁은 삶의 철학이지 죽음에 대한 철학이 아니었기 대문에 論語에서는 죽음에 관한 언급이 보이지 않습니다.
딱히 들추어 보자면 先進篇 11 장이 한 군데 있긴 합니다.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이처럼 공자는 내세에 대해서는 함구했습니다.
다만 내세의 영혼 즉 鬼神(귀신)을 위한 법도를 숭상하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鬼는 사람의 혼백을 뜻하고 神는 하늘의 혼령을 의미함.)
사람의 죽음을 鬼로 봤고, 사람의 혼백을 위해서는
산 사람처럼 효로써 잘 받들어야 神靈(신령) 즉 하늘의 가호를 받아
복을 받는다는 祭祀(제사) 문화를 확립시켰습니다.
喪禮(상례)나 祭禮(제례)를 산 사람처럼 잘 모시는 것이 孝요 仁의 실천 사상이 되겠습니다.
儒家에서는 죽음이란
靈魂(영혼) 즉 鬼인 혼백(魂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제례문화가 이어온 것은 공자의 仁의 사상이 계승되고 있다하겠습니다.
道家(도가)는 유가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죽음이란 無로 보고 있습니다.
장자 외편 지락(至樂)에서 죽음을 無라 하고 있습니다.
장자(莊子)는 전국시대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어 공자보다 이삼백년 뒤 사람입니다. 장자는 공자의 仁에 반기를 들고 나와 모순점을 지적하면서 자기 사상을 펼쳤습니다.
生死란 無에서 발원한 生이 無로 歸依(귀의)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상은 無形으로 있다가 變(변)하여 氣(기운)가 생겨나고,
氣가 변하여 形(형체)가 생겨나고,
形體(형체)가 변하여 人(사람)이 태어 났다가
命(목숨)이 다하면 죽음을 맞아 氣로 되돌아가
無에 귀의 하는 순환과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無形 →變→氣→變→形→變→人(삶=유형)→變→氣(죽음=무형으로 귀의)
生死를 春夏秋冬의 순환과정과 같은 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죽음이란 원래 無였던 제자리를 찾아 가는 것을 이릅니다.
죽음을
공자는 魂魄(혼백)으로 돌아가는 것
장자는 無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어
두 학파의 사상이 확연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와 장자의 죽음에 관한 본문 글입니다.
논어 선진편 11장
季路問事鬼神 子曰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未知生 焉知死
계로문사귀신 자왈미능사인 언능사괴 감문사 왈미지생 언지사
공자의 제자인 계로가 귀신 섬긴 일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사람 섬긴는 일도 잘 모르겠는데 어찌 귀신 섬긴 일을 알겠느냐?」
「감히 죽음에 대해 묻겠습니다.」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나?」
부질 없이 죽음에 얽매어 헤매기 보다는 삶이나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명제가 깔린 글이라 하겠습니다.
참고
論語 集註(집주)의 저자인 朱子(주자)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問事鬼神 蓋求所以奉祭祀之意.
而死者人之所必有 不可不知 皆切問也.
然非誠敬足以事人 則必不能事神.
非原始而知所以生 則必不能反終而知所以死. 蓋幽明始終 初無二理 但學之有序 不可躐等 故夫子告之如此. 躐: 밟을 렵
귀신 섬기는 것을 물은 것은 대개 제사를 받드는 뜻을 구한 것이며 죽음이란 것은 사람에게 반드시 있는 것이어서 알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모두 절실한 물음이다.
그러나 정성과 공경으로 사람을 섬기지 아니하면 반드시 능히 귀신을 섬기지 못할 것이다. (天地의) 시원(始原)과 소생하는 바를 알지 못하면 반드시 마지막으로 돌아가 죽는 것을 알 수 없다.
※原始反終 :처음을 근원으로 하여 그 종말로 돌아옴이라는 뜻으로 주역에 나오는 말
무릇 유명과 시종은 최초부터 두 가지 도리가 아니었다. 다만 배움에 차례가 있어서 단계를 뛰어넘을 수 없으므로 공자가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程子曰
晝夜者 死生之道也. 知生之道 則知死之道. 盡事人之道 則盡事鬼之道. 死生人鬼 一而二 二而一者也. 或言夫子不告 子路 不知此乃所以深告之也.
정자가 말하기를,
「낮과 밤이란 삶과 죽음의 도이다. 삶의 도를 알면 죽음의 도를 안다. 사람을 섬기는 도를 다하면 귀신을 섬기는 도도 다하게 된다.죽음과 삶, 사람과 귀산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다. 혹자는 공자가 자로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하나 깊이 가르쳐 준 바탕을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장자 외편 지릭(至樂) 2
莊子妻死(장자처사) 惠子弔之(혜자조지): 장자의 아내가 죽자 혜자가 조문하러 갔다. (※ 惠子는 장자 친구로 추정)
莊子則方箕踞鼓盆而歌(장자즉방기거고분이가) : 장자는 그 때 두 다리를 뻗고 항아리(盆 :악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箕踞(기거):蹲坐. 箕(기):키. 踞(거):蹲(준;웅크리다.) 盆(분):瓦缶(와부) 古時樂器.)
惠子曰(혜자왈) : 혜자가 말했다.
與人居(여인거) 長子 老(장자 노) 身死(신사) : 「부인과 살면서 자식을 키우며 늙다가 죽었는데
不哭(불곡) 亦足矣(역족의) 又鼓盆而歌(우고분이가) : 곡하지 않은 것도 또한 괜찮네. 그런데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不亦甚乎(불역심호) : 너무 심하지 않은가?」
莊子曰(장자왈) 不然(불연) : 장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네.
是其始死也(시기시사야) : 그녀가 처음 죽고 나서는,
我獨何能無槪然(아독하능무개연) : 나라고 어찌 다른 사람과 달리 슬픔이 없었겠는가? 槪(개):慨, 感觸哀喪.
察其始而本無生(찰기시이본무생) : 그녀의 시원(始原)을 살펴보면 본디 생명이란 없었네.
非徒無生也而本無形(비도무생야이본무형) : 비단 생명만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형체조차 없었네.
非徒無形也而本無氣(비도무형야이본무기) : 형체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기식(氣息)도 없었네.
雜乎芒芴之間(잡호망홀지간) : 아득하고 흐릿한 가운데 섞여있다가(혼돈속에서) 芒芴(망홀):恍惚
變而有氣(변이유기) : 변화하여 기식(氣息)이 있게 되었고
氣變而有形(기변이유형) : 기식이 변화하여 형체가 생겼으며
形變而有生(형변이유생) : 형체가 변화하여 생명이 있게 되었네.
今又變而之死(금우변이지사) : 이제 또 변하여 죽었으니
是相與爲春秋冬夏四時行也(시상여위춘추동하사시행야) : 이 현상은 춘하추동의 사계절이 운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네.
人且偃然寢於巨室(인차언연침어거실) : 그 사람(妻)은 하늘과 땅이라는 큰 방(天地)에서 편안히 잠들고 있는데 噭噭然:叫哭聲. 噭(교):외치다, 울다.
而我噭噭然隨而哭之(이아교교연수이곡지) : 내가 소리 내어 그녀가 죽었다고 곡을 한다면
自以爲不通乎命(자이위불통호명) : 내 스스로 천명을 달통하지 못함을 인정하지 못함이네.
故止也(고지야) : 그래서 그만 두었네. 」
장자 잡편 열어구(列禦寇) 12
莊子將死(장자장사) : 장자가 죽으려 하자,
弟子欲厚葬之(제자욕후장지) : 제자들이 장사를 성대히 지내려고 했다.
莊子曰(장자왈) :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吾以天地爲棺槨(오이천지위관곽) : 「나는 하늘과 땅을 관과 관뚜껑으로 삼고, -天을 관뚜겅 地를 관으로 보고 내몸이 관속에 있다는 말- 槨: 덧널 곽.
以日月爲連璧(이일월위연벽) : 해와 달을 한 쌍의 구슬 장식으로 삼으며,
星辰爲珠璣(성신위주기) : 별들을 진주와 옥으로 장식하고,
萬物爲齎送(만물위재송) : 만물을 부장품으로 삼으려 하니, 齎:가져올 재
吾葬具豈不備邪(오장구기불비사) : 나의 장례 용품은 어찌 갖추어지지 않았다 하겠느냐?
何以加此(하이가차) : 이에 무엇을 더 보태겠느냐?」
弟子曰(제자왈) : 제자들이 말했다.
吾恐烏鳶之食夫子也(오공오연지식부자야) :「저희들은 스승님께서 까마귀나 솔개의 먹이가 될까 두렵습니다.」
莊子曰(장자왈) : 장자가 말했다.
在上爲烏鳶食(재상위오연식) : 「위쪽에 놓아두면 까마귀와 솔개가 먹을 것이고,
在下爲螻蟻食(재하위루의식) : 아래(땅속)쪽에 묻으면 개미들이 먹을 것이다.
奪彼與此(탈피여차) : 그것을 빼앗아 저 것들에게 주는 것이다.
何其偏也(하기편야) : 어째서 그리 편벽되게 생각을 하느냐?」
이하 생략.
※列禦寇는 列子가 지은 책 (아래 댓글 참조)
첫댓글 열어구(列禦寇) : BC 400년경에 만들어진 책
열어구는 성(姓)이 열(列)이고 이름은 어구(禦寇 또는 圉寇, 圄寇)라고 불린 사람으로 ‘어구’가 실제 이름인지 아니면 도적을 막거나 도적을 잡아 옥에 가두는 일을 담당해서 붙여진 직능의 이름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존중해서 열자(列子)라 불렀습니다.
춘추시대 사람이라는 설도 있지만 대체로 전국시대 정(鄭)나라 사람으로 정나라의 재상인 자양(子陽)과 같은 시대, 즉 기원전 389년경에 살았으며 장자(莊子) 이전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생애가 불확실해 허구적인 인물로 의심하는 학자들이 있으나 생존 자체를 부정할 만한 뚜렷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전적을 종합해 볼 때, 열자는 맑고 빈[淸虛]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고서 무위(無爲)를 숭상하며, 자연적인 품성을 따라 도를 깨달았던 은자(隱者)라 여겨지는 인물입니다.
보통 ≪열자≫는 열어구가 지었다고 말하나 사실은 그의 사상과 행적을 중심으로 후세 사람이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해지는 ≪열자≫는 위진(魏晉)시대에 장담(張湛)이 주석을 달아놓은 책에 근거한 것입니다.
莊子는BC 290년경에 만들어진 책,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장자[이름은 주(周)]의 저서.
莊子 雜篇 列禦寇(열어구)는
列子 열어구 가운데서 일부를 가져온 글로
"莊子將死"는 12번째 내용입니다.
장자는 열자보다 후대인으로 추정합니다.
사람이 죽어 귀신이 된다면 동물이나 식물들은 죽어서 무엇이 될까? 사람도 하나의 생물체인데 죽음은 동식물과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로 돌아간다 장자의 주장에 한 표 던집니다.